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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에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으로 국내외적으로 망신을 당한 기억이 새로운 가운데, 대학교수들의 논문표절과 중복논문 게재가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고려대 총장에 취임한 이필상 교수가 제자의 석박사 논문을 표절하였다는 의혹을 사 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TV방송 토론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본 것 외에는 이필상 총장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다만 2년 전에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을 통하여 몇 분간 전화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이필상 총장의 개인경력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살펴본 바 있었는데, 한국 사회의 소금과 같은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이총장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 입장에서 볼 때 사심 없이 이총장이 바쁜 가운데에서도 순수하게 시민단체 활동을 오랜 동안 일관되게 해왔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점에서 사실 여부를 떠나 이총장이 논문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은 개인적으로 유감스러우며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대학사회의 논문표절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1975년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대학교수들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한 수단으로 교수재임용제가 도입되면서 논문표절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교수재임용제도가 진정한 의미의 대학경쟁력 강화를 위한 순수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유신독재 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시작부터 제도 자체의 윤리적 교육적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 결과 사실 당시 대부분의 대학교수들은 어차피 정당성이 없는 형식적 제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에 대한 대응도 형식적일 수 밖에 없었다.
교수재임용제도가 시행되기 이전에는 국내에 이렇다 할만한 학술지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 정당성이 결여된 교수재임용제도가 갑자기 시행되었고,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건수가 재임용 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에 교수들 입장에서는 다급해졌다. 당장에 세계적인 유명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여 실적을 채울 형편은 못되니 다른 방도를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교수들이 찾은 해결책은 바로 거의 전국 각 대학마다 모든 학과마다 교수들의 논문을 발표할 국내 학술지를 만든 것이다. 예컨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모든 대학의 경영대학마다 각각 경영논단이나 경영논집과 같은 학술잡지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자기 대학 자기학과의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여 교수재임용에 필요한 논문실적 건수를 채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런 학술지를 보는 사람도 거의 없거니와 논문표절이나 중복논문 게재를 체크할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였으며, 따라서 교수들의 석박사 학생들의 논문표절이나 중복논문 게재도 도덕적 부담을 느끼지 못하는 관행이 되기 시작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교수재임용제도의 정당성 결여만이 논문표절 관행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사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 대학은 학부생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원생이든 박사과정 학생이든 학생과 교수간의 신분차이는 지나칠만큼 엄격하고 현격하다. 그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이 유교적 예절관에서 비롯된다. 즉 우리 대학은 학생과 교수간의 사이가 학문적 협업 내지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교수는 무조건 가르치고 학생은 무조건 배워야 하는 식의 고정관념에 빠진 신분계급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학생과 교수간의 엄격한 신분차이가 자연스럽게 교수들의 석박사 지도학생 논문표절로 연결된 문화적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자의 학문적 성과물을 스승인 교수의 업적으로 돌리는 것이 사제지간의 아름다운 미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실 이러한 관행은 한편으로는 교수들에 대한 불신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교수들 스스로가 나태해지는 원인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잘못된 유교적 신분질서 관행이 대학사회에 만연되어 온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시간은 흘러 IMF사태로 인해 취업이 어려워진 대졸자들이 급증하였다. 이에 이들의 취업난을 돕고 대학원 학비지원을 위해 이른바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대비한 고등인력양성이라는 명목으로 DJ정부는 1999년부터 ‘BK21사업(Brain Korea21)’을 전개하였다. 이 BK21사업은 세계수준의 대학원, 대학 연구력 제고, 지역우수대학육성, 대학입학제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추진되었는데, 주로 교수(연구)들의 논문 및 저술실적과 대학원생(교육)들의 박사학위 논문실적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였다. 1단계 사업은 1999년부터 2005년까지 7년간에 총 1조1,492억원이 투입되었으며, 2006년부터는 다시 2단계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참여정부는 2004년부터 BK21사업과 거의 중복적으로 균형발전 차원에서 NURI(지방대혁신역량강화사업)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누리사업은 지방대학 특성화 및 혁신역량 강화, 우수인력 양성을 통한 지역발전 촉진, 지역혁신체계 구축토대 마련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지방대 인력양성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누리사업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에 걸쳐 총 1조3,200억원의 국비가 투입되고 있다.
이로부터 BK21사업이나 NURI사업 모두 인문사회계를 포함한 이공계 대학원생 장학금 지원사업 및 교수 연구자금 지원사업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들 사업 자체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이들 사업이 사실상 중복적이며 성과 면에서 형식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것이 논문표절과 중복논문 게재를 낳고 있는 또 하나의 커다란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적지 않은 대학교수들 특히 이공계 교수들은 BK21과 NURI사업을 동시에 2,3개 이상씩 중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심지어는 4,5개씩 중복적으로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교수들도 있을 정도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공계 대학교수들은 산자부나 정통부, 과기부 등 교육부 이외 부처의 각종 연구개발 프로젝트들을 떠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각 사업에서 대학원생들과 교수들 입장에서는 시작부터 이들 사업이 요구하는 연구성과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논문의 질은 고사하고 논문 수마저도 채우기 급급한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수 교수들이 석박사 논문표절과 중복논문 게재는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이렇게 볼 때 지난 1970년대 교수재임용제도 시행 이후 최근까지를 통틀어 논문표절이나 중복논문 게재 시비에 걸리지 않을 교수가 거의 없지 않을 정도라고 해도 지나친 과언은 아닐 듯싶다. 물론 논문표절이나 중복논문 게재 행위는 올바른 학자적 자세가 아니며 학문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대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논문표절이나 중복논문 게재로 시비에 휘말린 교수들이 고의적으로 그랬다고 일방적으로 몰아 부치기 어려운 점도 없지 않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최근의 논문표절과 중복논문 게재 시비가 순기능적 역할을 하고 있는 면도 있다. 과거 대학교수들 가운데에 학문적 연구와 학생 교육에 전념하기보다는 그때그때의 권력에 참여하여 한 자리 하는데 열을 올린 정치교수들이나 관변교수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정치교수들이나 관변교수들 대부분이 실제 현실정책 면에서는 거의 무지한 채 탁상공론식의 주장만을 되풀이 하여 오히려 혼란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화 이후 YS정부 때부터 DJ정부 그리고 지금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정치교수들과 관변교수들이 정권에 긍정적 역할보다는 오히려 부정적 역할을 한 경우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만일 노대통령이 적어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고 평가 받는다면 그것은 노대통령의 브레인 역할을 자처한 몇몇 정치교수들의 무능과 무지에 기인한 실패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논문표절이나 중복논문 게재 시비를 우려하여 과거처럼 대학교수들이 선뜻 정치교수나 관변교수 대열에 나서기 어렵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과거처럼 장관 한자리 해먹으려고 욕심부리다가 자칫 잘못하면 개망신 당하기 딱 좋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가 현실에 참여하고자 한다면 과감히 교수직을 버리고 뛰어 들어야 한다. 적당히 교수이름으로 현실의 권력에 빌붙어 한자리 해먹은 후 다시 대학으로 되돌아간다 한들 텅 비어버린 머리와 잔뜩 어깨에 힘들어간 상태로 재대로 강의나 연구를 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결국 그 피해는 모두 학생들이 보게 된다. 뿐만 아니라 솔직히 지금까지 그때의 권력에 빌붙어 한 자리 해먹은 대학교수 가운데 제대로 한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결론을 말하자. 논문표절 시비로 신뢰가 떨어진 지금, 일단 대학들이 제자리로 되돌아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논문표절이나 중복논문 게재 심지어는 논문조작이 여러 가지 요인들로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다고 치더라도 최소한 대학 스스로 자성할 필요는 있는 것이다. 대학이 제자리를 찾아 고급인재 양성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여 사회로부터 제대로 인정을 받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나라경제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대학에 미래의 희망을 걸고 예산부족과 비판이 많은 가운데에서도 BK21사업이나 NURI사업 등에 국가적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무겁게 생각해야 한다. 이들 사업이 대학교수들이나 대학원생들 용돈 주는 사업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학이 사회로부터 제대로 인정을 받을 때 그 때 대학교수들이 현실문제에 적극 나서는 것은 반대하지 않겠다. 지금은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면 민간부문의 수준이 대학교수 수준을 훨씬 뛰어 넘고 있다는 점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정말로 현실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고려대 이필상 총장이 오랫동안 묵묵히 해온 것처럼 공익적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교수 자신뿐만 아니라 학생들 지도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과 이론은 교수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즉 먼저 권력지향적 형태로 현실에 참여하기 전에 실제 현실에 대한 올바른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논문표절이나 중복논문 게재를 해도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 시절의 권력지향적인 대학교수들이 할 수 있는 고리타분한 소리들이나 탁상공론식의 주장은 이미 오래 전에 민간이 다 하고 있다. 오히려 민간은 그 이상을 훨씬 뛰어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다시 한번 국민들이 대학에 거는 기대와 희망이 얼마나 큰 지 제대로 깨닫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논문표절과 중복논문 게재 논란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에만 전념해오고 있는 훌륭한 교수들도 적지 않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성실하고 훌륭한 교수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의 대학들이 그나마 유지되어 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첫댓글 논문의 질적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 없이 단순히 논문의 수로 평가하는 무성의한 평가기준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공계열은 지난 십년간 다양한 평가제도를 도입하면서 논문의 질을 중심으로 하는 평가기준이 정착되어가고 있지만 인문사회학의 경우는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좋은 논문을 위해서 몇년이 걸리더라도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인문사회 분야는 정말 힘든건지 아니면 게으른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소견입니다..이필상교수의 자진사퇴후 사과성명이 선행되고 양심고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동기가 아무리 군바리 정부교수임용제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나..교수가 양심을 저버리고 남의것을 배껴먹는다는 것은 ...친일파를 묵인해주는것과 다를바없는 역사적 과오라고 생각됩니다..신상 필벌이죠..잘못을 칼같이 조져버리는 사회의 얼음장같은 무서움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논문표절은 있을수 없겟죠.하지만 본질이 무엇일까요? 고려대학교 재단이 누구죠? 동아일보 사주입니다. 총장의 자리가 원하는대로 안되었을뿐입니다. 이필상 교수님 고대나온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대단히 훌륭한분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허긴 서울대 총장이 이병도의 손자인데..썩어 문들어진...
캬~이런 글을 십년이 지난 다음에 읽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