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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맑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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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설교 스크랩 마틴루터의 오역 ? 피스테오스 예수 크리스투<출처:말씀의 집>
맑은 추천 0 조회 95 15.07.19 16:57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마틴루터의 오역 ? 피스테오스 예수 크리스투(dia. pi,stewj VIhsou/ Cristou/)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이냐 예수님의 신실함 때문이냐?)



피스테오스 크리스투는 신약에서 8번(롬 3:22, 26; 갈 2:16*2, 20; 3:22; ? 3:12; 필 3:9) 나온다. 헬라어 문법은 이 소유격을 주격소유격(subjective genitive)과 목적격 소유격(objective genitive)으로 구분하여 말하며 대부분의 현대 번역본들은 이 구절들을 목적격 소유격으로 번역하였다.


로마서 3장 22절을 예를 들면 ‘피스테오스 크리스투’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라고 번역하였다.


(개역)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새번역)그런데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오는 것인데,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칩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말성경)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거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킹제임스성경)곧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것으로 모든 자와 믿는 모든 자에게 미치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상과 같이 한글성경들은 모두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라고 번역하였으며,


다음 영어성경들도


ESV Romans 3:22 the righteousness of God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for all who believe. For there is no distinction:


GNV Romans 3:22 To wit, the righteousnesse of God by the faith of Iesus Christ, vnto all, and vpon all that beleeue.


KJV Romans 3:22 Even the righteousness of God which is by faith of Jesus Christ unto all and upon all them that believe: for there is no difference:


NAU Romans 3:22 even the righteousness of God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for all those who believe; for there is no distinction;


NIV Romans 3:22 This righteousness from God comes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NKJ Romans 3:22 even the righteousness of God,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to all and on all who believe. For there is no difference;


NRS Romans 3:22 the righteousness of God through faith in Jesus Christ for all who believe. For there is no distinction,


GNV 와 KJV의 faith of Jesus Christ를 제외하고는 모두다 faith in Jesus Christ로 번역하였다.
상기 번역본들에 대하여 문법적으로 다시 말하면, GNV와 KJV는 피스테오스 크리스투를 주격소유격(subjective genitive)으로 보았지만 다른 모든 번역본들은 목적격 소유격(objective genitive)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면 과연 헬라어 문헌에서 피스테오스가 그 다음에 인칭소유격 단어와 더불어 사용되는 용례는 어떠한가? 실제로 이런 소유격이 주격소유격과 목적격소유격으로 사용되었는가? 이런 내용을 검증한 Anchor Bible Dictionary 의 ‘faith of christ’는 부정적인 결과를 말하고 있다. 피스티스가 OT Apocrypha에서 23번 사용되었지만 인칭소유격이 두 번 따라오는데 모두다 주격소유격이며, 필로에서는 116번 나오는데 두 번 나오는 인칭소유격이 모두다 주격소유격이며 요세푸스에서도 5번 나오는 소유격 중에 4번이 주격소유격이며 1번 나오는 목적격소유격도 상기 구절들의 용례와는 관계없는 용례라고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주격소유격으로 번역하지 않고 목적격소유격으로 번역하였을까? 최초의 성경 번역본들은 모두다 주격소유격으로 번역하였다.


페쉬타도 ‘피스테오스 크리스투’를 ‘haymanutha dameshiha’ 로 하여 상기 본문들의 번역을 주격소유격으로 번역하였으며 시리아역과 불가타도 이와 마찬가지로 주격소유격으로 번역하였다. 종교개혁 때의 영어번역들도, 위에서 예를 든 GNV(Geneva Bible)와 KJV(King James Version)처럼 주격소유격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언제 이 피스테오스를 목적격소유격으로 번역하게 되었을까?


피스테오스를 목적격소유격으로 번역한 처음 인물은 마틴 루터였다. 독일어번역을 할 때 이 구절을 그는 항상 Glauben an Christum으로 번역하였다. 왜 그는 이런 번역을 선택하였을까? Anchor Bible Dictionary 의 ‘faith of christ’는 아마도 그의 이신칭의의 신학이 이런 번역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리하여 그의 번역 이후로 모든 영어성경은 이 번역을 따르게 되었고 중국어 성경과 한국어 성경도 예외가 없었던 것이다. 문법적으로 무리가 있었던 번역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이 이런 번역을 하게 하였고 그 이후의 모든 성경은 그의 신학을 따라 원문자체를 왜곡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연히 마틴루터 이전의 번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러면 과연 주격소유격과 목적격소유격으로 번역한 그 결과는 어떻게 달라질까? 이 구절의 용례가 한 구절에 두 번 나오는 갈라티아서 2장 16절을 가지고 한번 살펴보자.


먼저 목적격 소유격으로 번역한 예로서 개역개정의 번역을 보자
[개역]갈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이 구절을 가지고 우리는 ‘우리가 의인으로 칭함을 받는 것은 행위가 아닌 믿음 때문이다.’라는 이신칭의 교리를 설명한다. 그러나 성경말씀이라고 해서 우리는 무조건 받아들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 해석 자체에 문제가 야기된다. 행위는 무엇이고 믿음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행위는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행위이고 믿음은 우리가 예슈아 마쉬아흐를 믿는 믿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행위와 믿음의 주체가 우리이다. 따라서 칭의가 행위가 아닌 믿음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우리 자신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주격소유격으로 번역을 하면 내용이 달라진다. 주격소유격으로 번역한 헬라어직역신약성경의 예를 보자.


16사람은 토라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고 예슈아 마쉬아흐의 신실함을 통하여 의롭게 되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우리가 예슈아 마쉬아흐를 믿는 것은 토라의 행위가 아니고 마쉬아흐의 신실함으로 의롭게 되기 위함입니다. 이는 토라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칭의가 토라의 행위가 아니고 예슈아 마쉬아흐의 신실함 때문이다. (예슈아 마쉬아흐의 인성을 생각하면 예슈아 마쉬아흐의 믿음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으나 예슈아 마쉬아흐의 신성을 생각하였다) 따라서 이 구절을 주격소유격으로 번역하면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우리 자신의 행위가 아니고 예슈아 마쉬아흐의 신실한 행위 때문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다. 칭의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고 예슈아 마쉬아흐가 된다. 요즈음 믿음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잘못된 이해 때문에 많은 논란이 있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마틴루터의 잘못된 성경번역이 그렇게 밖에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 아무리 바르게 설명하여도 텍스트 자체가 왜곡되어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헬라어직역신약성경은 8가지 잘못된 번역을 주격소유격으로 번역하였다. 나머지 여섯 용례는 다음과 같다. (롬 3:22, 26; 갈 2:20; 3:22; ? 3:12; 필 3:9)


로마성도들에게 3장
22그것은 예슈아 마쉬아흐의 신실함을 통한 하나님의 의로서 모든 신자를 위한 것입니다. 참으로 거기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26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다가 지금 이때에 자신의 의를 드러내신 것은 자신이 의로우시다는 것과 예슈아의 신실함으로 의롭게 한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갈라티아서 2장

20이제 나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마쉬아흐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육신 안에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넘겨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신실함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갈라티아서 3장

22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습니다. 이는 그 약속이 예슈아 마쉬아흐의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에게 주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23신실함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토라 아래 갇혀서 신실함이 드러날 때까지 보호를 받았습니다.

24즉 토라는 마쉬아흐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의 가정교사였습니다. 그러나 마쉬아흐께서 오셔서 우리는 신실함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25이제 그 신실함이 오셨으니 우리가 더 이상 가정교사 아래 있지 않습니다.

26왜냐하면 여러분 모두가 마쉬아흐 예슈아 안에서의 신실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페소성도들에게 3장
12우리는 그의 신실함을 통하여 확신을 하고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필?포성도들에게 3장
9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함입니다. 내가 가진 의는 토라에서 나온 의가 아니라 마쉬아흐의 신실함 때문에 나온 것이니 이는 신실함에 기초를 둔 하나님의 의에서 나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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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5.07.19 17:01

    첫댓글 주일설교후 웹에서 발견한 아주 중요한 내용입니다.
    마침 주일설교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현대교회가 믿음 pisteos 를 목적소유격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심각한 오류입니다.
    주격소유격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즉 fath in Jesus가 아니라 fath of Jesus 로 번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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