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줄거리에 대한 내용이 다소 섞여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에게 다소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를 볼 계획이 있으신 분은 읽지 않으실 것을 권합니다. ^^
영화에서 미국이 괴물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을 제공하는 만큼, 미국에 비중을 두어서 영화를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시각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러나 제가 느낀 바로는 이 영화가 미국의 이라크 전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괴물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된 군인들의 군복이 이라크전에서와 같다는 해석이나, 괴물을 진압하기 위해 사용된 무기가 결국은 생화학 무기라는 점, 대량 살상용 무기가 없는 이라크를 공격해보니 막상 무기가 발견되지 않자 있는 것으로 만들었다는 평은 해석하는 관점에 따라서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괴물이 등장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주된 역할을 수행하지만, 실질적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당사자는 가족 들이지요. 때문에 글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감독의 의도를 살피는 것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예의라 한다면 오히려 가족들에 시선을 두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강두의 가족은 막내딸 현서가 괴물에 납치되자 그녀를 구하러 갑니다. 물론 공권력은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근거로 그들을 막지요.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공권력의 망을 뚫고 탈출을 합니다. 그리고, 전재산을 털어 딸을 구하기 위한 방도를 마련합니다. 이것이 감독이 의도한 '한국적인 코드'냐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비단 우리나라의 가족이 아니어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이러한 행동을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가족과 관련된 '한국적인 코드'는 총알이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강두의 아버지가 강두를 향해 무심한 표정으로 어서 도망가라는 손짓을 하는 것과, 강두가 괴물에 의해 쓰러진 아버지를 보고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장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가 '괴물'을 소재로 한 일반적인 재난 영화였다면 강두의 아버지는 강두를 향해 '비장한' 표정을 짓거나 아니면 멋지게 임기응변을 발휘해 그 상황을 벗어났을 것입니다. 자신이 죽음에 처할 위기인 것을 알면서도 자식을 향해 '나는 괜찮다'라는 표정을 지어보일 수 있는 것, 이게 바로 한국적인 코드 아닐까요? 강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떠나지 않으면 경찰에게 체포될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를 '차마' 떠나지 못합니다. 자꾸 뒤를 돌아보지요. 같은 선 상에서 할리웃 영화였다면 강두는 복수를 향한 의지를 다지면서 눈물을 훔치며 그 자리를 떠났을 것입니다.
가족에 관한 이러한 내용 외에도, 괴물을 둘러싼 해프닝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영화의 내용이 전개되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경찰관이나 구청직원, 그리고 병원의 의사들이 등장할 뿐이지요. 한강에 등장해서 인명을 해치고 있는 괴물에 대해서 왜 정부는 병력을 사용하지 않았느냐 하는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국제적인 화학기구가 등장하기 전까지 충분히 개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개입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물을 수 있겠지요. '어차피 정부는 개입할 여지 자체가 없다'라는 앞선 글의 논지대로의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이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정부가 전면으로 등장하지 않은데서 드러나는 '한국적인 코드'도 있습니다. 병원에서의 경찰관은 현서가 살아있다는 강두의 이야기를 들으려고조차 하지 않습니다. 후에 박해일은 이 문제를 너무나, 너무나 간단하게 해결을 하지요. 어쩌면 이 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일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 범위를 벗어나는 혹은, 믿고 싶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조차 하지 않는 문제 말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미국이 스스로의 의도를 관철시키기 위해 고의적으로 강두의 의견을 묵살했다고만 보는 것은 무리인 것 같습니다.
괴물이 등장한 상황에서도 방역업체의 우선순위를 따지는 구청직원과 그에 대한 박희봉의 행동 역시 한국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진정 재미를 느끼며 웃을 수 있는 부분이겠지요. 병원의 의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강두의 인질이 되었던 사람은 후에 인터뷰에서 강두의 인격에 대해서 단정적인 말을 하게 되지요.
석유를 부은 해석.. 글쎄요. 그것은 충분히 개연성을 기반으로 해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석유는 화염병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었지요. 노숙자의 역할이 급작스러운 것 아니냐 생각할 수 있겠으나, 노숙자 역시 지갑째 넘긴 박해일과 함께 심심함을 달래볼까 하는 심정에서 나선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괴물은 결국 무엇을 나타내느냐'하는 논의거리가 남을 것입니다. '감 독 이 밝 힌 바 에 따 르 면' 괴물은 가족에 관한 영화입니다. 그리고 괴물이라는 소재는 감독이 예전부터 구상해왔던 것입니다. '한강에 괴물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하는 것을 실제로 영화로 만든 것이지요. 따라서 괴물은 '어느날 한강에 나타난 괴물'로 보는 것이 가장 감독의 의도를 지지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딸이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한 가족이 치르는 여정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그게 가장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혹자는 그 가족이 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만큼 딸이 사랑스럽느냐는 우문을 던지기도 하지만, 글쎄요,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현서는 그냥 보기만 해도 사랑스럽던걸요. 더욱이 자기보다 어린 꼬마를 괴물에게 잡혀가는 순간까지 감싸안는 것을 보면서 또 한번 기특해 했습니다만.
* 현서가 죽었느냐 살았느냐에 대한 논의는 현재진형형이 되어야 할 것 입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은 대부분 죽었다라는 쪽이지요. 현서는 죽었고 강두가 현서 대신 남은 꼬마 아이를 돌봐주는 것이라 설명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서가 살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여부는 물론 '감독의 마음'이겠지만 할아버지까지 죽은 마당에 현서까지 죽었다면 정말 그 가족의 입장에서 비극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더욱이 괴물과의 사투 이후 사진들을 비춰주는 장면에서 현서가 살았다고 생각할만한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DVD가 출시되면 찬찬히 그 장면들을 잡아내서 현서의 생존을 증명할 생각이기도 합니다. ㅎㅎ
이 부분은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전작 <살인의 추억>에서도 결국 박해일이 범인이냐 아니냐가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었지요. 감독 스스로도 '그것은 관객의 몫'이라고 이야기를 했었고요. 괴물을 본 아이들과 이야기를 한다면 '현서의 죽음 여부'를 주제로 토론을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분명한 것은... '괴물' 참 재미있는 영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