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산행] 문경 주흘산 (主屹山·1,106m) 글·사진 민병준 르포라이터/ 2007.05 / 월간산
옛 나그네 마음도 사로잡은 문경의 진산
▲ 주흘산 곡충골에서 만난 야생화들. 왼쪽부터 현호색, 숲개별꽃, 산괴불주머니. 온갖 야생화가 만발한 곡충골 주흘산은 특히 가을에 인기 있다. 오색 단풍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또 한여름에는 시원하고 맑은 계류가 있어 더위를 식히기엔 더없이 좋다. 겨울 설경도 제법 인정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온갖 야생화가 다투어 피어나고 연둣빛 신록으로 물들어가는 봄 산을 어찌 빼놓을 수 있을까. 주흘산은 해발이 1,000m가 넘으니 찻사발축제가 펼쳐지는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 사이는 그야말로 신록의 잔치로 황홀한 수채화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주흘산은 문경새재 도립공원 구역 안에 있다. 그래서 산행하게 되면 자연스레 문경새재 고갯길을 거닐게 된다. 주흘산 산행에 문경새재 고갯길 산책까지 겸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인 셈이다. 가능하면 산행을 일찍 시작해 문경새재를 구경할 시간도 갖는 게 좋다.
▲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여궁폭포.
매표소를 통과해 널찍한 길을 500m 정도 걸으면 조령 제1관문인 주흘관이 반긴다. 성문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길이 나타나는데, 이 길은 곡충골(穀蟲谷) 계류를 끼고 여궁폭포와 혜국사, 대궐터를 지나 주흘산 주봉으로 이어진다. 곡충골로 들어서는 순간 문득 고요해진다. 문경새재 큰길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숲은 조금 습한 느낌이 들었으나 그 덕분인지 봄꽃이 참 많다. 진달래, 제비꽃, 양지꽃 등이 산길을 걷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이래서 늦봄 산행은 언제나 즐겁다. 폐쇄된 산장을 지나고 계류를 건너자 너덜 때문에 산길이 조금 거칠어진다. 이어 골짜기가 좁혀들고 음습해지더니 물소리가 요란하다. 높이 20m쯤 되는 시커먼 바위절벽 한가운데 세로로 갈라진 틈을 타고 흰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여심(女心)폭포라고도 불리는 여궁(女宮)폭포다. 하늘에서 일곱 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욕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아마도 사람 발이 잘 닿지 않는 깊숙한 곳에 있어 이런 이름과 전설이 유래했는가 보다.
▲ 문경 새재 입구의 장승들.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산길은 폭포 아래의 나무다리를 건너서 폭포가 걸린 암벽을 왼쪽으로 에돌아 올라간다. 폭포수 쏟아지는 소리가 멀어질 무렵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반긴다. 계류가 눈에 띄게 줄어 들어드니 문득 혜국사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혜를 입었다는 절집이다. 높은 계단 위에 자리한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 잠깐 뵙고 다시 길을 나선다. 산길은 혜국사 100m 아래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흙으로 덮인 산길은 부드럽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힐 무렵 공민왕이 머물렀다는 대궐터에 닿는다. 한쪽엔 맛있는 물이 흐르는 샘이 있다. 물을 받으려다 보니 샘터 돌확에 누군가 ‘주흘산 백 번 오르니 이 아니 즐거우랴’라는 글귀를 새겨놓았다. 돌아보면 나뭇가지 너머로 새하얀 바위벽을 자랑하는 조령산이 우뚝하다. 정말 좋다. 이곳으로 몸을 피신한 공민왕은 고달팠겠지만, 등산객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다. 꿀맛 같은 샘물도 흐르고, 널찍한 공터도 있어 여러 식구들이 왔을 때 간식 먹어가며 쉬어가기에 더 없이 좋다.
주봉에서 영봉으로 가는 길은 오르내림이 별로 없어 그다지 힘들지 않다. 영봉 50m 전에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조곡골로 내려서는 길이고, 오른쪽이 영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영봉에 오른 후 제2관문이 있는 조곡골로 내려서려면 다시 이곳으로 내려와야 한다. 영봉에는 돌탑이 있고, 주흘산이라고 적힌 사각 기둥도 있으나 아무래도 주봉보다는 권위가 없어 보였다.
꽃밭서들 돌탑에 소박한 소망을 얹고 오염원이 전혀 없어 그냥 마셔도 괜찮을 듯한 맑은 계류에 땀을 씻어낸 후 다시 길을 나선다. 조곡골 본류를 건너면 평탄한 산길이 계류를 오른쪽에 끼고 이어진다. 10분쯤 걸으면 왼쪽으로 너덜지대인 꽃밭서들이다. 너덜로 가득 찬 산사면에는 소박한 소망을 담은 아담한 돌탑들이 그득하다. 조령산 암봉이 맑은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다. 꽃밭서들을 지난 후 길은 수레가 다닐 만큼 넓어진다. 여기서는 급하게 서둘지 않아도 30분이면 제2관문인 조곡관에 닿는다. 문경새재 고갯길과 만난 것이다. 이제 본격 산행이 끝났다고 잰걸음으로 주차장으로 향할 수도 있겠지만, 가능한 여유를 가지고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문경새재를 즐겨보자.
1970년대 중반에 새재의 유적지를 복원하자 사람들은 조선시대에 한반도의 대표 고개로 명성을 날렸던 문경새재의 실체를 확인하려 찾아들기 시작했다. 문경새재의 참맛은 고갯길을 걷는 데 있다. 1970년대 중반에 복원할 때 도로를 비포장으로 남겨두었기 때문에 운치가 한껏 넘친다. 제1관문인 주흘관, 제2관문인 조곡관, 제3관문인 조령관, 그리고 경상감사가 직인을 주고받았던 교구정터, 객사가 있던 조령원터 등을 살펴보며 걷는 맛은 최고다. 한글 고어로 쓰인 ‘산불됴심비’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편, 주흘산 오르기 전후에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문경새재 매표소 앞에 있는 문경새재박물관(054-572-4000 www.mgsj.go.kr). 새재를 끼고 있는 문경은 영남지방과 충청지방의 교류지였고, 영남과 중앙을 잇는 주요 연결로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문화적, 지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고을이다. 박물관엔 이런 역사적 특수성을 살린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입장료는 어른 2,100원, 어린이 750원. 주차료 2,000원. 관리사무소 전화 054-571-0709.
주흘산은 산길이 조금 거칠지만 추락 위험이 있을 정도로 가파르거나 위험한 구간은 없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면 무난히 다녀올 수 있다. 만약 일행 중 초교 저학년 어린이가 있다면 영봉은 들르지 않는 게 좋다. 영봉에서 내려서는 서릉이 인적이 적어 조금 거칠고 가파르기 때문이다. 회귀산행지로서 최적의 대상지인 주흘산은 연중 개방되어 있으나 건조주의보가 발령되면 입산을 통제하므로 출발 전에 미리 문경새재 도립공원으로 전화로 문의해 보아야 한다. 조곡골과 곡충골은 폭우가 내리면 위험하므로 입산하지 않는 게 좋다. 식수를 구할 수 있는 곳은 혜국사, 대궐터, 조곡골 상류 등이다. 계류는 맑고 깨끗해 식수로 가능하므로 식수의 부담은 없는 편이다.
[별 미] 묵조밥은 도토리묵과 조밥을 곁들여 조밥으로 쌈을 싸며 묵을 반찬으로 먹기도 하지만, 보통 조밥과 묵을 함께 비벼서 먹는다. 미나리, 절인 오이, 표고버섯 등의 야채에 고추장을 넣으면 개운하다. 물김치, 된장찌개를 비롯해 고사리, 연근, 도라지, 참비름나물 등 밥상에 올라오는 10여 가지 반찬도 깔끔하다. 도토리묵조밥 6,000원, 청포묵조밥 8,000원. 전화 054-572-2255.
장인의 혼을 부르는 ‘다시 피는 천년의 불꽃’ 우리나라 최고의 산악 고을인 문경은 우리나라 최고의 도자기 고을이기도 하다. 경기도 광주·이천 등에서 고급 도자기를 굽던 관요와 달리, 이곳에서는 소박한 멋을 담고 있는 막사발류의 생활자기를 굽던 민요가 많이 생산되었다. 이렇게 해서 발전된 문경의 찻사발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명품의 반열에 올랐다.
이외에도 연예인이 만든 도자기 부스, 참가국이 3개국 늘어난 찻사발 국제교류전, 찻사발공모대전, 전통도자기 명장전, 문경도자기 명품전, 사진으로 보는 문경의 도자 100년사 등 다양한 전시도 눈을 즐겁게 한다. 또 전통민속관체험관에선 유기장 이봉주 , 한지장 김삼식, 자수장 김시인, 호산춘 권숙자 등이 시연하는 문경의 무형문화재도 감상할 수 있다.
▲ 우리나라 전통 가마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문경읍 관음리의 망댕이 가마.
이번 찻사발축제의 메인 장소인 도자기전시관은 전통 찻사발이라는 독특한 자기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찻사발 관련 도자기의 역사도 살펴보고 국내 도자기 명장이 만든 찻사발도 감상할 수 있다. 개장시간은 09:00~18:00, 동절기(11~2월) 09:00~17:00. 매주 월요일 휴관. 주차료와 입장료는 무료. 전화 054-572-0296.
▲ 고모산성에서 바라본 진남교반.
한편, 축제에 참가한 후에는 자연스럽게 문경새재 산책으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문경새재는 주흘산 산행을 하면서도 즐길 수 있으니 여기서는 문경 주변의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소개한다. 문경읍에서 3번 국도를 타고 점촌(문경시) 방향으로 10분쯤 달리면 진남교반(鎭南橋畔)이 나타난다. 문경새재를 적시고 흘러온 조령천이 영강에 몸을 섞는 이 일대는 높다란 바위벼랑과 물줄기가 어우러진 풍광이 빼어나다. 강 위로는 가은선 철도, 그리고 3번 국도의 구교와 신교가 나란히 놓여 있어 ‘자연과 인공의 절묘한 조화’라는 평을 듣고 있다. 진남교반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는 강가 벼랑에 세워진 고모산성. 삼국시대 처음 세워진 이 산성은 임진왜란 때엔 영남대로를 따라 한양으로 진격하던 왜군의 주력부대를 군사 한 명 없이 만 하루 동안 진격을 지연시켰을 정도로 험준한 철옹성이다. 진남교반 주차장에서 성을 향하다 오른쪽 성벽 아래로 100m쯤 들어가면 흔히 ‘토끼비리’라 불리는 토천(兎遷)이 나온다. 영강 비탈면에 아슬아슬하게 나있는 이 길은 조선시대에 한양과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 중에서 가장 험한 구간이었다. 고려 왕건이 견훤에게 쫓길 때 토끼 한 마리가 벼랑을 따라가는 것을 보고 길을 찾아냈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길손들의 발길에 바닥이 닳고 닳아 반들반들해졌다.
▲ (왼쪽) 전통가마에서 구워낸 도자기를 살펴보고 있는 여성. (오른쪽) 찻사밭축제에 참가한 최불암 씨가 도자기에 손수 그림을 그리고 있다.
토천에서 되돌아나와 복원된 진남관의 문루를 통과해 성벽에 올라서면 절벽을 휘돌아 가는 영강 물줄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성안엔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이었던 예천 삼강나루의 주막과 문경 영순 주막을 복원한 초가 두 채가 있다. 주막거리를 지나면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호위하고 있는 성황당이 나타난다. 당집 앞의 불에 탄 느티나무는 가은 출신 의병장인 운강(雲崗) 이강년(李康秊·1858-1908) 선생이 1896년 일본군과 고모산성에서 전투를 벌였을 때의 흔적이다. 성황당 유래에 전하는 전설 한 토막. 옛날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한 선비가 이 고을 처녀와 결혼을 약속했으나 과거에 급제한 뒤 한양의 양반 처녀와 결혼하고 옛일을 잊어버렸다. 세월이 흘러 경상도 관찰사가 돼 이곳을 지나던 선비는 옛 생각이 나서 처녀를 찾았으나 그녀는 이미 목숨을 끊은 뒤였다. 선비는 처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이곳에 성황당을 세웠다고 한다.
봄볕을 만끽할 수 있는 철로자전거 고모산성을 내려오면 철로자전거를 탈 수 있는 가은역으로 가보자. 수십 년 전만 해도 문경은 손꼽히는 탄광도시였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탄광은 쇠퇴하기 시작했고, 1994년 가은의 은성광업소가 마지막으로 문을 닫자 문경의 경제는 급속하게 쇠퇴해 버렸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가은선 철로를 달리는 철로자전거는 문경시에서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내놓은 야심작. 몇 년 사이에 제법 인기를 끌면서 주말이면 가은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1코스(진남역~구랑리역), 2코스(진남역~불정역), 3코스(가은역~먹뱅이(구랑리역) 이렇게 3개 코스가 있다. 모두 왕복 4km로 40~50분쯤 걸린다. 1대(성인 2명, 어린이 2명 기준)에 10,000원. 진남역 전화 054-550-6478. 가은 왕릉리의 석탄박물관도 필수 코스. 폐광된 은성광업소 자리에 조성한 이 박물관은 무연탄을 캐던 광부들의 생활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이다. 실제 갱도를 이용한 230m의 체험로엔 광부의 채탄작업을 재현하고, 갱내 사무실, 갱내 점심식사, 그리고 탄광의 붕괴 순간 등 실감 넘치는 다양한 체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둘러보는 데 1~2시간쯤 걸린다. 어른 1,000원, 학생 500원. 주차는 무료. 전화 054-571-6426, www.coal.go.kr.
[숙식(지역번호 054)] 새재 입구의 소문난식당(572-2255), 새재할매집(571-5600) 등에서 도토리묵조밥을 맛볼 수 있다. 문경온천단지에도 썬모텔(571-0235), 빌리지모텔(572-2428) 등 숙박할 곳이 많다.
문경새재 입구의 문경약돌돼지(571-2020)에서도 맛볼 수 있다. 문경 시내(점촌)의 문경여중 근처에 있는 약돌돼지샤브샤브(556-7192)가 맛있다. 약돌돼지샤브샤브 20,000~30,000원,
[교 통] / 글·사진 민병준 르포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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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길자비 원문보기 글쓴이: 가족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