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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들꽃공원 원문보기 글쓴이: 해엄
거지깽깽이 축제
“얼씨구 시구 들어간다. 절시구 시구 들어간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얼쑤 품! 품바가 잘한다.” 무슨 옆집 강아지 짖는 소리냐고. 해마다 복사꽃 피는 시절이 되면 무릉도원에서 전국의 거지들을 모두 불러 모아 한바탕 색깔 있는 난장을 펼친다. 거지라는 거지들을 모두 불러 잔치를 벌이는 곳이 심청이가 애비 찾으려고 연 이후 지구상 어디에도 없지. 암 없고말고. 이름 하여 전국품바축제다.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았으니 이제는 전통이 되어가는 특색 있는 잔치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헌데 품바가 뭐랴?” “뭐시라 품바는.. 나도 잘 몰러.” 이렇다. 거지들이 동냥할 때 부르는 노래 정도로 알고 있지만 품바는 심오한 뜻이 있는 단어다. 한자의 품(稟)자에서 유래되어 ‘주다’, ‘받다’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사랑을 베푼 자만이 희망을 가진다.’는 뜻을 품고 있는 우리 고유의 풍자와 해학이 함께 묻어있는 단어이다. 가진 것 없는 허(虛), 텅 빈 상태인 공(空), 도를 깨달은 상태에서의 겸허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격이 있고 아름다운 단어가 왜 빌어먹는 거지들의 대명사로 바뀌었을까. 또 아무의미 없이 각설이 타령의 추임새로 장단을 맞추기 위해 썼다고 하기도 하는데 타령의 장단을 맞추고 흥을 돋우는 소리라 하여 조선 말기까지 ‘입장고’라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일제시대와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시절 인심이 각박해지면서 품바가 비럭질하는 각설이의 대명사로 일반화 된 것이다.
“근데 음성하고 품바하고 뭔 연관이 있댜?” “글쎄...” 공연히 뒷머리만 긁기 일쑤다. 거지가 가장 많은 곳이 음성이고, 거지가 가장 대접을 잘 받는 곳도 음성이다. 걸인들의 천국인 꽃동네가 음성에 있고, 전국의 거지란 거지는 다 모아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친다. 이를 위해 음성군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어려운 재정아래서도 수십억 원의 천금같은 예산을 매년 지원한다. 음성이 본적지도 아니고, 음성에 친척도 없는 그런 사람들에게 음성사람들은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천성이 착한 사람들이다. 거지성자로 칭송받고 있는 최귀동 할아버지는 금왕 읍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응천의 다리 밑에서 열여덟 거지들을 아무 조건 없이 거두었다. 같은 걸인이면서도 거동이 어렵고 몸이 아픈 거지들을 모아 같이 생활하면서 아름다운 성인의 길을 걸었다. 그분의 삶의 정신이 계승된 곳이 꽃동네이다.
이래도 음성과 품바가 관련이 없는가. 올해도 푸짐한 행사가 준비 중이다. 삭막한 세상에 대하여 야유, 풍자, 해학, 무심, 허무, 영탄들을 엮어 던지며 걸쭉한 입담과 웃음을 보여줄 잔치마당을 연다. 풍자와 해학으로 선과 지혜를 나타내고, 비애와 한을 사랑으로 포용하는 조상들의 지혜와 슬기를 배우는 장소가 될 것이다. 자기 성찰을 통한 나눔과 베품으로 음성을 하나로 꽁꽁 묶고 전국을 하나로 엮을 생각이다. 품바에는 지역감정 따위는 아예 없다.
이를 위해서 스스로 걸인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음성예총을 이끌어 가는 몇 안 되는 회원들인데, 글 쓰는 이도 있고, 그림 그리는 이, 깽깽이를 안고 사는 사람도 있다. 모두가 서툰 예술인들이지만 품바를 통하여 깽깽이 풀처럼 예쁜 꽃을 피우고자 오늘도 밤을 하얗게 밝힌다. 몇 달 전부터 밤새워 준비하고, 잔치가 열리면 스스로 거지깽깽이가 된다. 너덜너덜한 옷을 걸치고 숯 검댕을 얼굴에 덕지덕지 칠하고 행사를 진행하는데 영락없는 거지다. 순수 민간단체에서 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데 이제는 솜씨도 수준급이다.
우리지방에서 4월 중순부터 5월초에 산록에 연분홍색, 연보라색으로 피는 꽃이 있다. 깽깽이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잎이 연꽃의 잎 모양을 닮았고 약재로 쓰는 뿌리를 잘라보면 진한 노랑색을 띄고 있어 황련, 선황련으로 불리고 북한에서는 산련풀, 중국에서는 조황련 등으로 불리는 약재이다. 예전에는 채약꾼들의 망태기에 가득 가득 담겨오던 흔하디흔한 풀이 이제는 멸종위기의 식물목록의 맨 위에 있다. 산에 나무가 많아져 자연스럽게 없어지기도 하였지만 점점 귀해지니 들꽃 좋아하는 이들의 필수 품목이 된지도 오래되었다.
깽깽이란 이름이 재미있다. 원래 해금이나 바이올린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고, 그것을 연주하는 악공들을 비하하여 부르던 말이다. 또한 어쭙잖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거지 깽깽이 같다고 하고, 일정 지역에 사는 이들을 싸잡아 비하하는 말로 이용하여 지역간의 감정을 불러오기도 하는 그런 말이다. 무척 아름다운 꽃인데 왜 비하하는 말로 이름을 지었을까? 한 참 바쁜 시기에 홀로 피어 일안하고 놀기만 하는 광대에 빗대어 그렇게 불린다는 속설이 있다. 품바축제가 열리는 시기에 예쁜 꽃이 피는데 음성 지역이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자생지이다. 잎이 알까봐 슬그머니 꽃대를 내밀고 거지들이 두드리는 깽깽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연보라색 꽃잎을 살포시 연다.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새봄맞이 꽃 잔치에도 얼굴을 내밀어 볼까 지금 땅속에서 한창 분장중이다.
올해는 축제 마지막 날인 4월22일 “엄니 찾아 떠나는 장돌뱅이 열차”라는 이름으로 지방5일장 관광열차가 음성에 온다. 음성을 아끼고 품바의 해학을 즐기고, 음성장터의 정취를 만끽할줄 아는 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길 바래본다.
각설이타령/장사익
품바축제와 새봄맞이 꽃 큰잔치는 4.19~4.22 음성읍내 설성공원에서 개최되며
엄니 찾아 떠나는 장돌뱅이 열차는 4.22일 음성장날 7시30분 서울역에서 출발하며
저녁 7시20분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철도공사 고객센터(1544-7788)나, (주)비타민여행사(02-736-9111)로 신청하시면 선착순 접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