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과 나의 삶.hwp 나의 말씀 나의 찬송 간증자 : 영주중앙교회 백일기 <나의 찬송> 528장 대학 시절 저의 신앙에 영향을 준 분을 들라면 바로 우리 교단의 대표적인 신학자인 김재준 목사님과 서남동 연세대 신학과 교수, 안병무 교수, 함석헌 선생입니다. 물론 지금은 그러한 이슈가 거의 사라졌지만 당시 시대 독재권력에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하나님의 따듯한 시선을 보여준 신학이었죠.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벌써 110년이 흘렀는데 찬송가 645개 중 이제 우리 찬송가는 겨우 120여개에 불과합니다. 앞으로는 우리의 신앙적인 정서를 담은 찬송가가 더 많이 나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찬송가 528장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교회에 주의 마음을 품은 주의 신앙의 일꾼들이 일어나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한국적 기독교 마인드를 드러낸 찬송가입니다. 1절, 낙심과 절망으로 어둔 밤 짙었을 때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복음의 여명이 밝아왔다 2절, 고요한 아침의 나라 새 일꾼을 부르니 하늘 씨앗이 되어 역사의 생명을 이어가자 3절, 맑은 샘 줄기 용솟아 거친 땅 흘러 적시듯 기름진 새 하늘 새 땅을 만들어가자 대부분의 찬송가는 개인 구원과 신앙과 관련되었지만 528장은 기독교적 신앙에 근거한 이 나라를 생각하는 찬송가라고 생각합니다. 찬송가 : 528장 작사 : 김재준(1,2절), 문익환(3절) 작곡(편곡) : 나운영 교수(장로) (이동훈 교수) <나의 말씀> 잠언 27장 1절 샬롬! 할렐루야! 안녕하십니까? 영주중앙교회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백일기입니다.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한 번 정도는 죽을 고비를 넘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3번 정도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한번은 제가 초등학교 1.2학년때 마을 연못에서 수영하다가 물에 빠진 사건입니다. 둘째는 고등학교 3학년 무렵 병원에서 살기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을 때입니다. 그리고 세번째는 이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사건입니다 제가 중앙교회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83년 쯤 됩니다. 당시 저는 영광여중 교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식으로 등록교인이 된 것은 1985년 무렵부터인 것 같습니다. 1984년인가 제일교회 중등부 교사로 있던 제가 기독신앙을 사회실천에 관심을 갖고 있던 기독교장로회에 대해 관심이 있어 수요예배 때마다 당시 김지연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던 중앙교회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모양입니다. 당시 저는 지금 축산식육식당 앞에 위치한 음식점과 하숙을 겸하던 안동여관 암소갈비집에서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안동여관이지만 과거에는 유명한 요정이었고 당시는 1호실부터 13호실까지 방을 만들어 하숙영업을 했었는데 당시 교사 은행원 공무원 들이 주로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88년에 결혼했으니 5년 가량 한 곳에서 하숙생활을 했습니다. 13개의 하숙방 중에도 5호실이 가장 넓고 좋은 하숙방입니다. ㄱ 자로 꺾여진방은 공간도 넓고 전망도 좋았습니다. 모두가 가고 싶어하던 그 방에 제가 입주 4년만에 드디어 5호실의 방장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저의 신앙은 하잘 것 없는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매일 성경말씀은 하루에 1장 씩 읽었습니다. 그런데 몹시도 추운 어느 겨울날 저와 사이가 좋았던 암소갈비집 아줌마가 유난히도 추운 겨울밤 저의 방에 새 연탄 2장을 겹치기로 넣어 저의 방 가운데로 연탄을 밀어 넣어두었습니다. 당시 난방방법은 도르래가 달린 연탄화덕을 방 가운데까지 막대기로 밀어 넣어 두는 것입니다. 당시 제가 기거하던 5호실은 서로 입주하려고 해서 수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 사고가 난 뒤에 벽지를 걷어보니 바깥이 훤히 보일정도로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드디어 아침이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기억하기로는 저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환상을 본 것 같았어요. 악몽일 수도 있겠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려서 눈을 떴을 때 저는 제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마침 문을 잠궈두지 않고 잠들었기에 몸부림 치다가 문이 열린 모양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제가 목숨을 건진 것 같습니다. 30분 가량 제 몸을 움직이려고 온 힘을 다하자 겨우 제 손가락 끝이 움직일 정도였습니다. 마침 아침 식사를 하러 오지 않아 궁금해하던 아주머니께서 제 방에 들렀다가 쓰러진 저를 보고 놀라 저를 일으키고는 급히 김치국물을 먹였습니다. 겨우 국물을 삼킨 저는 순창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돌아왔으나 한동안 머리 속에 무쇠덩어리가 들어 있는 느낌으로 생활하였습니다. 그렇게 겨우 목숨을 건진 저는 저의 탁자 위에 놓인 성경책을 폈습니다. 그날 아침 제가 읽을 성경은 잠언 27장이었습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이 말씀을 읽는 순간 저는 한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인간은 도무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구나하는 생각, 오늘 하루도 감사하게 살자는 생각, 모든 인간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교단 한신교회 이중표목사님의 별세신학이 생각납니다. 기독교는 죽은 후의 별세를 추구하는 것보다 현세에서부터 별세를 사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현세에서 별세를 체험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별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 오늘도 제게 목숨을 붙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입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당장 내가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한동안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간사하지요. 또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렇지만 저는 늘 그 때 연탄가스 중독사건은 제가 살아가면서 자신을 추스리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삶이 힘들 때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죽는 것 보다 낫지” 연탄가스 중독으로 제 머리가 조금 나빠지기도 했겠지만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제 목숨을 붙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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