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크메르의 세계
서울을 그대로 들어서 옮겨라!
오사카 국립민족학박물관

지난 2002년 "한일교류의 해"를 맞이하여 3월 21일부터 7월 16일까지, 일본의 오사카에 있는 국립민족학박물관에서는 <2002년 서울 스타일: 이 씨네 일가의 웃음띤 살림살이>(2002年ソウルスタイル: 李さん一家の素顔のくらし)란 주제의 전시회가 개최되어 일본사회에 상당한 화제가 되었고, 관객동원에도 성공한 바 있습니다.
비교적 넓은 전시공간에서 개최된 이 전시회의 핵심은 바로 "동시대를 사는 보통의 한국사람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었죠. 옆에 전시공간 배치도에서 보시는 것과 같이 상당한 규모로 총 3,200여점의 전시품목을 이 국립민족학박물관이 서울에서 그대로 사온 것입니다.
심지어는 영등포 재래시장의 634국으로 시작하는 오래된 전화번호들이 적힌 아크릴 간판도 있는가 하면, 이들이 포인트로 잡은 이씨 일가의 할머니와 어머니 소지품도 뭐.... 좀 속된 말로 하면 거의 불량청소년들이 또래 아동을 삥뜯는 수준으로 주머니까지 홀랑 벗겨온 수준으로 보여줍니다. 우리 카페가 "극단적 사실주의"(radical realism)를 추구한다고는 하지만, 이 사람들이 한 일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셈이죠... ^ ^ 일단 일부 품목들을 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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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소지품 |
어머니 소지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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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네 장농 |
딸아이 침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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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 점술집 |
대학 입시 응원 플랭카드 |
하여간 이러한 원초적 사실주의를 추구했는데, 뭐니뭐니 해도 압권은 전시장 중간의 이씨네 일가의 아파트입니다. 30여평쯤 되는 이 2000년대 초반 스타일의 서울의 아파트는 그 평면도의 배치는 물론이고, 그 안의 가구 배치며 냉장고 속의 물품 등... 뭐 그냥 서울의 아파트 하나를 불시에 습격해서 물품들 간의 거리 등을 자로 정확히 측정한 후... 다시 그대로 오사카에다 재현한 것입니다... 이 사진은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일단 전해드릴 수가 없네요...
어찌되었든 한국인들은 외국인이 많이오는 남대문 시장만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이들은 서울의 재래시장 중 영등포시장이 가장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하긴 금마차카바레 등 좀 촌스럽고 지저분하긴 해도 그래도 전통적인 명문 유흥가가 있는가 하면, 미꾸라지도 팔고, 조립식 장난감을 아직도 30% 할인가격으로 살수 있는 문방구단지 등등... 저도 영등포 재래시장이 규모면에서나 모습 등등 서울을 대표하는 재래시장이란 점에 동의합니다... ^ ^
그런데 최근 영등포시장 재개발이 되고 있어서, 향후 한 10여년 지나면 오래된 간판이나 일부 모습은 이제 지구상에서 오사카 민족학박물관의 지하 수장고에만 남아있게 될 것 같습니다...
하여간 그럼 이런 황당한 전시회를 상상해내고 준비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게 실은 우리의 관심대상입니다. 이 전시회의 핵심파트는 바로 전시공간인 "국립 민족학박물관" 소속 인류학자들과 교수들, 그리고 연구원들이 기획한 것입니다.
일본의 "국립민족학박물관"은 1970년 "세계 박람회"가 개최되었던 광활한 부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조직은 3개의 주요한 부서로 나눠집니다. (1)연구부, (2)박물관, (3)대학원 석박사과정... 이렇게 구성되어 있죠. 연구부는 교수진과 연구원들이 소속된 연구소이고, 박물관은 전시공간이며, 이러한 교수진들이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입니다. 한마디로 공부(연구)하고, 그 결과를 일반인에게 보여주고(박물관 전시실), 동시에 심화된 교육까지 동시에 하는 곳입니다.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기관이라면 예전에 "정신문화연구원"이라 불리다 지금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바꾼 석박사과정만 있는 교육연구기관이 있죠(성남에 위치).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다, 서울 삼청동에 있는 "국립 민속박물관"을 더해야만 일단 외형적으로 이 기관과 유사해집니다. 하지만 이런 외형만 갖고는 무언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내용을 한번 살펴보죠.. 굳이 말하면 대학의 전공학과라고 해야 할 분류인, 연구부의 분류를 보면 (1)민족사회연구부, (2)민족문화연구부, (3)선단[=첨단]인류과학연구부, (4)연구전략센터, (5)문화자원연구센터... 로 나눠져 있습니다. 각 파트별로 교수들이 3~10명 정도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전공을 살펴보면 [인문학 수준부터 과학자 비슷한 종류까지의] 다양한 인류학자, 수학자 비슷한 종류부터 고대 인도철학을 연구하는 다양한 언어학자, 동남아시아 연구자, 사회과학 전공자 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들 교수들 한사람 한사람이 대부분 그 분야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석학들이란 점이 더욱 중요합니다. 사실 일반인들은 연구소의 규모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만, 연구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 한 사람이라도 그 연구소의 최 선임 연구원 수준이 사실상 그 연구소의 연구능력을 결정하게 됩니다. 즉 쪽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역량이 센 연구자 1명만 있으면, 그 연구소 수준이 우수해지는 것입니다.
일단 이런 수준이 확보되면, 그 다음은 양적인 부분이 중요해집니다. 즉 소소한 연구들은 2진급 연구원들이 진행하여 선임 연구원이 그것을 관리 감독하는 정도만 하여 그의 부담을 덜어주면, 선임 연구원은 보다 심화된 분야로 연구력을 집중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즉 동일한 질적 수준이 확보되었을 때는 양적 기반이 넒은 연구소가 유리해지는 것이죠...
하여간 오늘 일본의 "국립 민족학박물관"을 소개해드리는 것은, 바로 우리 카페 초창기부터 제가 생각하던 본 카페의 모델이 바로 이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처럼 실제 물건 같은 것은 없고, 우리는 온라인 상으로만 다루게 되고, 분야는 군사나 정치, 경제 등을 더 다뤄야 하니 우리가 더 넓다는 차이가 있습니다만.... 하여간 참조하면 좋은 우리의 역할모델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규모와 상관없이 우리가 캄보디아를 이해하는 데 이러한 기관 역할을 좀 하면 안 될까 욕심을 내봅니다... 왜냐하면 캄보디아에 대해서 아무도 이런 욕심을 안 내고 있으니... 우리라도 좀 나서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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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뭔가 ? 한차례뒷통수를 맞은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듭니다, 뭐지? 하여튼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생각하게 하여주셔서,, 머리는 자꾸 써야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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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말씀이였군요 ㅎㅎ 좋네요 ㅎㅎ
크세의 귀염둥이 보아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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