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역사 아카데미 문학강좌
‘문학(사)’ 이후의 ‘문학(사)
: 25개의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읽는 한국 문학사와 명작
11월 28일 월요일에 권보드래 선생님께서 첫번째 강좌
< ‘하나이면서 여럿인’ 문학 :『백조』와 그 주변>를 시작하십니다.
많은 참가 바랍니다.*^^*
■ 강좌 시즌 1 : 네트워크와 칵테일로서의 한국 문학사 (1)
‘문학사’를 욕망하지 않는 시대에 ‘문학사’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 곤혹스러움의 정체는 가감 없이 토로되고 신랄하게 분석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국가와 제도의 역사에 복무하는 기존 문학사를 위한 심폐소생술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새로운 문학(들)을 위한 산파술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1. 권보드래 (11월 28일 월요일) ‘하나이면서 여럿인’ 문학 :『백조』와 그 주변
「소경과 앉은뱅이 문답」은 과연 민족주의적인 텍스트인가? 신채호의 글쓰기를 한국과 조선인민공화국, 나아가 중국 소수민족 문학사에서 공유할 수 있는가? 1920년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사랑의 불꽃』에 시민권을 인정할 수 있을까? … 쉽게 답할 수 없을 것이되, 첫 강의에서는 지금껏 ‘예술’과 ‘이념’을 중심으로 구성된 문학사에서 가려져 있던 균열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하나로 호명할 수 없는, 끓어오르면서 얽혀 있는 존재들을 가로질러 ‘문학’의 새로운 용법을 탐색할 수 있을지― 집중적으로는 1920년대 초반 낭만주의의 문제를 다룬다.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지역과 계층을 넘나들고 국경 너머도 기웃거리며, ‘하나이면서 여럿인’ 문학을 겹쳐 그릴 수 있는지 토론해 본다.
강사 소개 : 근대 초기 한국에서 소설과 문학의 개념·제도가 형성되는 과정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근대소설의 기원』, 『연애의 시대: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 『1910년대, 풍문의 시대를 읽다』 등의 책을 냈고, 지금은 ‘1910년대와 3·1 운동’, ‘4월 항쟁과 1950~60년대 한국사회’라는 두 가지 주제를 축으로 공부하고 있다. ‘3·1 운동의 문화사’를 제대로 써 보는 게 꿈이다.
2. 천정환 (12월 5일 월요일) 지적 격차와 문자문화 매트릭스와 한국 문학사
강사 소개 :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저서로 『근대의 책 읽기』, 『끝나지 않는 신드롬』, 『대중지성의 시대』, 『혁명과 웃음』(공저), 『근대를 다시 읽는다』(공저) 등이 있다.
3. 소영현 (12월 12일 월요일) 문학사를 둘러싼 오해들, 복수의 문학사를 위하여
강사 소개 : 연세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문학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하며 근현대 문학, 문화, 주체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문학평론가로서 문학웹진 ‘뿔’ ‘작가세계’ 등에서 기획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문학청년의 탄생』 『부랑청년 전성시대』와 비평집 『분열하는 감각들』등이 있다.
4. 권명아 (12월 19일 월요일) 풍기문란으로 보는 부적절한 문학사
한 인간 존재의 삶의 반경을 제한하고, 조정하고, 정해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 사회의 구조이고 체계이고 이데올로기이며, 통치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는 어떤 이들에게는 무궁무진한 인생의 무대를 제공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주 제한된 삶의 반경만을 제공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 삶은, 인생은 그저 정해진 굴레를 맴도는 숙명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숙명은 곧 사회 구조의 다른 이름이며, 누군가의 삶을 숙명으로 환원시키는 그런 구조는 바로 폭력 그 자체이다. 즉 누군가의 인생이 숙명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다면, 바로 그러한 인생들을 생산하는 사회야말로 가장 강력한 폭력이 작동하는 사회이다. 4월 혁명 이후 냉전 체제하에서 풍기문란과 관련된 여러 조직과 법제, 제도가 파시즘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장정일/J의 인생과 대비해서 살펴보다 보면 장정일이 1996년 ‘음란범’이라는 이름으로 치욕스러운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은 이미 1960년 한 소년이 살해당하던 그 시점에 이미 ‘정해져버린’ 것처럼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장정일이 ‘음란범’이 되어버린 것은, 숙명인지 모른다. 이 글은 냉전 체제 하의 풍기문란 통제와 관리의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만들어지고, 통제의 그물이 촘촘하게 엮어지는 과정이 장정일/J라는 실존/허구 인물의 삶을 어떻게 가로지르고, 가로막고, 가로채는지를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강사 소개 : “맞장뜨는 여자” 혹은 “맞짱”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는 것이 좋다. 파시즘과 젠더 정치에 대해 줄곧 연구하고, 글 쓰고 있다. 연간 수편의 젠더 비평을 잡지에 기고하고 있으나, 다들 “요즘은 비평은 안하시고 논문만 쓰시나 봐요?”라고 할 때마다, “당신들이 잡지를 안 보시나보죠?”라고 속으로만 답하곤 한다. 비평가도 꼭 “문학” 비평가여야만 하는지, 분야에 대한 한국 사회의 강박증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걸 아쉽게 여기며, 매번 필자 소개를 쓸 때마다, (그냥) 비평가, 저술가, 연구자,,,이렇게 써보지만, 책으로 확인하면 항상 “문학비평가”라고 수정되어 있는 걸 확인하게 될 때, 그냥 조금 한숨이 나온다. 매사 너무 비관하지도, 한탄하지도, 실망하지도 말고, 그저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입만 열면 열변을 토하고, 한숨을 쉬는 비판 강박증 환자 같은 지식인들처럼은 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부산에서 자리 잡은 것이 이제 6년이 되어간다. 좌충우돌, 우여곡절이 많은 시절이었으나, 분명, 행복하다. 그 행복의 대부분은 좌충우돌과 우여곡절을 함께 한 부산의 친구들이 준 것이다. 그 행복이 감사할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부산의 여러 동료들, 친구들과의 연구와 재미있는 활동들이 조금 더 의미 있는 일들이 되기를 바라면서, net-a라는 이름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http://aff-com.net/, http://cafe.naver.com/agitproject 등에서 이런 활동의 일단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5. 이현우(로쟈) (12월 26일 월요일) 지젝이라는 프리즘으로 본 1990년대 한국문학
※ 12월 26일 강좌가 끝난 뒤 송연회가 있습니다.
오늘날 ‘최선의 무리’들조차도 문학의 ‘상징적 순수함’에 대한 확신을 유지하지 못하며 냉소적․회의적 포즈로 물러나 앉는다(대학의 문학 강의실이나 문학인들의 뒤풀이 자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반면에 ‘최악의 무리’(군중)는 온갖 광신적 행동에 동참한다. 문학이라고 포장된 온갖 것들에 재미를 붙이고 의견을 보탠다. 남은 선택지는 ‘침몰해가는’ ‘순결한 의식’이다. 이 순결함의 사례로 지젝은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에 등장하는 뉴랜드의 아내를 든다. 그녀는 남편이 오렌스카 백작부인과 정열적인 사랑에 빠졌다는 걸 잘 알지만 그런 사실을 품위 있게 무시하고 그의 충실함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문학의 무능과 부덕에 대해서, 불륜에 대해서, 몰락에 대해서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다시금, ‘핏빛 어두운 조수’가 퍼져나가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학에 대한 ‘가장된 순진한 믿음’, 곧 ‘참된 위선’의 회복처럼 보인다. 우리는 문학을 좀더 진지하게 믿는 척할 필요가 있다.
강사 소개 : ‘로쟈’라는 ID 혹은 필명으로 알려진 그는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푸슈킨과 레르몬토프의 비교시학」(2004)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연구교수로 활동하며, 대학 안팎에서 러시아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 등에 서평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인터넷서점에 '로쟈의 저공비행'이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꾸리고 있으며, 이른바 ‘인터넷 서평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레닌 재장전』(공역)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로쟈의 인문학 서재』(2009)『책을 읽을 자유』(2010)『무엇이 정의인가?』(공저)가 있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로 제50회 한국출판문화상[저술(교양) 부문]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