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늘 큰힘이 되어주시는 쌍샘의 모든 식구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멋지고 흐뭇한 소식 잘 보고 듣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의 공동체 잘 이루어가시길 두손 모읍니다.
한분 한분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치유나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 시편 90 : 10, 12 -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필리핀은 보통 3월에서 5월 사이가 일 년 중 가장 덥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모든 학교가 방학을 하게 되는데요. 이 곳 다바오도 예외는 아니어서 평소보다 조금 더 더운 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또 며칠 전에는 민다나오 북쪽에 위치한 마라위라는 도시에서 촉발된 정부군과 IS추종 반군 간의 총격전으로 민다나오 전체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고 그로인해 다바오 외곽을 비롯해서 도시와 도시 사이의 접경지역 곳곳에 경비와 검문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다바오는 비교적 안전하여서 저희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 섬기시는 교회는 어떠신지요?
여전히 녹록치 않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주님의 은혜로 평안하시지요?
아직은 성급히 판단할 수 없겠지만,
사랑하는 조국에서 전해져오는 훈훈한 소식들로 덩달아 행복해지는 요즘입니다.
이 훈풍이 사회 곳곳에 아름답고 풍요롭게 스며들기를 소망해 봅니다.
부족한 사람에게 그리고 저희 가정에게 보내주신 따뜻한 눈길과 손잡아 주심에 깊이 감사를
드리며, 그간의 주님께서 이끄셨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1. 지나온 이야기들
지난 2월 1일 치유나무(Healing Tree)클리닉을 오픈한 이래 지금까지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환자들을 치료해 드리며 섬겨 오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진료를 시작하기 전, 도나와 힐러리 그리고 제가 돌아가면서 그날의 환자들과 치료를 위해서 기도를 드리고 하루를 열지요. 그렇게 하루하루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맡기신 소임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3월 6일(월)부터 8일(수)까지 청주시 육거리 시장에서 연금매장을 운영하시는 김영복 장로님과 박정순 권사님 내외분이 저희를 깜짝 격려 방문 해 주셨습니다. 청주시청으로부터 전통시장으로 유명한 육거리시장에 대한 재정비 사업을 그 기간 동안에 한다고 바로 전 주에 연락이 왔답니다. 그렇게 해서 급히 비행기티켓을 끊고 부랴부랴 한 걸음에 달려 오셨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김영복 장로님께는 주님 안에서 참 사랑의 빚을 많이 졌고, 장로님이 보여주신 남 다른 헌신과 섬김 앞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든 장본인이시기도 합니다. 이곳에 머무시는 짧은 기간에도 길을 걷다가 딱하고 안 되어 보이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연신 얼마씩을 손에 쥐어 주십니다. 아이스크림가게에 가서도 그곳에서 처음 만난 한국선교사님들에게 밥값을 주시네요. 아마도 저의 기를 세워주시려는 의도도 있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면 지체 없이 한다.” 이게 장로님 삶의 모토였습니다.
장로님의 진가(?)는 파라다이스 해변에서 함께 수영을 하는 동안 드러났습니다. 탈의실에서 수영을 위한 반바지로 갈아입고 나오시는데, 분명 육거리시장 이웃 가게에서 사셨을 것 같은데 그 반바지가 얼마나 오래 됐고 구닥다리인지 고무줄이 늘어져서 속에 하얀 끈으로 잔뜩 붙잡아 매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바닷물에 입수를 하십니다. 스스로에겐 한없이 엄하고 박하면서도 남에겐 그지없이 관대하고 후한 진짜 하나님의 사람을 저는 보았습니다.
3월 17일(금)에는 도나(Dona)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한데 우물쭈물 못하고 있기에 무슨 일이 있는가 물어봤더니 자신의 여동생인 Jona(조나)가 어지럼증이 너무 심해서 출근을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조나는 다바오에 있는 대형 몰 가운데 하나인 G-mall에서 Guard(경비원)로 근무를 하는데 매일 11시간을 서서 일을 한답니다. 어느 날, 계속되는 어지럼증을 직장 상사에서 호소했더니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오라고 하루 시간을 내 주었다는군요. 아직 의료보험제도가 취약한 이곳에서 모든 병원비용은 개인이 감당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혹 저한테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했던 거지요. 당장 데리고 오라고 해서 침을 놔주는데,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고생하며 살아왔을 자매들 생각에 마음이 짠했습니다.
3월 20일(월)부터 22일(수)까지는 충북노회 은퇴 목사님이신 박정도 목사님께서도 깜짝 방문을 하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은퇴 후 6년간 중국 선교를 다니셨는데 최근 중국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새로운 선교지를 탐방하고 둘러보시고자 오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올해로 78세이십니다. 필리핀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시는데 그것도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야하는 다바오까지 그 초행길을 혼자 오셨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영원한 청년, 박 목사님의 열정과 도전에 깊은 응원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매일 같이 다양한 환자들을 치료하던 중에 4월 10일(월)에는 한 여자선교사님이 자신의 친정어머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이 어머님은 73세의 홍 집사님이란 분이신데,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 병수발을 17년간 하시고 작년에 그 남편을 주님 품으로 먼저 보내드리고 정말 오랜만에 선교사로 나와 있는 따님 댁에 나들이를 오셨던 겁니다. 17년간을 병수발을 하셨는데 당신의 몸은 또 얼마나 상했겠습니까? 그야말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셨더군요. 얼마나 환자를 부축을 하셨는지 어깨가 다 고장이 났고, 면역체계가 약해져서 오는 피부질환과 만성 관절염 등등. 따님 선교사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한국에는 노총각 오빠와 어머니 단 둘이 살고 있다고 하기에 딱 상황이 그려져서 약 3주간 머무시는 동안에 확실히 치료를 해서 돌아가시라고 당부를 드리고 정성껏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치료를 하면서 나름의 원칙이랄까? 섬김의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존경하는 성산 장기려 박사님의 삶의 한 자락을 벤치마킹했는데요.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모든 게 가난했고 부족했던 시절, 장기려 박사님이 부산의 복음병원 원장으로 계실 때, 가난한 환자들이 병원비가 없어 부탁을 하면 그때마다 당신의 월급에서 제해 나가다 마침내 그 월급이 동이 나고 말면, 당신을 찾아와 애원하는 환자들에게 소리 죽여 귓속말로 그렇게 얘기를 해 주셨다지요. “병원 뒷문 열어놨으니, 오늘 밤 담 넘으시오.” 이런 분들이 계셔서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저도 힐링트리를 찾아오시는 환자분들에게 형편이 되는 분들은 괜찮지만, 형편이 어려워 보이는 분들에게는 꼭 이 말씀을 드립니다. “여기에는 앞문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옆문도 있고 뒷문도 있으니까 언제든 여의치 않으면, 옆문과 뒷문을 편안하게 이용하셔도 된다”고 말이지요. 홍 집사님도 그렇게 앞문과 옆문으로 번갈아가며 치료를 해드렸습니다. 본인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임하시더니 얼마 후 눈에 띄게 몸이 좋아지셨습니다. 한국으로 떠나시기 전날, 포메론 한 상자를 사들고 찾아오셔서 감사 인사를 전하고 가시네요. 이런 게 보람이라면 보람이겠지요?
4월 27일(목)에는 진료를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작년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5개월 정도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 오던 낸시(Nancy) 아주머니가 드디어 지팡이를 버리고 조금은 어눌하지만 당당하게 걸어 들어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할렐루야! 마비된 한쪽 팔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드디어 치료의 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 저희 부부에게 시부아노학원을 소개시켜주고 직접 함께 가서 매니저와 인사를 시켜준 그리고 현지인 사역을 아주 잘 하고 있는 김상식 선교사로부터 부탁이 왔습니다. 섬기는 교회의 자매님의 남동생이 은행원으로 일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져서 급히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퇴원하여 집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는데, 몇 번을 함께 심방을 다니다가 제 생각이 났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30일(주일) 오후에 약속을 잡고 다바오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의 토릴(Toril)에 있는 환자 집을 방문하여 치료를 하고 그를 도와줄 조카에게 뜸 뜨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왔습니다. 이 친구의 이름은 Elmo(엘모)인데 우리 나이로는 40세의 전도유망한 은행 매니저였습니다. 그런데 그 만큼의 스트레스와 과도한 업무가 있었겠지요. 아직 결혼을 안 한 상태라서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고 매일 뜸을 떠줄 사람이 필요한데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내심 걱정을 하던 참이었는데, 이미 이 누나와 장차 목회자가 되길 소망하는 그녀의 듬직한 아들이 탁월한 결정을 하고 있었더군요. 그것은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조카가 전학을 와서 할머니 댁에 살면서 삼촌을 돌봐드리기로 했다는 것이지요. 이런 찐한 가족애를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요? 땀을 뻘뻘 흘리며 뜸뜨기를 배우는 착한 조카의 등을 힘차게 두들겨주며 격려해 주고 또 축복해 주고 왔습니다.
저는 매일 아내가 싸주는 도시락을 가지고 출근을 합니다. 점심시간이 되면 도나와 힐러리는 가까이에 있는 리조트 매점에서 밥 한 그릇과 반찬 하나씩을 사와서 클리닉에서 함께 나누어 먹고 잠깐 쉬는 시간을 갖습니다. 5월 9일(화) 그날도 여느 날처럼 점심을 먹고 막 쉬려고 하는 찰나에 지난 번 구완와사가 왔던 김승규 선교사가 사모님과 함께 급히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그러면서 점심을 먹다말고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지고 마비증상이 시작되어서 급히 오게 되었노라고 합니다. 맥을 짚어보니 모든 맥이 현저히 낮습니다. 하나님과 본인만이 아는 어려움과 아픔들이 있었겠구나 하고 짐작을 합니다. 치료를 해드리고 한결 좋아진 모습으로 부부를 보내드리고 그대로 오후 예약 환자들을 진료하고 퇴근을 하여 집에 와서 샘이와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라면 물을 올리고 면을 막 넣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립니다. 저에게서 치료를 받고 계시는 다른 선교사님이신데, 지금 김승규 목사가 호흡곤란이 와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는 겁니다. 급히 차를 몰고 가는 내내 여러 생각이 스칩니다. 다행히도 응급실에 도착해서 보니 환자는 의식이 또렷하고 심전도를 체크하고 있더군요. 자초지종을 물어봤더니 낮에 침을 맞고 와서 한숨 잘 자고 일어났는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숨 쉬기가 곤란해지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지난 주일에 하루 종일 금식을 하고 다음 날에 잡곡밥을 많이 먹었는데 그날 이후부터 속이 좀 좋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네요. 병원 측에서는 다른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기를 추천했지만, 알겠다고 해놓고 김승규 목사 집으로 가서 열 손가락 발가락을 따서 피를 짜내고 등을 두들겨 주었더니 그~윽 하면서 트림을 합니다. 급체였던 것이지요. 이제 진짜 살아난 모습을 보고 안도하며 집에 돌아왔더니 아까 그 라면이 세 배나 불어있더군요. 덕분에 허기진 배를 넉넉히 채울 수가 있었습니다.
5월 23일(화)에는 민다나오 전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가 되었습니다. 문제의 발단이 된 도시 마라위는 다바오와는 그래도 거리가 있는 지역이라서 큰 동요는 없었지만, 아무튼 조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25일(목), 한국에 있는 누이로부터 한통의 카카오톡 문자 메세지를 받았습니다. 증평에 계신 아버지께서 꽤 여러 날 소화가 잘 안되고 황달이 심해져서 청주 좀 큰 병원에 가서 진찰을 했더니 간암 4기라고 하는 진단이 나왔다는 문자였습니다. 어머니는 저희들이 걱정한다고 끝까지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사실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 예상을 했지만, 너무 일찍 와버린 현실 앞에 마음을 좀 추슬러야 했지요. 며칠 후 충북대학병원에 입원하셔서 정밀검진을 받았는데, 간암이 아닌 담관암 4기에 간에는 5~6센티 크기의 혹이 있다고 하네요. 저희 아버님을 위해서 두 손 모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원래 계획에는 없었는데, 재발급 중인 비자가 나오면 대략 6월 말이나 7월 초쯤 가족들과 함께 저도 한국에 가려고 합니다.
아버지의 밥그릇
- 안효희
언 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으면
봉분 같은 아버지 밥그릇이 쓰러졌다.
늦은 밤 발 씻는 아버지 곁에서
부쩍 말라가는 정강이를 보며
나는 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아버지가 아랫목에 앉고서야 이불은 걷히고
사각종이 약을 펴듯 담요의 귀를 폈다.
계란부침 한 종지 한환 밥상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밥을 남겼고
우리들이 나눠먹은 그 쌀밥은 달았다.
이제 아랫목이 없는 보일러방
홑이불 밑으로 발 밀어 넣으면
아버지, 그때 쓰러진 밥그릇으로
말없이 누워 계신다.
2. 앞으로의 이야기들
저와 아내의 모교회인 증평교회에서 6월 중순 경에 이곳을 방문하기로 되어있어서 비행기티켓도 미리 끊고, 호텔도 다 예약을 마쳤고 함께 봉사할 산간 마을과도 얘기를 해 놓은 상태인데 갑자기 계엄령이 선포되는 바람에 이 모든 계획이 취소되고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참에 며칠 진료를 쉬어야지하며 내심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꿈은 사라지고가 되었지요. 실제 마닐라 근교가 아닌 이 먼 곳까지 선교팀이 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주시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한 위로와 격려가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 지면을 빌어 모교회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힐링트리 클리닉(Healing Tree Clinic)을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곳을 통한 아름다운 치유사역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그 날 그 날 보내주시는 환자분들을 정성껏 맞이하고 진짜 의사선생님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인지해 드리고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여 치료해 드리는 일, 그 속에서 기쁨과 감사를 놓치지 않는 일이 저에게 주어진 길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 일이 더 복되고 든든하게 서가도록 하기위해서 체력적인 그리고 영적인 안배를 잘 해야겠다고 늘 마음먹고 있습니다.
살아온 날들과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헤아려 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주님께서 권면을 하시네요. 저희가 이곳 다바오에 도착한 지도 만 4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은혜로 살아 온 4년의 세월과 앞으로도 은혜로 살아 갈 날들을 기대하며 소박하지만 충직한 종으로 한결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기를 소망해 봅니다.
보내주시는 뜨거운 응원과 함성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그 힘이 아니었으면 또한 어떻게 이곳에 존재했을까요? 고맙습니다.
늘 강건하시고 주님의 은혜가 삶의 자리마다 가득히 넘쳐나시길 기도드립니다.
2017년 5월 31일
선교지 민다나오 다바오에서
이영일, 손희종, 이봄, 이가람, 이샘 올림
* 기도제목 *
1. 힐링트리 클리닉을 통해 온전히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도록
2. 힐링트리를 통한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넘쳐나도록
3. 치유의 도구인 저와 도나, 힐러리가 영육 간에 강건하도록
4. 저희 아버님이 잘 견디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