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형제 중의 막내가 큰형보다도 3살이나 많고 6세 연상인 자매와 결혼한다니 집안이 왈칵 뒤집혔는데, 사정은 처가 쪽도 마찬가지였다. 어려웠던 가운데 아내가 섬기던 예닮교회에 갔더니 마침 그날 설교가 지금 결혼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냥 결혼을 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 여기고 그녀의 생일날 구청에서 혼인신고부터 하고 양쪽 부모에게 날을 잡아 통보했더니 다행히 결혼식에 오시긴 했으며, 결국 아내는 믿지 않던 그를 구원으로 이끈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
혁준이가 태어나고 4세가 될 때까지는 교회에 가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그냥 다닌 것이었다. 하루는 아들이 갑자기 열이 나 병원에 데려갔더니 검사 결과가 좋지 않다며 다른 검사를 받게 하고 그게 끝나면 또 다른 검사를 받게 하여 모두를 긴장하게 하더니 결국은 점점 근육을 잃어가다가 10세 전에 죽는 근이영양증이라는 희귀병일 확률이 90%이라고 했다. 죽고 싶다는 심정이 뭔지 알 것 같았는데, 와중에도 놀라웠던 일은 어린이 병동에 아이를 입원시킨 부모들이 하나, 둘 와서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는데, 그냥 일회성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매일 오는 것이었다. 더구나 어떤 날은 각자의 교회에서 문병 온 기도 발이 센 분들을 동반하기도 하셨는데, ‘자신의 아이도 아픈데, 어떻게 남의 아이를 위해 저렇게 간절히 기도하는지’ 그로서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런 중에 장모님께서 이사야 41:10절의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라는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라고 하시길래 연기할 때처럼 감정이입을 한껏 하며 예수님이 혁준이의 손을 붙들고 있는 리얼한 그림까지 그리며 기도하였고, 내친 김에 정상판정이 나면 이런 분들을 위해 평생 중보하며 CF로 번 돈도 정성껏 내겠다는 서원을 서원이 뭔 줄도 모르고 해버렸다. 마지막 근전도 검사 날 CF촬영을 하면서도 또 그 말씀을 붙들었고, 일을 마치고 병원으로 가보니 아내가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주셨단 말을 해주며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할렐루야!
90%라던 의사들이 놀라며 다시 검사해 보자고 했지만, 명백히 하나님께서 해주셨다는 믿음에 담대히 거절하고 애를 데리고 나와 차에 태우는데 사도신경에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란 절이 자꾸만 되뇌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곤 급하게 서원한 것을 갚을 곳을 찾는데, 정말 감동스러웠던 것은 어려운 듯하여 도우려 하면 더 어려운 데를 소개해주어 정말 몇 번을 허탕을 치게 된 일이었다. 드디어 두 아들이 다 근무력증인 어느 개척교회 목사님이 마침 요양시설을 만들려고 하는데 부족한 금액이 있다고 해서 얼마냐고 여쭈었더니 정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CF에서 번 돈이었으므로 그 순간 소름이 쫙 돋았다.
“천사 돕는 모임”을 결성해 장애인을 위해 처음 목욕봉사를 시작하자,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할 지 황당해 하며 리더인 자신만 바라보던 가운데 눈을 딱 감고 “이분이 예수님이라 생각하자”라고 마음먹으니 그들에게 봉사하는 게 평화와 행복이 넘치는 은혜였다. 따라서 기도해도 응답 없고, 주님 만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 봉사를 해보면 주님 임재의 평강이 온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또한 이들에게 봉사하다 보니 그저 입버릇처럼 “버스 안 와 죽겠다”, “장사 안되어 죽겠다”, “촬영으로 밤새는 것 힘들어죽겠다”등 여느 사람들이 보통으로 하는 불평들이 그들은 “평생에 딱 한 번이라도 해보고 싶은 일”이란 것을 알고는 회개하며 일상의 불평거리조차 감사한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결코 불행한 것도 아니었고, 늘 은혜로 찬양하고 기도하고 감사해 하며 살고 있는 모습도 그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참으로 큰 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었는데, 다행히 “그랬었지”할 정도가 되어 버렸을 즈음 한번 경종을 울려주셨다. 어느 주일날 교회 유치부에서 낙상을 당한 아들을 안고 얼마나 급했던지 아내가 실례를 무릅쓰고 예배 중의 본당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이었다. 서둘러 전에 입원했던 세브란스 병원으로 데려가 CT촬영방 앞에 앉아 있으려니, 긴 복도를 따라 다리가 불편한 아주머니 한 분이 천천히 자신을 향해 걸어와서는 “아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마침 호명이 되어 아이를 데리고 나오며 아무리 찾아봐도 그분은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는데, 그리고 보니 “두려워하지 말라”던 말씀을 그새 잊고 안절부절 했던 것이 새삼 겸연쩍어졌다.
아이가 자라 학부모가 되어 가끔 운동회에도 가야 하는데, 지고는 못배기므로 죽기살기로 뛰는 요즘 아이들과는 달리 달리기에서 마치 걷는 것같이 여유 있게 뛰며 때로는 뒤도 돌아보며 사람들에게 손 흔드는 팬서비스까지 하는 아들이 처음에는 창피하게 여겼으나 해가 갈수록 그럼에도 아주 행복하게 달리기하는 순간을 즐기는 모습에서 하나님께서도 꼭 일등이 아니라도 남도 돌아보며 목표로 향해가는 “나”를 보시며 더 행복해하실 것 같아 “저렇게 살아야지”라는 깨달음이 오더라고.
선교단체에서 보관하고 있고 순교로 주인을 잃은 수십 년 된 가방들이 있다며, 대전에서 영상사역을 하시는 목사님께서 다큐 영화 “잊혀진 가방”을 제작하러 가자고 하셔서 마음이 움직여 연속극 “살맛 납니다” 촬영 중에 아주 어렵게 시간을 내어 영국으로 갔다. 선교사들의 안전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유로 촬영을 거절당해 실망은 크게 했지만, 대신에 은퇴한 많은 선교사님들과 면담을 할 수 있었다. 사역지에서 존속피살, 성폭행 등 정말 힘든 일을 당했던 분들조차도, 하나같이 크리스천의 특권이라 기쁘게 감당했으며 괴롭고 마음에 상처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말씀을 듣고는 갑자기 자신이 해왔던 봉사들과 일곱여 가지의 교회에서의 직분도 무엇을 채우기보다는 겉으로 꾸미고 드러내기에만 급급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깊은 반성을 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교회에서 손들고 찬양하다가도 밖으로만 나가면 “에이 씨”하며 운전대를 잡기도 하고, 남의 힘든 얘기에 “기도해드리겠다”고 해놓고 예사로 부도를 내기도 했지만, 이 일 이후로 그의 잊은 소명(잊혀진 가방)은 없는지 살펴보게 되었고, 혹여 소명을 놓고 싶을 때는 잠시 멈추고 첫사랑을 생각한다고. 이로써 선교사로서의 사명도 생겼지만 최고의 사역지는 현재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이고 주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곧 순교라 여기도 있다고.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로 살다 보니 그분은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든 해야 할 것은 어떻게든 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좋은 예로 그가 “식객”에 캐스팅된 일이었다. 엄하지만 워낙 유명하신 감독님 작품이라 여러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치열한 로비를 벌이던 상황에서 예전의 인연 때문에 일방적으로 그를 낙점해 주셨다. 감사하기는 해도 한참 부산에서 영화촬영 중이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 몇 번 고사했으나 촬영까지 두 달을 미루어주는 호의를 베푸셨고, 매니저, 실장, 사장까지 차례로 동원이 되어 정중히 거절했으나 막무가내로 고집을 꺾지 않으셔서 얼마나 고민이 되었으면 전혀 해보지 않던 새벽기도까지 드리게 되었다. 빼도 박도 못하게 된 상황에서 “만일 이 작품을 하는 것을 원하시면 무슨 일이 있어도 찍게 해주시고, 그렇게된다면 최선을 다하여 아버지의 뜻인 줄 알고 영광을 올리겠다”라고 선포했는데 결국은 하게 되었다. 한참 뒤에 일이 없어지고 수입이 없어진 뒤에야 하나님께서 왜 이 작품에 집요하게 출연하게 하셨는지를 알게 되어 다시 한 번 쫙 소름이 끼쳤다. 바로 “식객”에서 요리사역이라 요리를 배우면서 욕심이 나 따두었던 한식, 양식 등 조리사 자격증으로 인해, 기본적으로 6명의 희귀병 환자를 돌보고 있어 아무리 없어도 한 달에 60만원은 있어야 하는 그에게 음식관련 광고섭외는 물론 조리학과 교수로도 청빙이 되어 지속적인 수입이 있게 해주신 것이었다.
이로써 다시 한 번 “뭐 이런 일을 나한테 주세요”라고 따지지 말고, 그런 회사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으로 믿고 두려워도 말고 걱정하지 말고 그 일을 “아멘”으로 받고, “뒤에 오는 축복”을 기다리며 오히려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싶다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늘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못 듣는 것이므로 때가 되면 주시는 것을 믿고, 또 급하면 급하다고 아뢰면 때로는 빨리 주시기도 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늘 선교사역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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