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외식에 관하여
1) 하나님 앞에서
듣기에도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죄악인 거짓(시편 5:6)과 외식(마 6:1~18)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성도라함은 하나님께 진실함과 참된 것을 요구받고 있으며, 꾸밈이나 허레허식이 아닌, 사람들의 칭찬과 영광(시편 115:1), 인정을 구하는 것이 아닌(마 6:1, 5, 16) 오직 주의 칭찬과 하나님을 소망하고 의지함(딤전 6:17)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보여지는 거짓을 미워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분의 성품은 거룩하심을 인함(레 19:1~12, 벧전 1:15~16)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다니면서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실족하고 주변을 바라보며 실망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야할 것은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말씀하십니다.(롬 3:23)
사람은 아담의 불순종이후 죄를 짓기에 빨리 달려갔고 피흘림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이 아프고 어려울 때 고소하다, 잘 되었다며 악한 마음으로
그들의 아픔과 눈물, 그들의 모자람을 웃음거리와 비방거리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인간의 악함입니다.
예수님은 익히 인간의 이 악함을 잘 아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세상에 모든 만물보다 심히 썩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 말합니다.(렘 17:9) 무엇보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간사함을 아셨기에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마 15:19
이 말씀은 장로들의 전통과 관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너희가 장로들의 유전, 즉 전통적 관습을 없이 여긴다며 꼬투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만 번지르르한 이들의 행위와 의도를 말씀으로 응대하십니다.
너희가 말씀에 읽은 바와 같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거늘 너희는 그저 하나님께만 잘 드리면 그것으로 이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안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행위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거부하면서 어찌하여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보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되물으십니다.
그러면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이라 하십니다.바로 이것이 외식 아닙니까? 행위는 그럴 듯 하지만 온전한 순종이 아닌 하나만 지키면서 다 지킨양 그래서 자신은 매우 의로운양 으스대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행위가 말입니다.
이것은 사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을 숨긴 행위와도 비견되는데, 이러한 행위들의 드러남은 결국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가 아닌 사람들만 의식하며 신앙생활을 한다는데 있습니다.
입술로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지만 행위로는 전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이 보이지 않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의 삶을 가장 잘 보여준 인물 중 한명이 바로 요셉입니다.
친구들도 알다시피 요셉은 보디발의 가정총무로 섬기면서 보디발의 아내외에는 책임지는 권한을 가진 막강한 권력자였습니다. 그 때 요셉은 준수한 용모를 지녔고 젊은 때입니다. 마침 보디발이 집밖을 나간사이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유혹합니다. 심지어는 계략적으로 자신들의 하인들을 모두 보내고 단 둘만 있도록 유도하는 간사함은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분명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두 명이었지만
그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내가 어찌하여 하나님 앞에서 득죄하리이까
창 39:9
여기서 득죄한다는 것은 죄를 얻는다, 죄를 짓는다로 볼 수 있는데 지금이나 이전이나 간음은 죄입니다. 오늘날 미디어에서는 결혼한 사람이나 배우자가 있음에도 애인이니 친구니 하며 삼각관계를 그리는데, 이것은 성도된 우리가 배우지 말아야할 더러운 행위이며, 하나님앞에서 죄를 짓는 행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의 존전의식을 가진 요셉은 이러한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 중 한 사람인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편 119:11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말씀을 지키는 척, 거룩한 척, 깨끗한 척 다하면서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는 자기 멋대로, 자기 욕심대로, 교회는 교회고, 현실은 현실인 삶,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이 계시고, 현실에서는 하나님 없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쫓아가지 않는 삶,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자신의 마당이나 밟는 자라며 이들의 제사, 즉 예배를 원치 않으십니다. 역겹고 가증스럽다. 눈속임이나 하며, 하나님 앞에 나 왔다고, 나 예배드렸어? 하는 눈도장이나 찍으려 오는 이러한 삶을 미워하십니다.(사 1:1~12)
사람들도 우리의 행위가 그것이 진실인지, 의식적인 것인지 알거늘
하물며 우리의 심장을 해부하시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살피시며,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속일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잠 16:2, 시편 139:1~4) 하나님은 분명 진실함과 우리의 중심된 마음을 원하십니다.(삼상 16:7)
하나님 앞에 진실한 자는 사람들 앞에서도 진실합니다. 우리 중 아무도 죄에서 자유한 사람은 없습니다.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받은 자도 구원받을 자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이미 십자가 지심으로 얻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인함입니다.(롬 5:8, 엡 2:8~10)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려 오셨으며(막 2:13~17) 자기 백성들의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음이기 때문입니다.(마 1:21) 죄인이므로 모나고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 그대로 죄인을 부르러 오셨고,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롬 5:8) 십자가 죽으심, 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히 9:22)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하시고 죄에서 해방하셨으니(롬 8:1) 죄사함 받은 후, 예수님을 믿은 후에도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악을 마음껏 행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궁극적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으로(빌 2:8)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구원을 받아(요 20:31) 하나님과 화목되는(영생을 얻는)(요3:16) 것이지만, 또 하나의 뜻은 바로 거룩함입니다.(살전 4:3, 벧후 3:1~18)
거룩한 백성의 삶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본질적 성품으로(레 19:1~2) 그 분의 자녀 된 우리게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 자녀라면 마땅히 이렇게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신 법입니다.(출 20:1~17, 레 19:1~20:27)
거룩함이란 본질적으로 세상과 구별되다. 하나님의 성품의 깨끗하시고 정결하신 성품을 말하는 데, 이것은 그 어떤 죄와 죄악과도 섞일 수 없는 순전함임입니다. 그러므로 죄인 된 우리가 그 분을 보면 죽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죄와 같이 할 수 없는 분이심을 인함입니다. 바로 물과 기름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 또한 세상과 구별된 존재로서 세상과 섞일 수 없는 자임을 말씀하십니다.(롬 12:1~2) 몸은 세상에 있고, 세상에서 살아가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 자요,(빌 3:20) 몸은 대한민국 사람이나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요 주가 기르시는 백성임을 인합니다. (시편 110:3)무릇 우리가 대한민국 사람이기에 대한민국의 헌법에 준하여 살아가듯 또한 영의 신분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하나님의 뜻과 기준과 마음이 담긴 성경을 읽으며 말씀을 따라 준행하며 살아가는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구별되어 살아가야할 백성이 세상에 속하여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의 문화와 삶에 더욱 큰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지만 그의 말과 행실은 세상이 말하는 말과 행실이 그대로 반영이 되어 드러납니다. 말씀은 말씀이고, 그냥 교회에서 묵상하고 예배드리는 것이고, 일상에서는 말씀의 인도하심은 고사하고 게임과 미디어와 영화와 연예인 이야기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 되신 말씀의 인도하심(시편 119:105)과 말씀으로 살지 않는 삶은 죄악에 물들어 살기 쉽고, 세상의 영향에 더욱 영향을 받아 믿음의 삶을 놓치기 쉽습니다. 거짓과 위선은 말씀이 하나님이 아닐 때,(요 1:1~2) 하나님의 존전에서 살아간다는 마음이 없을 때, (창 39:9)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 더욱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보다 사람들의 눈만 피하면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때문 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은 어디에서 계시고, 찬양으로는 동행하신다 노래하지만 삶에서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믿지 않을 때 그의 삶을 죄악으로 치닫기 쉬운 것입니다.
오늘날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말씀이신 하나님, 그 진리가 믿는 사람들에게조차 무시되고 외면되는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살아가려 몸부림치고 기도하는 친구들이 오히려 교회 안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너무 예수님께 깊이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교는 그저 자신의 평안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있고 종교가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다 세상의 외침이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변질의 외침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주의 백성인 우리게 말씀하십니다. 그저 깊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신 6:5) 나 자신의 평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 말입니다. 그저 세상에서 좀 편하게 살아가는 편안함 수준이 아닙니다.(요 14:27) 세상은 내가 있고 종교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종교가 아닙니다. 자기 노력으로 믿음 생활하는 그런 노력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유일하게 신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는 신을 달래기 위해 소를 잡고, 돼지를 잡고, 인간을 제물 삼는 파렴치한 모습도 있지만 우리게 경배 받으셔야할 분, 우리가 경외해야 할 하나님, 신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빌 2:5~11) 이것이 세상의 종교와 기독교가 다른 점입니다.
앞서 우리는 들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조차도 내가 노력으로 믿게 된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인간의 좀 착한 행실로 구원받을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보심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간과하심으로 (롬 3:25)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구원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롬 3:26~28, 엡 2:8~10)
우리의 노력이라면 또 자랑하려 했을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높이기 좋아합니다. 이것은 바벨탑 사건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늘높이 당시의 문명의 이기로 탑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여기 우리의 이름을 높이자”(창 11:1~9)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진노하사 그들의 언어를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끈임없이 우리가 하나님께 지음 받은 피조물임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전 12:1~2) 나는 너희와 다르다. 너희가 함부로 부르고 망령되어 일컬을 하나님의 신분이 아니라 하십니다.(출 20:7)
우리는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지음받은 우리는 하나님, 저를 왜 이렇게 빚으셨죠? 반항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롬 9:9~24)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권한이요 주권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재능과 우리의 물질과 우리의 삶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것조차도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말입니다.(전 3:13) 그러므로 우리는 자랑치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자녀인 우리게 요구하시는 참된 자랑은 우리가 좀 똑똑하고 지혜 있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을 자랑하라고 하십니다.(렘 9:23~24) 무엇보다 우리 죄를 대속하신 사랑,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죽으심을 자랑하라고 하십니다.(갈 6:14)
근본적으로 성도인 우리는 나 자신과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요일 2:15~17)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마 6:33) 하나님의 영광,(마 5:16, 고전 10:31)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롬 14:7~8)
배병두
대구 서문교회 성종 고등부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