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골 기도원을 지나니, 고호의 그림에서 보았던 아주 우람하고 싱그러운 초록의 삼나무들이 길 왼편을 빽빽이 채우고 있다.
일년 중 단풍축제가 열리는 가장 혼잡한 때라, 백양사 반대편의 남창골에서 밀리는 인파대신 쾌적한 기온과 화창한 날씨를 벗 삼아 유유자적한 산행을 시작하고 있다.
요염한 단풍
부는 바람에 가볍게 날리는 낙엽비를 맞으며, 백암산의 귀여운 아기단풍(당단풍)들이 선홍색 웃음을 활짝 웃는 사이를 걷다보니, 바스락거리는 잘 마른 낙엽이 밟히는 소리조차 경쾌하게 느껴진다.
백학봉에서 내려다 본 풍경
몽계교와 오랜 가뭄으로 물이 마른 몽계폭포를 지났다. 줄지어 있는 나무계단을 올라, 좌우로 푸른 조릿대들의 싱그러운 얼굴들 사이를 헤치며 정상인 상왕봉에 오르자, 장작불이 은은하게 타오르는 것 같은 산봉우리들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행복한 소나무
“아휴! 멋져라. 소나무가 어쩜 저렇게 멋있게 늘어져 있을까?” “허! 거참 특이하게 생긴 소나무로구만!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모두 이 소나무를 보고 웃고 좋아하니, 이거야 말로 행복한 소나무일세.”
거대한 회백색 암벽을 지나 백학봉으로 가다가 아주 멋들어지게 생긴 소나무 한그루를 만났는데, 모두들 반가워하며 한마디씩 감탄사를 남기고 가게 만들어서 ‘행복한 소나무’라 이름 지었다.
나무계단과 단풍
백학이 하얀 날개를 편 것 같다는 백학봉을 지나, 하얀 양이 스님의 설법을 듣고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백양사 쪽으로 가는 길에는 무수히 많은 계단과 급경사가 계속되었다.
기기묘묘한 기암괴석과 거대한 절벽 사이의 나무 계단을 내려가던 사람들이, 깎아지른 절벽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키 큰 단풍나무에 넋을 잃고 걸음을 멈춘다. 아무리 궁리를 해도 5층 빌딩보다 더 높아 보이는 압도적인 단풍의 자태가 일부밖에 카메라에 잡히지 않아서 안타깝다.
활활 타오르는 단풍의 불길에도 나무 계단들이 아직 무사하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단풍이 타오르는 백양사 쌍계루와 백학봉 풍경
부처님이 서계신 영천굴 아래에서 사시사철 끊임없이 샘솟는다는 차가운 샘물을 마시고 약사암으로 올라섰다.
매달린 빨간 등이 무색할 정도로 타오르는 핏빛 아기단풍의 불길에 휩싸여 사방을 가늠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절정의 순간이 너무 짧게 지나가는 것을 억울해하지 말고, 절정의 이 순간을 눈으로 맘으로 몸으로 온전히 즐기자.
국기단 옆의 넉넉한 은행나무
나라에 재앙이 발생할 때 조정에서 국태민안을 빌고 제사를 지냈다는 국기단을 지나치려니, 오른편의 거대한 은행나무가 넉넉한 품으로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끈다. 국기단 뒤편으로 보이는 하얀 하늘과 비슷한 백학봉의 해맑고 위엄 있는 자태에 신비로운 경의가 느껴진다.
늘 푸른 나무이고 천연기념물 153호라는 비자나무가 5000그루나 심어졌다는 비자나무 숲을 지나며 아몬드처럼 생긴 비자나무 열매를 씹어 보았다. 약간 떨떠름한 듯하면서 고소한 비자나무 열매는 구충제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단풍이 타오르는 백양사 풍경
단풍의 절정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유서 깊은 백양사 경내에 들어섰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움직임조차 활활 타는 단풍의 꽃불처럼 보인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온 천지를 태우는 백양사와 쌍계루의 화려한 절경을 눈에 담기도 바쁜데...
★백암산(742m) 안내 ☆산행코스: 남창골 기도원-몽계폭포-상왕봉 정상-백학봉-학바위-백양사 ☆산행거리와 시간: 6.6Km, 5시간 ☆교통 o 호남고속도로-백양사 I.C-1번 국도로 진입-738번 지방도로-뉴백양관광 호텔-백양사 o 내장사 버스터미널 옆 삼거리-추령고개-복흥삼거리-백양관광호텔-백양사 ☆대중교통 o 장성까지 호남선 고속버스나 백양사역까지 가는 열차 이용 백양사 역에서 30분 간격, 장성에서 1시간 간격으로 백양사까지 가는 군내 버스 이용 ☆백양사 홈페이지 http://www.baekyangsa.org
글·사진=국정넷포터 전흥진
출처 : 국정브리핑
울∼긋 불∼긋 애기단풍의 유혹
어린아이의 손바닥만큼이나 작은 백양사의 애기단풍은 앙증맞고 색깔이 고와 단풍 중의 으뜸으로 꼽힌다.
늦가을이다.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이 남녘의 산들을 화려하게 물들이고 있다. 설악산과 오대산 등지는 이미 단풍이 지나갔지만 내장산과 지리산 등은 이번주가 절정이란다. 지난 주말 이곳은 전국의 관광버스가 모두 집결한 듯했다. 전국의 관광버스와 철도가 내장산과 지리산 등으로 연계한 관광을 한 탓에 전북 정읍에서부터 차량이 뒤엉켜 오도가도 못할 만큼 교통체증이 심했다고 한다. 대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관광버스가 동이 나 안동과 청송 등 경북 북부지역의 관광버스마저 대구로 동원돼 새벽부터 단풍관광객을 태워 날랐다.
먹고 살기가 팍팍한 가운데도 단풍구경으로 한순간 시름을 달래려는 탓일까. 내일을 준비하려는 서민들의 애절함이 묻어나오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하다. 형편이 어렵더라도 일년에 한번인데 어쩌랴. 큰 맘 먹고 가족들과 함께 애기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 국립공원지구에 있는 백암산 백양사로 단풍 보러 떠나자. 내친김에 백암산 정상에 오르는 등산도 해보자. 집에 와서 코팅한 단풍잎을 아이들 책갈피에 꽂아주는 것도 큰돈 들이지 않고 가족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길이 되리라.
#백암산 산행
전남 장성군에 있는 백암산은 내장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노령산맥을 중심으로 전북의 내장산과 묶어 내장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백양산지구와 내장산지구로 나눠진다. 정상은 밋밋하지만 백암산에서 뻗은 백학봉은 해발 630m의 거대한 바위봉우리로, 마치 그 모양이 '흰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같아서 이름붙여졌다.
백암산은 철마다 변하는 산의 색깔이 금강산을 축소했다고 할 만큼 아름답다. 특히 가을 백암산의 으뜸은 단풍이다. 산 전체와 조화를 이루며 서서히 타오르는 나무의 모습은 절경을 빚어낸다. 단풍이 백학봉의 회백색 바위와 어울려 이뤄내는 독특한 모습은 멀리서 보기만 해도 조상들이 왜 조선팔경의 하나로 손꼽았는지 수긍이 간다.
가을의 향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백암산의 가을 산행코스는 취향과 체력에 따라 잡아도 후회없다. 먼저 단풍을 즐기려면 백양사로 들어가는 도로와 백양사 주변만을 보고 오거나 백양사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학바위까지만 올라가도 충분하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간다고 해도 백양사에서 학바위까지는 왕복 2시간이면 넉넉하다.
정상을 밟는 게 산행의 묘미라고 여긴다면 백양사를 출발, 약수동계곡으로 올랐다가 최고봉인 상왕봉을 거쳐 학바위로 내려오는 코스를 잡는 게 좋다. 약수동 계곡의 단풍터널 속을 지나는 상큼함과 역광에 비친 학바위 주변의 단풍을 함께 맛볼 수 있다. 상왕봉에서 백학봉 가는 길은 마치 산책로처럼 편하다. 소나무가 있는 쉼터를 지나 계속 걸으면 백학봉까지 쉽게 갈 수 있으나 백학봉을 지나면 다소 길이 가파르다. 쉬운 코스를 지나고 어려운 길을 걷는 게 우리네 인생사라고 느끼다보면 어느 틈에 학바위에 다다른다. 백암산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적의 전망대며 백암산 산행의 백미라고나 할까. 백학봉에서 영천굴로 내려가는 길은 무척 가파르다. 30여분 돌계단을 내려오면 연중 일정한 양이 샘솟는 샘물인 영천굴의 석간수를 만난다. 한잔씩 돌려가면서 마시면 어느새 갈증이 사라지고 이내 원기가 회복된다. 5시간 가량 걸린다.
#백양사
백양사는 백암사 또는 정토사로 불리던 대사찰로 내장산 가인봉과 백학봉 사이의 골짜기에 있다. 백제 무왕 33년에 창건됐다고 전해진다. 조선 숙종 때 환양선사라는 고승이 이곳에서 설법을 하고 있는데 백양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설법을 들은 뒤 자신이 하늘의 신선이었는데 죄를 짓고 쫓겨왔다면서
백양사 경내에서 바라본 백학봉은 마치 학이 날개를 편 듯한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 민간 정원의 대표적인 곳으로 손꼽히는 소쇄원에는 곧은 기개와 마음을 비우기 위해 노력하는 선비들의 모습을 잘 나타내는 대나무숲이 아름답다.
죄를 뉘우치고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해서 백양사로 고쳐 부르게 됐다고 한다.
절 경내와 맞은 편에는 천연기념물 제153호로 지정된 난대성 상록수인 비자나무 수만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주차장에서 절로 오르는 500m 구간에는 수백년된 아름드리 굴나무 거목들과 송림이 우거진 채 나그네들을 위엄있게 맞는다.
백양사는 소요대사 부도를 비롯, 대웅전·극락보전·사천왕문과 청류암의 관음전·경관이 아름다운 쌍계루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백양사 오른쪽 뒤편에는 선조 36년과 현종 3년에 나라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는 국기단도 있다.
#백양사 애기단풍
백양사 단풍은 다른 지역의 단풍보다 잎이 앙증맞게 작고 색깔이 선명하며 고운 게 일품이다. 단풍크기가 서너살배기 손바닥만 하다고 해서 애기단풍이라고 한다. 매표소에서 백양사까지 걸어서 30분가량 걸리는 도로 양옆과 백양사 주위의 단풍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단풍잎이 작고 도로 옆에 심은 단풍나무가 내장사처럼 단풍터널을 이룰 만큼 크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한 단풍이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 찾는 이를 즐겁게 해준다. 도로가 끝나는 곳에 있는 쌍계루는 백양사의 단풍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붉게 물든 단풍에 둘러싸인 쌍계루의 단아한 자태와 백암산 중턱에 떡하니 서 있는 백학봉이 멋진 조화를 이뤄내는 모습은 사진작가들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장성의 볼거리
백양사가 자리잡은 장성은 문향(文鄕)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다. 호남지방의 대표적인 사액서원인 필암서원·고산서원·봉암서원 등 서원과 정자가 곳곳에 남아있다. 문암리 금곡마을은 초가집과 당산나무, 다랑논 등 50~60년대의 시골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마을로, 이곳 출신의 임권택 감독이 만든 영화 '태백산맥'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영화 '내 마음의 풍금', TV드라마 '왕초' 등도 이곳에서 촬영됐으며, 군은 이곳을 영화민속촌으로 조성하고 있다.
이외에도 후백제시대 견훤의 요새이던 입암산성,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군이 관군과 대접전을 벌인 황룡장터도 빼놓을 수 없다.
#장성 주변의 유적들
장성을 뒤로 한 채 대구로 오는 길에 대나무로 유명한 인근 담양에서 소쇄원 등 볼거리 몇 군데를 둘러보면 알찬 여행이 된다.
전남 담양군 남면에 있는 소쇄원은 조선 중종 때 양산보의 별서정원이 있다. 별서란 살림집에서 멀리 떨어진 경치 좋은 곳에 마련된 주거공간이다. 조광조 밑에서 학문을 배우고 현량과에 합격했으나 기묘사화로 스승인 조광조가 죽자 고향으로 돌아와 처사로 지내던 양산보가 살림집에서 떨어진 곳에 소쇄원을 짓고 학문을 닦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민간 정원의 대표적인 곳으로 계곡물이 다섯번 돌아내린다는 오곡문,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재현하려 했던 복사동산과 대숲이 일품이다.
송순이 당대 문장가와 학자들과 교유하면 면앙정가와 단가 등의 작품을 탄생시킨 시문활동의 산실인 면앙정,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은 식영전(사선정)과 사미인곡·속미인곡의 '탯자리'인 송강정 등이 소쇄원 인근에 있다. 또 이들의 가사와 작자미상 가사 등 18편의 주옥 같은 가사가 전해 내려오는 것을 기념해 만든 가사문학관도 빼놓을 수 없다.
담양읍 부근에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전해지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걸은 뒤 전북 순창에 들러 호남 특유의 차진 고추장과 된장이나 각종 장아찌를 맛보면 여행에서만 누릴 수 있는 덤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