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의 여름은 유난히도 날씨가 변덕을 부린 것
같았다.
찌는 듯한 장마의 기승으로 심신의 피로가 나를 힘들게
하였고 중국 대륙에서 한반도 허리를 둘러싸고 있는 고기압 기단은 움직일 줄 모르고
있었다.
한반도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2주에 걸쳐 장대와 같은 장마를 뿌리더니 간간히 파란
하늘을 내보이기도 하여 자연의 장관을 뽐내기도 하였으나 이러한 자연의 장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하늘은 다시 먹구름으로 뒤덥히기도 하여 종잡을
수 없는 불확실성의 날씨가 지속되고 있었다.
이러한 불확실한 찜통 더위를 극복하기 위하여 틈틈히 가까운 휴양림 둘레길을 걸어보기도
하고 동네 산들을 주로 섭렵하기도 하였으나 가슴이 답답하고 우울한 기분을 전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산악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산행 일정을 조사하여 보기도 하고
좋은 날짜에 맞는 산행 일정이 없을까 알아보았으나 우천관계로 등산을 순연한다는 내용들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큰 딸이 휴가를 얻었다는 연락이 왔다.
엄마가 그동안 지우를 키우느라 고생을 하였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딸은 늘 엄마에게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휴가동안 만이라도 지우를 딸이 데리고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날씨가 워낙 무덥고 지루한 날이 연속되어 생활의 변화가 필요했던 지 마누라는 컴퓨터를
만지면서 NH 농협생명 부안 수련원을 접속시켜 22평 콘도 두 개를 신청하여 휴가를 떠나기로 하였다.
휴가 계획은 생활의 변화를 촉진시켜주고 그동안 딸과 사위가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느라
누적된 피로를 전환시켜주기 위하여 구상한 발상이었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에 있는 NH 농협생명 수련원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예약을
신청하였으나 컴퓨터에서 NH 농협생명 수련원의 홈페이지를 접속하여 예약을 신청하는 데는 대단한 인내심과 공력이
필요하였다.
NH 농협생명 부안 수련원 설립 목적은 NH 농협생명보험 고객과 농업인 그리고
조합원들의 쉼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하여 설립하였겠지마는 나는 다행히 농협을 잘 이용하고 있고 조합원이어서 NH 농협생명 변산
수련원의 혜택을 톡톡히 잘 누릴 수 있도록 배려를 받고 있어 생활의 행복지수를 한 층 더 높이고 있는 편이었다.
예약을 마친 나는 가족과 함께 NH 농협생명 부안 수련원을 방문하기 위하여 선운사
초입에 있는 서해안 식당(063-563-3345)에서 장어구이로 저녁 식사를 대신한 다음 수련원으로 진입하려고 마음먹었다.
서울에 있는 조성학 선생님의 해박한 여행 견문 지식의 도움을 받아 선운사 입구에 있는
서해안 식당을 안내 받게 되었다.
내비로 안내를 받아 식당을 찾아 나섰는데 서울에서 출발하여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금강 대교를 건널 즈음 애초의 서해안 식당을 그대로 두고 새만금방조제를 우회하여 돌다보니 예정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가 지체되어 식당에 도착하게
되었다.
식당 안주인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식당 안 홀로 들어갔는데 공간은 아주 넓지는 않았지만
에어컨시설이 잘 되어 있었고 시골의 정겨움과 따뜻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안사장님은 아주 싹싹하고 친절하였으며 후덕하였다.
안사장님에게 서울에서 전에 한번 이 식당을 찾와왔던 조성학 선생님의 소개를 받고
왔노라고 하니까 아주 좋아하면서 친절하게 맞아주었고 바깥사장님도 덩달아 다가오더니 웃으면서 인사를 하였다.
서해안 식당은 화려하지 않는 시골풍의 아담한 곳이었으나 주위에는 텃밭과 산들이 있어
유기농 채소를 직접 가꾸어 식당을 찾는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며 실제로 주인은 텃밭에서 가꾼 채소라고 말을 하면서 은근히
자랑하기도 하였다.
차려온 음식을 바라보니 정말 깔끔하고 정갈하였다.
사위가 집에서 가지고 온 와인을 내놓자 나는 양념 장어구이 4인분을
시켰다.
양념 장어구이가 익는 동안 사위가 와인을 잔에 따르니 그윽한 향기가 주변으로 스며들면서
취해가는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와인 잔을 들고 주도의 세계로 흠뻑 젖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들 같은 사위와 대작을 하다 보니 더욱 흥이 돋고 취해가는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았으나 안 먹는 편이었다.
사위가 딸아 주는 와인의 향기가 혀끝을 적시면서 식도를 따라 가슴을 수직 하강하고
그윽하고 은근한 취기는 나를 무아지경의 경지에 이르게 하였다.
오늘은 왠지 사위와 함께 취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점점 취해가서 말이 많아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중국 당나라 때 이백이나 두보는 술을 떠나서는 시를 생각해 볼 수 없었고 술 속에 시가
살아있다고 볼 수 있는 시인들로 나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주었던 인물들이었다.
인생의 역경을 술과 함께하였던 두보의 곡강 시에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서 유래되어 고희(古稀)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되었고 우리들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는 70세를 일컫는 말이다.
곡강은 당나라의 수도 장안 근처에 있는 꾸불꾸불한 강으로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가 질탕
사랑에 빠졌던 곳이기도 하다.
여기서 관리들의 부정과 부패에 실망을 하고 술을 마시며 쓴 시가
‘곡강(曲江)’이었다.
동양권에서 많은 시인들이 술을 마시면서 인생을 논했던 것은 필시 의미심장한
주도(主導)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가족과 함께 즐거움과 행복의 세계를 찾아 한 잔의 술은 마시는 것은 뜻 깊은 하루의 행복일
것이라 여겨졌다.
우리 가족이 행복해 하는 것을 바라본 옆 좌석의 국순당 고창명주의 부사장 박용석
부사장님이 손수 복분자 한 병을 가지고 와서 딸아 주는 데 너무 감사하고 감명을 받아 나는 딸과 사위가 서울 아산병원과 새란병원의 의사들이라고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술잔을 권하면서 답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창의 아름다운 산세를 닮아서 그런지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도 곱고 남을 배려하려는
소박하고 때 묻지 않는 순수한 고향 같은 시골의 정취에 나는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은근히 취한 따뜻한 감정을 선운사 초입 서해안 식당에 묻어두고 서서히 일어서서 후일을
기약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식당 주인인 안사장과 바깥 사장님의 순수하고 소박한 뜨거운 정을 지금도 잊지 못하여
가슴에 떠오른 것은 우리 민족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정일 것이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의 NH 농협생명 수련원에 들어서니 안내인의 친절함과 내부시설의
깔끔함, 탁구장과 간이 골프장의 완벽한 시설은 짧은 휴식 기간 동안이었지만 즐거움과 행복한 감정을 충분히 연장시켜 주리라 의심치 않았다.
숙소에 여장을 푼 다음 나는 가족과 함께 인근인 상록 해수욕장을 찾아 거닐면서 고즈넉한
분위기의 아름다움 속에 감상에 젓어들어갔다.
이미 태양은 제집을 찾아 모습을 감추고 보이지 않았지만 그 여파인 황홀하기만
하였다.
상쾌하고 비린내 나는 바다 고유의 향긋한 냄새는 어릴 적 고향의 정서를 느끼게
하였으며 한 때나마 향수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주변에 동화된 나머지 자연 속의 몽돌처럼 자연과 하나가 되어
갔다.
먼 바다로부터 솜털처럼 하얀 구름인 듯도 하였고 비행기인 듯 보인 갈매기들의 점점이는
유유자적하면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비행을 하는 것을 즐기려는 듯 좌우로 회전하더니 한 무리의 갈매들이 휘감고
몰아온 바람은 나의 옷깃을 휘날리고 몸을 휘청하게 만들었다.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에 감탄을 잊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었는데 서너 발자국 뒤에서 7개월
째 되는 사내 외손자와 딸 사위가 뒤 따라 오고 있었다.
딸과 사위가 손자의 양손을 잡고 걷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 같았으며 자연 속의
동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감동을 자아내게 하였다.
해가 진 바다 넘어 지평선 위에는 너울이 조화를 부리고 있었으며 해안가를 걷는 지우와
딸 사위의 모습은 평화스럽게 보였다.
또한 사위가 손자를 안고 바다 물에 적셔보고 싶어 하는 사랑의 징표를 보니 사위와 딸과
외손자의 모습은 더없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보였다.
이번 여행에 작은 딸과 시위는 사업상 바쁘기도 하고 여가를 낼 틈이 없어 이 자리에
참석을 할 수는 없었으나 아름다운 아지랑이와 함께 이글거리는 사진 속에 다정하게 웃으며 서있는 큰 딸 부부 옆에 작은 딸 부부가 서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생각이 나의 욕심이 아니고 현실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여 명상에 잠겨
있었는데 갑자기 어머님 모습이 그리워졌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님 때문에 사랑이 메말랐던 탓일까 어렸을 때의 추억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면서눈가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약해져가는 나의 마음을 달랠 수만 있다면 모든 인연을 훨훨 털어버리고 마누라와 함께
갈매기들처럼 멀리 날아가 자유롭게 유날아가 유자적하면서 한 세상 보내고 싶은 싶은 생각 간절하였다.
외로운 영혼의 혼란스런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정리가 잘 안되어 흔들리고 있었으나
사랑하는 두 딸과 사위들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남기고
싶었다.
서울을 비롯하여 변산 지역은 아열대 지역인 중국 곤명시의 토림을 방불케
하였다.
햇볕은 따갑고 습도가 높아서 그늘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열기 때문에 몸의 균형은 이미 깨지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해수욕장에서 즐거워하는 사위와 딸 지우를 남겨 두고 먼저 숙소로 돌아와 앞 뒤 창문을
열어 놓은 채 들어 누워있으니 별유천지는 바로 이곳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시원하게 창문을 통하여 들어온 바람은 에어컨을 무용지물 전락시켰으며 이런 곳에서 살고
싶은 욕망이 솟구치기도 하였다.
테라스를 걸어서 별채 옥상으로 올라가면 간이 수영장이 있었는데
물이 아주 깨끗하고 맑아 은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사위가 서울에서 저녁 모임이 있는 관계로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른 아침에 부안의 NH
농협생명 수련원을 나서 채석강을 찾았다.
신들의 장난감들처럼 판석을 층층 올려놓은 모양은 신기하고
기이하였다.
바닷물로 인한 침식 작용으로 깎여서 형성된 것이었겠지만 자연의 조화를 인간이 감히 따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밭을 지나 낭떠러지 쪽으로 다가가니 이판암의 퇴적암으로 보이는 바위들이 아찔하고
위협적이어서 감히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에는 관광객을 실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쾌속선이 시선을 끌었으며
가족이 한 번 타볼까도 생각하였으나 위험이 초래될까봐 관심을 접기로 하였다.
바위 틈새를 바라보니 어렸을 때 늘 보아왔던 석화들이 더덕더덕 바위에 붙어
있었다.
바위위에서 기어다니는 게와 썰물 때문에 들어난 고기들을 바라보고 지우는 신기하고
이상하게 생각하였을 것이다.
파도가 넘쳐서 바위 틈새는 물이 고여 있었는데 거기에는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었으며 게들의 놀이터였다.
지우는 겁도 없이 물고기들을 손으로 만지작 거리면서 게를 잡으려
하였다.
어렵게 잡은 작은 게 한 마리를 컵에 넣어 지우에게 부여주니 무서운 줄 모르고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너무 대범하고 순진한 행동에 천사처럼 보여서 웃어 넘겼지만 지우에게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경험이 되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내소사로 향했다.
이곳은 수십 번 다녀갔던 기억이 있고 내소사의 역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된 고찰로 오랜
세월에 걸쳐 중건 중수를 거듭해오다가 임진왜란 때 거의 소실된 사찰을 조선왕조 인조 때 청민 선사가 중창하였으며 인 11년(1633)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오늘의 대웅보전을 중건하였다고 하였다.
내소사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은 해안선사가 1932년 내소사에 자리를 잡고 절 앞에
계명학원을 설립하여 무 취학 아동들과 무학 청년들을 대상으로 문맹퇴치 운동을 벌이고 서래선림을 개원하여 호남 불교의 선풍을
진작시켰다.
이곳 내소사는 아미타여래조상과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안치되어 있으며
대웅보전은 단청을 하지 않은 채 바란 색깔의 오래된 나무들의 건물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우리에게 짙은 인상을 남긴 사찰이기도
한다.
또한 내소사는 강원도 월정사와 마찬가지로 사찰 입구서부터 들어서 있는 전나무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강한 냄새가 코를 향긋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고 병원균이나 해충 또는 곰팡이 따위에 저항하려고
분비하는 물질인 숲 향기 즉 치톤 피드라는 화학 물질을 만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즐겨 찾고 있는 이유이기도
한다.
오늘의 날씨가 아열대를 넘어 열대의 높은 기온을 갱신하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쉽게
지쳐서 기진맥진한 상황인데도 수많은 인파기 끊임없이 들어서고 있었다.
딸과 사위가 한 번도 이곳을 오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설명을 부연하려 하였으나 둘이서
열심히 돌아보는 것을 방해하고 싶지 않는 생각이 들어 사찰에 대한 부연 설명을 생략하고 치톤 피드를 들이마시기 위하여 심호흡을 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마무리 하고 서울로 귀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