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보좌의 모습(천상교회)
(계 4:1-2)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
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
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이 일"은 3장까지의 계시를 말합니다.사도 요한이 본즉 하늘의 문이 열렸는데 "나
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것은 계1:10에 있었던 성령의 음성(예수 그
리스도의 음성)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표현으로 보아 계시의 연속성을 가지고
기록하는 요한은 앞서 3장까지의 일을 두고 "이 일"라고 한 것입니다.
"이리로 올라 오라",이것은 천국의 환상을 보여주시기 위해 사도 요한을 부르신 것
이지 휴거론자들이 주장하듯 지상 교회 전체를 휴거 시키는 음성(일)이 아닙니다.
현재 계속적으로 펼쳐지는 계시의 환상을 보는 대로 기록하는 요한으로서 계시의
연속적인 드라마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말세에 대한 예언을 더욱 상세하게 받게 될 요한에게, 먼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
도의 모습(1장)을 시작으로 교회의 주인 되신 주께서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개혁
하도록 하신 바 모델로서의 아시아 7교회를 기록하며, 이제 천상(天上)의 온전한,
신학적으로는 무형교회(無形敎會)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전투적 지상 교회를 살
아가는 요한과 그리고 모든 역사 속에 살아 온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망이 되는 장면
이 연출된 것입니다. 이것은 냉정한 평가와 긍정적 소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계시성입니다.
휴거를 갈망하는 자들은 엉뚱하게 본 장의 환상이 말세에 일어날 교회의 휴거라고
해석하는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이라고 봅니다.
본문에서 조금이라도 그러한 뜻을 함의(含意)하고 있는지 혹은 계시록 성경 앞뒤
환상이 그렇게 보게 하는 보충적 계시가 주어지지 않았는데도 휴거라고 단정하는
이 이상한 해석은 신학적 근거를 어떻게 설정하게 되었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여기에서 나타난 환상이나 내용은 전혀 교회의 휴거와는 무관합니다. 도무지 문장
전체에서 발견할 수가 없는데도 어찌 교회의 들림-휴거를 뜻한다고 주장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계시록의 서론격인 1-4장(5장까지)은 사도 요한에
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교회 전체로 읽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은 말세에 있을 계시를 뜻합니다. 혹은 주님이 재림하시고
전개될 천국의 미래까지 기록된 모든 내용으로 연장 해석이 가능합니다.
사도 요한은 성령에 감동해 있었고 영적으로 하늘의 보좌에 올라갔습니다. 그러한
경우는 사도 바울도 경험한 바 있습니다.
고후 12: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
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휴거론자들은 사도 요한이 영적으로 천상에 오른 것을 지상 교회가 들림 받은 것으
로 확대 해석합니다. 이것은 요한 개인을 교회 전체로 보는 것으로 옳지 못할 뿐아
니라 내용에서 교회의 휴거의 거사(巨事)로 볼 이유가 없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비
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본문은 거저 사도 요한 자신이 밧모섬에서 이 계시를 받는 중에 좀더 천국의 실존
적 모습을 보고 확신하고 감격하여 뒤에 나타나는 여러 대환난 중에 받을 성도의
고난을 참고 인내할 소망을 가슴에 담기 위한 하나님의 인도라 여겨지는 것입니다.
즉 사도 요한 자신이 말세의 대환난 기사를 받기 위한 영적 준비 작업이요, 성도가
환난을 이길 수 있는 소망을 먼저 보게 하신 것으로 봅니다.
본문은 요한 자신이 영적으로 천상에 오른 것뿐입니다.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도 우
리는 신령과 진정-성령과 말씀의 예배가 되기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찬송으로 준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회개의 메시지가 도리어 영혼이 잘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마음 속에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 채우는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소망이 언제라도 충만한
자는 언제라도 예배가 올바르게 드려질 것입니다.
요한이 먼저 천상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바로 환난을 극복하고 소망 중에 인내
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영적 활동을 중심으로 본문을 해석
하려고 합니다. 문맥상으로도 도무지 휴거를 찾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는 다음 절로 보아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계 4:3-4)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
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양에 "벽옥"은 깨끗한 이미지로 청결,성결을 의미하고,"홍보
석"은 엄위, 심판, 정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완전무결하시며 어두운 그림자
가 조금도 없으신 완전자로 계십니다. 이를 깨끗한 보석으로 표현되는 환상에서 인
간(요한)의 가치 척도에 맞추어 깨끗한 보석에 비유한 것입니다.
"무지개"는 녹보석으로 은혜와 생명을 상징합니다. 여러 색깔의 아름답고 칼라풀한
아름다운 무지개가 보좌를 둘렸으니 완전함과 영광의 충만함을 뜻합니다.또한 영광
스런 무지개는 하나님의 언약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원한 약속의 하나님으로 간주됩니다(창 9:13 "내가 내 무지
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하나님 보좌에 둘려 있는 24장로들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1) 이들의 옷이 흰옷이며 머리에 쓰고 있는 면류관의 이름은 승리의 면류관(스테
파누스, )입니다. 이로 보아 구원받은 성도를 대표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
습니다.
(2) 5:10에서 장로들이 말하는 것으로 보아 24장로들은 소위 휴거한 지상 교회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5장에서 24장로들이 "저희로(구원 얻을 백성) 우리(24장로 자
신들) 하나님 앞에"라고 찬송하고 있습니다.
24장로가 아닌 구원 얻은 많은 무리들이 또한 여러 군데 나타나고 있으므로 여기
24장로와 차후 나타나는 24장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 천상의 무형교회를 대
표하는 사람으로 해석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그들은 결국 구약의 12지파(계21:2)와 신약 12사도(계21:14)로 신구약 하나님
의 백성을 대표하는 천상교회의 장로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백성과
신약 시대의 백성을 함께 통괄하시는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해석이 무난한 것
으로 봅니다.
(계 4:5)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
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났습니다."번개"는 뇌성과 함께 위엄과 빛으로
심판하실 주(主)를 의도하며,"음성"은 살아 계신 분으로 계시하시는 말씀의 하나님
을 뜻합니다.
"일곱 등불 켠 것"(일곱 영)은 완전하신(7)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즉 하나님의 보
좌 주변이 이와 같이 영광, 엄위, 성결 그리고 빛으로 둘려 있다는 것입니다.
요일 1: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
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조금의 의심할 바도 불공평할 것도 없는 완전한 위치의 보좌를 뜻합니다. 휴거론자
는 여기서도 요한이 교회로 상징되어 휴거하므로써 결국 성도와 함께 하시는 성령
이 들림 받음으로 지금 천상에 올라와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으로서 천상 천하에 편재하십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다는 것은 그 뒤로 천상에 성령이 계시지 않다는 것이 아니
라 주 활동의 근거지를 지상으로 하시는 선언일 뿐입니다. 오순절 이전에도 얼마든
지 성령의 역사는 지상에서 일어나고 있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지역적으로 지상에 오셨다가 계시록 4장에서 들림 받았으므로 이
제 지상에는 교회도 믿음도 없다는 것이라면 어떻게 그 후 성도들이 계시록 상에서
나타나고 있느냐에 대한 답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성령이 없이 어떻게 신앙의 역사
를 따라 순교가 가능하며 믿음을 지킬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계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
는 자니라"
(계 4:6)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 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 수정은 맑은 투명체이고 유리는 빗방울이란 단어로 맑은
물같은 유리 바다입니다.이는 구약 시대 성전에 제사장들이 손을 씨고 들어가기 위
한 큰 대야(물두멍)가 성소 입구에 있었던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출 30:18-21 "너는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단 사이에 두
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아론과 그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
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화제를 여호와 앞에 사를 때에도 그리할지니라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이 손을 씻고 성소에 들어갔던 것처럼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
와 같은 유리 바다가 있으므로 누구라도 반드시 죄를 씻음으로 의로워진 후에 하나
님을 뵐 수 있다 함을 상징합니다.
"네 생물"은 하나님의 보좌 근저에서 봉사하는 특별한 천사들입니다. 생물 넷은 사
방을 지키고 봉사하는 영역을 말해줍니다.
"앞 뒤 눈이 가득"한 것은 무한한 지혜의 능력과 총명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명령 받는 즉시에 하달시키며 지상에서 올라온 일들을 또한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알려 드리는 하나님의 특별 보좌관들입니다.
앞뒤 눈이 가득한 동물이나 추상적 그림을 상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사리를 밝히고
있는 모습이 완전한가를 짐작하게 됩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주변에 이 완전한 지혜와 경계와 공의의 심판이 진을 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지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인격과 그 권능을 신뢰하고 믿을 때 그와 같
은 보좌의 모습을 연상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가 인식하고 바라보는 하
나님의 권위에 대한 신앙고백이어야 할 것입니다.
(계 4:7)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
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들은 비유로 그 성격들을 말해 줍니다.겔1:4,6,10,14에서 언급된 것과 유사
한데 "∼같은"이라고 표현한 것에 유의하여 네 생물의 직무를 보아야 합니다. 천사
로 볼 수 있는 네 생물은 사자나 송아지 자체가 아니고 그러한 특징적 봉사의 성질
을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
첫째는 "사자" 같다 했으니 담대함과 강한 의지를 상징하며,
둘째는 "송아지" 같다 했으니 일하는 충성의 상징이며, 구약 시대에는 희생의 제물
이었습니다.
셋째는 "사람" 같다 했으니 성경상 사람은 지혜를 상징합니다.
넷째는 날아가는 "독수리" 같다 했으니 신속성과 고결한 영적 차원을 상징합니다.
(계 4:8-9)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
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
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네 생물들이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습니다.이는 충성스런 활동을 위한 날개요 신
속히 움직이겠다는 의미입니다.
사 6:2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
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눈이 가득함"은 역시 지혜와 통찰력이 충만함을 뜻합니다.활동하는 행위의 도구인
날개에 눈이 가득함이 주는 의미는 성도가 충성을 하는 양식이 거룩하고 온전해야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뜻은 좋으나 그 형식과 태도가 불순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 없습니
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눅10: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
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
나님의 나라는 예배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일로 종일 경배할
것입니다. 예배가 지겹고 찬송이 힘들고 감사에 인색하신 분들은 이와 같은 광경이
감동되지 못할 것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성부 하나님의 완전한 거룩성을 찬미합니다. 3번
씩 한 것에 대한 해석을 꼭 성부, 성자, 성령, 성삼위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라
단정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1:8 해석참조)는 성부 하나
님의 영생하심을 뜻합니다.
계 4:9-10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
에게 돌릴 때에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계 4:10-11)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
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
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
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4생물들의 찬송이 있을 때 24장로들도 보좌 앞에 앉으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
였습니다. 이는 겸손이요 경배의 중심을 표합니다. 경배한다는 말 히브리어 바라크
(&r"B)는 엎드리다, 꾸부리다와 같이 번역됩니다.
그러므로 경배는 하나님께 굴복이요 겸손으로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바라크
는 축복이란 말입니다.축복은 꾸부려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경배)하는 자들에게 임
할 것입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 제대로 경배하는 자이며 그러므로 그는 축복을 받게 될 자입
니다(약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면류관을 보좌에 던지며",보좌 앞에 던지는 것은 신앙의 승리자들이 그 영광을 주
님의 것으로 알고 돌려 드린다는 감사의 태도입니다.
계 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이것이 중요합니다.교회당에 바쳐지는 성물(聖物)에 대해 자기 자랑을 빼놓기 싫어
서 성함을 써 붙이는 것 등은 참된 충성심이 될 수 없습니다.
24장로(천상교회,하나님 백성의 대표)들의 찬송과 4생물들의 찬송은 유사한데 영광
과 존귀 그리고 감사 대신 "능력"을 찬송했습니다. 4생물들은 감사하심을 찬송했으
나 24장로 이들이 능력을 찬송함에는 교회에 주신 신앙의 능력, 구원의 능력 등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에 대한 능력과 그 섭리 등을 함께 중심
으로 찬송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