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미국인 여기자 패인 그린우드(Faine Greenwood)가 <더 패스터 타임스>(The Faster Times)에 2011년 10월 10일에 기고한 글을 '크메르의 세계'가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더 패스터 타임스>는 새로운 신문의 모델을 추구하는 언론인들과 작가들의 독립 언론이다. [크세] |
미국 여기자 탐방기 : 캄보디아 항구의 러시아 함상 파티
The Love Boat: Cambodian Russian Diplomacy
기고 : 패인 그린우드 (Faine Greenwood)
나는 캄보디아의 '시하눅빌 자치항구'(Sihanoukville Autonomous Port: PAS)에 정박한 러시아의 대-잠수함 호위구축함 위에 있었고, 열대성 폭풍에 속에서 배가 요동칠 때 내가 들고 있던 보드카 잔을 이 배의 헬리콥터 착륙장 위에 쏟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내 주위로는 러시아 해군 장교들과 그들의 캄보디아인 파트너들이 환담을 나누며 둘러서 있었다. 음향 시스템에서는 구-소련 스타일의 쇳소리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소말리아의 해적들과 싸우러 갈 러시아 해군 장병들은 모두 취해있었다. 그런 정도의 이유라면 충분히 취할만하다고 생각됐다. 누군가 내게 무엇을 첨가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블린(blin: 러시아 팬케익)을 갖다 주었고, 또 다른 이는 내가 간신히 이전의 보드카 잔을 내려놓자마자 추가의 잔을 들이밀며 권했다. 모두들 열심히 공부라도 하듯이 바깥의 폭풍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러시아가 캄보디아에 돌아왔다. 아니 적어도 그들은 짧은 방문을 했고, 이러한 방문은 더욱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나는 어찌하여 이렇게 많은 수의 러시아 수병들이 있는 배에 오르게 된 것일까? 나는 300명의 '러시아 태평양 함대' 소속 장병들이 해적들과 싸우기 위해 '아덴 만'(Bay of Aden)으로 떠나기 전에 언제나 따뜻한 시하눅빌(Sihanoukvill)의 해변에 잠시 들른 일을 취재하러 온 것이다.
이들 대부분은 대-잠수함 호위구축함의 이름으로는 꼭 들어맞는 '판텔레예프 제독 함'(Admiral Panteleyev)을 몰고 왔다. '판텔레예프 제독함'은 구난함 1척과 보급선 1척을 동반했다. 이번 방문은 러시아와 캄보디아의 수교 55주년을 기념하는 일이지만, 양측의 어느 누구도 러시아 연방의 해군 전함이 이전에 마지막으로 캄보디아를 방문한 것이 언제인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번 방문은 분명 그들에게는 축하할만한 일이었다.
캄보디아의 떼어 반 국방부장관.
이 러시안들은 6일 동안의 외교적 애정행각의 일환으로 캄보디아 및 러시아 해군 장교들과 외교관들, 그리고 여타 초대자들을 위한 칵테일 피로연을 열었고, 여기에는 기자들도 초대됐다. 기자들도 둥글게 모여섰고, 나도 그 안에 끼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를 포함하여 러시아 전함의 방문에 참석한 모든 이들은 가장 최악의 홍수 시점에 완벽하게 시기를 맞췄다. 일반적으로 지난 수년간 시하눅빌의 날씨는 화창했고 배낭족들이 모여드는 풍경이 일반적이다.
나는 시하눅빌 거리를 걸으면서 러시아 수병들이 언제나 웃음을 보이는 '스누키'(Snookie: [역주] 서양인들이 '시하눅빌'을 부르는 애칭)의 바걸들에게 슬라브 스타일의 온갖 희롱을 걸어대는 모습을 찾고 싶었다. 해군 병사들이 비틀거리며 서로 군가를 불러대고 보드카 병을 던져대는 모습을 찾아 기록하고 싶었다. 아니면 그 무엇이든 러시아 청년들이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거리는 쥐죽은듯 했다. '매춘부들'도 보이지 않았고, 바들도 문을 닫았으며, 심지어는 일상적인 평범한 업종들도 열지 않았다. 도시 주민 전체가 지붕에 방수천을 붙이고 있었고, 아이들과 기르던 동물들, 그리고 자동차를 침수지역에서 대피시키느라 열중했다. 그들은 배수시설이 열악한 가게와 주택들, 그리고 식당들에서 홍수를 대비하느라 열중했다. 만일 러시아인 청년들이 이런 날에 왁자지껄하게 더들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을 취재하려면 스노클 잠수용 장비를 갖추고 장티푸스에 걸릴 각오를 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러시아인들의 캄보디아 방문에 대해 내가 이토록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캄보디아와 러시아는 특별한 사이이다. 그것은 55년 전에 카리스마 넘치는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국왕의 치세에서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구-소련(USSR)은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을 붕괴시킨 후에 베트남을 지원했던 극소수의 국가였고, <1991년 파리평화협정>(Paris Peace Agreements)이 체결되어 캄보디아의 주권이 다시금 캄보디아 국민들의 손에 되돌아오기 전까지 국가를 통치했던 현재의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CPP)의 전신인 정권을 확실하게 지원했었다. 오늘날의 캄보디아 집권층은 그 점을 잊지 않고 있다.
우리가 '판텔레예프 제독함'에 도착하자, 말끔한 흰색 제복을 입은 한 러시아 수병이 내 손을 잡아 배에 오르도록 도와주었다. 배는 태풍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미적지근한 폭우가 들이치고 있었다. 나는 하이힐을 신고 온 일을 후회했지만,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레 이뤄진 일이었다.
러시아 해군 장교들과 수병들, 그리고 러시아 외교관과 러시아 보도진들은 모두 군대식 제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캄보디아측 인사들도 모두 제복을 입었는데, 만일 그런 제복을 입고 있다면 초청장을 대신할 법했다. 배의 한쪽 벽으로는 빔 프로젝트를 통해 러시아의 목가적인 농촌 풍경이 비춰지고 있었는데, 그 앞을 거니는 그들의 모습이 모두 위풍당당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배에 도착하자마자 곧 인파 속에 합류했다. 나는 곧 캄보디아의 떼어 반(Tea Banh) 국방부장관을 소개받았는데, 내가 처음에 그가 국방부장관임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그는 그 점에 대해 인자하게 이해했다. 그후로도 나는 수많은 사람을 소개받았다. 비록 폭풍과 폭우, 그리고 구-소련 스타일의 연회 음악으로 인해 그들의 이름이나 직업을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말이다.
술과 칵테일 파티가 벌어지기 전에 모두들 무언가 정치적 연설들을 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출렁거리는 배에서 정중한 태도로 서서, 캄보디아의 떼어 반 국방부장관과 '판텔레예프 제독함'의 안드레이 사프리킨(Andrey Saprikin) 함장이 통역을 매개로 하여 진행하는 연설을 들어야만 했다.
사프리킨 함장은 짧은 연설을 통해, "저는 이번 항구방문이 양국 간 협력과 정보교류에 있어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라고 말한 후, 양국 관계 증진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프리킨 함장은 자신의 잔을 들어올리며 기다리고 있던 청중들에게, "양국의 협력을 축하하기 위해 모든 술을 마셔버리세요"라고 권했다.
사프리킨 함장의 연설이 끝나자, 캄보디아의 떼어 반 국방부장관은 통역의 도움을 받아 약 100명의 러시아 대표단을 앞에 놓고서, "러시아 전함의 이번 방문은 양국 해군 사이의 관계와 협력을 증진시킬 것"이라 말했다. 그는 러시아의 관대한 자선과 도움이 캄보디아 군대를 유엔 평화유지군과 국제사회에서 보다 잘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러시아인들은 떼어 반 장관의 연설 중간에 잠시 틈이 생기자 그에게 보드카 잔을 건넸고, 그의 코 앞에서 잔들을 흔들어댔다. 배가 요동쳤기 때문에 장관은 간신히 잔을 받아들긴 했지만, 다른 손에 연설원고를 들고 있어서 마치 투계와 같은 모습으로 자세를 유지하려 했다.
장관의 연설이 끝나자 사프리킨 함장은 군중들에게 휴식을 유도하면서, "모든 음식들이 테이블 위에 차려져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내 남자친구는 연설이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가더니,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보드카야!"라고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 테이블로 몰려들었다. 테이블 위에는 보드카와 와인, 사과주스와 놀라울 정도로 알 수 없는 러시아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음식들은 이 배의 갑판과 거의 유사한 높이의 해치를 통해 계속 부충되었다. 해치 속에는 땀을 뻘뻘 흘리는 검게 그으른 러시아 젊은이들이 무더운 하얀색 주방 안에서 바삐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캄보디아 주재 러시아 외교관 한 사람이 롤 치킨 접시 주변을 돌다가 쭈삣쭈삣 내 옆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관찰은 나의 일이니까. 나는 그에게 "[캄보디아] 방문은 잘 돼 가요?"라고 물었다.
열대풍의 셔츠를 차려입은 그 외교관은 만족한듯 바라보더니, 공손한 태도로 롤 치킨 몇개를 내게 전해줬다. 그는 말했다. "좋네요. 우린 일년에 1번 이상 올 것 같애요. 수병들에게는 여기를 방문하는 게 무척 좋은 일이죠. 그들은 소말리아의 해안으로 가야만 하니 말이죠."
나는 "군인들은 여기서 뭐를 하죠?"라고 물었다. 그는 "저도 그들이 뭐하는지는 몰라요"라고 대답하고는, 눈썹을 조금 꿈뻑이더니 나를 향해 의미있게 노려보았다. 나는 "알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가 웃는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캄보디아와 러시아 사이의 관계는 어떤가요?" 그는 살짝 사색적인 목소리로 바뀌더니, "가장 큰 문제는 그들(캄보디아)이 우리에게 15억 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는거죠"라고 말하면서, 캐비아가 얹힌 빵 한조각을 내게 건네주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우리는 그 문제를 논의 중인데,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언젠가는, 언젠가는......"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 역시 영원한 낙관주의자들은 우리들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보다 부유하고 발전된 캄보디아를 그려보고 있을 것이다.
부유하고 베푸는 캄보디아에 대한 비전이 러시아 전함이 최초로 이곳에 정박하게 된 주요한 원동력이란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캄보디아는 경제적으로 고속 성장하고 있고, 수도 프놈펜 곳곳에서 맛있는 레스토랑들과 고층 건물 건설계획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프놈펜은 크메르루주 정권 이후의 전쟁의 폐허에서 상당히 멀리 벗어났다.
시하눅빌 항구에는 지금 약간은 겁먹은 관광객들을 가득 태운 노르웨이의 크루즈 선박도 정박해있다. 2010년에 34,000명의 러시아 관광객들이 캄보디아를 찾았고, 시하눅빌 시내에서는 러시아인 거주자들이 많은 수의 대중적인 비지니스들을 오픈했다. 그 중에는 뱀 요리 전문 레스토랑 겸 바도 포함된다. 러시아인들의 도래는 시하눅빌에서 확실히 조금은 두드러지고 있고, 프놈펜과 시하눅빌 모두에서 러시아 레스토랑들을 찾아볼 수 있다. 더욱이 과두독재라고 하면, 캄보디아야말로 참으로 뛰어난 견본을 구축해놓았는데, 러시아도 그 부문에서는 전문가 아닌가. 문화적으로 격차가 큰 사람들은 단순히 상대방을 '이해'한다.
내가 다음으로 대화를 나눈 사람은 니콜라이 니콜라육(Nikolay Nikolayuk) 대령이다. 그는 내가 처음에 이 파티에 올 때 도움을 준 사람인데, 나는 그 점에 대해 칭송을 했다. 그는 "이번 [전함] 방문이 그다지 좋진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최초긴 해요"라고 말하면서, 부분적으로는 날씨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음번 방문은 더 낫겠죠"라고 덧붙이며, 희망을 피력했다.
러시아인들이 자신들끼리 떠들거나 캄보디아 군 수뇌부와 대화할 때 술잔을 높이 치켜드는 것은 분명 그들 특유의 요소였다. 캄보디아 군대에서 많은 수의 나이든 인사들이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다. 그것은 그들이 젊은 시절에 구-소련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인데, 아마도 이 시간은 그들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캄보디아 해군의 하급 장교들과 정계 인사들은 선미 쪽에 모여들 있으면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안 드는 모양이었다. 일부는 보드카 잔을 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차가운 닭고기와 계란 생선튀김, 깊은 향취가 있을 것 같은 칵테일들이 있었지만 아무 것도 손대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일찍 자리를 떴다.
러시아의 젊은 대-해적 전사들은 좋은 시간을 갖고 있는듯했다. 그들은 홍수준비에 열중하는 시내 상황으로 인해 늘어졌거나, 갑판 위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허용되었다.
내가 대화할 사람을 찾아 갑판을 서성거리자, 붙임성 있는 한 청년이 내게 희롱을 걸어왔다. 나는 그가 아덴 만의 황량한 물 위에서 해적들과 싸우면서 잠시라도 생명줄을 찾을 모습을 머리 속에 상상했다. 그리고는 그에게 농담을 걸었다. 하지만 그는 '보이프렌드'(boyfrien)라는 영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이 점차로 다른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었으니, 안경을 쓰고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경호원이 되었다.
내 남자 친구가 보드카를 더 가지러 가자, 그 수병은 "저 친구 매우 크네?"라고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곧 오해는 풀렸고, 세 사람은 함께 보드카 잔을 건배했다. 젊은 수병은 "러시아로부터, 사랑과 함께!"라고 외쳤다. 이 문구는 다른 젊은 러시아인들도 이런 때를 대비해서 의무적으로 주의깊게 암기한듯했다.
연설이 끝나고부터 한시간 반 정도 흘렀을 것이다. 참석자들은 대단한 재치와 우아함을 가진 채 귀를 울려대는 연회 음악을 피해, 좀 덜 축축하고 좀 덜 시끄러운 통로로 살금살금들 내려갔다. 외교 성과도 얻어졌고, 우호의 쇼도 공연되었다. 파티의 목적은 성취되었다. 그 목적이 '재미'(fun)는 아니었으니까.
내 남자친구가 내 어개에 손을 두른 후, "자자, 우리 떠날까?"라고 말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하는대로"라고 동조했다.
그날 아침은 날씨상 2시간이나 길게 찾아왔다. 러시아 군인들은 항구 출입로 쪽으로 나와, 웃음을 딘 채 서로의 밝은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해변에서 다소 덜 축축할 어느날을 기약했다.
그들은 아덴 만으로 향할 것이고, 어젯밤에는 자국을 위한 외교적 임무도 수행했다. 그들은 캄보디아와 러시아 사이의 오랜 존경할만한 관계의 집사 노릇을 했다. 그들은 기관총과 칼을 휘두르는 바다의 도적떼들을 따라나서기 전에, 캄보디아가 제공하는 열대의 향취를 만끽해야만 한다. 그러한 열대의 향취야말로 캄보디아의 관광위원회가 모두들에게 상기시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가 상당한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아주 드문 순간이다. 그들은 행복해보였고, 나도 그들로 인해 행복했다. 날씨가 좋기를 바란다. 러시아 남자애들은 모두 열대풍의 셔츠를 입고 있었다.
* 필자소개 :
패인 그린우드(Faine Greenwood)는 올해 22세의 여성 언론인으로, 현재 캄보디아의 프놈펜에 거주하고 있다. 그녀는 '툴레인 대학교'(Tulane University)를 졸업했다. 관심 분야는 인터넷의 표현 자유, 비밀스런 음식, 아시아 역사이다. 그녀는 <내가 캄보디아에서 먹어본 것들>(Things I Ate in Cambodia)이란 블로그도 운영한다. 그녀는 18세기의 신사들이 탐험했던 방식을 비밀리에 시도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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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기사는 뭐랄까....
음...
하여간 신선하네요...
캄보디아 경제에 대해 지나친 낙관론만 빼면..
여성이 바라다본 밀리터리 컬쳐라는 점에서.,.
좀.. 신선하구만요..
어디서 이런 글 까지 찾아냈습니까??
크세의 겸둥이 보아즈 올림
젊은 여기자의 인상이.. 카리스마가 넘쳐서 눈에 확 띄더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