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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조 : 신-크메르 건축양식
New Khmer Architecture
"신-크메르 건축"(New Khmer Architecture)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캄보디아에서 유행한 건축 사조 혹은 양식을 의미한다. 이 건축양식은 2가지 전통적인 건축양식 --- 즉 앙코르 시대의 전통적 건축양식과 민간의 토속적 건축양식 --- 을 현대사조와 결합시킨 특징을 띠고 있었다. 초창기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건축양식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조는 1953년 캄보디아가 독립하면서 시작됐고, 1960년대에 그 절정을 맞이했다. 하지만 1970년 론 놀(Lon Nol) 장군의 쿠테타로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공이 갑작스레 실각하면서 이러한 사조도 급속히 퇴조했다.
1. 역사적 개관
이 예술운동의 배후에 있던 원동력은 노로돔 시하누크 전임국왕 개인에게 있었다. 그는 1951-1953년 사이에는 국왕이었고, 1955-1960년 사이에는 총리, 1960-1970년 사이에는 국가수반이란 직책으로 캄보디아를 통치했다. 그는 무자비한 통치자였지만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그 스스로도 작곡가와 작가, 시인, 영화감독,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동시에 예술의 보호자이기도 했다.
1953년 캄보디아가 독립하면서, 시하누크 공이 생각한 현대적인 캄보디아란 보다 개발되고 세계의 한 일부인 통합적 국가였기 때문에, 그는 국가의 근대화를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에는 농업에서부터 기반시설 및 산업, 교육에서 의료보건, 관광에서 예술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영역이 포괄됐다.
이 건축양식의 초창기에 외래적 영향이 있었다는 점은 명확하다. 하지만 대부분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캄보디아 건축가들은 재빨리 캄보디아 고유의 요소들을 현대적인 요소와 결합시켜 한결같은 특징을 창출해냈다.
1960년대 이러한 "신-크메르 건축" 양식의 여러 간축물들을 갖고 있던 프놈펜은 "동양의 진주"로 불렸다. 1960년대에 프놈펜을 방문했던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Lee Kuan Yew) 총리는 너무도 감명을 받은 나머지, 싱가포르도 캄보디아와 같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는 바램을 피력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예술운동은 1970년 미국의 지원에 힘입은 론 놀 장군이 쿠테타를 통해 시하누크 공을 실각시키자 그 흐름이 갑작스레 중단됐다.
2. 현재와 미래
프놈펜 및 전국에 산재한 신-크메르 양식의 건축물들은 오랜 내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손상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일부는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이 파괴했다. 그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건축된 교회들 중 시하눅빌에 위치한 한 군데만 빼고는 모두 파괴했고, "껌뽀웃-따께우 대학"(University of Kampot-Takeo) 건물도 파괴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최근의 고성장과 거침없는 자유주의가 이들 건축물들에 오히려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쁘레아 수라마릿 국립극장"(Preah Suramarit National Theater)이나 관방부 청사와 같은 보존가치가 있는 일부 건물들은 이미 소실되었다. 국립극장의 경우 1994년 공사중의 사고로 불탔고, 관방부 청사는 새로 지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건축된 건물들에만 국한되지 않고,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건물들도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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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완 몰리완 설계. 국립경기장 콤플렉스. |
예전 건축물 중 많은 수는 상당히 열악한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국립경기장 복합단지는 특히 취약한 상태이다. 이 경기장은 아직도 사용되고 있고 최근에 "리모델링"을 했다곤 해도 겉치장만 바뀌었을 뿐이다. 경기장 둘레로 위치한 출입구나 지붕의 배수장치와 같은 통합적 요소들이 조악하게 신축되었다. 바싹(Bassac) 강 정면의 아파트 단지 2곳도 마찬가지이다. 한 곳은 과거의 열악한 상태로 남아있고, 다른 한 곳은 콘크리트를 덧대면서 그 특징적 모습을 잃었다.
하지만 소수는 양호한 상태로 정기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가령 "상원의회"의 한 부분인 "짝또목 복합단지"(Chaktomuk Compound), 그리고 "짝또목 회의장"(Chaktomuk Conference Hall)이나 "첸라극장"(Chenla Theater)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이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많은 캄보디아인들, 특히 권력층들이 이러한 "신-크메르 건축" 양식이 고유한 크메르 문화란 점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반면 많은 이들이 이 건축운동을 외래적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지나치게 현대적이고, 캄보디아 역사의 생동력 있던 시대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주1)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주로 외국인들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이 남아있는 건축물들에 대한 캄보디아인들의 자각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캄보디아인 중에는 신세대 건축전공 학도들이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주1) Grant Ross, Helen and Collins, Darryl Leon Building Cambodia: 'New Khmer Architecture' 1953-1970, Bangkok: The Key Publisher Co. Ltd., 2006, p.xxiv . |
4. 건축양식의 특징
"신-크메르 건축양식"은 그 양식 면에서 전형적인 요소 몇가지를 갖고 있다. 이 양식은 현대사조의 영향을 받아 철근 콘크리트 및 단단한 구조를 사용한다.
또한 토착적 전통에서 기인한 지역적 기후를 반영한 특징도 나타난다. 전통적인 캄보디아 주택은 언제나 기둥을 세운 후 지면에서 한 층 올라간 곳에 바닥이 설치된다. 따라서 아랫부분의 공간은 개방형으로 사회적 활동을 위한 서늘한 그늘 공간을 만들어주면서 자연적인 냉방시스템 역할도 해준다. 그리고 높은 위치에 지어진 주거공간은 침수피해를 보호해준다. "신-크메르 건축양식" 역시 이러한 구조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요소의 또다른 형태로는 판넬형 벽채와 이중벽, 직사광선을 막기 위한 전형적인 VVV 자형 지붕 등도 있다. 발코니와 복도를 포함하는 주랑(柱廊, loggia)과 계단 역시 그늘을 제공해준다. 특히 건물의 환기 및 통풍을 위한 구조 형성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인다. 전통 주택들은 개방형 평면도를 갖고 있는데, "신-크메르 건축양식"에서도 이러한 특징이 나타난다. 기후의 영향으로 대부분은 흰색을 주로 하는 가운데 밝고 개방형 구조를 갖고 있다. 전통 주택과 마찬가지로 "신-크메르 건축양식" 건물들에서도 구조 자체에 폐쇄성이 없다.
한편 해자(垓子: 성 주위로 둘러판 연못)와 같이 건물의 외관에 통합성을 띤 부분을 만들고 장식적 요소들도 사용한다. 여러 건물들에 캄보디아 문화와 일상생활에서 파생된 영감이 배어있다. 때때로 전통 사찰(파고다, 와트) 건축에서 사용되는 요소들도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여러겹으로 곁댄 타일 지붕이나 황금빛 뾰족탑, 팀파니형 장식과 지붕 장식들 등이다.
때때로 보다 전통은 영감의 새로운 원천이 되기도 한다. 완 몰리완(Vann Molyvann)이 설계한 "프놈펜대학"(RUPP) "교육대학"(현 외국어교육원) 도서관 건물은 초가지붕을 연상시킨다. 역시 그가 설계한 "짝또목 회의장"은 전통적인 황금 뾰족탑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앙코르 시대의 영향은 해자의 설치나 돌출형 보도에서 나타난다. 해자는 단순히 장식적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니라, 우기에는 저수지 역할도 하고 냉방장치의 기능도 해준다. 국립경기장 복합단지와 RUPP 교육대학 건물은 이러한 구조의 전형을 보여준다.

(사진) 완 몰리완 설계의 교육대학 도서관 건물의 외부(좌)와 내부(우). 그는 캄보디아 최초의 법학 국비유학생으로 프랑스로 건너갔지만, 그곳에서 건축으로 전공을 바꿨다.
이 운동의 초창기에는 식민지 건축양식이 영향을 미쳤지만, 건축가들의 자기계발이 성장함에 따라 이러한 영향은 감퇴되었다.
"신-크메르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에는 정부청사들, 왕실의 거소들, 공장들, 학교 및 대학들, 병원, 스포츠 콤플렉스, 전시홀, 극장 및 영화관, 공항과 기차역, 교회들, 개인주택 및 공공주택단지 등이 있고, 심지어는 사찰 경내의 구조물 중에도 이런 양식으로 조성된 경우도 있다. 비록 "신-크메르 건축양식"의 대표적 건축물들은 프놈펜에서 볼 수 있긴 하지만, 전국의 도청소재지와 주요 읍내들에서도 이 양식의 건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건물들은 국가를 현대화시키기 위해 대량으로 확산시키기에 좋은 형식을 갖고 있었다. 이 건물들의 대부분은 국가예산 및 캄보디아의 토착적 자본으로 지어졌는데, 그 이유는 시하누크 공이 "내 자식들이 빚지기를 원치 않는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미국, 소련, 중국과 같은 외국 정부와 유엔(UN)과 같은 국제적 원조도 제공됐다.
5. 주요 건축가
"신-크메르 건축양식"의 최고 건축가가 완 몰리완(Vann Molyvann: 1926- )이란 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 외의 주요 건축가들로는 루 반 합(Lu Ban Hap), 침 순 퐁(Chhim Sun Fong), 셍 수텡(Seng Sutheng), 멈 소파나(Mam Sophana) 등이 있다. 이들 대부분은 외국, 특히 프랑스와 미국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노로돔 시하누크 전임국왕 역시 이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비록 이런 류의 전문적 건축가는 아니었지만, 이 예술운동의 배후에서 원동력을 제공했다. 그는 이 당시의 주요 건물공사 대부분을 개인적으로 감독하면서, 공사들이 높은 완성도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했다. 그는 또한 일부 건물들의 내부 인테리어를 직접 설계하기도 했다.
당시에는 외국인 건축가들도 이 운동의 일부에 참여했다. 그러한 인물들로는 미국인 전문가였던 블라디미르 보디안스키(Vladimir Bodiansky)와 제랄드 한닝(Gérald Hanning), 그리고 프랑스인이었던 앙리 샤뗄(Henri Chatel)과 르로이 앤 몽데(Leroy & Mondet)가 있다.
6. 주요 건물들
6.1. 프놈펜 (Phnom Penh)
Bassac Riverfront: Municipal Apartments, Lu Ban Hap with Vladimir Bodiansky, c. 1963
Bassac Riverfront: National Bank Apartments (now part of the Russian Embassy), Henri Chatel and Jamshed Petrigura, c. 1963
Bassac Riverfront: Olympic Village Apartments, Vann Molyvann, c. 1963
Bassac Riverfront: Preah Suramarit National Theater, Vann Molyvann, 1968, demolished 2008
Bassac Riverfront: Sangkum Reastr Exhibition Hall, Vann Molyvann, 1961
Cambodiana Hotel, Chhim Sun Fong, Lu Ban Hap, Norodom Sihanouk (interior design), 1969
짝또목 회의장(Chaktomuk Conference Hall), Vann Molyvann, 1961
Chamkarmon Compound, Lu Ban Hap, Vann Molyvann and others, 1950s-1960s
Chenla State Cinema (now Chenla Theater), Lu Ban Hap with Chhim Sun Fong, 1969
Council of Ministers, Vann Molyvann and Grimeret, 1950s, demolished 2008
Independence Monument, Vann Molyvann and Ing Kieth, 1962
Institute of Technology, Soviet team, 1964
National Sports Complex, Vann Molyvann, Um Samuth, Gérald Hanning, Claude Duchemin, Jean-Claude Morin, 1964
Royal University of Phnom Penh, Leroy & Mondet, 1968
Teacher Training College (now Institute of Foreign Languages), Vann Molyvann, 1972 |
6.2. 밧덤벙 (Battambang)
6.3. 시하눅빌 (Sihanoukville)
참고문헌
Grant Ross, Helen and Collins, Darryl Leon, Building Cambodia: 'New Khmer Architecture' 1953-1970, Bangkok: The Key Publisher Co. Ltd., 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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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세계적인 건축학자가 서울을 보고는 두번 놀낸답니다. 1)종묘의 건축물을 보고는 어떻게 건축으로 조상의 제사의 의미를 완벽하게 재현을 했는가? 2) 1과 같이 위대한 문화유산을 갖은 민족이 어떻게 분당과 같이 후다닥 신도시을 어떻게 아무런 생각 없이 만들 수 있는가?
... ^ ^ ... 유사한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서울 중심가에서 "30년 된 건물이 잘 안보이고, 또 앞으로 30년 갈 건물도 잘 안보인다"... 물론 좀 시간이 흐른 이야기죠.. 그래도 요즘은 많이 나아지는듯 합니다... 서울 스카이라인이 많이 달라졌죠... ^ ^
북한산에 올라보면,,,
온천지가 아파트,,숨이막혀서 어찌 살아갈수가 있는지,, 건축가는 어디로 갔는지 없고,,시행업자만 들끓코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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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꼬르 님 댓글을 다시 읽어보면서
오프라인에서 보여주시는 하이코메디 때의 말씀 억양을 떠올리니..
배꼽이 빠집니다..
이 댓글이 정말 격조높은 시조였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