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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산행일지 : 전북 고창군 선운산, 부안군 변산 (비 내리던 관음전의 평화)
일시 : 2005년 4월 29-30(금-토)
날씨 : 흐림, 비
모처럼 일박산행의 계획을 잡고 대구로부터 다소 먼, 그리고 동백꽃이 한창이라는 선운사를 보고 싶어 금요일 저녁 7시30분 성서 금도현 회원의 집에 모이기로 약속하였다. 그날 학교에서는 학위논문 중간, 예비발표 탓으로 시간이 지체되고 있어 나의 마음을 졸이게 하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금도현과 전화로 저녁은 가다가 대충 사먹기로 하였는데 배신을 당기고 간단히 밥을 한두 술 뜨고는(당장 허기를 면하고 나중에 사먹더라도 먹을 수 있게) 어젯밤에 싸둔 배낭을 들고 급히 달려 도착하니 8시 10분, 다들 식사까지 마치고 정시에 도착하였나보다. 떡과 과일, 차를 한 잔 들고는 9시경 출발한다. 새로 업그레이드 하였다는 GPS는 속도감지 카메라 앞에서는 여지없이 소리로 경고를 주고 있었다. GPS가 믿음직하였던지 김생곤은 조금씩 속도를 더한다. 광주부근에서 아차하는 순간에 부산, 순천 방향의 남해고속도로로 접어들고 말았다. 다행히 3km 정도의 창성 분기점에서 유턴하여 동광주를 나와 서광주에서 다시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정읍분기점에서 내려 22번 국도를 따라 12시 넘어 선운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호텔을 찾아 이곳 저곳 기웃거리다 동백호텔에 물어보니 네 사람에 50,000원, 뒤편의 민박집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40,000원을 달랜다. 유스호스텔이 있어 들렀더니 시끄럽고 방도 없댄다. 하는 수 없이 후퇴하여 선운사의 추억(063-561-2777)이라는 근사한 이름이 붙은 민박집에서 50,000원 달라는 침대가 달린 방을 외면하고 30,000원짜리 방에 묶기로 하고 짐을 내려 방에 들었다. 유일하게 저녁을 굶은 금도현은 배가 고픈지 김이돌이 준비한 샌드과자와 사탕을 먹는다. 양치질하고 잠에 든 시간은 한시가 훌쩍 넘었다.
잠결에 다소 춥기도 하여 뒤척이다 다들 일어나니 6시경이었다. 통유리로 된 방의 뒷 풍경이 조용하고 좋다고 다들 입을 모은다. 세수하고 민박집을 배경으로 사진을 한 컷하고 7시 출발. 매우 이른 아침이다. 덕분에 주차비를 2,000원 절약하고 식당 앞에서 주차. 식당선택으로 망설이니 아리랑 식당 아주머니가 나와 맞이한다. 따라 들어가 콩나물 해장국 5,000원 짜리로 통일하여 커피까지 들고 나오니 8시가 조금 넘는다. 잘하면 비싼 입장료를 절약할 수 있겠다고 기대하였는데 정식으로 입장료를 받는 곳에는 아직 출근 전이라 문을 닫고 있었으나 아저씨 한분이 입구에서 간이로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문화재 관람료 2,000원에다 선운사 입장료 800원을 더하여 2,800원씩 합계 11,200원을 지불하고 나니 늘 그러하듯 속상함과 아까움이 남는다. 선운사 입구엔 초파일이 얼마 남지 않아 연등과 각종 플랭카드가 많이 널려있다. 천왕문을 지나 백제 위덕왕(577년) 때 검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선운사 경내로 들어서자 아침햇살이 마당 가득한 가운데 만세루의 웅장하고 고요한 모습이 다가온다. 껍질만 벗기고 다듬지 않은 투박한 질감의 굵은 기둥들이 열 칸의 만세루를 받치고 있다. 뒤를 돌아가니 매끈하고 키는 작지만 꽤 굵은 두 그루의 배롱나무가 보물 제 279호인 선운사 금동미륵보살을 모신 대웅보전 좌우를 옆을 지키고 있다. 그 뒤로는 천연기념물 제 184호인 수령 500년의 동백나무 군락이 붉게 산자락을 물들이고 있다. 우리 지역 영남대학교에 계시다가 명지대학를 거쳐 지금은 문화재 청장으로 계시면서 경복궁 현판, 현충사 등등의 문제로 정치현실의 중심에 서기도 했던 유흥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서 백련사의 동백 숲을 묘사하면서 선운사의 동백 숲이 천연기념물 제 151호라고 설명한 바 있는데 내가 알기로도 이는 잘못된 지적인 것 같다. 선운사의 그 유명한 동백은 지금 시즌이 최적기라고는 하나 기대가 컷던 탓인지, 아니면 너무나 많은 군락이어서 그런지 오늘 아침 선운사의 동백은 내게 큰 감동을 주진 못했다. 철책으로 둘러쳐져 있어서 둥치를 만져보기는커녕 접근조차도 어려워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조용한 아침 산사, 새 날 첫 문을 열어 나를 맞은 듯 단정하고 고요한 모습은 너무나 좋았다.
8시 15분 선운사를 나와 선운사 우측의 석상암, 마이재를 향하는 길로 오늘의 등산을 시작한다. 조금을 오르자 민박촌 앞으로 잘 정돈된 차나무 밭과 남새밭에서 몇몇이 놀리는 일손에서 노동의 경건함이 묻어난다. 여기에 민박을 하였더라면 더 좋은 공기, 더 후한 인심, 더 나은 아침 식사 그리고 더 싼 가격에다가 그 비싼 입장료도 아낄 수 있었는데 하면서 다들 아쉬워한다. 다음에 이곳에 오면 반드시 여기까지 와서 민박을 하리라. 그리고 이 글을 보시는 특별한 분들께서도 그리하실 것을 추천합니다. 평편한 돌 위의 암자라는 석상암은 그저 그렇지만 입구의 곰보같은 수피를 가진 굵은 모과나무 한 그루, 야생하는 듯한 차나무 그리고 군데군데 검붉게 뚝뚝 낙화한 동백 등은 볼 만하다. 8시 50분경 마이재 안부에 올라서면서 낮은 산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라면 입을 모은다. 길을 좌측으로 틀어 20여분 오르면 선운산의 주봉인 도솔봉이라고도 부르는 수리봉(336m)에 이른다. 건너편으로는 바다가 열리고 좌우로 펼쳐진 낮은 능선들의 조망이 편안하다. 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엔 더덕향이 진하게 묻어온다. 9시 15분 출발하니 일단은 하산길이다. 김이돌로부터 고사리를 배운 김생곤은 눈을 내리뜨고 고사리 찾기에 분주하다. 미리 말하지만 오늘은 하루 종일 고사리 찾기에 모든 회원들이 많은 신경을 썻으나 정작 김생곤의 배낭에 모인 고사리는 한 끼 만큼도 되지못할 듯 하였다. 엉겹결에 앞으로 큰 길이 나타난다. 참당암이란다. 개이빨산(어느 지도엔 犬齒山이라는 웃기는 이름으로 표기해 두었다)을 거쳐 낙조대로 향하여야 하는데, 그리고 참고로 인터넷에서 뽑아온 산행기에도 주의하라고 일렀건만 거의 하산을 마친 셈이 되어버렸다. 막 다시 오르기 시작 할 무렵 앞서가던 내가 뒤를 돌아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정강이가 까지고 가슴에 돌이 맞아 다소 무거웠으나 참을 만 했다. 덕분에 쉬면서 김이돌이 5개에 거금 8,000원 지불하고 사서 네 사람 몫을 남겨두고 한 개를 맛본 결과 맛이 별로라는 후지를 내어 하나씩 맛있게 베어 물었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소리재를 거쳐 낙조대에 이르니 암벽이 좋다. 인기사극 대장금에서 장금이의 앙숙으로 못살게 굴어 많은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은 최상궁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촬영장소라는 바위에 올라서니 아찔하다. 이곳에서 오늘의 첫 다른 팀들을 만난다. 오늘은 그만큼 우리가 일찍 길을 나선 셈이었다.
선운산은 계곡은 있지만 그 계곡에 물은 없는 산이다. 사실 나무도 울창한 편이지만 산이 깊지 못하여 물을 품지 못하나 보다. 비록 낮고 단숨에 오를 수 있다고 하나 식수준비에 소홀함이 없어야겠다. 낙조대에서 하산 길에 장금이가 어머니 장례 지낸 곳과 같은 큰 천연의 굴을 지나면 도솔암에 이른다. 보물 제 1200호인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이 높다란 벽면에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월악산 마애불보다는 돌의 질감이 훨씬 무르게 보이지만 더욱 큰 것으로 보인다. 도솔암을 일견하고 내려와 주차장, 화장실 옆의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오랜만에 탁족을 하고 김생곤은 주섬주섬 장비를 꺼낸다. 오늘은 삼양라면이다. 삼양이 더 비싸고 요즘 많이 좋아졌다고 다들 예기하는데도 생라면을 뜯으면서부터 금도현은 안성탕면보다 못하다고 투덜거린다. 김이돌은 오늘도 파를 준비해 왔다. 식사 후 12시 20분 다시 선운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꽤 많은 사람들이 예기를 나누며 오르내리고 있다. 곧 천연기념물 제 354호 고창 삼인리의 장사송이라는 거대한 소나무 한그루를 좌측으로 만난다. 長沙松 이름의 유래는 알길 없으나 높이와 가슴둘레 그리고 특히나 여러 갈래로 길게 뻗은 가지가 인상적이다. 다시 선운사 입구를 지나 좀더 내려오니 미당시비를 만난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선운사 동구,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는 한마디로 28세의 젊은 자신을 정의했던 시인, 비록 2000년, 시인의 사후 친일 여부로 이제사 새삼 시끄럽기는 하나 나는 자화상의 시를 처음 접한 순간, 그의 고백 앞에서 내 모든 사유가 멈춰섬을 느꼈다. 1915년 고창군 부안 출생으로 1917년생의 윤동주와 동시대를 살았던 한국 시단의 전설, 그가 시비로 내 앞에 서 있다. 1974년(단기 4307년) 시인이 들었던 막걸리집과 걸죽한 육자배기 가락은 지금 찾을 길 없지만 아직도 그들은 목이 쉰 채 남아 귓전에 울리는 듯 하였다. 꽃과 여인, 풍천장어 안주에 막걸리 그리고 육자배기 한가락까지... 동백꽃과 풍천장어는 아직도 그대로 남았거늘 그 여인과 가락, 그리고 막걸리는 시비에 탁본으로만 남겨지게 되는 걸까. 점차 굵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이런저런 생각이 나를 시비에 붙들어 묶는 듯 하다. 이네 왁자한 장사치들의 소리. 동동주, 산나물, 참기름, 은행, 둥굴레, 곡류들, 각종 한약재들을 좌판에 벌려 놓고 손님을 부르던 장사꾼들이 주말에 내리는 비가 못마땅한 지 서둘러 차양을 내리며 비를 가리고 있다.
13시 20분, 변산을 향하여 차가 다시 출발한다. 미당과 인촌의 생가가 지척인데도 들르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는 22번, 23번, 30번 국도를 따라 2시에 내소사 주차장에 닿았다. 주말 내소사 역시 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관광버스와 함께 사람들로 왁짜하다. 시간제로 지불하는 추차카드를 뽑고 서둘러 입구를 향하였다. 그러나 입장료가 물경 일인당 3,200원, 후퇴하여 우측의 황토마을 뒤편으로 작은 오솔길의 등산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주변엔 야생 춘란이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잠시 멎었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내소사와는 멀어지는가 싶더니 계속 오르니 좌측으로 내소사 방향의 이정표가 보인다. 약 한 시간을 걸었다. 다들 다소 피곤해 하였고 더욱이 식수마저 준비하지 못했다. 하지만 굵어지는 빗줄기는 우리의 갈증과 피로를 어느 정도 덜어 주었다. 오버트로즈를 준비했는데도 다들 오늘은 그대로 오시는 비를 맞고 싶은 가보다. 실컷 맞았다. 그리고 조릿대가 머금은 빗방울은 우리의 하의도 온통 젖게 하였다. 그래도 기분은 참 좋다. 여태껏 등산을 하면서 오늘처럼 비를 맞기는 첨이다. 3시30분 변산 관음봉(433m)에 올라선다. 비록 20-30분은 더 걸었으나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이곳에 올라서 다들 더욱 좋은가 보다. 구름이 몰려왔다가는 지나치기도 하면서 보여주는 봄비로 씻은 연록색의 산이 너무나 깔끔하다. 멀리 곰소만과 오전에 올랐던 선운산 자락도 부옇게 시야에 들어온다. 내려다보이는 내소사 마당은 사람의 흔적 없이 조용하다.
하산길, 목책으로 가로막아둔 사이로 내리막길을 잡았다. 바위로 이어진 절벽에 가까운 길이다. 다행히 빗줄기가 멎어 어려움은 덜했으나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조그만 암자가 눈앞에 들어온다. 그리고 물이다. 우선 물부터 한 바가지씩 들이켰다. 관음전. 전혀 채색되지 않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짜리 암자, 문이 열려있고 천장엔 연등이 빽빽하게 달려 있지만 주인은 아무도 없고, 마당과 댓돌들이 정갈하게 청소된 곳, 비가 내리자 처마를 타고 덜어진 빗방울들은 암자주위를 둘러 가지런하게 군인처럼 줄을 맞추어 모아놓은 자갈돌 위에 떨어진다. 평화, 난 여태껏 이런 평화를 느껴보지 못했다. 화강암 대신 통나무를 각지게 깍아 만든 댓돌에 걸터앉아 우린 조용한 산사의 빗소리에 녹아들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현실로 내려서야 했다. 여기서 내소사까지는 10여분 남짓. 來蘇寺, 원래이름은 ‘다시 태어나 찾아온다’는 뜻의 소래사, 백제 무왕(633년)에 창건, 고려동종, 대웅보전 등의 보불을 간직한 유명사찰, 사시사철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 등 많은 수식어를 가진 사찰이다. 관음전처럼 채색되지 않은 소박한 질감, 꽃무늬의 창살, 앞마당의 굽은 소나무와 막 꽃잎을 떨구고 있는 자목련 등이 나에겐 좋았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는 절집을 나서자 그 유명한 600여 미터에 이르는 내소사 전나무 숲길이 열린다. 방금 비가 내린 탓에 그 싱싱함과 그 향이란...입구를 당당하게(?) 나오니 주변엔 먹거리로 가득하다. 전어구이, 너를 피해갈 수는 없지. 단돈 5,000원으로 맛있는 갓김치와 함께 전어 두 마리씩을 맛있게 해치우고는 다들 만족스러워 한다.
이젠 귀갓길이다. 부안으로 나오는 길엔 요즘 인기리에 방영중인 불멸의 이순신 세트장을 구경했다. 전망 좋은 자갈밭 해변에 산뜻하게 지어져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구경하고 나오는 길엔 엄청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아 거의 말라가던 옷이 다시 젖었다. 천연기념물 제 123호인 후박나무 군락도 그 유명한 채석강도 내리는 비 탓에 구경도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부안읍이다. 군청 앞에서 내려 세탁소에서 좋은 식당을 물어 낭주식당(063-584-2331)에 들러 정식을 맛있게 먹고 건너편 여관(같은 집)에서 커피까지 마셨다. 돌아오는 길엔 비가 오락가락했다. 신태인에서 호남고속도로에 올리자 피곤했던지 뒤 칸의 손님들은 말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비록 변산의 직소폭포 등 몇 군데의 명소를 빠트리긴 하였으나 오늘 우리는 분명히 한국의 100대명산 두 곳을 오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