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머리말
외과의사 하면 수술복을 입고 메스를 든 장면을 연상하듯이 정신과의사 하면 환자와 마주 앉아
대화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정신질환은 마음의 병으로 알려진 만큼 대화를 통해
치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실제로 정신과 치료는 환자와의 면담에서 시작되어 면담으로 끝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대의학에서 정신과 치료는 환자와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대화를 통한 치료만을 고집하는 것이 반드시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최근 뇌과학 및 정신약물학이 발전함에 따라 좀더 쉽고 빠르게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약제들이 계속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2. 정신질환이란 무엇인가
정신질환이란 정서나 사고 등 정신적 상태의 변화로 본인 또는 주위 사람들이 불편함을 겪거나
역할 수행의 기능장애를 초래하는 경우를 말한다.
정신질환은 크게 현실 판단력의 손상여부에 따라 불안장애, 가벼운 우울증과 같은 신경증과 조울병,
심한 우울증, 정신분열병과 같은 정신증으로 나누어진다. 현실 판단력장애란 망상이나 환청을
동반한 경우와 같이 주관적 체험과 객관적 외부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하며 현실 판단력
장애를 보일 때 정신증이라 부르게 된다.
일반적으로 신경증의 경우는 불편함을 겪지만 그런대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며 지낼 수 있으며
정신증의 경우는 사회적 기능의 현저한 장애를 초래한다. 가벼운 신경증의 경우 대화를 통한 치료로
족할수도 있으나 증상이 심한 신경증과 정신증의 경우는 약물치료가 주된 역할을 하며 보다
효과적이다.
3. 마음의 병인가 뇌의 병인가
정신질환은 흔히 마음의 상처를 받아서 생기는 병, 즉 심리적 원인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정신질환의 원인은 단순히 심리적인 이유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동일한 환경에서 유사한
심리적 어려움을 격는다하여 모든 사람이 발병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유전적 요인이 증상으로
발현되는 데에는 세포수준에서 여러가지 심리적 요인이 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모든 정신
현상은 뇌활동의 산물로 볼 수 있으며 뇌의 신경생화학적 또는 생리적 기능의 미묘한 변화가
증상발현을 매개할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현대 정신의학에서 모든 정신질환은 단순히 심리적인
현상만은 아니며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상호작용 결과 뇌기능의 미묘한 변화가 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4. 정신치료
정신질환의 원인이 심리적 요인과 뇌기능의 변화와 같은 생물학적 요인 모두 관련되어 있다면
치료 역시 두 가지 요인 모두를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서두에 언급하였듯이 정신질환의 고전적
치료기법은 정신치료라 할 수 있다. 이는 대화를 통한 치료기법으로 이론적 할파나 배경에 따라
접근방식에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증상조절보다는 증상의 기저에 깔린 마음의 근원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인격의 성숙을 통해 증상을 자연스럽게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 치료 목표이다.
따라서 자신이 내면을 이해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치료과정이 부담스럽고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환자의 상태나 치료동기를 감안하여 근원적 문제를 캐기보다는
드러난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제한된 치료를 시행하기도 한다. 분석적 치료에 비해 보다 현실적이고
치료기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역시 치료과정에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게 된다.
정신분석학적 접근방법 외에 인지학습이론에 기반을 둔 인지행동 요법도 있다. 분석적 치료에서는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과거 어린 시절의 경험을 중요시하는데 반해 인지행동치료에서는 무의식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잘못된 생각이나 학습결돠 증상이 발생 되었다고 보고 이를 다루어
나간다. 분석치료보다는 좀더 당면한 문제와 증상조설을 치료목표로 하며 가벼운 우울증이나
강박증과 같은 불안증상을 경감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심한 우울증이나 정신병의 경우에는
이러한 치료를 적용하기도 어렵거니와 그 효과 또한 의문시되며 상담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다.
5. 약물치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한 술을 마신 뒤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마약 사용자들의 말에 따르면 아무런 걱정이 없어지거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러나 술과 마약은 의존성이 강하여 중독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뇌를 포함하여 여러 신체부위에
손상을 가져오며 인격의 변화가 오게 되는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따르게 되어 사회활동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러한 부작용이 없이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약은
없을까?
가. 마음을 편하게 하는 약
항불안제는 뇌의 벤조디아제핀 수용제에 작용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약제로 바리움,
리브리움, 아티반, 자낙스 등의 약제가 여기에 속한다. 항불안제는 각종 불안장애뿐 아니라
신경성 위장병과 같은 스트레스와 연관된 질환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항불안제는 꿈을 줄이고 잠을 깊이 잘 수 있게 해주어 수면제로도 사용된다. 사용초기에 주간에
졸리움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이는 계속 복용하여 약에 적응이 되면 점차 감소하게 된다.
불안초조증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차라리 죽겠다고 하는 사람이 항불안제를 복용하면
수 시간 이내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살 것 같다고 한다. 약의 신속하게 나타나는 항불안 효과는
환자들이 기대하는 것 이상이며 왜 진작 약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약의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많은 환자들은 언제까지 약을 복용해야 하는지 혹시
약에 중독 되는 것은 아닌지 다른 부작용은 없는지 우려한다.
또한 스스로 극복해야할 마음의 문제를 약으로 해결 하는 것에대해 자신의 의지가 약한 것은
아닌가 하고 죄책감을 갖기도 한다. 약의 사용기간은 증상유형 및 정도가 개인의 스트레스 대처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데 보통 수 주일에서 수 개월 가량 투여 하게 된다. 그러나 만성적인 심한 불안증상을
호소하는 경우에는 수 년 이상 사용할 수 있다. 항불안제는 약간의 의존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 정도가 마약처럼 심한 것은 아니며 장기 복용 시에도 매우 안전한 약제이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임을 생각할 때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항불안제의 도움을 받고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질적으로 보다 나은 삶이 될 수 있다. 항불안제는 스트레스가 인체에 주는 유해한 작용을 차단해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의존성이나 주간 졸림 없이 불안증상 또는 스트레스증상만 경감
시킬수 있는 항불안제를 개발하는 것이 정신의학자 및 제약업계의 과제로 남아 있다.
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약
항우울제는 글자 그대로 우울한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약제이다. 기분이 우울하고 의욕이
저하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오로지 비관적인 생각만을 하던 사람이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의욕과
표정이 되살아 나는 것을 보기 전에는 단순히 항우울제를 투여한 것만으로 사람이 그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항우울제는 다양한 우울증상에 효과를 나타내는 데 기분을 좋아지게
할뿐만 아니라 만사 귀찮아하고 게을러진 사람을 의욕적인 사람으로 변화시키며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던 근심걱정에서 헤어나게 해주며 둔화된 생각과 감퇴된 기억력도 개선시켜준다. 항우울제는
우울증 환자의 70%이상에서 뚜렷한 효과가 있다. 아울러 항우울제는 항우울 효과와는 별개로
강박증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치 않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거나 필요 이상으로
반복해서 손을 씻거나 확인하는 등의 강박증상을 나타내는 강박장애환자의 50~80%에서 30~70%
가량의 증상호전을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우울제의 작용기전은 뇌에서 세로토닌 또는
카테콜아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기능을 촉진히켜 항우울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뇌에서 뇌세포의 성장을 촉진 시키는 물질의 유전자 발현도 증가시킴으로써 뇌기능을 보호해
주는 작용도 있으며스트레스에 대한 내성도 증가시키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한가지 문제점은
항우울 효과는 항불안제와는 달리 적어도 일주일 이상 지나야 나타나며 최대효과는 46주 이상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심한 우울증의 겨우 우울증이 회복된 연후에도 우울증 재발을 막기 위해
적어도 3개월 이상 유지할 필요가 있다. 항우울제가 뚜렷한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
환자들이 자신의 이지나 한경의 변화로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생각하며 약물복용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가벼운 우울증의 경우는 상담치료로 족할수 있으나 중증의 경우는 개인의
의지로 증상이 조절될 성격의 것은 아니며 약물치료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란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과거 항우울제는 졸리움, 입마름 등의 부작용이 많고 여러 알을 복용해야하는 등 불편함이
많았으나 최근 10년 사이 ㅅ개된 항우울제들은 부작용 면에서 매우 안전하고 졸리움도 없으며 복용도
하루 한 알 내지 두 알로 매우 간편하다. 대표적인 약제로 프로작, 졸리프트, 세록삿(팍실) 등을 들 수
있는데 미국에서는 프로작이란 단어는 일반인들 사이에도 널리 알려져 있는 정도다. 항우울제는
항불안제와 달리 의존성도 없어 중독될 우려가 없어 현재 미국을 비롯 세계 여러 나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다. 생각을 정리해주는 약
정신분열병을 앓으면서 노벨상을 수상한 수학자의 일생을 다룬 뷰티풀 마인드란 영화를 보면
망상이나 환청과 같은 비현실적 체험이 현실적응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영화에서 보듯이 이러한 비현실적 체험은 환자자신의 의지나 성격과는 무관한 것이며 귀신이나
조상 탓은 더욱더 아니다. 현재 여러 연구결과를 종합해 볼 때 망상이나 환청은 뇌의 정보처리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마치 고장난 컴퓨터 화면에 사용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력한 것과 무관한 엉뚱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과 유사하다.
뇌에서 정보처리 과정의 오류는 도파민, 글루타메이트 등의 신경전달물질과 관련된 신경생화학적
기능의 변화에 따르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며 이러한 변화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항정신병 약물은 뇌에서 신경전달 물질의 기능을
바로 잡아 줌으로써 뇌의 정보처리 과정을 원할하게 하며 오류를 줄여준다고 볼수 있다. 즉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진 생각을 정리해 주는 약이라고 할수 있다.
과거 항정신성 약물은 얼굴의 표정을 없애고 동작을 둔하게 하여 행동거지만 보아도 어딘가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지게끔 하였다. 또한 장기간 복용할 경우 얼굴과 몸의 일부가 저절로 실룩거리거나
떨리는 등의 보기에도 난처한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부작용 때문에 많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리스페리돈, 올란자핀(자이프렉사),
케타아핀(세러켈) 등이 대표적인 새로운 항정신병 약물로 정신분열증의 우선적인 치려제로 사용되고
있으며 초발환자의 약 70% 이상에서 3~4개월 이내에 정신병적 증상의 완전 회복을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망상과 환청 같은 양성증상뿐만 아니라 생각이 단순해지고 주의 자극에 감정적 반응이 없으며
만사에 무관심해지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음성증상과 우울 증상에도 기존의 약제보다 우월한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잇다. 이들 새로운 항정신병 약물은 급성기 증상에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증상의 재발을 방지해주는 효고가 있으며 사회적응을 도와주고 궁극적으로 삶의
질을 개선 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약30% 가량의 환자에서는 약의 반응이 충분치 않다는
문제가 있으며 약물을 중단할 경우 회복된 환자의 70%가 5년 이내에 재발을 경험하게 되어 장기간
약물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새로운 항정신병 약물은 장기복용할 경우에도 기존의 항정신병
약물과는 달리 동작이 둔해지거나 몸의 일부가 저절로 움직이는 등의 신경학적 부작용의 발현
빈도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또한 기존의 항정신병 약물을 복용할 경우 사고가
둔해진다는 호소를 자주 하는데 비해 새로운 항정신병 약물은 주의력이나 기억력에 지장이 없거나
오히려 개선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망상과 같은 ㅂㄹ필요한 생각은 줄여주고 하고자 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기억하는 것을 도와준다고 볼수 있다. 이들 새로운 항정신병 약물은
정신분열병뿐 아니라 기분이 들뜨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행동이 과다해지는 조증과 우울증에 동반된
망상 및 환청, 치매환자의 망상, 뇌 손상 환자의 정신병적 증상에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정신분열병을 포함한 정신병에서 이상한 생각과 환청등을 없애는 데 약물치료가 매우 중요한 열할을
하지만 항정신병약물이 사회적 상황판단력 및 대처능력 자체를 개선시키는 지에 대해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하다. 향후 치료에 대한 반응이 충분하지 않은 환자군과 음성증상에 보다 효과적이며
사회적 인지기능을 개선시키고 일부 새로운 항정신병 약제에 문제가 되고 있는 체중증가와 같은
부작용이 개선된 보다 나은 약제가 개발되기를 기대한다.
6.맺음말
정신질환의 원인이 심리적 요인과 뇌 기능의 변화와 같은 생물학적 요인 모두가 관여한다면
치료 역시 심리적 접근과 약물치료 두 가지 모두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신치료와
약물치료는 언뜻 보아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나 사실 분자생물학적 수준에서 본다면 모두가
뇌세포 또는 유전자 수준에서 치료적 변화를 가져옴으로써 그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치료기 전은 동일하다고 할수 있으며 다만 뇌에 변화를 가져오는 방법이 하나는 심리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약물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정신치료와 약물치료는 치료의 효과 또는
효율성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대부분 받아드려지는 사실이다. 증상의 소실 또는 완화보다는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통찰하고 인격의 성숙을 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심도 있는 정신치료가
바람직하다. 또한 가벼운 신경증의 겨우 제한된 시간의 지지적 정신치료로 족할 수 있으며 사례에
따라서는 인지행동요법이 증상완화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짧은 시간에 증상의
소실을 원하는 경우는 약물치료가 가장 효과적이다.
정신병과 중등도 이상의 우울증 및 심한 불안장애의 경우 정신치료보다는 약물치료가 보다 간편하고
빠를 뿐 아니라 반드시 시행되어야 할 치료이다. 이 경우 약물치료가 증상조절 및 재발방지에 가장
중요한 역활을 하게 된다. 약물치료는 많은 경우에 기대이상으로 효과적이며 자기 투여할때에도
안전한 치료이다. 앞으로 뇌 과학 및 정신 약물학의 발전과 더불어 효능과 부작용 면에서 개선된
새로운 약제들이 계속 개발되어 나올 예정이다. 따라서 다양한 정신질환을 보다 편리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한 치료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적절한 약물치료를 시행하거나 이를
병행할 수 있는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학자 114인이 내다보는 의학의 미래 삶이 달라지고 있다'에 수록된 내용을 아산병원에서 펴낸소책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