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제의 노래 이야기
고통을 이겨내는 길
고통에 대한 단상 2
팔과 다리 여기저기에 혈관염이 와서 극심한 두통과 고열로 견디기 어렵지만, 저는 오늘 밤에도 강화 근처의 통진 성당에서 강의를 하였습니다.
고통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고통을 앞두고 산으로 올라 기도하셨지요.
“아버지 제게서 이 고통의 쓴잔을 거둘 수만 있다면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는 이 단순한 기도 안에는‘내 뜻과 아버지의 뜻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과,‘아버지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두 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 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 더 이 기도를 하셨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버림받은 비참한 상황에서 드린 이 기도는 우리가 고통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또한 그분처럼 기도해야겠습니다. “주님. 제게서 이 고통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라고.
그러므로 고통을 이겨내는 한 가지 비결은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고 내게 그런 고통을 주신 그분의 뜻을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십자가를 넘어 부활로 가셨듯이 우리도 고통을 이겨내고 기쁨의 삶으로 나아가야겠지요.
화곡동의 달동네인 까치산 꼭대기에서 20여년을 살면서 세 아이를 키웠습니다. 여름이면 가파른 고갯길을 걸어서 오르느라 집에 도착하면 비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검약을 내세워 우리 집은 선풍기를 한 번도 사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이웃들이 신형으로 바꾸면서 버린 것을 단지 아까운 마음에 들고 와서 간단하게 수리를 마친 후 거실 한 켠에 놓아둡니다. 발작적인 굉음을 내거나 선풍기 목이 자꾸 한 쪽으로만 돌아가며 까딱 대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비록 고물 선풍기라해도 우리 집에 방문하는 손님전용입니다. 한여름의 더위를 참지 못한 가족들이 선풍기를 틀어대고, 그것도 모자라 윗옷 단추를 풀고 부채질을 해댈 때 마다 제가 도사님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엄중하게 경고를 합니다.
“모름지기 여름은 더울 수밖에 없는 것이며, 더위를 이겨내는 한 가지 비결은 더위를 받아들이는 것이니라.”
더운 주방에서 일하는 아내가 핀잔을 섞어 이렇게 대꾸합니다.
“우리는 모두 건강한데 자기만 빼싹 말라 더위도 잘 안타게 생겨가지고, 남의 사정을 무시한 채 공자님 같은 말씀만 하고 계시네. 더구나 가스불 앞에서 조리를 한 번 해 보시지. 그 말이 나오시나.”
그러나 다른 가족은 아무도 나의 이 영성 깊은(?) 경고에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5년 전, 구청으로부터 <붕괴위험주택>이라는 경고를 받고서 어쩔 수 없이 산 아래로 이사를 했습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되면서 여름은 점점 더워졌고, 어디에서나 에어컨 바람의 서늘함을 향유한 가족들이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언제 부터인가 슬그머니 선풍기 바람이 허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선풍기를 사지 않고 버려진 것을 재활용하고 있으며, ‘더위를 이겨내는 한 가지 비결은 더위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도사님의 가르침도 여전하고, 그 가르침이 경고에서 권고로 발언수위가 바뀌었지만 아내의 핀잔 또한 여전합니다.
“체. 남들은 에어컨바람을 쐬고 사는데 고물 선풍기를 틀면서도 눈치를 봐야 하다니...”
그러던 어느 8월 한여름 날. 대학생 이삭이가 산 중턱에 있는 모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왔습니다. 보통 때는 요즘 인기 절정인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의 한원수(극중 배역)처럼, 현관에 들어서면서 신발을 아무렇게나 패대기치고 옷을 줄줄 벗으며 세면장으로 달려가 정신없이 물을 끼얹던 이삭이가 그날은 비지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씻으러 들어가지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제게 다가 왔습니다.
“아빠 내가 지금 아주 이상한 체험을 했어요. 화원중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데 햇볕은 불길처럼 쏟아지고 땅에서는 열기가 반사되어 숨이 턱턱 막히는데도 공을 차느라고 정신이 없었어요. 참을 수 없는 불볕더위를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느낄 수 있었거든요. 씻을 데도 없고 그늘도 없는데 숨은 차오르고, 공기는 물론이고 땅바닥마저도 뜨거워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 어디선가 바람처럼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는데 ‘더위를 이겨내는 한 가지 비결은 더위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는 아빠의 음성이었어요. 귀를 의심케 하는 분명하고 또렷한 이 음성은 평소에 그토록 자주 들었지만 한 번도 귀담아 듣지 않았었는데 어떻게 그 순간 내게 들려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예요. 땅으로부터 발바닥을 통해 따스한 기운이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어요. 뜨거워서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되었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오히려 땅으로부터 느껴지는 따스한 기운 때문에 온 몸이 나른하고 편안해졌다니까요. 이 느낌을 잊어버리기 전에 아빠에게 나누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뛰지 않고 가만가만 걸어서 왔어요 .”
“그래. 이삭아.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 생각할 때는 뜨거운 고통으로 여겨지던 불볕더위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하니 따스운 기운으로 느껴진 것이로구나.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더위도 추위도. 그러나 고통스러운 상황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할 때 내가 달라지는 것이지. 살아가면서 오늘 보다 더한 고통의 순간을 마주할 기회가 많을 것이다. 그 때마다 오늘의 특별한 체험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고통을 이겨내는 한 가지 비결 또한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이란다.”
삶이란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고, 신앙이란 그 견뎌내는 시간 속에 그분이 함께 하신다는 감사로움을 늘 새로운 마음으로 거듭거듭 받아들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고통을 겪어내는 무게만큼 그 고통 중에 함께해 주신 그분과 더욱 가까워집니다. 고통 자체를 감사드릴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을 겪어내는 동안 그분과 함께 할 수 있음을 한없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은총의 시기라는 사순절에 또 다시 고열과 두통을 동반한 혈관염이라는 통증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지내면서, 이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그럴 수만 있다면 거두어 달라고 청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가 아니라 그분 뜻대로 하시라고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이라면 받아들이도록 애도 써 보겠습니다. 그리하여 가능하면 더 많은 시간을 그분과 함께 머무르고 싶습니다. 고통스럽게 견뎌낸 시간들이 참으로 은총이 될 수 있도록.
(사순 2주일에)
함께 나눌 수 없는 고통
고통에 대한 단상 3
TV 프로그램 중 `세계는 지금'에서 몽골의 유목민들이 오늘 겪고 있는 고통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난 겨울 섭씨 영하 56도 이하로 기온이 내려가서 그들에게는 가진 것 모두라 할 수 있는 가축들이 떼죽음을 하였고 살아남은 가축들도 그때 너무 허약해져서 계속 죽어간다고 합니다. 늘 옮겨 다니며 사는 그들이 가축을 위해 축사를 짓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어서 혹한 속에서도 가축들은 그대로 방치된다고 하지요.
저는 평생을 안고사는 난치병 때문에 조금만 기온이 내려가면, 이를테면 영하로만 내려가도 몸에 이상이 오고 그 추위를 견디기 힘들어서 몸살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겨울을 나기가 늘 힘이 들지요. 언젠가 캐나다에 사는 친구가 그곳으로 와서 함께 살자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자신이 경영하는 사업을 동업하면 된다구요. 다 좋았는데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는 말에 정이 뚜욱 떨어졌습니다.
이런 나에게 몽골 유목민이 겪는 고통은, 아니 북쪽 끝에 사는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마저도 결코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고통스럽습니다.
몇 년 전, 자카르타와 싱가포르에 갔을 때 그곳에 사는 교우들이 2세들에게 하는 가장 큰 고민은 늘 따뜻하여 추위를 겪지 않기에 추위를 준비하는 마음이 없고, 그것이 미래에 희망을 갖지 않는 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 또한 몽골 유목민들의 아픔을 짐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제게는 그것도 고통이었습니다.
지난 겨울 두 차례나 방영되었던 여섯 편의 다큐멘타리 <차마고도>를 재방송까지 다 보았고, 지난 주 제주에 머물었던 며칠 동안 DVD로 또 다시 보았습니다. 내용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해발 5,000 미터 고지에 사는 티벳 사람들과 네팔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견디어 내는 삶을 바라보고 싶어서입니다.
삶이란 고통의 연속일 뿐 아무런 희망이 없다 해도, 부처님께 모든 것을 의지하며 그저 견디어 내는 삶.
그 고통을 바라보면서 내 고통을 달래어 보지만,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고통이 됩니다.
그런데도 저는 오늘도 어느 성당에서 초대한 사순특강 나눔 중에, `고통을 이겨내는 길'은 그리스도가 하셨던 대로 아버지의 뜻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제도 했고 그제도 그그제도 했으며 내일도 모레도 또 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몽골 유목민들의 가슴에도 전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북한 주민들과 티벳, 네팔의 오지 사람들을 비롯하여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어쩔 수 없는 삶의 고통을 그저 견디어 낼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들이 고통의 아픔을 아버지의 뜻이라 여겨 기꺼이 받아들일 수도 있을까요?
저보다 훨씬 오래 사셔서 세상 경험이 많으시고 고통 또한 수없이 겪어내신 어르신들의 가슴에 제 나눔은 또 어떤 위로로 가 닿았을까요? 이 은혜롭다고 하는 사순시기에 제가 겪는 고통은 바로 이것입니다.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없다는 것이지요.
제가 함께 나눌 수 없는 모든 사람들의 이 고통들을 제 마음의 고통과 함께 그분께 맡겨 드립니다. 그리고 지순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저희들에게서 이 고통의 쓴 잔을 거둘 수 있으면 거두어 주십시요.
그러나 저희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요. 아멘."
(사순 3주일에)
김정식 (로제)
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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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식이 형,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주오셔서 직접 카페에 올려주시면 대 환영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동안 고통, 선풍기, 통증이란 단어와 함께 제가 겪은 일 어떤 장면이 떠오릅니다.
50년만의 더위로 숨막히는 날이 계속되던 90년대 초 어느 날 충청북도 초정리 물공장을 취재하기 위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터질 것 같은 다리 통증을 참으며 절뚝절뚝 걷고 있는 제 모습입니다.
동아일보 중편으로 응모하려고 쓴 물공장 이야기 '가라앉는 마을'인데 이 작품의 운명은 제 계획대로 되지 못하고 그 다음 여러 일들을 겪는 수난이 있었지요. 이곳에 다 쓸 수 없어 다음기회로 미루며...
아, 백작가님, 많은 사연이 있군요. 미루어 짐작만 할 뿐-----.
긍정의 힘으로 극복하셨으리라 믿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