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智異. 목통을 타고 올라 재 넘어 계곡을 내리니 반은 신선이 되네.
o 일시 : 2004. 8. 중순. 맑음.
o 여정 : 목통골(연동골)~화개재~뱀사골~반선
o 일정 :
11:22 화개면 범왕리 목통마을
11:25-14:15 목통골
14:15-15:10 화개재(중식 및 휴식)
15:10-17:50 뱀사골 산장, 간장소, 제승대, 병풍소, 탁용소 등
관리사무소~주차장
17:50-19:00 휴식 및 뒷풀이
지리산, 설렘의 영산이다.
본격적인 산행을 위한 시작은 늦은 감이 있으나 어느덧 한 손은 접을 수 있는 회수로 접어든다. 7월 중순의 뙤약볕 날씨에 천성산~정족산~대성암~계곡을 다녀온 이후 더위의 기세에 눌러 해거름에 뒷산으로 산보를 하고 승학산을 찾아보나 그래도 아니다.
「날씨 개황, 2004. 8. 1.
동해상을 지나는 태풍[제10호(남테우른)]의 영향을 받겠음. 강원도 영동과 경상남북도 지방은 흐리고 비(강수확률 60~100%)가 오겠고, 서울. 경기도, 강원도 영서 및 충청남북도 지방은 차차 흐려져 오후 또는 밤 한때 비(강수확률 40~60%)가 오겠음」
한반도에 찌든 더위와 가뭄을 한꺼번에 잠재울 것 같은 며칠 전의 예보가 서서히 꼬리를 내리고 있다.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듬뿍 내리면 칠선계곡으로 계획을 잡았으나 근처에 당도하지도 않은 채 변죽만 울리고 실망을 남겼으니 마음을 달래며 기회를 엿보는데 눈이 뻔적 뜨이는 의미 있는 한적한 곳이 있으니 오늘의 산행코스이다.
올 여름 마지막 땀내음의 흔적을 남기고자 산행을 나선다.
하늘에는 높은 구름이 드문드문 떠 있고 스치며 바라보이는 봉우리들에는 허연 구름들이 걸려있는 아주 후덥지근한 날씨이다. 휴게소에서 10여분 발통을 식힌 후 떠나니 어느덧 섬진강을 조우함에 올해 들어 세 번째의 만남이 아닌가?
5월의 야경, 6월의 자욱한 물안개, 그리고 8월의 오늘은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재첩을 채취하는 모습들이 푸른 화폭에 점을 찍은 듯한 풍경들을 만나볼 수 있음이니 얼근하고 시원 달작 한 맛이 선함에 절로 침이 솟는다.
섬진강을 따르는 길옆으로 잘 키운 배나무에는 풍성한 수확을 예감하는 배 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네.
화개장터를 지나 초록을 듬뿍 머금은 벚나무 터널을 따르니 초록의 향기로 시원함을 선사한다. 갈림길목인 신흥에서 왼쪽 칠불사 방면 길로 접어들어 좁은 마을길을 2km쯤 오르니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칠불사로 향하는 우측 길은 버리고 직진으로 1km 남짓의 마을에 당도하니 범왕리 목통마을이다.
조금 오르니 더위를 피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평상에서 무리 지어 쉬고 있다. 아마 이 골짜기에서 여기가 마지막 民家 인듯하다.
제법 넓은 계곡은 가뭄의 연속이나 수량도 괜찮다.
산행 들머리는 다리를 지나면서 열린다.
마을 앞 계곡에는 옛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물레방아가 멈춰 있어 눈길을 끈다.
오지의 마을답게 지름이 2m 훨씬 넘어 보이는 물레방아가 세월의 무게에 눌렸음인지 이끼만을 잔득 머금고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마을의 영욕과 함께 태어나 삶의 애환과 향기를 안은 채 동고동락 정다움을 나누며 속삭이던 竹馬故友들이 하나 둘 그리고 모두가 영원히 떠남에 잘 나가던 옛 영화를 접고 같이 쉬고픈 마음으로 그리움에 젖어 과거를 회상하는 듯 한 모습이다.
여기서 우선 오늘 산행의 지형을 잠간 살펴보기로 한다.
골짜기 안에는 3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연동마을이 있었다하여 연동골이라고도 불리며 지금은 오히려 사람들이 거주하는 목통마을 이름을 따 목통골로 더 알려져 있다.
목통골은 화개재 가는 길목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 물줄기는 화개재를 佐右로 하여 두 봉우리를 타고 이어지는 두 줄기 능선에서 흐른다.
해발 1,360m의 화개재 동쪽으로는 1,533m의 토끼봉 정상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1,550m의 삼도봉이 솟아있다.
토끼봉 정상에서 흘러내린 능선은 칠불사까지 내려와 목통마을에서 꼬리를 감춘다. 칠불사 능선으로 부른다.
삼도봉에서 뻗어 내린 능선은 불무장등(1,446m), 당재를 거쳐 황장산으로 이어진 뒤 화개장터가 있는 탑리까지 내려와 섬진강에 닿는다. 불무장등 능선으로 부른다.
칠불사 능선과 불무장등 능선 사이의 계곡이 목통골이다.
옛날에는 해안과 내륙 산간지방을 잇는 최단거리 역할을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해안의 소금이나 수산물과 내륙의 삼베를 비롯한 농산물을 서로 교역했던 삶의 고갯마루 역할을 한 화개재는 등산로를 따르면 8km의 거리이며 아기자기한 경관으로 자리한다.
이곳에도 지리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일행은 좌측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응원삼아 오솔길로 접어든다.
마을을 지나 계곡을 따라 한동안 가면 우측 산기슭으로 풀밭과 잡목지대로 변해있는 곳을 만난다. 1960년대 중반까지 사람들이 살았던 연동마을 터다. 마을이 사라진 것은 1967년 여름 서해안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9명이 지리산에 들어와 이 일대를 무대로 활약하다 모두 사살된 사건이후 연동마을을 없어지게 했던 것이라 한다.
바람 한점 없이 따갑게 내리쬐는 햇볕을 숲들이 가려줌에도 이내 땀방울이 맺힌다. 비스듬한 오름길을 30여분 오르니 첫 번째 溪流를 건너 땀범벅을 세수로 훔치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곳 주위에 스님 소(沼)가 있다. 칠불사 스님들이 목욕하는 곳 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으로 항상 옥류가 흐르며 싱그러운 분위기가 가히 세속의 때를 씻을 만 하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그야말로 준비에 불과하였음을 단번에 실감나게 한다.
가파른 오름으로 시작되는 울창한 숲 속의 등산로는 계곡을 우측으로 하여 험로를 예고한다. 골짜기의 풋풋함은 사람의 발길이 그리 닺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고 오솔길 좌우로는 산죽이 길 안내를 하고자 나서니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가까이 때로는 멀게 귓전을 파고드는 물소리는 교향곡으로-은은하게-소음으로-시원함으로-평온하게-시시각각 변함으로 들러 옴은 계곡과의 거리와 계류에 따라 달리 느껴짐일 것이고 계곡의 형체는 감으로 볼 수 있으나 흐르는 물의 실체는 볼 수가 없음에 20m 내지 30m 거리를 유지함으로 여겨진다.
계속되는 오름의 연속이지만 대부분이 흙 길로 이어지니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다. 午時의 정점에서 땀을 쏟으며 불무장등 능선에서 조금씩 흘러내리는 지류 몇 개를 지나면서 다리쉼만으로 오르니 제법 넓은 계류를 두 번째로 만난다.
맑은 청정수에 땀방울을 씻어내니 한기를 느낄 만큼 시원하고 오싹하다.
시간 관계상 朝食을 대충 해결하였으니 배고픔은 어느덧 신호를 보내오나 점심을 먹으면 배부름으로 등정에 더욱 어려울 것 같아 조금 더 참기로 하고 간식으로 달랜다.
옛적에 보부상들의 교통로로 이용하였던 곳이라함에 시작부터 그러한 흔적은 전혀 남아있지 않으며 찾아 볼 수 없다.
좌측으로 계곡을 두며 가파른 오름을 30여분 오르니 좌 방향으로 꺾어지고 이내 지류가 나타남에 가로지른다.
주 계곡의 흐름은 여전히 들러오고 한동안 비스듬히 완만한 오름으로 이어진다.
모처럼 가볍게 이어지는 등산로를 편안한 기분으로 걷는데 앞서가던 일행에서 갑자기 앗! 하는 괴성이 들려온다. 나 역시 이내 같은 비명을 지르게 되었으니 따끔함을 느끼는 순간부터 통증으로 나타난다.
느닷없이 당하는 일이라 당황되고 따가움과 아픔이 겹쳐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얼른 장갑을 벗어보니 왼손 중지의 첫마디가 벌겋게 부어오른다.
치아로 물어 독기를 뽑아내고 잇몸에다 비벼보기도 하며 응급처치를 하여본다. 정신을 차려보니 풀쐐기에 쏘인 것이다.
어렸을 적 기억과는 너무 오래된 탓인지 사뭇 다르다.
풀쐐기
풀―쐐기 [명사] : 불나방의 유충.
누에와 비슷한데, 온몸에 거친 털이 빽빽함. 몸빛은 검푸름.
물파스를 바르고 10여분 동안 여진이 계속되더니 사그라진다.
그렇잖아도 배고픔이 엄습하는데 혼쭐에 힘이 쭉 빠지는 기분이다.
행동식으로 응급처방에 그친다.
잠시 휴식 후 일어서는데 허벅지를 타고 주르르 흘러내림에 스타킹을 적신다.
웬 물인가 했더니 쉬는 동안 허리춤에 고여 있던 땀 방물이었다.
등산로는 우측으로 꺾어지며 가파른 각을 세운다.
양옆으로 산죽과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라 등산로는 더욱 좁혀 들고 다리는 제 기능을 다하기에 역부족이니 발이라고 오죽 !@&.
모두들 땀범벅으로 흥건하게 옷은 젖고 한계에 다 달은 듯 힘겨워 한다.
화개재의 쉼터에서 굴 맛 같은 식사시간을 가지려고 녹초가 되고자 함인가?%!
도시락이 왔다 갔다 어른거리니 어찌 할꼬.
거의 직선으로 이어지는 가파름이다.
일상생활에서 오염물질로 찌든 허파에 신선함을 주고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토해낸다. 산죽과 잡목을 부여잡고 오르며 주저앉아 쉬기를 몇 번이나 함인가.
우거진 덩굴 덩이가 가로막으며 키를 넘는다.
덩굴터널을 헤치며 餘力을 다하니 푸른 하늘이 열리고 이내 눈에 익은 영상이 펼쳐진다. 찐~한 땀내음의 흔적을 잔득 남기고 목통골의 정점에 오른다.
화개재이다.(14:15).
그늘이 있는 쉼터로 향하여 배낭을 내리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무게의 영향을 좌우한 포천 쌀 막걸리는 냉동효과를 건재하게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
한 잔을 쭈~~~욱 들이키는 맛!
오뉴월 보리타작에 새참으로 즐겨먹던 그 시절의 막걸리 맛과 별반 다름없네.
한 잔으로도 피로는 녹아내리니 또한 나눔의 즐거움은 추가되지요.
원두막의 정취를 만끽하며 쉬엄쉬엄 느긋하게 점심시간을 갖는다.
무더운 날씨임에도 智異에 애정을 갖고 능선을 타는 사람들은 줄을 잇는다.
- 배낭이 제법 크게 준비된 20代 후반으로 보이는 날렵한 두 명의 女.
- 30代 중반이 됨직한 男과 페인트를 잔뜩 입혀 멋스러움에 취한 듯한 女는 쉬지 않고 토끼봉으로 오른다.
- 40代 초반으로 보이는 父와 초등 6학년의 子.
- 대학생이라며 5명으로 이루어진 혼성 멤버들은 느긋하게 쉬고 있다.
에너지 보충 및 휴식으로 충전이 가득함에 힘이 솟는다.
움직여야 할 시간임에 떠날 채비를 갖추고 주변의 산세들을 쭉 둘러본다.
지리의 주 능선, 토끼봉으로 따르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나 오늘은 아니므로 천고마비의 계절에 넉넉한 시간을 만들어 들리기로 마음을 달래고 뱀사골로 내린다.(15:10).
뱀사골. 〔 지리산의 토끼봉과 삼도봉 사이의 화개재에서 발원하여 반야봉, 명선봉의 울창한 원시림의 물줄기가 어우러져 기암괴석을 감돌아 흐르면서 절경을 일구어 놓아 계곡美 또한 장관이라 계곡의 대명사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며, 「반은 신선이 된다」는 남원시 산내면 반선까지 12㎞, 30리 물줄기의 계곡은 한국의 명수(名水)로 통한다.〕
내림이지만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좌우에는 수줍음을 간직한 야생화들이 반기더니 200m 거리의 산장에 당도한다.
반야봉산장으로 탄생했던 뱀사골산장은 그 후 개축돼 지금은 8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음에 대피소 기능을 충분히 해내고 있어 산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며 또한 풍부한 샘물 덕분에 등산객이 많이 붐비는 곳이다.
대충 둘러보고 식수를 채운 후 본격적인 하산 길을 따른다.
시작은 반너덜지대라 별로 탐탁치는 않으나 무리하지 않게 주변을 둘러보며 계곡의 일원이 되어 푹 묻혀 버린다.
다리를 몇 개 지나면서 내리니 간장소다.
재를 넘나들며 소금 장사를 하던 운봉 소금장수의 얘기가 있다.
그 옛날 화개장터에서 소금을 사서 재를 넘어오던 소금장수가 너무 지친 나머지 발을 헛디뎌 소금과 함께 웅덩이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그 후로 이 웅덩이의 물이 간장처럼 짜다고 해 간장소라 불렀다 한다.
화개재에서 삼도봉을 거쳐 반야봉으로 향하는 길목 왼쪽에 이름 모를 무덤이 하나 있는데 운봉 소금장수의 무덤이라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등산로는 중간 중간에 철다리와 나무다리로 계곡을 가로 지르며 나온다. 내릴수록 완만하고 고른 경사도를 유지하며 무리 없게 이어지니 편하게 내린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소와 징담(맑은 연못), 청류와 어울린 기암괴석들이 그림처럼 펼쳐지며 절경을 연출함에 그야말로 신선의 경지를 노닌 것 같다. 비경으로 이어지는 곳곳마다 얽힌 설화가 수두룩하게 널려있다.
그 유래를 안내함에 찾는 이들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 산간도로를 만들어 지리산의 거목을 나르던 옛적 당시 지명의 삼차, 막차.
- 뱀사골 상류를 의미하는 들돌 골.
- 소금장수가 소금지게를 물속에 빠뜨려 간장 색을 낸다는 간장 소.
- 스님이 산을 향해 제를 올렸던 제승대.
- 암벽이 병풍 모양을 두른 듯한 병풍소.
- 병(甁) 모양의 병소.
- 용이 못된 이무기가 빠져 죽었다는 뱀 소,
- 큰 뱀이 탈피하여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던 곳의 탁용소(擢龍沼).
- 요룡대(搖龍臺)는 용이 머리를 흔들며 승천하는 장엄함의 모습을 보여준다,
절경에 취하여 어느 새 와운교에 이른다.
우측으로 도로를 따르면 와운 마을을 지나 연하천산장으로 오를 수 있으며 좌측으로 다리를 지나 큰길을 따라 내린다.
우측으로 계곡 폭이 넓어지며 절경 또한 사로잡는다.
뱀사골의 유래는 많이 전해진다.
옛날 석실(石室) 부근에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배암사라는 사찰이름에서 뱀 사로 줄여서 또 뱀 소(沼)에서 유래되어 뱀사골로 됐다는 얘기가 있다.
또한 수많은 소(沼) 가운데 뱀사골 입구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매년 칠 월 칠석날 밤이면 주지 스님이 사라져 마을 사람들은 스님이 부처로 승천했다고 믿고 있었다. 서산대사께서 전해 듣고는 사람이 부처가 되어 승천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여긴다.
어느 해 칠석날 장삼 속에 극약주머니를 달아 주지 스님에게 입혀 예년과 똑같이 독경을 하도록 시켰다.
새벽녘이 되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큰 뱀이 송림사에 왔다가 계곡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에 서산대사가 뱀을 따라 올라 가 보니 용이 못 된 이무기가 뱀 소에 죽어 있어 뱀의 배를 갈라보니 주지스님이 죽어 있었다.
그 후로 뱀이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 사(死)골이라고 하였고 끝내 용으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를 일러 반선(半仙)이라 부르다 어느 때부터인가 반선(伴仙)으로 바뀌었다 전해진다.
반선의 옛 송림사 터에는 전적 기념관이 세워져 있어 광복 이후 6·25를 거치는 동안 지리산에서 벌어진 동족상잔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또한 당시의 아픔을 전해주고 있다.
다리를 지나 1km 거리의 남짓 주차장으로 향하는 우측으로는 뱀사골과 달궁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합수지점이다. 폭이 넓을 뿐만 아니라 수량이 풍부하여 많은 사람들이 천연약수탕?에 몸을 맡기며 피서를 즐기고 있다.
땀으로 얼룩진 옷을 덜어버리니 피로는 말끔하게 사라지고 산뜻하다.
일행은 휴식 겸 뒷풀이와 그럴듯한 국수 한 그릇으로 여정을 접으며 늦지 않은 시각 지리를 떠난다.
2004년 8월 하순.
첫댓글 좋은 코스 다녀 오셨네요 !!!!
지리산!! 항상 맘 설레이게 하는 어머니 품 속 같은 푸근한 산 . 담에 같이 가요~~ 산행기 잘 보고 갑니다.
요산요수님.제발 담 지리산행때 낑가주서요.지정휴무쓸께요.지리개굴님은 a조 주간주일때 날잡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