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동양학을 전공한 학자도 아니며 풍수지리나, 역학 또는 전통건축을 전공한 학자도 아니다. 현대건축을 전공한 건축가 입장에서 금번 토지문학관에서 주최하고 있는 ‘전통건축의 생태 문화적 연구와 실현’ 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가능성을 더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주제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본인이 생각하는 생태건축에 접근하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첫째, 현재 사용하고 있는 용어와 어휘가 적절한가를 짚어보아야 하며, 둘째, 우리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구조 속에서 철학적 패러다임의 전환 없이 생태건축은 가능한가? 를 점검하며 셋째, 우리의 전통건축의 사상적 배경이 생태건축 으로서의 보편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사상체계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에 대한 문제를 검토하고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을 전제로 하려는 것이다.
1. 환경친화, 자연친화, 생태건축은 동일 개념인가?.
최근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회자되고있는 화두는 환경과 생태에 대한 문제이다.
혹자는 이와 같은 주제를 새 밀레니엄 시대를 주도할 핵심적인 패러다임으로 생각하고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건축가와 학자들 사이에 생태적 건축에 대한 실험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개념이 미래사회를 주도할 중요한 테마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헤이리 아트밸리 가 문화와 생태개념을 기초로 한 새로운 개념의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파주 출판문화단지 또한 생태도시를 지향하고 있다. 그 외에 새로이 건설되는 아파트나, 집합주거에서도 환경친화, 자연친화를 주제로 하여 우후죽순 격으로 건설 되고 있다.
이러한 개념의 확산은 인간에 의해 이룩된 건축문화가 환경파괴의 주범이 되고 그것은 다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존재가 되고 있다는 위급성을 인식하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쟁점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소비 지향적 건축의 과대 현상과 에너지의 과대소비, 인구증가에 따른 도시의 확대는 환경오염과 자연생태 파괴의 주범이 되고있다는 현실적 문제에서 이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로서 생태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이미 서구 유럽에서는 1980년대 초부터 대규모의 주거단지나 대형건축물에서 생태개념의 건축이 건설되어지고 있으며 지속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영국, 프랑스를 비롯하여 독일의 운트바흐 주거단지, 카로우노트 주거단지, 앰셔강 프로젝트, 등 수없이 많은 계획들이 이루어 지고있다.
생태건축, 생태마을에서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내용은 지속 가능한 건축으로 자연재료이용, 자연에너지이용, 물 처리, 비오톱 형성, 오수처리에 관심이 집중되어있다.
문제는 생태건축이 추구하고있는 내용이 생태적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생태학(ECOLOGY)이란 어휘는 그리스어의 Oikos오이코스(서식지)로부터 출발한 삶의 장소에 대한 학문이다. 생태학은 `생물과 그 생물의 자연환경과의 관계를 연구하는학문`으로 정의된다. 즉 살아있는 모든 생물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환경 및 생물체들 상호관계를 다루는 것이다.(M, 뀌쟁, 생태학이란 무엇인가? 현대과학신서. 1975 p 15-16) 이렇게 볼 때 생태건축은 건축이전에 인간을 하나의 생물체로 보고 이런 생물체를 담는 그릇을 자연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자연친화, 환경친화개념 과는 유사하면서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환경친화` 라는 말은 언어 그 자체가 이미 인간의 손길이 닿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듯이 인간과 인간을 담고있는 공간, 즉 건축과 인간을 제외한 주변의 환경을 자연친화 적으로 처리한다는 개념이 되고 생태적 개념이란 나와 나를 담고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환경 속에 있는 생명체를 같은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으로 인간의 존재를 자연의 한 생물체로(인간도 자연이다)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친화 라는 용어를 사용할 경우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있어 자연은 인간에 의한 지배적 관계에 놓여지게 된다. 철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이성에 의한 기계론적 사고체계 안에서 자연을 이해하는 것을 말하며 인본주의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기계론적 세계관). 이와는 반대로 생태적 개념이란 인간의 존재를 인본주의적 관점이 아닌 우주의 질서 체계 내에 존재하는 하나의 자연적 인자로 해석하는 탈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여야 함을 본인은 주장하는 것이다.(우경국/ 건축 문화의 해 국제 세미나, 삶과 환경 보고서 중에서)
그러나 현재 추구하고 있는 서구의 생태건축이든 국내의 생태건축은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보는 환경친화의 개념정도에 머물고 있으며 그것도 과학적 개념인 시간에 바탕을 둔 “지속 가능한 건축”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속`(la dur`ee)이란 과학적 시간과 구별되는 `흐름`이며 `지나감`이다. 흐르고 있다는 것은 그 흐르고 있는 어느 한 부분이 지금 현재 지나가고 있을 때 그 흐르고 있는 것의 또 다른 부분은 결코 동시에 나타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베르그송의 생명사상/ 차건희, 생명과 더불어 철학하기, 철학과 현실사, 2000 p80). 이와 같이 베르그송의 새로운 시간개념에 대한 정의는 동양적 시간개념과 동일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생태건축은 철학적 관점에서 본질의 문제로부터 접근하기보다는 대부분 환경을 기술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대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2. 아직도 존속하고있는 산업사회 구조 속에서 생태건축은 가능한가?.
우리사회는 산업사회로부터 급속하게 디지털 문화의 시대로 변화하면서 혼돈의 시대에 머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의 모든 경제, 산업구조, 문화의식, 도시체계, 건축, 삶의 형식 등은 자본의 권력구조와 인간편익 위주의 산업사회 구조 속에서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산업구조 모델은 서구식 합리주의와 아시아적 가치 (신 유교주의)가 혼용된 것으로 가장 짧은 기간 안에 농경사회로부터 세계적인 산업국가로 전환시킨 것이며 우리나라 사람 모두가 그 혜택을 입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회 구조가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편리성으로 인간적 메커니즘을 기초로 한 결정론적 사고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의 자연이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전기나 용수가 필요하면 댐을 건설하고, 사람의 이동과 산업 물동량의 빠른 운송을 위해 고속도로나 고속전철을 건설하고, 편리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도시로 집중하는 사람을 위해 도시는 점점 확대되고 초고층 빌딩과 고층주거의 건설은 필연성을 갖게된다.
이로 인한 농경지의 축소와 그린벨트의 해제는 당연한 것이다. 여기에 천민 자본주의와 상업주의는 공동성을 상실하게 만들고 문화경관을 조악하게 만드는데 일조 한다. 이러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을 것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환경파괴가 가장 큰 나라로 지목 받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구조를 하루아침에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부정한다는 것은 편리함을 부정하고 빠른 시스템(과학적 시간개념)과 기존의 도시구조를 변화 시켜야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태건축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한국의 전통사상이나 전통건축이 그 대안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3.한국의 전통사상과 생태학적 관계.
상기한 바와 같이 이러한 현재적 상황 속에서 한국의 전통건축을 생태 문화적 관점 과 사상적 관점에서 접근하려 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이는 20세기를 주도한 로고스 중심적 합리주의로는 생태학적 건축으로 접근하는데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라 생각한다. 인간이 자연을 포함하고 자연이 인간을 포함한다든지, 하나의 요소가 부분이면서 전체인 대상과 메타언어가 혼용되는 역설적 논리로 이러한 논리는 인간 주체소멸을 의미하게 된다. 따라서 자연 과 인간의 공생관계 또는 자연으로서 인간, 땅을 생명체로 인식하는 우리의 전통적 사고 체계(풍수지리, 천지인사상, 불교, 도교, 송나라이후 성리학 또는 주자학/ 이기론 등 우주론적 세계관)내에서 건축을 바라보는 것은 바로 상기한 모순을 역설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최창조님의 ‘생태마을과 풍수지리‘ 라는 논고에서 그는 수십년을 풍수를 연구한 학자로서 긍정과 부정, 회의와 찬미가 반복되는 글을 쓰고 있다.
제1장 풍수가 생태마을에 발언할 수 있는 이유에서 “우리풍토를 읽어내는 조상들의 땅에 관한 지혜의 축적“이 풍수의 정의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마음속의 명당’을 주장하였던 그는 ”자본이 명당이란”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금력에 의한 좋은 터 만들기에 긍정하면서 도시 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아줄 어떤 특정장소를 만들어 가자는 발상 쪽으로 기울어진다. 이는 우리자신이 만든 환경인 도시와 건축에 적응하여 명당으로 꾸미는 일에 나서야 하는 것이 풍수의 현대적 변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생태마을이 선호하는 입지조건은 전통의 풍수가 찾던 명당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이는 사람과 자연, 또는 사람과 자연사이에 공생관계를 이루면서 사람답게 살아보자는 것이나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다는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다.
제2장 음택풍수의 허실, 그 허구성과 유용한 정보에서는 ‘우리는 풍수를 옛날에 쓰여진 그대로 따를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당연히 현대에 맞는 재해석이 요구된다’.라고 논하고 있다.
제3장 답답한 남북 지도층의 풍수에서는 평양의 주석궁과 서울의 청와대의 풍수적 허구성을 이야기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제논리로 비무장 지대의 경제적 가치에 따른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한 통일후 비무장지대를 절대적 자연보호 구역으로 설정하여야 통일후 인간다운 삶을 살수 있다는 입법을 주장하면서 남북의 연결 시스템(터널, 고가차도)을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있다.
제4장 풍수의 흐름에서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땅을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삶터를 가꾸어간 조화로서의 마을들을ꡒ우리의 자생풍수의 예로 소개하고 있으며 이러한 개념을 무시한 현대의 잘못된 개발사례를 들고 있다.
한편 풍수가 오해되고 있는 이유로 천지인에 대한 복합적 사고 체계와 조선시대의 극단적인 묘지풍수, 서구식 논리로 풍수사상을 재단하기 때문에 왜곡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제 5장에서는 섬풍수(제주도)의 예를 들면서 기후와 풍토에 관한 경험의 축적으로 삶의 기본적 바탕이 되는 적합한 장소를 찾는 장소성의 예와 올래의 영역설정에 대한 공간의 역설적 개념 의 예를 들고있다.(장소에 따라 해석의 유연성 과 비보, 공동체의식 의 강조등) 이는 서구식 환경 결정론적 해석에 대한 거부로 자연과 사람의 조화를 강조하고 있다.
제6장 마을 구조에 관한 풍수적 해석 편에서는 땅을 물질로 보는 서구식 합리주의로 보았을 때 소유와 이용의 대상만이 되며 그렇기 때문에 오염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다. 풍수는 땅을 비인간적으로 보지 않는다. 철저하게 살아있는 생명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러한 관점에서 마을영조와 배치가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삶과 죽음의 공간에 있어 경계가 없으며 이는 음양의 원리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마을에서의 “성 과 속“ 이 같이 존재하고 있음을 기럴 마을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즉 풍수는 완전한 땅이 없음을 이야기하며 조화와 균형을 만들어 나감을 말한다.
이와 같이 최창조 님의 풍수에 대한 해석은 땅을 생명체로 보고 접근해야 된다는 것이며 장소와 상황에 따라서 조화를 찾는 것이기 때문에 한가지 논리로 설명할 할 수 없으며 비보의 방법을 인정하고 있다. 즉 기후와 풍토에 관한 삶의 지혜서로 인정하고 있다. 그것은 풍수 이론이 상황적 이론임을 말하는 것이며 형국의 표현에 있어 동물의 형상이나 인체에 비유하여 명당을 이야기하는 것도 객관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보이는 현상(자연환경)을 사실대로 표현하고 환경으로부터 연유한 인지심리를 표현함이 보편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 논리로 발전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본이 명당, 마음의 명당” 이라고 하는 것은 인식론에 있어서 개인적 감성에 치우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 풍수는 보편적 논리가 결여되었다는 해석이 되며 그럴 경우 현대 도시적 환경을 위한 재해석도 불가능 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개인적 감성이나 해석에 의존 하다보면 본질로부터 멀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면서 인간답게 살수 있음을 풍수로 해석하고 있음은 스스로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도시에서의 좋은 터 만들기를 이야기하면서 ‘인간답게’ 라고 하는 의미가 서구 인본주의적 입장에서 인간을 이야기하는지 인간이 우주 구성체의 한 인자로서 자연과 공생관계인 인간을 의미하는지가 불분명하다. 이는 존재론과 인식론의 근본적 관점에서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윤칠 님의 동양사상을 통해본 전통건축 에서는 자연환경 오염, 생태계파괴, 그리고 건강한 삶을 위해 하나의 대안으로 동양사상의 핵심인 전일적 이며 다양성 속에서의 관계성을 중시하며 단편적 절대성보다는 종합적 상대성을 골자로 하는 우주론적 세계관을 주장하고 있으며 인체와 자연과의 관계를 체계화 한 한의학 체계를 건축과 자연환경에 대입하여 이 시대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제1장에서는 동양사상 개괄로 상수학 을 설명한다. 모든 것은 하나에서 출발함을 전제로 불교의 자타불이관, 세계일화사상, 서구 신과학의 가이아 이론을 설명한다. 주역체계에서의 하나에서 둘 그리고 사상, 팔괘, 64괘의 원리로 자연의 본질적 존재 양상과 관계성을 설명하고 있으며 음양오행 론 에서는 동태적 시간의 흐름에 의한 천지만물의 변화 원리로 상대적 순환적 세계관을 열어 가는 열쇠로 여기고 있으며, 천부경 에서의 一에서 三으로 그리고 九의 체계로 전개해 나가는 천지인 사상은 전일적 관점을 놓치지 않고 전체를 부분적 요소로 분리시키며, 각 요소들 사이에 관계성을 논할 때 편리한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제2장 주역과 건축구조 에서는 건축물의 난방 방식을 주역의 괘상에서 찾아보고 집을 팔괘에 배속시켜 공간, 골격, 의 음양 두 개로 나누고 四상으로 지붕, 방, 벽, 기단으로 분류한 다음 팔괘로 지붕, 문, 난방, 방, 창문, 배수, 벽체, 기단으로 구분하여 도식화시키고 있다.
제3장 천부경과 건축구조에서는 천부경의 천지인 삼재 체계를 건축물의 구조에 적용 해석하고 있다. 즉 一 집, 三 천인지, 지붕, 방, 기단 다시 九수 로 지붕, 지붕골격, 중천장, 창, 방, 방바닥, 고래공간, 주초 또는 구들, 기단으로 분류 설명하면서 지붕에서의 흙 사용을 단열재 역할을 위함이며 의미론적으로는 천지의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모든 구조를 천인, 인인, 천지, 인천, 인인, 인인천, 인인지, 인지, 지천, 지인, 지지구조로 해석하며 사계절에 적합한 구조 즉 비 바람처리, 햇빛, 온 습도, 여름과 겨울의 온도조건, 인체의 생리구조, 지자기차단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구조임을 설명하고 있다.
제4장 운기학설 과 건축에서는 자연계의 기후 변화에 따른 모든 생물체의 반응을 기초로 하여 자연변화 현상과 생물의 생명현상을 통일시키고, 자연기후 변화와 인체 발병 법칙을 통일시킴으로서 우주간의 운동 법칙으로부터 기후변화와 인체 건강, 질병 발생간의 관계를 오운 육기론 과 臟象學說을 토대로 건축물의 이상적 척도를 제시하고 있다. 오운은 목, 화, 토, 금 ,수 다섯 가지 천기로 분류하고 그 기운에 의해 변화되는 6가지종류의 기상과 그 변화에 따른 인체장기의 감응현상을 건축물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결국 김윤칠 소장 이 주장하는 내용은 “건축물은 인체의 연장선이며 우주작용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건축을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위해서는 서구적인 인간 중심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전일 적이고 종합적인 동양사상을 통해 건축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의적으로는 동감하나 천문, 지리, 의학에서 사용하는 이론들을 건축에 복합적으로 적용 하기에는 그 이론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실제 설계에 반영이 되지 못하고 이론으로 끝날 여지가 있다고 본다. 특히 한국의 전통 사상들의 경우 자연과학적 탐구 결과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취약점을 들어내고 있다. 다만 생명체론적 세계관을 통해 건축을 이해하려한 점은 패러다임을 전환 하고자 하는데 핵심이라 생각하나 형이상학적 관점과 자연과학적 업적이 상호 보완이 되었을 때 그 가치가 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건축가 김재철 님의 ‘한국 전통건축의 생태적 실현 현황’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환경과 건강에 친화적인 생태적 건축은 한옥이라는 전제 하에 한옥의 좋은 점 과 현대적 재조명, 짓기 방법 등을 논하고 있다.
제1장 전통한옥이 좋은 점에서는 첫째: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
둘째: 보수가 용이하다. 셋째: 건강에 유익하다. 넷째: 건물의 수명이 길다. 고 설명하면서
나무와 흙의 사용이 자연으로의 순환성이 가장 높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제2장 ‘전통 한옥의 옛 모습과 지금‘ 항목에서는 현재의 한옥에서는 난방의 문제나 주방, 욕실 등이 현대적 개념으로 시설되었기 때문에 불편이 없으며 마당은 서구식 정원개념으로 변환 사용되기 때문에 공간의 활용성이 높아짐을 주장하고 있다.
제3장 ‘한옥의 현대적 재조명’ 항목에서는
첫째: 현대 한옥에서는 흙벽돌을 이용한 한옥 짓기나 토담집 형식 또는 귀틀집 형식의 건물을 선호하고 있으나 전통적 구조가 한국의 토양에 적합한 방법이며 짓기 방법도 생각보다 어렵지 않음을 강조하고있다.
둘째: 벽체의 문제 는 계급이나 귀천과 관계없이 궁궐 이든, 사찰, 사대부집, 민가, 농가 구별 없이 벽체의 두께가 동일 한데 이는 우리 기후 풍토에 알맞는 습기 조절과 공기 환류에 적합하도록 벽체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셋째: 온돌구조 재조명에서는 온돌구조가 없어지므로 인한 쓰레기의 과다 배출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건강유지 차원이나, 아랫목 윗목에 따른 장유유서가 지켜지는 차원에서 온돌의 장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넷째: 화장실 문화의 재조명 란 에서는 수세식 화장실의 정화시설은 정화능력이 없음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전통적인 방법으로 외부에 자연 발효식 화장실을 만들어 생태적인 화장실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제4장 ‘한옥 짓기의 합리적 방안‘ 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한옥을 짓는 방법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손수 짓기 방법 과 집짓기 품앗이를 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정보수집 및 재료구입을 하는 방법, 옛날 한옥을 옮겨 짓는 경우 적은 돈으로도 한옥을 지을 수 있음을 권하고 있다. 한편 점질 좋은 흙을 사용하여야 만이 집의 생명력을 높일 수 있고 난방은 보일러 방식과 온돌방식의 겸용을 권장한다.
결론적으로 현대성과 조화를 이루어야하며 실용성과 편리성을 가미한 현대적 해석의 한옥 만들기를 주장하고 있다.
김재철 소장은 한옥의 편리성과 건강성,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생태적 건축임을 강조하면서 실용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현대의식에 걸 맞는 방법을 적용해야 된다고 강조하는 논리적 모순을 않고 있다. 특히 한옥 짓기 방법은 한옥을 선호하는 몇 사람을 위한 개인적 논리로 보편성을 얻기에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형이하학적(물리적)방법에만 몰두 해있고 한국건축은 생태적이고 서구건축은 비 생태적이라는 등식은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은 둘이 아닌 하나로 이해해야 만이 통합적 해석이 가능해 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분의 발제자 들의 원고 내용에서 논의 된 것은 존재론과 인식론적 측면에서 1. 우주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땅에 대한 해석(생명체), 인간과 자연의 순환론적 관계, 집과 인간의 관계를 이원론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 관계 속에서 개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바로 그러한 점이 현대가 추구하는 생태마을, 생태건축 개념 과 일치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4 . 결론.
평소 본인이 생각하는 이 시대 진정한 생태건축이 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이 전환되어야 한다. 기계론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서는 생태건축은 불가능하다. 또한 산업을 소비하는 우리의 삶의 형식을 단순화 해야하며 소비를 줄이는 도시체계와 절제된 건축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건축에서 지향하여야 할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결론에 임하고자 한다.
1. 인본주의에서 탈 인본주의로(인간적 메커니즘에서 자연적 메커니즘으로)
2. 결정론적 공간에서 비 결정성 공간으로
3. 편리함 보다는 유용한 불편함으로
4. 기능의 공간조직에서 시간체계의 공간 개념으로
5. 빠른 시스템에서 느린 시스템으로
6. 직선적 선형 체계에서 순환론적 체계로
7. 내부공간의 축소와 외부공간의 확대로
첫댓글 편리함보다 유용한 불편함.....? 새로운것을 접하는 계기가 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