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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한다 >
마음속에서 나를 찾지 말라
완전한 의식이나 영적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작용에 대해 배워야 할 것이 많을 것 같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의 문제는 마음의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습니다. 마음이란 근본적으로 결함을 지닌 것이란 사실을 이해하면, 더 이상 알아야 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연구함으로써 훌륭한 심리학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 너머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광기를 연구한다고 해서 멀쩡한 정신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죠.
당신은 이제, 누구나 다 근본적으로는 무의식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신을 마음과 동일시하여 거짓된 자아인 에고를 창조하고, 그러한 에고로 하여금 '존재'에 뿌리를 내린 진정한 자아의 대리 역할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말했듯이, '포도나무에서 잘려나간 가지'가 되고 만 것입니다.
에고의 욕구는 끝이 없습니다. 에고는 쉽게 상처받거나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두려움과 결핍감 속에서 살아갑니다. 마음이란 근본적으로 잘못 작용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면, 거기서 파생되는 수많은 문제들로 고민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그것을 복잡한 개인적인 문제로 삼을 이유도 없습니다. 물론, 에고는 그렇게 하기를 좋아합니다. 에고는 항상 거짓된 자의식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뭔가를 필요로하며, 문제가 있으면 쉽사리 거기에 들러붙습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고민거리를 마치 자기 자신의 일부라도 되는 양 취급하곤 합니다. 일단 문제가 생기면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벗어난다는 것은 자아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리하여 에고는 무지에 휩싸인 채 고통과 괴로움에 많은 것을 투자하는 것입니다.
마음이나 감정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것이 우리의 깊은 무의식에서 비롯된 일임을 알아차리게 되면, 우리는 거기에서 벗어나 비로소 '현존'하게 됩니다. 현존하고 있을 때는 마음과 뒤엉키지 않으면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 마음 자체가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마음은 훌륭한 도구입니다. 마음이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마음 안에서 찾고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인줄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에고의 마음이 되어 우리의 삶 전체를 차지해 버리고 맙니다.
시간에 미혹되지 말라
우리는 마음속에 완전히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곧 나'라는 생각에서 빠져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물고기에서 어떻게 나는 법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여기 열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라는 망상을 끝장내는 것입니다. 시간과 마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마음에서 시간을 제거하면 마음은 멈추어 버립니다. 우리가 다시 사용하기로 결정할 때까지는.
마음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다는 것은 시간의 덫에 갇히는 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억과 기대감을 통해서만 충동적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과거와 미래가 자리를 꿰차고 들어앉아서 현재 순간을 존중하고 인정하지 않으며, 현재 순간이 존재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과거는 우리에게 우리의 정체성을 선물하고, 미래는 어떤 식으로든 구원과 성취를 약속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환상입니다.
나는 시간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시간 감각이 없다면 더 이상 추구할 목표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것입니다. 차라리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시간은 전혀 귀중한 것이 아닙니다. 시간이란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귀중하게 여겨야 할 것은 시간에서 벗어난 한 지점인 '지금'입니다. 그것이 가장 소중합니다. 당신이 과거와 미래에 초점을 맞출수록 당신은 가장 소중한 '지금 여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이 가장 중요할까요? 무엇보다 '지금'만이 유일하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만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현재'야말로 우리의 전체 삶이 펼쳐지는 무대이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 남아 있습니다. 삶은 '지금'입니다. '지금'이 아닌 삶이라는 건 결코 존재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만이 가장 소중한 두번째 이유는, '지금'만이 마음이 제한하는 범위 너머로 우리를 데리고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만이 시간도 없고 형태도 없는 '존재'의 영역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인 것입니다.
지금 이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는 너무나 실재적이어서 때로는 현재보다 더 진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과거에 의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우리는 과거에 비추어서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의 목표에 맞추어서 지금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 아닌가요?
당신은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내 말의 핵심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것 같군요. 마음은 내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당신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저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당신은 '지금'이 아닌 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을 경험하거나 생각하거나 느껴본 적이 있나요? 그런 일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요? '지금'이 아닌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대답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떠한 일도 과거 속에서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일도 '지금'속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어떠한 일도 미래 속에서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미래의 일도 '지금'속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당신이 과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음속에 저장된 지나간 '지금'에 대한 기억의 흔적입니다. 과거를 기억할 때 당신은 기억의 흔적을 재가동시켜 '지금'의 것으로 작동시키는 것입니다.
미래는 마음의 투사물로, 상상 속의 '지금'입니다. 미래는 언제나 '지금'으로 올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미래에 대해 생각할 때도, 당신은 그것을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와 미래는 그 자체로는 분명 실재하지 않습니다. 달이 제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고 태양 빛을 반사하는 것처럼, 과거와 미래는 영원한 현재가 지닌 빛과 힘을, 그 실재를 희미하게 반사하는 것일 뿐입니다. 과거와 미래의 실재는 '지금'에게서 빌린 것입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내용의 핵심은, 마음으로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깨닫는 순간, 마음으로부터 '존재'로, 시간으로부터 현재로 의식의 전환이 일어날 것입니다. 갑자기 만물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되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서 에너지가 내뿜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차원으로 가는 열쇠는 현재에 있다
생명이 위태로운 긴급 상황을 당하면, 상대적인 시간 개념을 떠나는 의식의 대전환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기도 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가진 인격이 극적으로 후퇴하고, 아주 평온하면서 동시에 매우 기민하고 강렬한 현존 의식이 대신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식 상태에서는 그때그때 필요한 반응이 나오게 됩니다.
위험한 줄 뻔히 알면서도 등산이나 자동차 경주에 뛰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그런 활동이 그들을 '지금' 속으로 밀어넣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는 시간으로부터, 인생사의 갖가지 문제로부터, 생각으로부터, 개성의 짐으로부터 벗어나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살아 있게 됩니다. 현재의 순간에서 1초만 비껴나도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그런 상태에 있기 위해 특별한 활동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아이거 북벽(스위스 남부와 서알프스를 잇는 베르너알펜 연봉의 하나)을 기어올라야만 현존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바로 그 상태로 들어갈 수도 있어야 합니다.
고대의 영적 스승들은 '지금 이 순간'의 충만함이야말로 영적 차원으로 들어가는 열쇠라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가르침이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교회나 사원에서도 그런 것들을 가르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에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내일의 걱정은 내일에 맡기라."
"쟁기를 잡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들에 피는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느나를 생각해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솔로몬의 모든 영광도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느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늘 하물며 너희는 어떠하겠느냐."
하지만 이런 가르침이 지닌 깊이와 근본 원리가 제대로 알려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 가르침을 실천하면 심원한 내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선(禪)의 핵심은 칼날 위를 걷듯 예리하게 깨어 있는 것으로 '지금 여기'에 현존하는 것입니다. 순수하고 완벽하게 깨어 있음으로써 어떠한 문제도, 어떠한 고통이나 번민도, 진정한 당신이 아닌 것은 그 무엇도 당신 안에 살아남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속에서, 시간이 없는 차원에서 당신이 지닌 모든 문제는 용해되어 버립니다. 고통이나 번민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고통은 '지금'속에 살아남지 못합니다.
한 선사가 손가락 하나를 치켜세우며 천천히 물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부족하단 말인가?"
이런 물음에 제자들이 마음의 차원에서 무언가 대답을 한다면 스승의 가르침과 크게 어긋나게 됩니다. 스승의 행동은 시간 없음의 차원으로 이끌기 위한, '지금 여기'에 깊이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란 말인가?"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슬람교의 신비주의 전통인 수피즘도 '지금 여기'에 현존할 것을 가르침의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수피 교도는 현재의 아들'이라는 격언이 전해질 정도입니다. 수피즘의 위대한 시인이자 스승인 루미는 선언했습니다.
"과거와 미래는 우리로 하여금 신을 보지 못하도록 장막을 친다. 과거와 미래일랑 모두 불살라 버려라."
13세기 영적 스승인 에크하르트는 그 모든 것을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갈무리했습니다.
"시간은 빛이 우리에게 당도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신에게 이르는 데 있어서 시간보다 더 큰 장애물은 없다."
지금 이 순간의 힘
방금 전 현재만이 영원하며 과거와 미래는 실재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창밖의 나무를 바라고고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는 나무였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습니다. 뚜렷이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색채가 더 밝고 선명해진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무의 본질이랄까, 내면의 영혼이랄까 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나무의 일부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단조롭고 생기 없는 나무의 모습 자체만 보았을 뿐, 정말로 나무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나무를 보고 있지만, 아까의 그런 기분을 온전히 되살릴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 경험은 이미 과거 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이런 경험 또한 덧없이 스쳐 지나갈 뿐인가요?
당신은 잠시 동안 시간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지금'속으로 들어가서, 마음의 스크린을 거치지 않은 채 나무를 인식한 것입니다. 생생한 깨어 있는 상태에서 나무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시간이 없는 차원으로 들어가면,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른 종류의 깨우침이 일어납니다. 그런 깨우침 속에서는 살아 숨쉬는 만물의 영혼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생명의 신비 속으로 들어가, 삼라만상에 대한 깊은 사랑과 존경심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마음의 헤아림으로는 알 길이 없습니다.
마음으로는 그 나무를 알 수 없습니다. 나무에 관한 사실이나 정보를 알 수 있을 뿐이죠. 내 마음은 당신을 알지 못합니다.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당신을 알 뿐입니다. 깨어 있는 존재만이 직접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속의 앎을 위한 장소는 따로 있습니다. 나날의 삶을 영위하는 실용적인 영역이 그것입니다. 마음이 만약 삶의 전 영역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나 자연과의 관계까지를 다 지배한다면, 마음은 괴물이나 기생충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것을 그냥 내버려두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죽이고, 마침내 자신의 숙주까지 죽이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시간 없음'의 상태가 어떻게 당신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잠시나마 경험한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거나 심오한 것이라도 한 번의 경험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의식의 대전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속에 머물러 사는 것을 부정하고 저항하는 오랜 습관을 깨뜨려야 합니다. 과거와 미래 속으로 잠겨 들어갈 때마다 그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연습을 하십시오. 가능하면 자주 시간의 차원에서 빠져 나오십시오. '지금'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면, '지금'으로부터 도피하려는 마음의 습성을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당신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늘 현재와 비교 대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미래이거나 나쁜 미래인 것입니다. 더 좋은 미래을 상상할 때는 희망이나 즐거운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고, 더 나쁜 미래를 상상할 때는 근심과 걱정에 잠기게 됩니다. 현존하고 있지 않다고 깨닫는 순간, 현재에 있게 됩니다. 마음을 관찰하고 있을 때는 더 이상 그 함정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마음에 속하는 것이 아닌 무엇인가 다른 요인이 들어와서 자기를 지켜보게 됩니다.
생각과 감정을 지켜보십시오. 여러 상황에 대처하는 당신 자신의 반응을 지켜보십시오. 마음의 감시자가 되십시오. 당신이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나 상황에 관심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 자신의 반응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얼마나 자주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이는지 잘 살펴보십시오. 관찰하는 것을 판단하거나 분석하지 마십시오. 생각을 지켜보고, 감정을 느끼고, 반응을 관찰하십시오. 그런 것들을 개인적인 문제로 삼지 마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관찰하고 있는 대상에게서 느꼈던 것보다 강력한 무언가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마음의 뒤안에서 고요하게 머물며 지켜보는 자가 되십시오.
자신의 이미지가 구겨질 위기에 처할 때나 일이 꼬여서 잘못 돌아갈 때, 지난 일에 대한 회한에 사로잡힐 때와 같이 격한 감정을 유발하는 상황에 빠질 때일수록 강렬한 현존이 필요합니다. 그런 상황에 빠지게 되면 당신은 쉽게 무지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반응이나 감정이 당신을 점령하면 당신은 그것들 자체가 되어 버리고, 그것들을 행동으로 표출하게 될 것입니다. 스스로 정당화하고, 일을 그르치고, 공격하고, 방어하는 그것은 당신 자신이 아닙니다. 당신의 반응일 뿐입니다. 마음의 습관적인 생존 방식일 뿐입니다.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면 마음은 더욱 강해집니다. 하지만 마음을 관찰하는 자가 되면 마음은 힘이 약화됩니다. 마음과 동화되면 더 많은 시간을 만들어내지만, 마음을 관찰하면 '시간 없음'의 차원이 열리게 됩니다. 마음에서부터 물러난 에너지는 현존으로 변화됩니다. 현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게되면, 시간의 차원에서 벗어나서 '지금'속으로 들어가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집중할 때 과거와 미래의 시간을 사용하는 능력이 손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사용하는 능력 또한 손상되지 않고 오히려 향상됩니다. 마음을 사용할 때, 더 날카롭게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심리적인 시간에서 놓여나라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사용하되,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즉시 다시 지금의 순간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렇게 하면 자신을 과거와 동일시하거나 끊임없이 미래로 투사하는 '심리적인 시간'이 축적되지 않을 것입니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약속이나 여행 계획을 세우는 데에만 쓰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시간에는 우리로 하여금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 저지르지 않게 하는, 과거로부터의 배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과거로부터 배운 물리적. 수학적 법칙과 유형으로 미래를 예견하고, 그 예견을 근거로 하여 적절한 행동을 취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우리가 과거와 미래를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실생활의 영역 안에서도 현재의 순간은 여전히 핵심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과거로부터의 모든 학습은 '지금'에 관련되고 적용됩니다. 특별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매진하는 것도 모두 '지금'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항상 '지금'에 주목하면서 시간을 주변 장치로 인식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계속 사용하면서도 심리적인 시간에서 자유롭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심리적인 시간으로 변화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예민하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지금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고 있다면, 당신은 시계가 기리키는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잘못을 떠나지 못한 채 자기를 비판하고 저주하면서 죄책감을 느낀다면 당신은 그 실수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잘못을 자기 자신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심리적인 시간이 되어서 당신의 거짓된 정체성과 연결될 것입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않음으로써 어쩔 수 없이 심리적인 시간의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약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면, 당신은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지만, 바로 이 순간 내딛는 발걸음을 존중하고 거기에 최대한 집중합니다. 하지만 그때, 목표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어 미래의 행복이라든가 성취감, 자기 만족을 너무 의식하게 되면, '지금'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됩니다. 그 자체로서는 아무 가치가 없는, 단지 미래로 가는 징검다리로 축소되고 말 겁니다. 그러면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은 심리적인 시간으로 변하고 말 것입니다. 삶의 여정이 더 이상 모험이 아니라, 달성하고 해내야 하는 강박적인 욕구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더 이상 길가에 피어 있는 꽃을 볼 수도 없고, 그 향기를 맡을 수도 없습니다. '지금 여기'에 존재함으로써 맛보게 될 삶의 기적과 아름다움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알겠지만, 시간이 완전히 환상이라는 말에는 언뜻 수긍이 가지 않습니다.
'시간은 환상'이라고 말할 때, 나는 철학적인 진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단지 여러분에게 하나의 단순한 사실을, 너무나 명백해서 오히려 이해하기 어렵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자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일단 그 사실을 충분히 깨우치게 되면, 마음이 겹겹이 쌓아올린 복잡한 문제들을 단번에 잘라버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은 현재의 순간일 뿐입니다. 당신은 오직 '지금 이 순간'을 살 뿐입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심리적인 시간의 광기
심리적인 시간이 집단적으로 어떻게 표출되어 왔는가를 살펴본다면, 당신은 그것이 정신적인 질병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 예로 공산주의, 국가사회주의, 국수주의, 그리고 경직된 종교적 믿음 체계를 살펴보도록 하죠. 그런 주의 주장은 '최고의 선은 미래에 있다'고 말하고, '목적을 위해서는 어떠한 수단을 쓰더라도 괜찮다'고 입을 모읍니다. 그 목적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마음이 투사한 미래의 언젠가는 행복, 만족, 평등, 자유 따위의 형태로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거기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노예 제도나 고문, 학살이 자행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산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5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피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래의 천국에 대한 믿음이 현재의 지옥을 만들어 내는 무시무시한 실례입니다. 심리적인 시간이 심각하고 위험천만한 정신병으로 나타났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유형이 당신의 삶 속에서는 어떻게 작용하고 있을까요? 당신은 항상 지금 있는 곳이 아닌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언제나 만족을 추구하면서 섹스, 음식, 술, 마약, 혹은 흥분이나 스릴과 같은 잠시잠깐의 즐거움에 얽매여 있지는 않나요? 항상 무언가가 되려 하고, 무언가를 성취하려 하고,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새로운 스릴이나 즐거움을 좇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 많은 것들을 얻으면 좀더 만족스럽고 행복해질 수 있다거나, 심리적으로 완전해질 것이라고 믿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의 삶의 의미를 가져다줄 남자나 여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마음을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깨우치지 못한 의식 상태에서는 '지금'속에 숨어 있는 힘과 무한한 창조 가능성이 심리적 시간에 의해 완전히 가려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삶은 활기와 신선함과 경이로움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고, 감정, 행위, 반응, 욕망 등의 낡은 습관이 끝없이 반복되면서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각본이 '지금'의 실재를 왜곡하고 덮어 버립니다. 그러면 마음은 불만족스러운 현재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미래에 집착하게 됩니다.
부정적 감정과 고통은 시간에 뿌리내리고 있다
하지만 미래가 현재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항상 환상인 것만은 아닙니다. 현재는 가혹할 수 있고, 미래에는 더 나아질 수 있으며, 그렇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미래는 대개 과거를 되풀이하게 마련입니다. 피상적인 변화는 가능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드뭅니다. 진정한 변화는 '지금'의 힘에 접근하여 과거를 용해시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현존할 수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당신이 미래로 이해하는 것은 당신의 현재의식 상태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의 마음이 과거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면, 같은 경험을 되풀이하게 될 것입니다. 과거는 당신이 현존하지 않음으로써 지속됩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 의식의 질이 미래의 모양을 결정합니다. 미래 또한 '지금'으로써만 경험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갑자기 떼돈을 버는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런식의 변화는 피상적일 뿐입니다. 환경이 좀더 나아졌을 뿐, 행동은 같은 식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인간들은 원자를 쪼개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몽둥이 대신 단추 하나만 눌러도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진정한 변화인가요?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의식 수준이 미래를 결정한다면, 그러한 의식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뭘까요? 그것은 바로 당신이 진정으로 현존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진정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고, 과거를 용해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상황은 '지금'입니다.
모든 부정적 감정은 심리적인 시간이 축적되고 현재를 부정함으로써 비롯됩니다. 불안, 초조, 긴장, 스트레스, 걱정 따위의 모든 두려움은 미래에 매달리고 현재에 머물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죄책감, 후회, 원망, 한탄, 슬픔, 비탄 따위도 모두 과거에 집착하고 현재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의 의식 상태가 모든 부정성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영적 스승들은 그러한 자유로운 상태가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가공의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서의 구원을 약속합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겪는 고통과 고민거리의 원인이 '시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각자가 처해 있는 특별한 상황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과거와 미래에 집착하고 현재를 부정하며 문제를 만들어 내는 마음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전에는 문제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떤 문제나 고통, 불행을 인식하는 원인들을 모두 기적적으로 제거한다고 합시다. 하지만 수행이 부족하다면 얼마 지나지 앟아 마치 어디를 가나 그림자가 따라다니는 것처럼, 여전히 같은 문제와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단 한 가지, 시간에 묶여 있는 마음 자체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완전히 문제에서 벗어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나로서는 믿을 수가 없군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지금'바로 그 지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 속에 구원은 없습니다. 당신은 미래에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현존이 자유를 향해 다가갈 수 있는 열쇠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오로지 지금 자유로울 수 있을 뿐입니다.
삶 자체에 주목하라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지금 지독하게 불행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렇게 불행한데도 행복하다고 나 자신을 설득하려고 한다면, 나를 속이는 것이 될 겁니다. 나는 현재의 순간, 매우 불행하고, 자유롭지 못합니다.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이 있다면, 미래에는 어느 정도 나아지리라는 희망이나 가능성입니다.
당신은 자신이 현재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시간에 사로잡혀 있군요. 불행을 느끼는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존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당신이 '삶'이라고 말하는 것은,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삶의 상황'입니다. 삶의 상황이란 과거와 미래라는 심리적인 시간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도 당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당신은 과거에 일어난 일에 저항하면서, 지금 존재하는 상황에도 저항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당신을 지탱해 줍니다. 하지만 희망은 또한 당신으로 하여금 미래에 집중하게 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계속해서 '지금'을 부정할 것이고, 그 결과 계속해서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현재 삶의 상황이 과거에 일어난 일의 결과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지금 나의 현재 상황이기도 합니다. 그 속에 있음으로써 나는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잠시 동안 삶의 상황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삶 자체에 주목해 보십시오.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당신 삶의 상황은 시간 속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삶은 '지금'입니다. 당신 삶의 상황은 마음이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삶은 실재입니다.
'삶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지금'입니다. 당신의 삶을 이 순간으로 좁히십시오. 당신 삶의 상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고민거리로 가득 차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내일이나 십 분 후가 아닌 바로 지금 말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문제를 갖고 있습니까?
만일 당신이 완전히 고민에 휩싸여 있다면, 새로운 뭔가가 들어올 여지는 없습니다. 해결을 위한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라도 가능할 때 당신 삶의 상황 밑바닥을 흐르는 삶을 찾을 수 있는 여지를, 어떤 공간을 만드십시오.
모든 감각을 깨어 있게 하십시오. 지금 있는 그 자리에 있으십시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둘러보기만 하고 해석하지 마십시오. 빛, 형태, 색채, 구조를 보십시오. 저마다 제 자리에 고요히 있도록 하십시오. 저마다가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인지하십시오.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만지고, 느끼고, 그 존재를 인정하십시오. 호흡의 리듬을 관찰하면서 들이쉬고 내쉬는 공기의 흐름을 느끼십시오. 몸 안의 생명 에너지를 느끼십시오. 모든 것을 안팎에 있는 그대로 두십시오. 모든 것이 그대로 있도록 하십시오. '지금'속으로 깊이 침잠하십시오.
당신은 추상적이고 죽은 세계, 시간의 세계를 뒤로 한 채 떠나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명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지구를 천천히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미친 마음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시간의 꿈에서 깨어나 현재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마음이 만드는 환상이다
마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 가벼운 기분을 분명히 느낄 수 있어요. 하지만 내 문제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단순히 일시적으로 거기에서 피해 있는 것 아닌가요?
당신이 천국에 간다고 해도, 당신의 마음은 오래지 않아서'좋긴 하지만......'하고 말할 겁니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당신은 문제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지금의 상황이 있을 뿐입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냥 내버려두고 그 상황이 변하거나 해결될 때까지 현재 순간, '있음'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그뿐입니다. 문제는 마음이 만드는 것입니다. 문제는 살아남기 위해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지금' 깨어 있는 상태라면 문제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금'에 모든 주의를 기울이고,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나에게 말해 주십시오.
나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지금'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어떤 문제점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늘 두가지뿐입니다. '네'하고 받아들이거나, 어떻게든 요리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 그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것을 문제 삼습니까? 왜 무언가를 꼭 문제로 만듭니까? 삶은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힘이 듭니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문제를 필요로 합니까? 마음은 무의식적으로 문제를 만들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뭔가가 된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상적이지만, 동시에 미친 짓이기도 합니다.
문제란 무엇입니까? 지금 당장 행동을 취할 진짜 의도나 가능성도 없으면서, 하나의 상황에 빠져서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자기 자신의 일부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 되면 당신은 그 상황에 짓눌린 나머지 삶의 감각을, 현존의 감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대신, 미래에 해야 하거나 하게 될 수많은 일들로 마음속에 천근만근 짐을 지고 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를 만드는 것은 고통을 만드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스스로 더 이상 고통을 만들지 않겠다고 작정하십시오. 그정 그렇게 선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지극히 단순한 선택이지만, 그것은 다분히 혁명적인 일이기도 합니다. 지긋지긋한 고통을 겪지 않는한 당신은 그러한 선택을 하려 들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지금'의 힘을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그러한 선택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더 이상 당신 자신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고통을 주지 않게 됩니다. 당신은 더 이상 아름다운 지구를, 당신의 내면 공간을, 집단적인 인류의 정신을 부정적인 문제로 오염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긴급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경험을 해보았다면 그것이 하나의 문젯거리가 아니었음을 알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마음이 그것을 문제 삼을 만큼 한가한 시간이 없게 됩니다. 정말 긴급한 사태를 당하면 마음이 정지합니다. '지금'속에 완전히 현존하게 됩니다. 더 강력한 무언가가 마음을 대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용감한 행동를 하는 사례들이 있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긴급 상황에서는 살아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있을 뿐입니다. 더 이상 문젯거리가 아닙니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화를 냅니다. 그들의 정체성을 내가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짓된 자의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 왔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나 고통을 곧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없다고 하니 어떻겠습니까?
사람들의 말과 생각, 행동의 많은 부분은 두려움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두려움이란,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고, '지금 여기'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입니다. '지금'속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므로 두려움 또한 없습니다.
현재 순간에 깨어 있다면 당신은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분명하고 예리하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만들어 내는 과거의 조건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직관적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또한 시간에 묶인 마음이 반응을 보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때라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그냥 '지금'의 한가운데에 머물러 있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무지 혹은 망상에서 벗어나기
나는 당신이 묘사하는 '마음과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는 너무 압도적으로 강해서 거기서 오래도록 벗어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 같은데요.
인간 정신 속에는 의식을 시간에 속박시켜 왔던 습성이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집단 의식에는 심오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우리 또한 그러한 변화를 경험하고자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인류는 물질, 형태, 분리감이라는 꿈에서부터 깨어나 있습니다. 시간의 막다른 끝에 이르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의 삶을 지배해 왔던 마음의 방식을 깨뜨리고 있습니다. 마음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고통을 창조해 왔습니다. 그것은 '악'이라고 부르기보다 '무지'나 '망상'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의식의 낡은 습관이나 무지한 상태에서 벗어나려 노력해야 하나요, 아니면 필연적으로 저절로 그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나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릅니다. 행위와 일어나는 일은 사실 하나의 단일한 과정 속에 있습니다. 당신은 의식 전체와 하나이기 때문에 당신 입장에서는 그 둘을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사람도 그런 일을 해내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 과정은 필연적인 것도 아니고, 자동적이지도 않습니다. 다만 당신의 협조가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당신이 그 과정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든, 그것은 의식의 진화에 있어서 양자적인 도약이며, 우리 인류가 한 종족으로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입니다.
당신은 이미 완전한 존재이다.
심리적인 시간에 의해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간단한 기준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신 자신에게 물어 보십시오.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에서 기쁨, 편안함, 가벼움을 느낍니까? 만일 그렇지가 않다면, 시간이 현재의 순간을 덮고 있어서 삶이 부담스럽고 투쟁적으로 인식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지금 하는 일에서 기쁨과 편안함과 가벼움을 느낄 수 없다고 해서, 반드시 그 일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 일을 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는가'는 항상 '무엇을 하는가'보다 중요합니다. 당신은 그 일을 통해서 달성하고자 하는 결과보다 그 일을 하는 자체에 더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 주목하십시오. 이는 당신이 현재 상태에 완전히 순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무언가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현재의 순간을 존중하면, 모든 불행과 고난이 해결되고, 삶은 기쁨과 편안함으로 충만하기 시작합니다. 현재 순간에 충실하면서 깨어 있으면, 무슨 일을 하든 가장 단순한 움직임 하나에도 고결함과 봉사와 사랑의 의식이 스며들게 됩니다.
행동의 결과에 연연해 하지 마십시오. 행위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그 열매는 저절로 열릴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강력한 영적 수행입니다. 존재에 관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영적 가르침 중 하나인 '바가바드 기타'에서는 행위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을 '카르마 요가'라 하고, '봉헌의 길'로 묘사했습니다.
'지금'에서 이탈해 쫓기듯이 사는 것을 멈추면,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존재의 기쁨이 흘러들 것입니다. 주의력을 '지금'에 집중하는 순가, 당신은 고요함과 평화를 느끼게 됩니다. 더 이상 만족과 성취를 미래에 걸거나 미래에서 구원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게 됩니다. 성공이나 실패는 내면의 존재 상태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삶의 상황 밑바닥을 흐르는 삶 자체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리적 시간에서 벗어나게 되면 당신의 자아에 대한 감각은 개인적인 과거가 아닌 '현존'자체에 뿌리 내리게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심리적인 욕구는 사라지게 됩니다. 구체적인 삶의 상황에서 당신은 부자가 되기를, 지식이 많기를, 성공하는 사람이 되기를, 이런저런 일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보다 깊은 존재 차원에서 보면, 당신은 지금 완전하고 온전합니다.
그러한 온전한 상태에서도 외부적인 목표를 추구하거나 추구할 의지를 가질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무언가가, 혹은 누군가가 우리를 구원해 주거나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는 헛된 기대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삶의 상황속에 놓여 있는 한, 당신에게는 성취해야 할 일이나 필요한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눈에 보이는 형상의 세계요, 얻기도 하고 잃어버리기도 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당신은 이미 완전합니다. 당신이 이를 깨닫는다면, 당신이 하는 일의 밑바닥에는 즐거움과 기쁨이 흐를 수 있습니다.
심리적 시간에서 해방되면 당신은 더 이상 두려움이나 분노, 불만족, 혹은 무엇이 되려고 하는 욕구에 아둥바둥 매달리지 않게 됩니다. 자아의 상실을 의미하는 실패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아의 상실은 어디까지나 에고의 입장일 뿐입니다. 자아에 대한 깊은 감각이 '존재'에 뿌리내릴 때, 무엇이 되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에서 자유로울 때, 당신의 행복이나 자의식은 더 이상 결과에 의존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집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의 세계, 얻고 잃는 세게, 태어나고 죽는 세계 안에서는 찾을 수 없는 항구성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어떤 상황이나 조건, 장소, 또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어긋나면서 겪게 되는 고통도 더 이상은 없습니다.
당신은 이제 그 무엇이든 존중합니다. 문제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상은 태어나고 죽지만, 당신은 그 형상 밑바닥을 흐르는 영원성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 무엇도 위협당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와 같은 상태에 존재한다면, 어떻게 성공하지 못하겠습니까? 당신은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새지구의식센터에서 퍼왔습니다 새벽에 읽었는데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지금 현존 너무나 와닿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