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곤 우촌미디어 대표·서영산우회장
‘선운산 골째기로 / 선운산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 동백꽃은 아직 일러 /
피지 안했고 / 막걸리집 여자의 / 육자배기 가락에 / 작년것만 상기도 /
남었습디다 / 그것도 목이 쉬어 / 남었습디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다. 미당 선생의 고향이 선운산 아래 고창땅인데 선운산
아래 마을 곳곳을 뒤졌지만 막걸리집 여자나 육자배기 가락은 찾지 못했다.
못내 아쉬웠다. 꿩 대신 닭인가, 닭 대신 꿩인가. 선운산 아래 마을은 온통 풍천
장어와 복분자술로 뒤덮여 있었다.
‘봄 처녀 가을 총각’이라고 했겠다. 계절에 어디 성별(性別)이 있겠냐 마는 여하
튼 가을은 남성의 계절이라고 한다. 고창땅의 남성들, 특히 신사(?)들 사이에는
‘비아그라는 왜 먹어? 풍천장어와 복분자술이 있는데’라는 유행어가 퍼져 있었다.
그만큼 풍천장어는 강정식품이라는 뜻이다.
‘신사’란 남성의 성기능이 불능상태에 이른 남자를 지칭하는 은어다.
그리고 ‘사랑의 묘약’, ‘사랑과 청춘의 술’이라는 복분자주(酒)가 고창의 얼굴인양
이곳의 명산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선운산의 동백향기 '동백장'
선운산은 해발 336m의 나즈막한 산이다. 1:25,000 지형도에도 그 이름이 등재되어
있지 않고 높이만 기재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기암괴석
으로 이루어진 빼어난 경관과 울창한 수림의 장관은 한 폭의 명화 그대로다.
동백꽃 피는 계절의 선운산은 마치 꽃병풍으로 수를 놓은 듯한데, 이 곳 동백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이 되기도 했다.
선운산 동백나무숲의 향기같은 집 ‘동백장’(0677-562-1560)이 선운사 입구 집단시
설지구에서 터줏대감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식당과 호텔을 겸하고 있는데, 이 마
을의 상징처럼 알려져 왠만한 등산지도에는 표기되어 있다.
4층 건물의 1층은 식당으로 쓰고, 2층에서 4층까지는 43개 객실의 숙박 시설이다.
부대시설로는 지하 300m 암반에서 나오는 유황성분의 대중탕인 동백탕이 있다.
남녀 각 100명, 200명을 수용한다.
선운사 일대 식당 모두가 장어구이 일색인데, 동백장에서는 장어구이 말고도 산채
정식(7,000원)이나 버섯덮밥(6,000원) 등을 먹을 수 있다. 장어정식(1인분 250g) 13,
000원, 장어구이(375g 1근)가 14,000원으로, 이 집 장어는 이 집 소유의 대형 양식장
에서 싱싱한 놈들을 그때 그때 갖다 쓰고 있다.
풍천장어라는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풍천’을 고유명사로 알고 어느 곳에 있는 내
(川) 이름이냐고 묻는다고 한다. 풍천장어의 ‘풍천’은 한글사전에도 나와있지 않다.
바닷물과 강물이 합수하는 지점, 장어가 많이 나는 곳을 풍천이라 한다고 했다. 그래
서 풍천은 고창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익산에도 있고 영산포(구진포)에도 있다.
고창 풍천장어의 대부이기도 한 황용성(62) 대표는 3,500평 규모의 양식장 두 곳을 만
들어 양식 장어를 주변 식당에 공급하고 있다. 젊은 날을 서울에서 보냈던 황용성씨는
30년 전인 1969년 맨주먹으로 귀향해서 오늘의 사업체를 이룩했다고 한다. 전기도 들
어오지 않던 그 시절 이곳까지 하루 한 차례 고창읍까지 연결되는 버스편이 유일한 교
통수단이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역경을 헤치고 오늘이 있게 한 부인의 훌륭한
내조가 존경스러웠다.
이곳에서 ‘서울댁’으로 불리는 안주인 박희숙(61) 여사는 토박이 서울사람으로 숙명
여대 국문과 출신이다. 시골생활이라고는 전연 해보지 않은 서울사람이 전기도 들어오
지 않 던 산골로 들어와 낯선 세상에 적응하며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다.
지금도 100석 규모의 식당 주방에서 어릴 적 명문가정의 친정 어머니로부터 익힌 깔끔
한 음식솜씨로 찾아오는 손님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장어를 한자로는 ‘만(鰻)’이라 하기 때문에 장어양식장을 양만장이라고 한다. 서울의
노량진이나 가락동 수산시장에서 어물전의 장어를 보고 어디서 갖고 온 장어냐고 물으
면 사실의 여부를 떠나 십중팔구는 고창서 갖고 온 풍천장어라는 대답을 듣게 된다.
그만큼 고창의 풍천장어는 전체 장어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황용
성씨는 얼마 전 경북 영천땅 어느 어물시장 장어가게에서도 ‘고창 풍천장어’라며 팔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번연히 엉터리인 것을 알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며
즐거운 표정이다. 장어는 아직까지 인공부화 방법이 개발되지 않아 갯벌에서 잡아온
치어를 양식한다고 한다. 따라서 장어는 비싸게 팔린다고 한다.
록클라이머들의 천국 도솔암 일원 암장
선운산 도솔암 일원에는 국내에서는 가장 많은, 250여개나 되는 루트의 암장이 있다.
실로 록클라이머들의 천국이라고 할 만하다.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곳 암장은
난이도가 다양해서 초보자로부터 중급자, 고급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각자의 능력
에 따라 대상 암장을 선택할 수 있다. 대산련은 1996년 이곳에서 스포츠클라이밍대회
를 개최하기도 했다. 바위가 있는 곳에는 꾼들이야 있게 마련. 고창은 역사적인 큰 인
물들을 많이 배출한 곳인데 산악계에도 우뚝 솟아 있는 하나의 큰 산 같은 산악인 김
훈봉씨(金勳奉·58)가 이곳 고창 출신이다.
전남대OB인 그는 무등산악회 회장과 대산련 광주전남연맹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초오유 원정 공적으로 체육인 포장을 받기도 했다. 지금 고창에는 전북대
산악회장을 역임하고 교직에 뛰어든 김동식(金東植·49) 선생이 영선종합고등학교에서
교감으로 재직 중이다. 등산부를 맡아 숱한 후진들을 배출했는데, 그 중에는 걸출한
젊은 산악인들이 있다. 전북산악연맹 구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동춘씨나 ’93 한국
여성 에베레스트원정대 대원이었던 최오순씨 등이 바로 그들이다.
선운사 입구 동백장 지하에 작은 규모의 인공벽이 있어 기초 훈련을 할 수 있다.
정운화씨(鄭雲花·29)가 맡아 운영하고 있는 이 인공벽에는 선운산의 친구들(모임 이
름)과 고창 방장산악회 회원들이 단골로 이용하고 있다. 또한 김동식 선생이 지도하고
있는 영선종고 등산부 학생들의 상설 훈련장으로도 쓰이고 있다.
도솔암 주변에서 암벽등반을 끝내고 내려오는 길에는 명찰 선운사에 들러 보는 것도
좋겠다. 사찰 경내에는 지난 2월에 문을 연 찻집 ‘선다원’(禪茶院·0677-563-2589)이 있
다. 김영숙(金英淑) 보살이 다려주는 차 한 잔을 마셔보는 여유로움을 가져보는 것은
또 어떨까.
고창읍 시외버스정류장(0677-563-3388)에서 선운산으로 가는 도로변인 아산면 계산
리에는 역시 풍천장어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아산가든’(0677-564-3200)이 눈에 쉽
게 띄는데, 이 집 바로 뒷쪽으로는 바위꾼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할미바위가 버티고
서 있다. 암질이 단단한 석회암으로 높이 45m, 폭 50m의 암장이다. 길옆에 위치한 암
장이라 접근이 수월하다. 암장 앞쪽 아산가든의 풍천장어로 스태미너를 보충하거나
이 집 주인 박영의씨(42)가 추천하는 이 집만의 별미 한방 가물치찜(4인 기준 45,000
원~50,000원)을 시식해 보는 것도 금상첨화의 큰 즐거움이 되겠다.
삼거리의 '해안선가든'과 '뚝배기식당'
자가용 승용차로 선운산으로 들어가는 찻길은 정읍IC를 깃점으로 잡으면 된다. 서울
에서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02-782-5552)에서 고창행 버스가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
까지 45분~50분 간격으로 있다(3시간30분 소요, 요금 우등 16,000원, 일반 10,800원).
고창에서 선운사까지는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8시30분까지 수시로 운행하는 직행버
스와 군내버스편을 이용하면 된다(30분 소요, 요금 1,300원).
이 곳 길옆에 서 있는 수많은 음식점들의 간판을 보면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풍천장어’ 일색이다. 영농종합법인으로 되어 있는 ‘복분자酒(주)’공장을 들렀다가 인
접한 탑정 삼거리의 풍천장어 전문점 ‘해안선가든’(0677-564-1411)에 들렀다.
고창과 흥덕의 갈림길 삼거리에 위치한 집이라 선운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친
숙한 집이다.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 풍천장어를 굽어내는 집’이라고 자신의 식당을 소개하는 주
인 김순희씨(41)의 자랑만큼 장어맛 또한 감칠 맛이 났다. 김순희씨는 손님들이 자기
를 탈렌트 고두심과 꼭 같다며 애정을 표시해 주는 것이 한없이 행복하단다.
탑정 삼거리에서 선운산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선운사와 법성포로 갈리는 삼거리가 나
오는데, 이 삼거리에 비교적 큰 규모의 깨끗한 목조건물의 음식점 ‘뚝배기식당’(0677-
563-3420)이 있다. 이 집은 이름 그대로 뚝배기에다가 된장찌개를 끓여내는 집으로 출
발했는데, 지금은 여느 집이나 다름없이 장어구이도 구워내고 있다. 주인 최병권씨(41)
는 비교적 젊은 나이로 식당경영에 나선 열성파다. 스스로 조리사 자격을 취득했는가
하며 자주 찾아오는 단골들의 개성까지 파악해 두기까지 해서 손님들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선운사 앞에서 된장찌개로 명성을 날렸던 이묘순씨(63)의 사위이기도 한 최병권씨의
뚝배기식당은 장모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주었는데, 장모의
손맛 그대로 5,000원짜리 뚝배기도 내놓고 있다. 넓은 공간 안에 특색있게 꾸며놓은 식
탁에 앉아 시골마을 친척집을 찾아온 편안한 기분으로 맛보는 장어구이 맛도 일품이다.
장어 1인분은 장어 1마리를 기준해서 14,000원을 받고 있다.
복분자주(酒)는 사랑의 묘약인가
요즘은 안방에다가 요강을 갖다놓고 밤 소변을 해결하는 가정은 없다. 그런데 요강(盆 :
요강 분)이 들어가 있는 술이름이 있고 보면 이것은 분명 예사로운 일은 아니다.
선운산이나 내장산쪽에서는 산딸기로 담근 술을 많이 마신다. 그 이름이 복분자(覆盆
子)술이다. 복분자는 장미과에 속하는 산딸기를 말하는데 복분자술은 이 열매로 만든
과일주다. 넘칠 복(覆), 요강 분(盆)자로 이 술을 마시고 소변을 보면 사기요강이 엎어
진다는 데서 연유했다고 한다. 그만큼 양기가 세진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복분자는 부녀자들이 깊은 산중에서 공해를 모르고 자생한 열매를 7~8월께 채취한다.
이 열매를 옹기그릇에 밀봉하여 2년이나 3년동안 숙성시키면 맑고 빨간 빛깔의 복분자
술이 빚어진다. 복분자 열매를 따고 술을 빚는 작업을 할 때는 금남의 구역으로 통제하
고 부녀자들만으로 정성을 쏟는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술은 가정이나 식당에서 이러한 방법으로 담궜는데, 지금은 제
대로 시설을 갖춘 양조기법으로 대량 생산하여 소비자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복분자의
효능은 동의보감, 본초강목에도 강조되어 있다. 복분자로 담군 술은 양기(陽氣)를 일으
키며 정혈작용(精血作用)이 뛰어나다고 적혀 있다. 영농조합법인으로 되어있는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의 복분자주 공장(0677-561-2032)에서는 370ml짜리와 700ml짜리 두
가지 크기의 용기로 출시하고 있다. ‘사랑과 청춘의 술’, ‘사랑의 묘약’이라는 고창의 복
분자술은 선운산 산행길에는 꼭 마셔보아야만 하는 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