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짤츠캄머굿을 떠나자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앞이 안 보일 정도였다.
그 빗소리를 들으며 또 모여 즐겁게 마시며 놀다보니 아름다운 밤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오전 8시 30분, 체스키 크롬로프를 향해 출발~
이제쯤, 지칠만도 한데 모두들 얼굴이 쌩쌩 빛까지 난다.
체스키 크롬로프로 향하는 길, 푸른 초원을 떠돌던 안개는 산 허리를 감고선 살며시 미소짓고 있다.
가는 길, 푸른 초원과 졸망졸망 달린 사과나무를 보며 잠시 현재의 내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그리도 바쁜지. 무엇에 그리도 욕심을 내며 살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복닥복닥거리며 살고 있는지....
결국 인간은 죽으면 다 똑같은 것 아닐까.
그럼에도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이유는.....
11시 30분 경 국경을 지났지만 이번에는 여권 심사조차 안 한다.
오스트리아 잘 사는 나라에서 조금 못 사는 나라 체코로 들어가기 때문이리라.
드디어 체코 남부 보헤미아 숲 속에 위치한 체스키 크롬로프에 도착하였다.
중세 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마을에서 먹는 점심은 정말로 특별하였다.
마치 중세의 어느 동굴에서 먹는 듯한 기분이었으니까.
스프는 구수하고 맛있었다. 주 성분은 역시 감자, 감자....
이 마을 사람들은 인심이 좋은가?
고기도 엄청나게 큰 걸 주고, 감자도 양껏 먹을 수 있을만큼 준다.
후식으로는 아이스크림과 애플파이를 주었다.
애플파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나였지만, 너무 배가 불러 살짝 맛만 보았다.
흠, 배만 부르지 않았다면.... 아쉽다.
마을을 S자로 휘감아 흐르는 불타 강(몰다우 강)과 왼쪽에 살짝 보이는 망또 다리를 보라.
마치 동화 속 세상에 온 것 같다.
이국의 거리를 거니는 기쁨...
보헤미아 성 중 프라하 성 다음으로 규모가 큰 체스키 크롬로프 성은 유로화를 쓸 수 없다고 한다.
그 말에 다른 일행들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성 안에 있는 정원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박신식샘이 잽싸게 달려가 돈 받는 아저씨에게 눈짓 발짓 손짓으로 사정을 하여
우리 셋은 성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도 고기를 얻어 먹을 수 있다는 말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성 꼭대기에서...
저 아래 마을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여행객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아름다운 마을 풍경에 넋을 잃고 한참을 내려다 보았다.
건물 하나 하나가 예술이다.
체코의 유명한 인형- 마리오네뜨
이 인형으로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이 쏙 빠져들 것 같다.
서점도 예쁘다.
책꽂이를 밖으로 빼내어 작은 책을 꽂아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추운 지방이어서 그런지, 동유럽 집들에는 덧문이 달려있다.
덧문도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오후 3시 20분 안타까운 마음으로 프라하를 향해 출발, 오후 5시 50분 경에야 도착했다.
아, 프라하...
수많은 영화들의 촬영지이기도 한 프라하.
우리 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도 이곳에서 촬영했었지.
주황색 지붕과 육중한 중세 풍의 건물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발에 밟혔을 납작한 돌들..
이 돌 하나 하나에도 역사가 담겨 있겠지.
프라하 시내 관광은 내일로...
구 시가 광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인 구시청사다.
1338년 전통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천문시계가 유명하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한다.
체코는 이미 가을로 접어들었다.
비를 맞으면서, 천문시계가 울리기를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
매시 정각이 되면 시계가 울리면서 열 두 제자의 인형이 움직이고, 시계 꼭대기 창문에서 닭이 나와 운다. 그리고는 끝.
그래도 이것을 보려고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너무나 볼 곳이 많지만, 비가 오는 관계로 사진을 잘 찍지 못했다.
카를 교가 유명한 까닭은 다리 양쪽 난간에 30개의 성상이 있어서이다.
그 중, 성 요한 네포무크 라는 동상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성인으로 추대된 네포무크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만지고 간다.
빤질빤질 빛이 나는 동상...
우리의 박샘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기어코 이 순교자를 만졌다.
아, 행운이여...박신식 샘에게로 몽땅 가라...
카를 교 양쪽에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줄지어 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나온 예술가.
여러 가지 장식품을 가지고 나온 예술가.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예술가.
초상화를 그리려고 앉아 있는 요 꼬마의 표정이 정말 예술이다.
나이가 꽤 들었음직한 체코인들이 요상한 악기들을 연주하며 사람들의 흥을 돋구고 있다.
늦은 점심을 먹고, 우리는 공항으로 가야만 했다.
체코 전통음식이다.
이름은 쯔비치코바...(맞나?)
스테이크에 생크림이 올려져 있고, 술빵 비슷한 빵이 나왔다.(우리 나라의 술빵보다는 약간 달았다.)-술빵의 이름은 크네드니리끼...
공항 가는 길에 잠깐 들른 바츨라프 광장..
'프라하의 봄'을 아시는지.
1963년 시작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 운동은 1968년 소련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았다.
이에 대항해 시민궐기가 일어났고, 1969년 프라하 대학의 한 학생이 바츨라프 동상 앞에서 분신 자살하면서 시위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비가 오는데도, 그때 죽은 이들을 추모하는 헌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참! 바츨라프. 이 분은 체코 최초의 왕이다.
바츨라프 광장에 있는 국립박물관...
그리고... 우리는 공항으로 갔다.
아쉽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으니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동유럽 여행은 나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좋은 약을 먹었다고 해서 그 효과가 금세 나타나지 않듯이
동유럽 여행에서 얻은 에너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멋진 세상을 경험했다는 기쁨을 안고, 우리는 편안하게 돌아왔다.
운이 좋아서인지 비행기 좌석이 남은 탓에 길게 누워 숙면을 취하며 돌아왔으니까.
체코에서 산 크리스탈 부엉이들.
낮이나 밤이나 반짝반짝 빛난다.(아구, 귀여워라..)
분위기 방방 띄어주고, 날마다 다른 패션으로 눈을 즐겁게 해주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후배들을 잘 이끌어준 우리의 귀여운 여인, 이규희 샘...
막내라는 이유로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좋은 사진, 예쁜 찍어주고
여행객들 길 잃을까 봐, 관리도 잘 해주고(직업 의식 발동)
무엇보다 밝은 얼굴로 함께 동참한 우리의 사랑스런 후배, 박신식 샘....
모두모두 사랑합니다.
부족하고 까칠한 안선모, 많이 배웠습니다. (꾸벅)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동유럽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되셨는지요?
언제고 기회가 된다면 꼭 다녀오세요.....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