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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01 - 돌아온 신화
#1. 버스 내부
대여섯명 정도가 서서 가는 대전 시내 버스.
마악 올라 탄 할머니가 들어선다.
버스가 출발해가고... 할머니가 비틀거리자, 서있던 민재가 얼른 할머니를 부축한다.
앞에 앉아있던 대학생 청년 한명이 일어서 자리를 양보한다.
행복해서 앉은 할머니 앞에 선 민재와 청년을 훑어본다.
가방을 등에 멘 산뜻한 차림의 청년과 대조되어,
민재는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에 고향에서 돌아오느라고 커다란 짐가방을 발 밑에 놓고 있다.
할머니 : (청년에게) 학생이지?
청년 : 예.
할머니 : 그래 어느 핵교 댕겨?
청년 : 충북대학교요.
할머니 : 그래그래. 공부를 열심히 했구만. 장해. (민재를 보더니) 총각은 뭐하나?
민재 : 학교 다닙니다.
할머니 : 어디 댕기는데?
민재 : 카이스트요.
할머니 : 어데?
민재 : 과학기술원이요.
할머니 : (끄덕이더니) 그래. 공불 못하믄 기술이래두 배워야지. 기술... 열심히 배워.
민재, 오잉하는 얼굴이 되어 할머니를 보는데
느닷없이 들려오는 호탕한 웃음소리. 우하하하 버스가 떠나가라 웃어대는 누구.
민재 돌아보면 뒤쪽에 앉아있던 남자.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있다.
민재 불쾌해서 외면했다가 다시 남자를 본다.
상체를 기웃해서 그 얼굴을 살펴본다.
아직 웃음기가 남아서 고개를 쳐들고 민재를 보는 얼굴. 정태다.
#2. 교문
카이스트 특유의 교문. 그 앞에 씌어진 학교 이름.
정태소리 : 오랜만이다.
민재소리 : 시꺼.
짐가방 하나는 등에 지고 하나는 손에 든 민재. 아무것도 든 거 없는 정태가 나란히 교문을 들어서고 있다.
민재는 화가 난 상태. 씩씩거리며 걸어가고 정태는 빙글거리며 따라가고 있다.
정태 : (교정을 둘러보며) 야아 여긴 그대로구나.
민재 : 입 다물어.
정태 : 목욕탕같은 자연과학동.. 쓸데없는 잔디밭. 마징거언덕도 그대로 겠지?
민재 더 열을 내며 먼저 속도를 내어 걸어간다.
#3. 연못 가
걸어가던 민재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면, 정태 연못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있다.
민재 무슨 생각인지 들었던 짐을 팽개치고 등의 짐도 풀어내고 정태 앞으로 걸어오더니.
민재 : 야.
정태 : 왜.
민재 :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 들어줄래?
정태 : 뭔데.
민재 : 너 나한테 한 대만 맞아주라.
정태 : 뭐?
하는데 민재 그대로 정태를 한방 갈긴다.
무방비 상태로 나가떨어진 정태.
민재 팼던 주먹이 아픈지 털고...
정태 슬그머니 일어나 앉으며 고개를 들어 민재를 보더니 피식 웃는다.
민재 : 아픈 척이라도 좀 해라.
정태 : 아퍼.
민재 : 이 미친 똥개같은 놈.
투덜거리며 걸어가 던져놓았던 짐을 들고 가버린다.
그런 민재를 보다가 정태 아예 댓자로 드러누워버린다.
추운 겨울 하늘.... 그 위로 들리는 강의 시작 벨소리.
#4. 강의실 복도
벨소리 연결되고. 몇 명의 학생들 후다닥 뛰어서 강의실로 들어간다.
현재 계절학기중.
#5. 전자과 강의실 내부
이십여명의 학생들 웅성거리다가 앞문이 열리고 이교수가 들어서자 일제히 조용해진다.
이교수 교탁에 강의노트를 올려놓자마자...
이교수 : 이동 로봇 성능에 영향을 주는 조건은 뭘까. 김성재!
성재 : 무게 중심이나... 휠의 접지력.. 그리고...에...
이교수 : 박찬석.
찬석 : 모터파워요.
이교수 : (이미 칠판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그림은 아래 그림 사용)
이렇게 양바퀴를 구동해서 자세를 조정할 때
로봇을 제어해야 할 스테이트 수는 몇 개나 될까. 구지원.
지원 : 어...그러니까.. 로봇이 이동하는 공간이 2차원이니까.. X하구 Y하구 두 개 같은데요.
이교수 : 두 개 같은데요? 두 개야 아니야.
학생들을 주욱 둘러본다.
학생들 저마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부지런히 필기하는 척.
#6. 복도
채영이 뛰어오고 있다. 자다 깬 듯이 엉망인 머리모양. 어긋나게 단추를 채운 윗도리.
슬라이딩으로 강의실 문 앞에 도착해서 몇번 심호흡을 하고는
용기를 내어 문을 딱 잡고 열려다가 차마 못 연다.
아예 땅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아주 조심스레 문을 연다.
#7. 강의실 내부
뒷문 쪽. 채영 살그머니 기어서 들어온다.
그 옆의 학생 돌아보지만 모른 척 한다.
그 위로 들리는 이교수의 강의소리.
(현재 칠판에 뭔가를 그려가며 설명중...따라서 칠판 필기 소리도 들림...
나중에 칠판에 그려져 있어야 하는 그림은 다음과 같음)
이교수소리 : 여기 X, Y축이 있지. 그러면 로봇의 진행방향은 여기란 말야. 요 사이각이 세타.
그럼 여기서 로봇 기구학식을 유도해보자면...
그 강의소리가 딱 그친다.
기어서 전진하던 채영도 멈춘다.
이교수소리 : 누구니.
채영 : (눈을 질끈 감고 일어선다) 박채영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꾸벅 인사를 한다)
이교수 : 문 닫고.
채영 : (얼른 열어놓았던 문을 닫는다)
이교수 : (출석부를 뒤진다)
채영 : (다급해서) 담부터 절대로 안 늦겠습니다. 자명종이 고장나서...
담부터는 자명종을 다섯 개씩 놓고 자겠습니다. (사정조로) 교수니임..
이교수 : (출석부에 체크하며) 박채영 마이너스 1점.
채영 : (으이그...)
이교수 : 뭐하구 있어. 자네가 앉아야 우리가 계속하지.
채영 : (터덜터덜 민재가 책을 치워주는 옆자리로 가서 앉는)
이교수 : (그 동안 잔소리 계속) 자넨 과학도야. 과학도라면 시간 계산쯤은 할 수 있겠지.
여기 모두 몇 명이 있지?
채영 : (둘러보고) 스무다섯명쯤 있습니다.
이교수 : 자네땜에 한명당 3분을 손해봤어. 3분씩 25명을 곱하면 몇분이지?
채영 : ....75분입니다.
이교수 : 그러면 오늘 밤 일기에는 뭐라고 써야하지?
채영 : (죽을 맛이지만) 나는 오늘 다른 사람들 인생에서 75분을 손해보게 만들었다.
반성한다. 다시는 이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
이교수 : 좋아요. 그럼 정신우 나와서 로봇 기구학식을 써봐.
학생 한명 괴로워하며 앞으로 나서고...
이교수 : 다른 친구들 멍청이 보지 말고 각자 써봐.
채영 입속으로 투덜거리며 노트를 펴며 옆을 본다. 진도를 보려던 것.
그러나 다른 학생들 다 필기를 하느라고 열심인데...
민재는 노트에 까만 원만 그려넣고 있다.
채영 이교수의 눈치를 흘낏 보고 민재의 옆구리를 쿡 친다.
입모양으로 뭐해? 물으면
민재 말없이 노트를 내려다보다가 큼직하게 글씨를 써준다.
.... 정태가 왔어.
글씨를 읽은 채영 놀란 얼굴로 민재를 다시 본다.
(이때에 칠판이 보인다면... 학생이 써넣는 기구학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8. 학생회관
교내의 한 곳임을 알게끔 주욱 비추다가 그 중의 학생회관.
그 중의 석학의 집 간판...(혹은 학교 안에 있는 까페임을 알 수 있는 그 무엇으로...)
그 위로 들리는 미경의 소리.
미경소리 : 너 대한민국에 아이엠에프가 왜 생긴줄 아냐?
#9. 석학의 집
미순이 컵을 하나 들어보이며 진영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미순 : 이 나라에 돈이 없어서 생긴거다 이말이야.
진영 : 네에.
미순 : 그럼 아이엠에프는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기술. 기술이 있어야 돈을 벌어서 극복을 한다 이거야.
진영 : 네에.
미순 : 그럼 기술은 누가 맨드느냐. 우리 카이스트 학생들이 맨들거거든.
그런데 니가 이렇게 더러운 컵을 내놓고 우리 학생이 이 컵으루 물 마시다 병들면
이거 스토리가 어떻게 되냐.
너 땜에 대한민국 아이엠에프가 극복이 안된다는 것이다. 내 말 알겠냐.
진영 : (한숨) 네에.
아직 한가한 시간이라서 다른 학생손님은 없다.
옥주와 재명이가 들어온다.
미순 : 너는 맨날 네에 네에 대답은 잘하는데 말이다. 얼라 최재명.
재명 : (자리에 앉으려다가 도로 서는)
미순 : (다가서며 늘 달고 다니는 지갑에서 장부를 처억 꺼내어 뒤지며)
전자과 2학년 최재명. 너 외상이 ... 이만육천원이다.
옥주 : 엄머 이만원이 넘었어 너?
재명 : 아.. 저 아줌마.
미순 : 아줌마아?
재명 : 누님.
미순 : 왜.
재명 : (진지하게)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미순 : 질문... 좋지.
재명 : 그러니까 에에... (심각하게 생각하는)
옥주 : (참다못해) 어떻게 우릴 다 기억하냐 이거 물어보구 싶나봐요.
재명 : (심각하게 끄덕이는)
미순 : 내가 누구니. 내가 카이스트의 걸어 다니는 학생사전이다.
학생처장이 뭔 일 생기면 나한테 먼저 와서 물어보는 거 알지.
옥주 : 우리 카이스트 6천명을 다 기억한단 말예요?
미순 : 그렇지는 않지. 다만 외상을 진 학생은 기억을 하고야 말지. 그래서...
들어서는 정태. 모자를 눌러써서 얼굴이 잘 안보이는 상태.
미순 : 어서와요. 뭐주까?
정태 : (자리에 앉으며) 맥주 주세요.
미순 : 무엇이? 총각 여기 학생 아니지. 여기 학생이라면 우리 석학의 집에서 오후 여섯시 전엔
주류 판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리가..
정태 : (고개 들고 비식 웃는)
미순 : 얼라. 이게 누구야. 전자과 김정태.
정태 : 안녕하셨어요.
미순 : 아이큐 158. 일이학년 전체수석. 월반해서 삼학년때 석사과정.
너 자퇴했대매? 그럼 너 복학하러 온거냐?
#10. 강의실 복도
민재와 채영 걸어오며.
채영 : 복학하러 왔대?
민재 : 알게 뭐야.
채영 : 만났다면서. 얘길 했을거 아냐.
민재 : 얘길 했다기보다.. 아 몰라.
그런데 뒤에서 달려오는 만수. 급하게 두 사람 사이를 뚫고 지나가려다가 브레이크를 걸어 선다.
덕분에 두사람도 서고.
만수 : 어어 이민재 박채영 느네 들었어? 들었어?
채영 : 만수선배.
만수 : 못들었지 못들었지?
채영 : 말해. 들어줄게.
만수 : 방금 내 정보망이 알려온 소식에 의하면... (버릇대로 딴데로 샌다) 니들 내 정보망 알지.
카이스트 학내에 구석구석 샅샅이 쫘악 깔려있잖아.
내가 이 정보망을 관리하기 위해서 평소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아니 이 얘길 할려든게 아니구.. 그렇지... 야. 얘들아. 정태가 왔대.
정태 그놈하구 비슷한 놈이 농구장을 기웃거리다가.... (둘러보면)
민재 채영 : (썰렁..)
만수 : 들었어? 봤어? 알구있어?
채영 : 그래서 지금 어딨대?
만수 : 석학의 집에. 오분전에 봤대. 내 정보망이..
그렇지 나 지금 거기 가는 길이었지 참. 아 미친놈. 그놈이 왔어.
부지런히 오던 길로 다시 달려가다가 아아참... 브레이크 잡고 다시 돌아서 달려와 둘 사이를 뚫고 달려간다.
민재 달려가는 만수를 보다가.
민재 : 가봐.
채영 : 뭘.
민재 : 보고싶어했잖아. 가봐. 딴데루 새기 전에.
채영 그러는 민재를 물끄러미 본다.
민재 채영을 남겨놓고 몸을 돌려 가기 시작한다.
채영 : 이민재.
민재 : (멈춰 돌아보면)
채영 : 정태를 제일 보구 싶어한 건 너야. ...그치?
민재 : (그저 보는)
#11. 야외극장
터엉 비어있는 겨울의 야외극장.. 썰렁함...
그 빈 계단좌석 한가운데 정태가 앉아있다.
이제까지 비식거리며 웃던 모습과는 달리 우울한 얼굴이다.
문득 눈살이 찌푸려지며 스치는 기억...
#12. 회상. 동아리방
모노톤으로. 흔들리는 기억처럼 불안정한 화면으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는 정태.
방에 앉아있던 영민이 움찔 놀라 본다.
정태 들고온 스무장 정도의 리포트를 거칠게 영민의 앞에 팽개친다.
정태 : 이거 내꺼 맞지? 근데 이게 왜 니 이름으루 되있어 이 새꺄.
#13. 야외극장
정태 미친 듯이 계단을 뛰어올라가고 있다.
그 위로 사정하는 영민의 목소리.
영민소리 : 넌 학점 다 좋잖아. 이거 하나만 양보해줘.
#14. 회상. 강의실 복도
모노톤. 거친 화면.
정태, 영민을 질질 끌어가고 있다. 다른 한손에는 아까의 리포트를 들고.
영민 : 정태야.
정태 : 따라와. 가서 니 입으루 다 불어.
영민 : (억지로 정태를 뿌리쳐 서는데)
정태 : 양보? 야 임마. 두달동안 이거 하느라구 나 밤새는거 안봤어?
그리구 넌 이새꺄. 이거 양보받아서 석사되믄? 이 따위 식으루 석사되면 뭐할거냐고오!
#15. 야외극장
정태 계단을 뛰어내려오고 있다.
넘어질 듯 휘청여 겨우 멈추고... 상체를 꺽어 거친 숨을 내쉰다.
그러는데 들리는 소리.
채영소리 : 김정태. ...정태야.
정태 고개를 들어보면 환하게 웃고 서있는 채영.
그 뒤로 몇걸음 떨어진 곳에 뚱하니 서있는 민재.
채영 : 여기 있을줄 알았어. 너 여기 좋아했잖아.
정태 : (격했던 감정을 순간 정리하고. 피식 웃는다) 박채영.
채영 : 그래 나다. 나야. 그새 안 잊어먹었어?
정태 : 오랜만이네.
채영 : 그래 일년만이다.
정태 : 일년만인데 우리 서양식으로 인사할까.
채영 하하 웃더니 성큼성큼 걸어온다.
정태 양손을 벌리고.
채영, 남자끼리처럼 정태를 얼싸안아준다.
저 뒤에서 여전히 뚱한 얼굴로 민재가 그들을 보고 있다.
#16. 캠퍼스 중앙로
저 뒤의 교문을 배경으로 폼나게 달려오는 까만 스포츠카.
처억 오버로 나타나는 까만 부츠의 다리.
아놀드의 뒷모습. 스포츠카를 향하여 스피드건을 처억 댄다.
쌔앵 지나치는 자동차.
건의 속도를 확인하고 돌아서며 스윽 미소를 짓는 아놀드.
#17. 캠퍼스 어느 건물 주차장
스포츠카가 마악 주차를 하는데 그 앞에 와서 끼익 서는 오토바이.
내려서는 아놀드. 헬멧을 벗으며 운전석으로 다가선다.
내리던 박교수(절대 정장이 아님) 아놀드를 본다.
아놀드 : 손님.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박교수 : 여기라니. 카이스트 말인가요?
아놀드 : 잘 아시는군요. 여긴 카이스트.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자들을 양성하는 곳입니다.
여기 들어온 학생 하나를 박사로 만들려면 최소한 ??억 이상이 투자되야 합니다.
이 ??억짜리 생명들을 보호 관찰하는 것이 저, 캠퍼스 폴리스의 사명이죠.
박교수 : (손목시계를 보는) 네 그렇군요. 그럼 저 바빠서..
아놀드 : (박교수의 앞을 다시 막으며) 교내에서는 두바퀴든 네바퀴든 모든 탈 것은
시속 30킬로를 넘지 못하게 되있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박교수 : 아아 네... (좀 성가신데)
아놀드 : 그런데 손님께서는 좀 전에 시속 55킬로로 달리셨습니다. 반성하십니까?
박교수 : (그만 허어 웃는)
아놀드 : 그리고 손님의 복장을 관찰해볼 때에 여러 가지 수상쩍은 생각들이 밀려드는군요.
실례지만 어디를 찾아오신 누구십니까?
박교수 : (보다가 웃고는) 여기 처장님을 찾아왔고 저는 앞으로 여기 교수를 할 사람인데요.
아놀드 : 교수요? 우리 카이스트 교수요? (새삼 박교수의 복장을 살핀다)
박교수 : 여기선 넥타이를 매야한다는 규칙도 있나요?
아놀도 : 아 그 규칙은 아직 제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카이스트의 교수를 하실 거 맞습니까?
박교수 : 임명장도 보여드릴까요?
아놀드 : 아뇨. 그러실 필요까지 없습니다. 대신.. (흐흐흐 미소가 절로 나오며 스티커장과 볼펜을 꺼내든다.
속도위반 부분에 체크를 하며) 교직원과 학생이라면 이게 적용되거덩요.
속도위반. 벌금 ?만원. 여기 서명해주시죠.
박교수 : (얼떨결에 받아들어 보는데)
아놀드 : 벌금은 다음달 월급에서 자동공제됩니다. 축하합니다.
모여진 벌금은 학생 복지 안전을 위해서 재투자 되구요. (아주 기분이 좋은데)
박교수 : (마주 기분좋게 미소지어주고는 뭔가 싸인을 하고는 돌려준다)
아놀드 : (두장 중의 한 장을 뜯어 건네준다) 그럼 전 바빠서 이만.
경례를 붙이고 돌아선다.
멋지게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타려다가 뭔가 이상한 기분에 아까의 스티커를 다시 꺼내 본다.
아놀드 : 소속 카이스트. 이름. 홍..길..동???
오잉해서 돌아보면 박교수는 이미 건물 안으로 사라지고 있다.
유리문만 여운이 남아서 흔들리는...
#18. 전자 강의실
칠판에는 가득 공식과 도표들이 그려져있다.
(이교수의 강의실임. 따라서 칠판의 그림 공식들은 전자과 강의. 내용은 별첨)
아무도 없는 강의실 이만치에서 혼자 그 칠판을 바라보고 있는 정태.
문득 칠판 앞으로 다가선다.
분필을 들더니 어느 식 하나를 풀기 시작한다.
답을 써넣고 한걸음 떨어져 다시 훑어보고... 돌아서다가 멈칫.
강의실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민재.
정태 : (픽 웃더니) 어째 니가 내 뒤를 계속 따라다닌다는 생각이 든다.
민재 : 맞어. 고등학교때부터 그랬잖어. 넌 앞서가구 난 따라가구.
정태 : (난처한 얼굴... 괜히 강의실을 둘러보고) 우리 두 얼굴의 마녀께선 안녕하시냐?
강의실에선 지옥의 마녀. 강의실 밖에선 푼수마녀. 여전하시지?
민재 : 직접 알아봐. 지금 연구실에 계실거야.
정태 : 글쎄... (망설이는)
민재 : 인사는 해야될 거 아냐. 이 망할 놈아.
#19. 이교수 방
이교수 푼수처럼 히히거리며 전화를 하는 중이다.
이교수 : 아유 죄송해요. 내 핸드폰이 행방불명이라서... 그렇죠 아마 이번이 세 번째죠. 알아요.
근데 왜 내가 사는 핸드폰들은 그렇게 다 지발루 없어지는지 모르겠어요 그러게요.
... 언제요? 이번 주 목요일이요..네에...
연구실 한쪽에 있는 부루스터 위의 주전자가 물이 끓으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이교수 : 어머 잠깐만요. 물이 끓어서 잠시만요... 죄송해요. ...
수화기를 옆에 내려놓고 부지런히 가서 불 끄고 그리고는 커피를 타기 시작한다.
(현재 내려놓은 수화기는 그새 잊어버린 상태)
그러면서 뭔가 이상해서 갸웃거리는데..
문을 노크하는 소리.
이교수 : 네에.
만수 : (고개를 들이밀며) 저.. 여기 정태 안 왔어요?
이교수 : 정태라니 무슨 정태.
만수 : 아아 이상하네 여기루 올줄 알았는데...그럼... (꾸벅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이교수 : 정만수.
만수 : 네에...
이교수 : 너 프로그램 정리 어뜩게 됐어.
만수 : (완전 죄지은 사람꼴이 되서 슬그머니 들어서며) 저기 그게.. 너무 시간이 부족해서.
이교수 : 시간이 왜 부족해. 하루에 스물네시간이나 되는데.
만수 : 그것이 잠두 좀 자야되구..
이교수 : 잠을 자? (정말 이상해서) 넌 일이 남아있는데두 잠이 오니?
난 일이 있음 암만 잘래두 안되든데...
그 왜 아이스크림을 밖에 내놓은거 같지 않어? 그거 녹을까봐 잠이 안오잖어.
만수 : 그거야... (한숨) 맞습니다. 근데.. 수화기가 내려져 있는데요.
이교수 : (그제야 돌아보고) 어머어머 이걸 어째 (얼른 수화기 들어서) 여보세요. 오박사님... 여보세... (힘없이 끊는)
오늘 나 왜 이러니. 핸드폰두 잊어먹구..
만수 : 냉장고에 찾아보셨어요?
이교수 : 냉장고? (생각해보는데)
노크소리 들린다.
만수 : (얼른) 들어오십쇼.
문을 열고 들어서는 민재. 이교수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뒤에 선 정태를 끌어들인다.
만수 : 어. 너. 정태야아아.. 임마 내가 하루왼종일 너 찾아다닌거 알어?
나쁜 놈. 여길 왔으믄 나부터 찾아야지..
달려들어 만져보고 쳐보고...
그러다 정태가 이교수에게 인사를 하는 바람에 겨우 물러나면서도
좋아서 등을 툭툭 쳐보고 쓸어보고...
정태 : 안녕하셨어요.
이교수 : 김정태... (팔짱을 끼고 보는.. 미소가 떠오르는..)
#20. 이교수 연구실
남희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복사하고 있다. (프로그램 카피입니다)
그 옆 저만치 의자를 거꾸로 타고 앉아있는 만수.
만수 : (혼자 뭔가를 골똘이 생각해보다가) 세상은 참 불공평해요. 그쵸.
남희선배는 이런 기분 평생 못 느껴봤을거야.
남희 : (카피 확인 클릭을 하며) 그 다음 파일 이름은 뭐야?
만수 : 똥 cfg요.
남희 : 뭐?
만수 : ddong 점 cfg
남희 : 똥?.. (자판을 두들기며) 니 파일 이름은 어뜩게 다 이러니? 똥. 설사. 변비.
만수 : 그 프로그램은 화장실 시리즈로 디렉토리를 만들었거든요.
근데 남희 선배.
남희 : (모니터를 휴지로 닦으며) 으이그. 이 모니터는 사구 나서 한번두 안 닦아 줬지. 뭐가 보이니 이걸루?
만수 : 남희선배.
남희 : (벌컥 돌아보며) 왜.
만수 : (멍하니 보다가) 아녜요.
남희 : 몇번씩 불렀으면 말을 해야될거 아냐.
만수 : (주눅이 들며) 미안해요. 남희선배가 내 얼굴을 그렇게 보면 할말을 다 잊어먹어요. 왜 이럴까.
남희 : (기가 막혀서) 너 파일 몇 개 카피시켜준다구 해서 아무 말이나 막하는거니?
만수 : 아녜요. 그냥 내가 왜 이럴까 생각해보는 거예요. 남희선배는 이런 기분 평생 못 느껴봤을거야.
그래서 나 지금 무진장 외로와요.
남희 으이그...해서 보다가 무시하고 다시 모니터를 본다.
그런 남희를 처량하게 훔쳐보는 만수.
#21. 이교수방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은 이교수와 정태.
이교수 : 그래서 일년동안 어디서 뭐하구 다닌거야. 너 부모님두 모르게 그러구 다닌거라며?
민재, 정태에게 커피 한잔 건네주고 자기도 한잔 들고 저만치 가서 책꽂이의 책들을 보는 척.
(이교수는 아까의 커피가 있고)
정태 : 그냥.. 여러 가지 했어요.
이교수 : 여러 가지 뭐.
정태 : 공사판두 다니구요. 중국집에서 배달두 해보구. 그냥 산에두 다니구..
민재 : (슬쩍 정태를 보는)
이교수 : 그래서 이젠 돌아올거야? 너 신형 축구 로봇 만들다가 관뒀잖아.
정태 : (딱딱하게 웃는) 저 자퇴했어요. 아시잖아요.
이교수 : 우리 학교 방침 알잖아. 퇴학 당한 학생이라두 한번은 재입학 기회 주는 거.
정태 : .... 정말 제가 돌아오길 바라세요?
이교수 : (커피 마시려다 말고) 무슨 소리야.
정태 : 돌아오면요. 뭐가 어뜩게 되죠?
민재 : (심상치 않아 보는)
정태 : 뭐 잘해야 석사 되구. 박사 되구. 그리고 더 잘되면 교수님처럼 거기 앉아서
또 어떤 학생을 죽기까지 몰아세우겠죠. 그걸 바라세요?
민재 : 정태야.
이교수 : ...계속해봐.
정태 : ....아뇨. 제가 말실수 했습니다. (일어선다) 인사 드렸으니까 인제 가보겠습니다.
이교수 : 영민이 얘기하는거니?
정태 : (불끈.. 참으려다가 못참고) 그럼 영민이 말구 또 있었습니까?
민재 : (커피잔 놓고 정태 옆으로 오며) 나가자.
정태 : (무시하고) 영민이 죽은거 교수님하고 제가 합작한 겁니다. 그거 아셨어요?
민재 : 야 임마.
정태 : 제가 여기 온거 영민이 기일이라서 왔어요. 딱 일년 됐다구요.
모르셨겠죠. 이 세상에 교수님한테 관심있는건 로봇 공식뿐이니까.
알바 없죠. 딴것들은... 영민이 같은 건.
민재, 정태를 거칠게 끌고 밀어 밖으로 내보낸다.
자신은 나가기 전에 이교수를 돌아보고.
민재 : 죄송합니다. 저 미친놈 제가 꼭 사과시키겠습니다. (말하다가 멈칫해서 보는)
이교수, 커피잔을 감싸쥔 채 조용히 민재를 보고 있다.
#22. 연구실 앞 복도
민재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서 보면...
복도 저만치에 정태가 등을 보이며 서있다.
어두컴컴한 복도. ..실루엣으로 보이는 정태. 꼼짝도 않고 서있다.
#23. 학내식당
학생들 식대 앞에 줄줄이 서서 식판에 밥이며 반찬을 담고 있다.
민재 반찬을 담고... 계산을 하고.. 둘러보면..
저만치에서 밥을 먹던 채영이 손을 들어보인다.
채영이 앉은 테이블에 재명과 옥주가 같이 앉아 먹고 있던 중.
민재 와서 합류하고..
채영 : 정태는.
민재 : 내가 정태 매니저냐.
채영 : 왜 그래. 고새 또 싸웠어?
옥주 : 정태? 혹시 김정태란 분 아닌가?
채영 : 김정태란 분?
재명 : 김정태가 누구야.
옥주 : 으이그. 아까 석학의 집에서 같이 봤잖아. 마담언니가 막 천재라구 그랬잖아.
재명 : 아아 그 정태. 천재라군 안그랬지. 월반하구 수석했다구 그랬지.
옥주 : (채영에게) 언니 정말 그래? 그 분 계속 수석하구 월반해서 삼년만에 석사가 됐어?
채영 : 그분인지 저분인지 수석하구 월반한 건 맞는데 석사는 못 됐어. 되기 직전에 도망쳤으니까.
옥주 : 도망쳐? 왜?
민재 : 밥 먹어. 밥상 앞에 앉았으면 밥이나 먹으라구.
옥주 : 엄머. 우리 회장님은 오늘 또 왜 저래.
재명 : 그러게. 민재형 기분이 영 바닥인데.
채영 : 음... 내가 좀 더 찔러볼까. ...민재야.
민재 : (벌컥) 밥 안먹어?
채영 : 정태 걔 아직두 영민이 일 못 잊구 있니?
민재 : (후딱 노려보는)
옥주 : 영민이는 누군데?
민재 벌떡 일어나더니 식판을 들고 저리로 가버린다.
채영 : 봤지? 쟤는 투명로봇이라니까.
어딜 찌르면 어디루 튈지 뻔히 들여다 보인다구. (맛나게 밥먹는)
옥주, 재명... 영문을 몰라 서로 마주본다.
#24. 도서관 전경. 밤
깜깜한 밤이다. 도서관에는 모든 창문에 불이 밝혀져 있다.
#25. 도서관 내부. 밤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들...
(혹은 창문으로 보이는 도서관 모습...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26. 연못 가. 밤
역시 어두운 밤의 연못...
그 옆의. 가로등 불빛 밑에 두명의 학생이 서서 노트 하나를 같이 보고 있다.
그중 한 학생이 노트의 어딘가를 가르키며 뭔가 얘기를 하고 있다. 추운 듯 손을 불어가며.
연못 이쪽에 정태가 웅크리고 앉아서 그들을 보고 있다. 추운 듯 옷깃을 세운다.
#27. 기숙사 전경. 밤
어둠 속에 서있는 기숙사 건물. 그 중의 여러 방에 아직 불이 켜져있고.
현관 앞 쪽... 우두커니 기숙사를 올려다보는 정태.
#28. 회상. 밤
모노톤. 같은 기숙사 앞 공간.
일년 전의 정태 성큼성큼 현관으로 걸어간다.
현관문 옆에 초라하게 서있던 영민.
영민 : 정태야. (나서며 정태의 옷소매를 잡는데)
정태, 보지도 않고 뿌리쳐버리고 그냥 지나쳐가버린다.
그 뒤에 남아서 정태를 바라보고 있는 영민.
#29. 민재 방
스탠드 불빛 하나 밝혀놓고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민재.
옆에 놓여진 두꺼운 원서를 뒤져가며 뭔가를 쳐대고 있다. 리포트 작성중.
문을 두어번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민재 : (돌아보지도 않고) 들어와.
들어서는 정태. 잠시 서서 공부하는 민재를 본다.
민재 단어 몇 개를 더 쳐넣고 엔터를 친 다음에야 돌아본다.
민재 : (잠시 말이 없다가) 아직 안갔냐?
정태 : (괜히 웃고 방안쪽을 기웃거려 빈 침대를 보고) 니 룸메는 없냐?
민재 : 방학이잖아. 집에 갔다. (다시 모니터를 보는)
정태 : 그 친군 계절학기 안듣나부지?
민재 : 잘데 없어 온거면 입다물고 조용히 들어가 자.
다시 타닥타닥 민재가 컴퓨터를 치는 소리만 방안에 깔린다.
정태 잠바를 벗어 대충 빈 침대에 던져놓고 두리번거리는데.
민재 : 파란게 내 칫솔이니까 쓰고나서 잘 닦아놔.
정태 침대에 앉아 괜히 베게를 툭툭 쳐보고....
민재 : (여전히 모니터만 보는 자세) 그리구 자기 전에 이거 하나만 기억해라.
내일 날 밝으면 세수 깨끗이 하구 이교수님 찾아가. 가서 사과해.
정태 : (피식) 넌 아직두 그렇게 백만사람한테 잔소리해대면서 사냐?
민재 : 아니.. (사이) 난 친구라구 생각하는 놈한테만 잔소리해.
정태 웃음기 지워지고 말을 잃어 민재의 등을 본다.
민재는 타닥타닥 자판을 두들겨댄다.
(시간경과)
스탠드 불이 꺼져있다.
침대 저쪽에서는 민재가 잠이 들어있다.
이쪽 침대에 누운 정태. 눈을 감고 자고 있는데 무언가 악몽을 꾸는 듯 얼굴이 찌푸려져 있다.
#30. 회상. 같은 기숙사 방
모노톤. 정태의 꿈이다.
정태 눈을 뜨고 옆을 본다.
민재가 누워있던 옆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 이쪽으로 돌아눕는다.
잠든 얼굴의 영민이다.
순간 영민 눈을 뜨더니 정태를 본다.
#31. 민재의 방
정태 악몽에서 후딱 깨어 벌떡 일어나 앉는다. 거친 숨을 쉬며 옆을 본다.
옆에는 민재가 잘 자고 있다.
#32. 기숙사 계단
정태, 계단을 오르고 있다. 아주 침통한 얼굴.
#33. 회상. 같은 계단
모노톤. 일년전의 정태(따라서 다른 옷)가 같은 계단을 미친 듯이 뛰어오르고 있다.
엎어질 듯 미친 듯이 달려오른다.
#34. 옥상 밤
정태, 옥상의 문을 조심스레 연다. 나서는데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입구 옆 벽에 기대 선다.
옥상 한쪽 끝을 괴로운 듯 바라본다.
#35. 회상. 옥상 밤
모노톤. 일년전의 정태 미친 듯이 문을 벌컥 열고 나선다.
안돼애...라고 소리치는 입모양.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태의 시선에 비친 옥상의 한쪽 끝.
거기 옥상 난간에 올라 서있던 영민. 하얀 런닝에 헐렁한 파자마 바지.
아주 추운 듯.. 천천이 정태를 돌아본다.
정태 달려들다가 무언가에 걸리며 엎어진다. 고개를 치켜들어 본다.
비어있는 아까의 옥상난간.
#36. 옥상 밤.
바라보는 정태. 비어있는 아까의 옥상난간.
우두커니 서있던 정태. 내키지 않는 듯 걸음을 옮겨 난간 쪽으로 간다.
난간에 상체를 기대고 조심스레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 높이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아래. 그 높이.
정태 문득 얼굴이 이그러지더니 쿨쩍거리며 울기 시작한다.
거칠게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괴로워서 어두운 공간을 바라본다.
#37. 민재의 방 아침.
창문으로 아주 밝은 햇살이 비춰들고 있다.
침대에는 아직 잠에 빠져있는 민재.
민재 끄응 돌아눕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멍청이 앉아있다가 무의식적으로 옆의 자명종 시계를 더듬어 들어 본다.
그리고 이초 정도... 갑자기 으아아악 소리를 지르더니 튀어 일어나
바지를 꿰어입음과 동시에 책을 챙겨드느라 소란을 핀다.
그러다 정지. 어제밤 정태가 잤던 침대를 돌아본다.
그 침대는 텅 비어있다.
#38. 강의실 복도
민재 달려오고 있다. 어제의 채영과 비슷하게 엉망으로 차려입은 옷차림.
강의실 앞에 서서 으으... 심호흡을 하고 강의실 문을 살그머니 연다.
#39. 강의실 내부
민재 들어섬과 동시에 꾸벅 절을 하며
민재 : 죄송합니다. 다신 안늦겠습니다.
강의실 앞에 서있던 이교수, 민재를 돌아보더니.
이교수 : 그래.. (아이들을 둘러보며) 이 공식은 누가 마무리 지을까. 임동호?
학생 한명 앞으로 나선다. 칠판에는 반쯤 가득이 써있는 공식들...
더 말이 없는 이교수 때문에 민재 어리둥절해서 채영의 옆을 찾아 앉는다.
채영도 어리둥절... 앞의 이교수를 보다가...민재에게 낮게.
채영 : 웬일이래?
민재 : 그러게.
하는데 지원이 손을 번쩍 들더니.
지원 : 교수님.
이교수 : (멍하니 있다가) 어?
지원 : 방금 저 학생 지각했는데요.
이교수 : (민재를 돌아보고는) 그러네.
지원 : 마이너스 일점 아닙니까?
이교수 : (그제야) 아. 그래. 이민재... (출석부를 뒤지는)
민재 : (열받아서 속삭여) 저거 누구야.
채영 : 우리과 구지원. 그게 문제가 아니구.
민재 : 느네 과라구?
채영 : 오늘 교수님 아무래도 이상하셔. 복제인간이 잘못 들어온거 같애.
교수님이 강의실에서 저런 얼굴 하는 거 본 적 있냐?
민재 그제야 이교수를 돌아본다.
이교수 문제를 푸는 칠판 쪽은 안 보고 뭔가 생각에 빠진 듯 멍하다.
#40. 석학의 집
아놀드 어이 춥다...하며 들어서더니
자연스럽게 바 뒤로 가서 커피잔을 꺼내고 올려져있는 커피 주전자를 들려는데
그 손등을 맵게 타악 치는 미경.
아놀드 : 아야. 쏟을 뻔 했잖어.
미경 : 내 오백구십번째 경고하는데 내 물건에 함부로 손대지 마.
아놀드 : 커피값 낼게. 내면 될거 아냐.
미경 : 외상값 먼저 갚아야지. (장부 처억 꺼내 들추는데)
아놀드 : 알았어. 거 일이만원 갖구 정말 사람 우습게 만드는데..
미경 : 일이만원? (장부 페이지를 찾았다) 무려 사만이천오백원이다.
인간이 어뜩하면 커피만 마셔갖구 사만원을 넘기냐.
아놀드 : 그래 나 인간 아냐. 인간 아니니까 커피 한잔만 줘봐.
미경 : 으이그... (하면서도 커피 한잔을 따르는...)
채영과 옥주 재명 등이 들어선다.
미경과 아놀드에게 안녕하세요 아저씨두 계셨네...등등 인사하고
두사람 그 인사를 받아주고 등등... 자리를 찾아앉는다.
자리에 앉던 옥주, 한곳을 보더니 채영을 흔든다.
옥주 : 언니 저기.. 그 분 맞지?
채영 돌아본다.
저만치 구석 자리에 기대 앉아 자고 있는 정태.
채영 : 얼레. 아주 늘어졌구만. 완전히 갔어. 대체 간밤에 둘이 뭐한거야.
옥주 : 둘이요?
채영 : 어제 밤에 민재 방에서 잤대는데. 민재두 오늘 강의 지각했거든.
재명 : (노트 꺼내며) 이거 하나만 봐주면 돼 누나. 이게 이상하게 답이 안보여.
옥주 : 민재오빠하구 언니하구 저 분하구 디게 친했나봐.
채영 : 그런 셈이지. 같은 고등학교 나왔거든.
재명 : (노트를 찾아 채영에게 펼쳐주며) 요기 요거.
옥주 : 언니랑 민재오빠는 초등학교때부텀 친구라며.
채영 : (재명이 펴주는 곳을 보며) 초등학교가 뭐냐. 민재 그 녀석하구 난 백일잔치두 같이 치뤘댄다. 옆집 살았거든.
어이 최재명.
재명 : 네.
채영 : 이거 고등학교때 다 풀었든 거 아냐?
재명 : (노트를 가져가 다시 들여다본다)
옥주 : 언니가 어제 민재오빠는 투명 로봇이라구 그랬잖어. 그럼 저 분은 뭐야?
채영 : 음...깡통 로봇.
옥주 : 깡통?
채영 : 그래 겉으루 보면 최첨단 소재루 만든 철갑을 두른거 같지만 알구보면 속이 텅텅 비었어. 깡통이라구.
재명 : 옥주야.
옥주 : 왜애.
재명 : 너 저 형한테 지나치게 관심이 많은거 같다.
옥주 : 멋지잖아.
재명 : (우잉...해서 옥주를 보고 정태쪽을 다시 보고)
채영 : 재명이 너 그거 정말 모르겠어? 그러구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냐.
재명 : (얼른 다시 노트를 들여다보는)
그동안 커피를 마시며 미경과 시시덕거리던 아놀드 나가며.
아놀드 : 진영아.
진영 : 네?
아놀드 : 저놈 저거 깨워. 여기가 지 기숙사 방이야? 뭐든 사마시면서 자두 자야될거 아냐.
깨워서 주문 받어. 미경씨 나 간다.
미경 : (장부에 뭔가 적으면서) 외상값이나 갚어.
정태 쪽. 진영이 다가와 자는 정태의 눈치를 보며 괜히 탁자를 닦다가.
진영 : 여보세요.
정태 : (죽은 듯 자는)
진영 : (조심스레 정태를 흔들며) 여보세요.
정태 후딱 깨어나는 바람에 진영 움찔해서 손을 거둔다.
정태 : (두리번대다가 앞에 선 진영을 보고) 예?
진영 : 잘거믄 방에 가서 편히 자요. 이러구 자면 몸 아파요.
정태 : ... 나 방 없어요.
진영 : ..여기 학생 아니세요?
정태 : 아닌데요.
진영 : 아아... 아니구나...
더 할말이 없어서 탁자만 더 닦는다.
#41. 처장실 앞
만수 안절부절해서 오락가락하다가 주위를 살피고는
처장실의 문쪽으로 슬그머니 다가가서 문에 귀를 기울인다.
어떻게든 안의 소리를 들어보려는 중이다.
#42. 처장실 내부
처장과 마주 앉은 이교수.
처장 : 무슨 말씀이세요. 일년을 쉬시겠다니..
이교수 : 아니 그냥 그 휴식년이라구 있잖아요. 우리 교수들 몇 년에 한번씩 일년쉬게 해주는거. 그거..
처장 : 그걸 할래믄 지난 학기에 벌써 신청을 하셨어야지요.
이교수 : 그게..그렇죠?
처장 : 게다가 이교수님은 이제까지 휴식년 그거 한번두 신청한 적이 없는 걸루 알고 있는데요.
이교수 : 그게..아마 그랬을거에요.
처장 : 말씀해보세요.
이교수 : 예?
처장 : 이렇게 개학을 한달 남기구 느닷없이 그런 말씀을 하실 때에는 이유가 있을거 아닙니까.
그 이유를 말씀해보시라는 겁니다.
이교수 : 이유라는 게 그러니까.. 공부를 좀 더 해볼까하구요.
처장 : 하아 참. 지금 무슨 말씀을 하구 계신거에요? 그럼 평소에는 공부구 연구구 안하구 계셨단 말씀이세요?
이교수 : 그거 말구..그러니까 음.. 교육학 이런걸 공부해볼까 하고..
처장 : 뭘 해요?
이교수 : (주눅이 들어서) 교육..학..
처장 : 전자과 교수에 로봇공학의 권위자께서 뭘 하신다구요?
이교수 : 교...육..
#43. 복도
엿듣고 있던 만수. 누군가 어깨를 턱 치는 바람에 간이 떨어질 뻔해서 보면...
박교수가 뒤에 서있다. (다음날이므로 의상은 전과 다름)
박교수 : 뭐하세요?
만수 : 아 ...예 그게 그러니까... (열심히 손짓을 해보지만 말이 안나와준다)
박교수 : 잘 들려요?
만수 : 아뇨. 아니 예. 아니지. 그건 아니구..
박교수 : 도청기 원리 알아요?
만수 : 예?
박교수 : 그거 아주 쉬워요. 제작두 간단하구. 담부턴 그걸 사용해봐요.
만수 :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만수 줄행랑을 놓고. 박교수 혼자 웃으며 노크를 한다.
#44. 처장실
들어서는 박교수.
박교수 : 저 왔습니다.
처장 : 어서 와요. 아 여기 이희정 교수는..
박교수 : 압니다.
이교수 : (돌아본다)
박교수 : (이교수에게) 저 모르시겠어요? 저 학부때 박사과정이셨는데. 저 박기훈입니다.
#45. 동아리방
민재 축구로봇에 칩을 끼느라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
벌컥 문이 열리며 다급하게 들어오는 만수.
민재 그 소리에 칩을 놓치고 화가 나서 돌아보는데.
만수 : 민재야. 나 어뜩하냐.
민재 : 만수형. 이 칩 이거 얼마짜린줄 알어?
만수 : 나 망했다. (아무데나 주저앉으며) 난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냐.
민재 : (칩을 조심스레 주워들며) 왜 또.
만수 : 이교수님이 학교 그만두실거나봐.
민재 : (놀라 돌아보는)
만수 : 너두 알겠지만 나 이교수님만 바라보구 따라온 놈 아니니.
민재 : 지금 뭐라 그랬어.
만수 : 나 이교수님만 믿구...
민재 : (버럭) 그 전에!
#46. 석학의 집
쿵쾅거리며 들어서는 민재. 종이 한 장을 손에 들고 있다.
민재 : (버럭) 김정태.
채영이네와 한자리에 앉아 뭔가 얘기하며 웃던 정태 돌아본다.
민재 다짜고짜 다가오더니 그 앞에 종이를 거칠게 놓으며.
민재 : 너 여기다 서명해. 빈칸 다 채우고.
정태 : 뭐냐 이게.
민재 : 재입학원. 다시 복학하구 싶다구 거기 쓰란 말야.
정태 : (종이 보고 민재 보고 허 웃는)
민재 : 웃지마. 너 웃는거 보구 싶지 않으니까 (테이블에 있던 볼펜 들어 정태에게 던져주며) 빨랑 채워넣어.
정태 : 나 여기 다시 오구 싶은 생각 없어. 다시 얘기해줘? 나 여기 다시 와서 니들처럼 되구 싶은 생각. 없어.
민재 : 나두 너같은 놈 다시 와서 우리 옆에 있는 꼴 보구 싶지 않어.
보구 싶지 않은데 너 다시 와줘야겠어.
채영 : 민재야. 앉아. 앉아서 천천이 대화해.
민재 : (괜히 채영에게까지 화내어) 저놈하구 대화를 해? 저놈이 어떤 놈인줄 알어?
너는 내 친구야. 이러면서 맨날 떠들던 놈이 어느날 아침에 한마디두 없이 응? 단 한마디두 없이 내뺐어.
그리구 일년동안 전화 한통 엽서 한 장 안보낸 놈이야. 저런 놈하구 대화를 하라구?
정태 : (이제는 얼굴이 굳어있다) 그거냐? 그게 나 보자마자 한 대 갈긴 이유야?
민재 : 내 이유는 니가 알거 없구 그거 빨랑 안쓸거야?
정태 : 두 번 세번! 같은 말 하게 하지마.
민재 : (정태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버린다) 너 정말 나한테 죽게 맞을래?
정말 팰려고 주먹을 쳐들고...정태 거칠게 민재를 마주 잡고
주위의 사람들도 분분이 일어서고 왜 이래 말루 말루..등등..
둘을 잡아채어 간신이 둘을 잡아뗐는데...
민재 : 야 이 자식아. 이교수님이 학교 그만두신대. 니가 뭔데 우리 교수님 내쫓아.
채영 : (정태를 잡고 있다가) 뭐야?
민재 : (잡고 있던 재명을 뿌리치더니 겨우 좀 가라앉아서) 너 그렇게 도망치구 난 담에 교수님이 얼마나 맘고생했는줄 알어?
너 찾아서 느네 고향집까지 가셨던거 알어? 제자 한놈은 죽어버리구 제자 한놈은 도망쳐버리구.
그 마음을 알어? 아이큐 150인 놈이 그걸 왜 몰라? 이.. 이.. 지밖에 모르는 깡통같은 놈아.
잠시 정적이 흐른다.
정태, 아직 자신을 잡고 있던 채영의 손을 밀어내더니 아무 말없이 나가버린다.
그가 나가버릴 때까지 아무도 아무 말을 않는다.
#47. 밤 기숙사 전경
어두운 밤에 서있는 기숙사.
그리고 아래서 올려다보이는 옥상 부분...
#48. 옥상 밤
촛불이 켜진다. 옥상에 작은 젯상을 만들어놓고 있는 중이다.
초라하고 격식에는 안 맞는대로 과일 몇개와 북어도 올려져있다.
채영이 상 뒤에 스냅 사진 한 장을 세워놓는다.
민재와 채영과 정태, 그리고 영민이 나란히 서서 갖은 포즈를 잡으며 웃고 있는 사진이다.
채영과 만수와 민재가 둘러 서있다.
만수 :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는 듯 괜히 아나운서멘트 식으로) 에.. 그럼 지금부터
고 강영민군에게 보내는 메시지 낭독이 있겠습니다. 참석하신 여러분께서는 각자 한마디씩 해주시죠.
먼저 금녀의 남자기숙사에 목숨을 걸고 잠입해 들어오신 박채영양.
채영 : (좀 웃고 으음.. 망설이다가) 영민아. 거기 안춥니? 여긴 무지 춥다야.
음... 넌 거기서두 아직 여자 친구 없니? 사귀게 되면 너 아주 잘해줘야 된다.
(말이 떨어졌다. 옆에 섰던 민재를 쿡쿡 찌르는)
민재 : 어... 나 민재야. 뭐 별루 할말은 없구.. 잘 먹구 잘 살어라.
채영 : 야 거기서 뭘 먹냐 먹긴.
만수 : 어 정태야.
모두 돌아본다.
입구 쪽에 정태가 기대어 서서 보고 있다. 손에는 비닐 봉지를 하나 들고 있다.
모두가 바라보자 어색한대로 앞으로 나오더니 봉지에서 뭔가를 꺼내어 상에 놓는다. 군고구마다.
정태 : 너 이거 좋아했지. 식기 전에 먹어라.
모두 조용히 보는데...
물끄러미 사진을 바라보던 정태. 이윽고. 천천이 무릎을 꿇어 앉더니.
정태 : 영민아. ....나 이 말 하러 왔어. ... 미안하다. ...용서해줘.
숙연히 바라보는 모두.
촛불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앞 사진에서 웃고 있는 친구들..
#49. 밤 캠퍼스 전경
아무도 없는 밤... 그 중의 어느 건물... 불 켜져 있는 방으로... (이교수의 방)
#50. 이교수방
이교수 안경을 쓴 채로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노크소리.
이교수 : 네에.
문을 열고 들어서는 정태. 이교수가 돌아보자 고개를 꾸벅 숙인다.
이교수 어설프게 미소짓고는 안경을 벗어놓는다.
이교수 : 들어와 앉아.
정태도 어색하여 자리를 잡고 앉는다.
이교수 : 뭐 마실래?
정태 : 아뇨.
이교수 : ... 오늘이었나. 영민이 기일.
정태 : 예.
이교수 : 잘 치뤘구?
정태 : 예 친구들이 같이요.
이교수 : 그래... 니 말이 맞어. 솔직히 나 잊구 있었어. 영민이 기일. 나.. 오늘이 며칠인지두 잘 모르구 살거든.
정태 : ... (겨우 용기를 내어)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전에 제가 드렸던 말... 그거... 잘못했습니다.
이교수 : (보다가 조금 웃더니) 고맙다. 그렇게 말해줘서. 근데... 니 말이 다 맞어.
난 내가 살구 내가 공부하는 방식밖엔 몰라. 니들이 뭘 생각하는지 뭐가 어려운지 잘 모른다구.
선생으로는 영 빵점이야. (웃어보이는)
정태 :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바닥만 보는)
이교수 : 영민이가 그렇게 힘든 줄 몰랐었어. 난 그냥.. 걔가 석사가 되면 좋을거라구... 그럼 행복할거라구만 생각했지뭐.
니말대루 사실 석사 박사가 세상 전부가 아닌데 말야.
정태 : (갑자기 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 한 장을 꺼낸다. 무릎에 놓고 펴면서 망설이다가) 제가 여기 온거..
영민이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잘 생각해보니까. (사이) 그냥 무지하게 보고싶어서였습니다.
친구들이랑 내가 만들던 로봇이랑 또 그리구 ..
이교수 : (웃는) 거기 나두 끼니?
정태 : (얼른) 예.
드디어 둘의 시선이 마주친다.
이교수 웃는다.
정태도 어색하게 웃더니 들고있던 종이를 얼른 건네준다.
이교수 : 뭐니 이거.
정태 : 재입학원서입니다.
이교수 : (종이를 보고 정태를 다시 보는)
정태 : (벌떡 일어서더니) 다시 한번만 받아주십시오.
이교수 : (잠시 말을 못 잇다가) 다시 들어오면 너 4학년 다시 다녀야 돼.
정태 : 알고 있습니다.
이교수 : 등록금 지원은 더 없을거야. 너 등록금 내야 돼.
정태 : 공사판에서 벌어놓은 돈이 있습니다.
이교수 : .... 근데 정태야. 나 별로 변하지 못할거야. 여전히 마녀일텐데.
정태 : 제발.. 변하지 말아주세요. 교수님이 변하면 전 친구들한테 맞아 죽습니다.
이교수 : (미소가 떠오른다) 그래... 근데 너를 추천해주는건 나두 영광인데 내 추천만 가지군 안돼.
학사심의위에서 최종적으루 허락이 나야 돼.
정태 : 알고 있습니다. (미소가 떠오르더니) 문제 없습니다.
이교수 정태 마주보고 웃는다. 이제는 활짝.
#51. 학내 회의실 앞 복도
교수님 몇분이 얘기를 나누며 들어간다.
이만치에서 민재와 채영 만수가 그들을 훔쳐보고 있다.
#52. 회의실 내부
처장을 비롯한 교수들이 모여들고 자리를 잡고 있다.
#53. 학내 이발관
하얀 덮개가 펄럭이고 목에 둘러진다.
거울에 비친 모습. 정태이다.
정태, 거울 속의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이발사가 정태의 머리를 쓸어넘긴다.
#54. 회의장 내부
교수들이 회의 자료(정태의 복학에 관한)들을 돌려보고 있다.
#55. 회의장 앞 복도
민재네가 초조하니 기다리고 있다. 시계를 보기도 하고.
#56. 이발관
이발사가 정태의 머리를 깍아내고 있다. 아예 삭발로 밀어내는 중이다.
잘려진 머리칼들이 뚝뚝 떨어진다.
거울을 보고 있는 정태의 얼굴. 어쩐지 시원스러운 미소가 어리는 것 같다.
(삭발이 전부 다 된 모습까지는 아직 보여주지 않음)
#57. 회의장 앞 복도
기다리던 채영 어어 해서 본다.
저만치 정태가 달려오고 있다. 벙거지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
민재 : 아직 안 끝났어. 회의가 길어지는 거 같애.
만수 : 떨지 마. 떨지 마. 될거야. 날 믿어.
정태 : (심호흡을 몇번 하더니 회의장 문쪽으로 간다)
채영 : 어디 가?
민재 : 야!
그러나 미처 말리기도 전에 정태 회의장 문을 탕탕 두들긴다.
애들 놀라서 보는데 정태 문을 활짝 열어버린다.
#58. 회의장 내부
회의를 하던 교수들 놀라 돌아본다.
처장 : 무슨 일이에요?
정태 : (약간 겁을 먹은 상태이지만 용기를 내서) 재입학을 신청한 김정태라구 합니다.
처장 : (앞의 서류를 다시 보고는) 그런데?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에요?
학생 눈엔 여기 교수님들이 회의중인거 안보여요?
정태 : 저땜에 회의하시는 거 압니다. 그래서 왔습니다. (모자를 벗는다)
삭발 모습에 교수들도 좀 놀란다.
정태 : 머리두 깍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한번만 봐주십시오.
느닷없이 바닥에 넙죽 엎드리더니 큰 절을 올리고는 꿈쩍도 않는다.
처장 황당해하고 교수 중에는 허허 웃는 분도 있다.
#59. 캠퍼스
만수가 자전거를 열심히 달려 오고 있다.
아놀드가 오잉해서 돌아볼 정도의 전속력이다.
#60. 석학의 집
모여있던 아이들 미경, 진영까지 일제히 돌아본다.
만수가 터덜터덜 걸어들어오고 있다. 어쩐지 울먹거리는 얼굴이다.
채영, 만수의 그 표정에 걱정이 돼서 정태를 돌아본다.
민재 : (겁먹어서) 만수형.
만수 : (터덜거리며 걸어와 테이블의 물잔을 들어 마신다)
민재 : 뭐야? ...어떻게 된건데.
정태, 단념하여 시선을 돌린다.
그때 만수가 컵을 따앙 놓더니.
만수 : 됐어.
채영 : 뭐?
만수 : 됐다구. 정태 복학됐다구. 결정났어. 푸하하하하.
으악...비명이 들리고 아이들 일제히 일어나 만수를 패고 떠들썩.
그 와중에 정신을 차린 민재와 정태가 마주본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 툭툭 치다가 얼싸안는다.
#61. 캠퍼스 교문 쪽
스케이트 보드가 경쾌하게 달려 들어온다.
그때 울리는 호각소리.
노련하게 보드를 스톱시켜 서는 마이클. 달려오는 아놀드를 본다.
아놀드 : 어이 이봐. 차선에서 그런거 타면 어뜩게? 무슨과 몇학년이야?
마이클 : 오우 하우두유두. (악수를 청하며) 마이 네임 이즈 마이클 박. 두유 리브 인 히어?
아놀드 : (당황) 뭐? 어.. (악수 받으며) 하우두..
마이클 : 미스터...
아놀드 : 미스터? 오우 나 미스터. 아놀드.
마이클 : 야. 미스터 아놀드. 캔 아이 에스크 유 썸씽?
아놀드 : 오오.. 예쓰. 디스 이즈 카이스트. 오케이.
마이클 : 오우 노우 내가 묻고 싶은건요. 박기훈 교수님 아세요?
아놀드 : 오우 노우...(하다가 보면 상대가 한국말을 했다) 한국말루 한거야 시방?
마이클 : 네 쪼끔 해요. 박기훈 교수님 아세요? 나 그분 만날라구 왔어요.
나 MIT에서 왔어요. MIT 미국에 있어요. 미국 알아요?
그저 즐겁게 웃어보이는 마이클. 황당해서 보는 아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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