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청점]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1960.11.28~)
[Fashion- 150 Years of Couturiers, Designers, Labels](2010)의 저자 샤를로트 실링(Charlotte Seeling)은 존 갈리아노(John Galliano, 1960.11.28~)에 대한 글의 서두에서 ‘천국의 화려한 새, 패션쇼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디자이너’라 언급한 바 있다. ‘패션계의 악동’, ‘로맨틱의 영웅’ ‘패션 천재’라는 수식어로도 유명한 갈리아노는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Central S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을 수석 졸업하고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상’을 3차례나 수상했다. 1996년 최고의 럭셔리 패션 하우스인 디오르의 수석 디자이너에 오른 그는 현대 파리 오트 쿠튀르 하우스의 수장이 된 최초의 영국인 디자이너였다. 그는 과감하고 정열적인 디자인과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스타일로 디오르 왕국을 부활시키며 세계의 패션 트렌드를 주도한 패션계의 혁명가였다.
<sex and the city>에서 갈리아노의 드레스를 입은 사라 제시카 파커.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엘레강스함을 통해 여성성을 부각시켰다면, 갈리아노는 여성의 관능미를 대담하게 표현하였다.
갈리아노가 표현하고자 했던 관능적 낭만은 디오르 하우스의 축적된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현대적 트렌드를 반영하는 란제리 룩으로 종종 표출되었으며, 이를 가장 잘 승화시킨 대표적인 아이템으로는 속옷을 겉옷화한 슬립 드레스(slip dress)를 들 수 있다. 또한 그는 디자이너 마들렌 비오네(Madeleine Vionnet)를 존경하여 그의 디자인에 바이어스 재단을 많이 활용하였고,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 Alaia)를 좋아하여 투명하게 비치는 소재, 밝고 화려한 색과 주름장식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관능적 낭만에 더욱 다가갔다. 특히 갈리아노는 컬렉션을 통해 비오네의 바이어스 재단을 부활시키며 이를 현대적 감각으로 소화해 낸 바이어스 컷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갈리아노는 바이어스 재단에 대해 “그것은 매우 빠르면서도 유연한, 여성의 몸에 대한 깊은 존경을 보여주는 관능적인 재단방식이다. 그것은 마치 미끌미끌한 액체가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과 같다……. 패션이 나아갈 유일한 길은 구성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라며 강한 자신감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갈리아노에 의해 바이어스 재단은 여성의 몸에 꼭 맞는 옷을 만드는 장치가 되었고, 보다 관능적이며 낭만적인 실루엣을 완성하는데 기여하였다. 의복의 재단과 구성 기술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와 창조성은 환상과 과잉, 불손함 등 그의 패션에 대한 논란들을 잠재울 만큼 견고한 것이었다. 비평가들은 그의 옷에 대하여 현실세계와는 거의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의상(costume)’일 뿐이며, 소비자나 바이어들보다는 패션 에디터들이 좋아할만한 매우 복잡하고 입기 어려운 의상을 만들어낸다고 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존 갈리아노가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에 걸쳐 실험적이면서도 가장 아름답고 낭만적인 의상을 만들어내었던 디자이너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갈리아노는 어떠한 문화에도 개방되어 있는 자유주의자이자 실험적 창조성을 통해 패션계의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 온 장본인이었다. 그는 동ㆍ서양 문화의 과감한 융합과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컬러의 조화, 절제보다는 과감함, 뉴 룩의 재해석을 토대로 한 새롭고 젊은 뉴 룩의 창조, 섬세한 무대 연출과 파격적인 메이크업, 의복 패턴의 해체와 재구성, 과장된 실루엣 등을 통해 의복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매우 낭만적이며 종종 충격적인 스타일로 패션의 경계를 넘나든 갈리아노는 방대한 분량의 역사적 자료를 탐구하고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믹스하여 아름답고 빛나는 의상을 창조하였다. 그는 “창의성은 국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여행은 가장 강력한 아이디어의 원천이며, 나는 다른 문화를 보고 이해하는 것이 무척 좋다.“고 말하며 역사주의와 이국적 취향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