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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하늘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날 오후!
마당에 나가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한 줌 주워 들고 소녀 같은 마음이 되어 하늘을 바라보니 노란 은행잎과 파란 가을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도저히 그대로 지울 수 없어서 핸드폰을 들고 마당으로 다시 나갔다.
노란 은행잎과 구름 한점 없이, 마치 청정 바다처럼 맑은 가을하늘을 사진에 담았다.
마음가득 행복에 겨워 거실에 들어서는데 때마침 "따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자원봉사자 소감문을 준비해 달라는 황경애 회장님의 전화였다.
"아~~~
다른 선생님께 부탁하면 안 되나요? 시간도 없고 글 쓰는 것 정말 싫은데~~~"
"선생님 어쩔 수 없어요. 다른 분들은 이미 소감문을 한 번씩 다 냈다고 하시네요.
꼭 부탁해요."
갑자기 그렇게도 고운 은행잎이 눈이 시리도록 파란 가을하늘에 겹쳐 절경을 이루었던 그 아름다움이 내 마음속에서 싹 사라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울릉도에서 살고 있었을 때다.
어느 날 갑자기 교육청에서 하는 교육을 가기로 한 사람이 못 가게 되었으니 나보고 대신 갔다 오라는 지인의 전화를 받고 집단 상담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체 얼떨결에 그야 말로 떠밀려 <썬플라워호>배를 타고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대구에서 열리는 교육에 참석을 하게 된 것이 나의 상담자원봉사자의 첫 시작이다.
처음 상담 교육을 받고 학생상담자원봉사를 시작한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내게 상담이란 백 미터 달리기를 하기 위해 출발선상에 서있는 어릴 적 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초등학교시절 난 운동회 때만 되면 늘 선수로 뽑혀 나갔고 항상 일등을 하곤 했다. 운동회 때 상으로 받은 공책이랑 연필을 가지고 거의 일년 동안 쓸 수 있을 정도로 달리기를 잘 했지만 항상 긴장했던 기억 때문에 자다가도 그 때 생각만 하면 아직 가슴이 두근거린다. 백 미터 출발선 앞에 서기만 하면 가슴이 두근두근 하고 긴장감 때문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던 그 시절 ! 늘 일등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게 있었을까? 아직도 내가 남의 앞에 서고 말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가슴부터 쿵 내려앉고 긴장이 된다. 잘해야 된다는, 실수 하면 안 된다는 나의 성격 때문에 많이 힘들었고 아직도 힘들 때가 많다.
하지만 열심히 달리고 나면 좋은 결과가 있었고, 또 그로 인한 성취감과 뿌듯한 만족감이 있었듯이 그동안 여러 번의 보수교육과 중급 교육 등 많은 좋은 교육들을 받으면서 조금씩 내 모습이 변화되고 있음에 놀랍고 감사한 마음이다.
결혼 후 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 틀 안에 나를 가두어 놓고 살았던 나의 지금까지의 모습들을 변화 시키는 데는 상담교육은 내게 새로운 세상의 한 모퉁이를 더 알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한시간 한시간 아이들과 심성수련을 하면서 내가 자라고 있고 많이 변화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매번 감사하며 다시 용기를 얻기도 한다. 정말 감사한 것은 온가족이 나의 봉사활동을 기뻐하며 도와주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내 시간이 내 시간이 아니었기에 어디서 무슨 일을 해보려고 생각도 못했는데, 아주 부득이한 일이 아닐 때는 시간을 내니 낼 수 있게도 되었다. 남편은 매번 학생상담자원봉사 가는 학교까지 기꺼이 차를 태워주었고, 내가 힘든 상황에 처한 아이들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마다 내 고민에 공감을 해 주기도 하고 때론 적절한 대처 방법도 가르쳐주며 "그 아이들이 하나같이 다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또 내가 그 아이들을 바꾸어야 된다고 하는 생각을 버려야된다"고 충고도 해 주곤 한다. 이제 대학을 졸업한 딸도 감정코칭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또 제대해서 복학을 하여 심리학을 전공하는 아들 녀석은 "엄마! 다음 학기엔 엄마에게 도움을 드리기 위해 제가 <집단상담> 강의를 들어야 되겠어요" 한다.
내가 상담 교육을 받으면서 진작에 이런 교육을 받았으면 우리 아이들을 더 잘 키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항상 남는다. 그래도 부족한 엄마 밑에서 잘 자라준 아들 딸이 기특하여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상담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공부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또 읽고 싶은 책들은 아니 읽어야 할 책들은 얼마나 많은지 점점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첫 시간
집단상담 교육을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정말 초보자인 내가 군부대에서 첫 상담을 하게 되었다.
그 무더운 여름날 시작된 상담은 7월에 입대한 우리 아들을 생각하며 군부대 대원들과 <별칭짓기>와< 나의 참모습>을 시작으로 하루에 두 시간씩 5차시까지 무사히 마치게 되면서 조금은 용기를 갖게 되기도 하였다. 어설프고 부족한 나의 촉진자 모습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더 열심히 적극적으로 재미있게 상담에 임해준 <강스페로우>님 <수중폭파>님 <고마워사랑해>님 <열심히>님 <인맥의교차로>님 <철갑>님 <솔개>님 <불변>님 <윤희>님 <써니>님 <마루>님 등 해군부대 대원들과 함께 한 시간들은 입대한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상담을 마친 후에도 메일로 안부를 하기도 하고 전역하였다고 메일을 보내주기도 한 대원들을 우리 아들처럼 사랑하고 축복하며 좋은 추억을 갖게도 되었다.
그리고 한 시간도 빠짐없이 기꺼이 운전을 해주어서 해군부대 대원들과 5차시까지 무사히 집단상담을 마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도와준 남편이 참으로 감사하다. 내가 늘 떨리고 두렵다고 징징 거릴 때마다 용기를 주면서 자료도 챙겨주고 많은 도움을 아끼지 않은 남편과 방학동안 엄마의 내담자 역할을 기꺼이 대신해 준 딸에게도 고마운 마음 감출수가 없다.
특별히 상담에 왕초보인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수시로 아무거나 물어보고, 도움을 청해도 늘 친절하게 안내해 주고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사랑으로 보듬어 준 울릉지역 서봉화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다.
학교에서는 처음으로 상담을 시작한 울릉종고 해양 반은 나의 그동안의 편견들을 확실하게 바꾸어준 귀중한 배움이었다. 주변에 아는 해양 반 학생이 평소에 학교에 가 있어야 할 시간에 동네를 배회하는 불량한 모습을 보았던 터라, 해양 반 1학년을 맡으면서 걱정을 많이 하였다.
공연히 혼자서 이 아이들은 불량학생일거라는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겁을 잔뜩 먹고 소위 각오를 하고 첫 상담에 들어갔다. 하지만 고 1 학생들은 덩치만 컸지 마음은 순수하고 착한 너무 귀여운 우리 아들같은 모습들이었다.
<별칭짓기> 시간은 내가 부득이한 일이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다른 선생님이 대신해 주셨는데, 한 학생이 너무 힘들게 해서 곤욕을 치루었다는 말을 듣고, 두 번째 시간부터 그 아이에게 좀 더 관심을 주며 어설픈 집단 상담을 해 나갔다. 처음엔 내가 해야 할 촉진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면서 그저 한 시간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으로 만족해야만 할 때도 있었다.
다음날 상담수업이 있으면 그날은 밤새 멘트 연습하느라 머릿속에서 그날 상담할 내용만 맴돌아 밤을 하얗게 지새고 떨리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간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을 보는 순간 떨림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나도 모르는 용기가 생기곤 했다.
물론 장난도 치고 떠들기도 하고 딴 짓을 하는 어수선한 모습들도 있었지만 모두 모두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아들 같은 모습이었기에 받아 주고 들어 주고 제제도 하면서 조금씩 마음을 나누게 되었다. 한창 사춘기인지라 여자 친구에 가장 관심이 많았고 또 오토바이 타는 것과 컴퓨터 문제 등 내가 깜짝 놀랄 이야기들도 하곤 했지만, 그들을 나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지 않고, 저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들어 주고 있는 나의 모습에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그렇게 처음으로 10차시를 마치는 <사랑의 선물>시간에는 지금까지 친구의 모습 중에서 친구들의 장점과 칭찬을 적어서 마음의 선물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소극적이던 <물음표>님이 의외로 예리한 관찰력과 관심어린 피드백을 잘 해 주어서 오늘의 M.V.P로 선정 되기도 했다. 맑고 밝게 반짝 반짝 빛나는 십대를 긍정적으로 잘 보내고 훌륭한 청년으로 잘 자라 이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데 아름답게 쓰임 받는 모든 해양 반 친구들이 되라고 격려해 주고 모든 프로그램을 마쳤다.
그런데 첫 시간부터 가장 말도 안 듣고 힘들게 했던 <물음표>님이 나를 이뿐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하는 말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떠들고 힘들게 했는데도 잘 참아 주시고 이해하면서 잘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인사를 했다.
순간 입가에는 미소를 지었지만 내 눈에는 눈물이 핑 도는 것을 느끼면서
"물음표님? 그래도 여러분들이 떠들었던 것을 알기는 하는가요?"그랬더니, <물음표>님 하는 말,
"그럼요! 선생님! 저희가 처음 딱 보면 선생님이 착한지 우리를 정말 사랑하는지 금방 알아요." 라고 했던 말이 다시금 내 마음을 따듯하게 해 준다.
그리고 다른 아홉 명의 친구들이 내게 준 진심 어린 사랑의 선물들을 읽으면서 참으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 순수하고 따뜻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전에는 남편과 차를 타고 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학생복을 입은 아이만 보면 "여보 저기 우리 은혜 아니에요? 어! 우리 아들인가?" 하고 고개를 빼고 차창 밖을 내다보면, 남편이 하는 말씀
"갓 쓰고 수염 나면 다 자기 할아버지인가?" 라고 농담을 하면서 나를 놀리곤 했다.
우리 딸과 아들은 졸업하고 대학에 가고 없지만, 해양 반 심성수련을 같이 하고 나서부터 길거리에 학생들이 지나가면 다 우리 반 아이들처럼 보여서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고 우리 아들 같고 딸 같은 마음이 들게 되었으니, 참으로 이기적인 내가 얼마나 변화되었는지 참 감사한 마음이다.
학교도 우리 상담자원봉사자선생님들도 이런 집단상담은 처음 있는 일인지라 서로가 어색할 수도 있었을 법도 하지만 교감 선생님과 상담지도 선생님들의 자상한 배려가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해양 반 담임선생님은 문제아 반이란 오명을 씻고 일년 동안 결석 없는 반으로 만들기 위해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반을 이끌어 가려고 애쓰는 분이셨다. 그래서 매시간 결석없이 우리 반 10명이 한 회기를 재미있게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우산중학교에서의 집단상담 시간과 또 울릉종고 3학년 전체 성 교육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더 학생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가까워진 느낌을 받으며 즐겁고 신나게 (그래도 매번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한해를 보내고 울릉중학교 상담을 약속하고 첫 시간만 하고 성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환경이 달라지고 지역도 바뀌면서 개인적인 일들로 많이 분주하고 바쁜 날들을 보내게 되었고, 자연히 한 해를 학생상담봉사를 쉬게 되었다. 물론 성주교육청 자원봉사자들의 자상한 배려와 사랑으로 같이 교육에 참여하고 교제도 있었지만 1년의 공백은 나를 무척이나 게으르고 안일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한 해를 온전히 쉬고 성주중학교에 집단 상담을 들어갔다. 일 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떨리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러 갔고, 3학년 두 반을 맡게 되었다.
성주중학교 3학년들과의 만남은 내게 또 다른 배움의 시간이었고 나를 추스르는 시간들이었다. 가끔 집단에서 온전히 라포 형성이 되지 않고 있음을 느낄 때는, 촉진자로서의 자질에 회의가 오면서 참으로 많은 시간들을 힘들게 보내기도 했다. 정말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혼자 고민에 빠지기도 하면서 가족들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도 많이 했다.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교육을 가지 않으려 하면 남편이 옆에서 “그러면 앞으로 다시는 우리 앞에서 힘들다고 징징 거리지 마세요” 하면서 협박 아닌 협박을 해서 웃기도 했다.
봉사를 하다보면 너무 힘들어 한번 쯤 “지금 내가 왜 이일을 하고 있는지 회의가 와서 펑펑 울었었다”는 상담봉사를 10여년 넘게 하신 한 지인의 말에 공감이 갔다.
얼마 전 용암중학교 3학년 집단 상담을 들어가게 되었다.
용암중학교는 아늑하고 조용한 시골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는 참 소박하고 아름다운 학교였다.
자상하신 교장선생님의 배려와 친절하신 상담 담당 선생님의 도움으로
우리 반은 예쁜 공주4명과 멋진 왕자 4명 모두 8명이 한 조가 되었다.
기쁨으로 인사하고 <별칭짓기>와 2차시에 <장점찾기>를 하면서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면서 자기 노출과 공감으로 어느 정도 라포 형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음 시간 <나의 가족>에 대한 차시 예고를 하면서,
"여러분 정말 미안해요.
선생님이 될 수 있으면 상담수업을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인데,
이번엔 어쩔 수 없게 되었어요. 먼저 잡혀 있는 약속이 있어서 부득이하게도 다음주에는 다른 선생님이 대신 오실 거에요" 라고 말하자
"선생님!
그 약속이 우리 보다 더 중요해요?"
고운 눈빛을 가진 <마>친구가 나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집단상담 시간 내내 말도 많이 하지 않고 아직 쉽게 속마음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속이 깊고 생각이 많은 학생이라고 짐작은 했었는데, 차분하게 가지런한 속눈썹을 내리뜨면서 고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마> 친구가 한 말에
“미안해요. 오래 전부터 약속된 것이라서...”.
한 주가 지나고 4차시 상담을 들어갔다.
지난 시간 <상징가족화> 수업을 한 자료를 받아서 살펴보고,
'아~~,역시 내 생각이 짧았구나' 하는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개인적인 약속을 취소하고 아이들과 있었어야 했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고 후회가 되었다.
아이들의 표정과 태도에서 지난 시간의 공백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가족상징화>를 하면서 낯선 선생님과 했다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짐작이
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자기 가족의 이야기를 그것도 어려운 이야기를 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잘하는 친구들이야 착하게 잘 참여하는 모습이 참 대견하고 고맙다.
하지만 선뜻 마음문을 열지 못하는 몇 몇 친구들이 있다.
다음 수업이 있을 때까지 일주일 내내 마음을 맴돌며 생각나는 아이들은, 뭐라 할까 좀 튀는 아이들
즉 마음을 열지 못하고 무심한척 하는 아이들에게 항상 더 많이 마음이 가는 것은 아직,
내가 풀어야 할 숙제다.
"선생님!
그 약속이 우리 보다 더 중요해요?"
지난 일주일내 내 사랑이 묻어 있는 <마> 친구의 그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고
내 마음에 둥지를 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