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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성령과 종말론
종말론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12년에 게르할더스 보스의 논문에서 종말론에 있어서 성령의 역할을 소개하면서부터다.
1.구약에서는 성령이 최소한 세 가지 방법으로 종말론과 연결되어 있다.
⑴구약은 말하기를 성령은 어떤 예언적 징표들을 수반하는 최종적 종말론적 세대가 도래할 것에 대한 길을 예비할 것이라고 한다. 요엘 선지자는 성령의 강림사건이 다니순히 그가 “그후에”라고 부르는 그 어느 한 때에 일어날 것으로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오순절 설교 중에 “그 후에”라는 말을 “이 마지막 날들에(말세, 행2:17)”로 부르고 있다. 성령강림 사건이 말세의 도래를 알리는 위대한 사건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⑵성령은 장차 오실 구속자 위에 강림하며 그에게 필요한 은사들을 채워주실 분으로 구약은 말하고 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11:1,2). 성령은 메시야의 삶 속에 영원히 그리고 중요하게 활동하시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⑶성령은 물질적 축복들과 윤리적 재생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미래적 새 생활의 근원이 된다는 것이 구약의 가르침이다.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사44:2,3).
복음서들에서 예수님은 성령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일에 여러 모로 연관이 되어 있음을 말씀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누가복음 4:17~19절에서 예수님은 이사야 61장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구에 응하였느니라”(눅4:21)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자기가 주의 영이 임할 바로 그 메시야이며,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시킬 분이라고 말씀하신다.
복음서에는 네 개의 구절이 예수님은 물로 세례를 주었고 세례 요한과는 달리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마3:11, 막1:8, 눅3:6, 요1:33). 이상의 구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 위에 성령을 부여하실 능력을 소유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사도행전 1:6에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사건이 곧 일어날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오순절에 “성령의 쏟아부으심”된 사건이 있었다. 동시에 이 사건은 위대한 종말론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2장에서 “성령의 부으심”사건을 진술하고 있다. 요엘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으며, 이 예언이 지금 성취되고 있으며 따라서 “마지막 날들(말세에)”이 지금 시작되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행2:16,17). 성령께서 그 충만한 가운데 교회 안에 임재하게 되었다는 “종말론적 새 시대”의 막을 올리는 것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진다.
바울도 구약 예언과 조화를 이루면서 성령을 특별히 종말론적 선물이며, 새 세대의 계시자로 보고 있다. 골로새서 1:13에서 바울은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말한다. 바울에 따르자면 성령은 우리를 새로운 존재 양식 속으로 이끄신다고 말한다. 게르할더스 보스는 바울에게 있어서 독특한 점은 그가 성령의 사역의 우주적 보편성을 이해하고 있는 점이라고 말한다. 성령은 모든 각 개인 신자들 안에 지금 거주하고 있고 동시에 그들의 종교적, 윤리적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점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과 종말론의 연관 관계성에 관하여 보스는 “성령의 내주는 장차 올 세상 속에서 어떠한 존재로 어떠한 삶을 영위할 것인가 하는 양식을 특징 지워주고 있다. 따라서 이렇게 기대하고 예기하는 형식으로 장차 올 세계는 지금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이란 미래가 현재 속으로 돌파하여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미래 세대의 능력들과 특권들, 그리고 축복들이 이미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하여 구속된 미래의 능력이 성령이라는 인격을 통하여 현재에 발휘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미래의 세대와 연관이 있는 새 존재 양식 속에 참여자가 된다는 것이며, 또한 “장차 올 세대의 능력들”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성령이 지금 주어지는 것은 더욱 더 큰 축복들을 우선적으로 약간 맛을 보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한다. 바울은 성령을 현세의 축복들보다 훨씬 능가할 미래의 축복들에 대한 “첫 열매들,” 혹은 “증표”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서 성령의 시대(오순절로부터 재림 때까지)란 일종의 중간적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세대에 신자들은 ‘이미’ 장차 올 세대의 축복들을 향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동시에 그들은 ‘아직’ 그 축복들을 충만히 소유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2.성령의 종말론적 역할과 연관이 있는 몇몇 구체적인 성경의 개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⑴양자됨이다. 바울은 양자됨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갈라디아서 4:4~5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자녀로 입양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성령의 역할이란 성령이 신자들의 마음속에서 “아빠! 아버지”라 부름으로써 신자들의 하나님의 양자됨을 확인하시는 분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하나님은 참으로 그들의 아버지시며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신자들에게 확인시켜 주시는 분이 성령이시다.
롬8:14~16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자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양자의 영”의 “영”은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성령은 우리의 양자됨과 연관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양자됨을 증거하시는 분이기도 하다.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갈라디아서 4:6에서는 “아버지”라고 부르는 주체가 “신자들”인 반면에, 로마서 8:16에서는 “양자의 영”이다. 성령의 역할은 신자들의 영들과 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확증하는 것이다.
바울은 성령이 신자들에게 확신시키는 그 양자됨에는 종말론적 차원들이 있음을 주지시키고 있다. 로마서 8:19~23에서 “피조물 뿐 아니라 또한 우리 자신들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며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몸의 구속이라는 것은 우리 육체가 대부활 때에 모든 육체적, 지상적 제한성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래서 “양자될 것”은 앞으로 일이며 동시에 우리가 고대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양자됨을 증거하심에 있어서 성령은 우리가 이미 얻은 측면과 아직 얻지 못한 측면 모두에 대해서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고 계신다. “풍성한 양자됨은 아직도 소망의 대상이다.” 양자됨에 관한 한 현재의 성령의 활동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성령의 완성된 사역은 아직도 미래에 놓여 있다.
몰마서 8:17과 갈라디아서 4:7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후사들로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들이 되었다고 하는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장차 받을 기업 역시 성경 여러 곳에서 미래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고전6:9, 갈5:21, 엡1:14, 18, 골3:24, 딛3:7).
양자됨과 관련하여 성령이 하시는 역할이란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후사들인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켜 주는 일이며, 동시에 이러한 양자됨의 풍성한 부가 예수님의 재림 전에서 나타낸 바가 되지 아니할 것도 우리에게 주지시키신다.
⑵첫 열매이다. 이 단어가 성령께 적용되고 있는 곳이 한 군데 있는데 롬8:23이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첫 열매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들판의 첫 소작물들이나 가축의 첫 것들로서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들이었다(신18:4, 26:2, 느10:35~37). 그러므로 첫 열매란 추수 때의 시작을 상징한다. 로마서 8:23에서 성령의 첫 열매는 추수의 시작으로 묘사되고 있다.
구약 시대에 첫 열매들이란 장차 올 대 추수의 첫 시작을 암시했듯이 신자들이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장차 다가올 더 좋은 것들의 첫맛을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현재 우리가 성령의 첫 열매로서 갖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장차 어느 날엔가 풍성한 추수를 우리가 거두어들일 날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준다.
⑶성령은 우리가 장차 얻게 될 축복들을 확신시켜 주는 우리의 보증자를 들 수 있다. 고린도후서 1:22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예만 되는 하나님의 약속들이 장차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증하시는 분으로 성령이 우리에게 주어지신 바 되었다고 한다. 에베소서 1:14에서도 성령은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전해주고 있다. 이 기업이란 실상 미래의 영광을 의미하고 있다. “보증하는 예치금”으로 묘사되고 있다. 신자들이 지금 현재 소유하고 있는 성령은 신자들의 구원의 미래적 완성에 대한 보증이며 약정이시다. 성령을 첫 열매로 지칭하는 그 의미는 현재의 영적 즐거움이 잠정적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오스카 쿨만은 “성령의 첫 열매로 보증으로 부르는 것은 성령께서 이미 현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미래의 한 조각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는 증거이다.” 게르할더스 보스는 “성령은 이 중요한 보증의 중요성을 갖고 있는데 이유는 성령께서 장차 후에 얻어지게 될 것을 우선 첫 번째로 잠정적으로 세우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 성령은 미래의 삶에 특별히 연관을 맺고 있으면서도 이생의 근본적인 구성을 형성하고 있따. 따라서 성령의 현재적 소유는 기대라는 빛 아래서 이해되어야 한다.”
⑷성령은 인으로도 불린다. 신자들이 성령의로 인치심을 받았다는 구절이 신약에 세 번 기록되어 있다(고후1:22, 엡1:13, 엡4:30). 성령으로 인치심을 얻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는 표시이다.
고린도후서 1:22에 하나님께서 인치셨다는 사상은 자기의 약속들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상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에베소서 1:13에 “그 안에서 너희도 …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여기에서도 성령으로 인치심을 얻은 사상과 성령은 우리의 보증이란 사상과는 서로 평행을 이루고 있다. 성령의 인치심을 얻었따는 것은 하나님께 속했다는 의미도 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계속해서 보호하시고 우리의 구원을 최종적으로 완성시켜 주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에베소서 4:30은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이것은 신자들이 구속의 날에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치심이란 미래에 대한 안전을 내포하는데, 즉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기업을 최종적으로 얻게 될 것이라는 확실성을 의미한다.
⑸신약성경이 어떻게 성령을 육체의 부활과 연관을 맺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성령은 그리스도의 부활사건과 신자들의 부활사건에 능동적으로 활동하게 계시다고 종종 말해져 왔다.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관계를 가장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성경은 로마서 1:3~4이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첫째 , …에서 나셨고와 선포되셨으니가 서로 댓구를 이루고 있다. “…에서 나셨다.”는 구절은 그리스도가 부활하시기 전에 살으셨던 그리스도의 육신의 생존기간을 의미하며, 육신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그의 지상생활을 가리킨다. 반면에 “…로 선포되셨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후의 상태를 지칭하는 말로써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선언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둘째 육신으로는 이란 어구와 성결의 영으로는 이라는 어구는 그리스도의 부활전의 그리스도의 존재 방식을 “육신으로는”이란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고, 부활 후의 그리스도의 존재방식을 “성경으로 영으로는”이란 말로 표현하고 있다. 바울은 도저히 한 차원에서는 함께 설 수 없는 서로 다른 그리스도의 존재 양식을 서로 구별시키고 있다. 육신은 부활사건 전에 그리스도가 존재하게 되었던 도구였다. 이제 성령께서 주님으로서 그리스도의 품격을 나타내는 도구이며 양식이며 방식이다.
셋째 다윗의 혈통에서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이다. 그리스도가 처음에 가지셨던 존재방식은 “다윗의 혈통에서”였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후기 존재방식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이다. “부활은, 그러므로 바울에 의하면 독특한 초자연적 능력을 소유하고 행사할 수 있는 새로운 상태의 아들 되심의 국면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부활에 능동적으로 활동하셨다는 내용이 로마서 8:11에 암시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그리스도를 살리신 바로 그분이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신자들을 살리시리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리심을 받았다면 성령께서도 역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셨다고 주청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성령은 장차 어느 날에 우리의 육체들의 그리스도가 이미 들어가신 그 영화로운 존재를 함께 얻기 위해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킴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보증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그의 존재의 밑바탕에 깔고 있다. 더욱이 예수님과 신자들과 유사관계성을 논하면서 다음과 같은 관찰을 하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행하셨던 이 일을 담당하신 그 도구가 이미 바울 서신의 독자들 속에 임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령께서 부활사건에 도구적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사상이 이처럼 평이하게 내포되고 있다.”
신자들의 부활에 성령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린도전서 15:42~44에 더욱 밝히 드러나 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육체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노라.” 신령한 몸이란 비물질화된 몸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의 지배하에 온전히 높여 있는 육체를 의미한다.
성령은 육체의 부활을 가능케 하는 능동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부활이 일어난 후에 그 부활의 육체를 지탱하고 인도해 주시는 일을 담당한다. 고린도후서 3:18에서 성령이 이미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면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하는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 점진적인 변화 내지는 새롭게 됨은 육체의 부활을 바라보는 일종의 기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성령은 현재의 육체와 미래의 부활육체를 연결시켜 주고 있다.
“성령은 사람 속에서 일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사람됨을 새롭게 하신다. 그러나, 현재의 육체와 부활의 육체 사이의 연속성의 비밀은 인간 그 ‘존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다. 죽을 인생이 어느 날 죽지 않는 것으로 덧입혀질 것이라는 신념은 깊은 기저에는 바로 이러한 사상이 깊이 담겨져 있다. 우리를 준비시키고 있는 분은 곧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다(고후5:5). 이러한 의미에서, 신자들의 현세의 삶 속에서 신자들 속에 계시는 성령의 새롭게 하심과 사역은 육체의 부활의 시작으로 이해되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성령을 소유함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은 장차 올 세대의 축복들을 우선적으로 맛보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육체의 부활에 대한 담보와 보증은 성령을 소유함으로써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첫 열매를 가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축복들을 풍성히 향유하는 그때, 곧 하나님의 왕국의 최종적 완성의 때를 갈망하고 바라다 보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