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자전거 탄 소년」
박태식 신부 / 신약학, 영화 평론가
아빠는 정말 나를 버린 걸까?
보육원에서 지내는 11살 소년 시릴(토마 도레)의 꿈은 잃어버린 자전거와 소식이 끊긴 아빠(제레미 레니에)를 되찾는 것이다.
어느 날, 아빠를 찾기 위해 보육원을 도망친 시릴은 자신의 소중한 자전거를 아빠가 팔아버렸을 뿐만 아니라, 아빠가 자신을 버렸음을 알게 된다. 아빠를 찾던 시릴을 우연히 만나 그의 처지를 알게 된 미용실 주인 사만다(세실 드 프랑스)는 시릴에게 주말 위탁모가 되어주기로 한다.
그러나 시릴은 아빠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아빠를 찾고 싶어하고, 그런 시릴을 보며 사만다는 안타까워한다. 한편, 동네의 문제아로 알려진 웨스(에곤 디 마태오)는 시릴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고, 사만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릴은 웨스와 가까워지게 되고 커다란 사건마저 치게 되는 과정에서 시릴이 성숙해 져 가도록 사만다의 헌신적인 봉사와 노력이 돋보인다.
2011년 칸영화제는 다르덴 형제의 작품<자전거 탄 소년>에 심사위원대상을 안겼다. 칸영화제를 뜨거운 기립박수로 뒤흔든 <자전거 탄 소년>은 유러피언 필름 어워즈 각본상 수상에 이어 런던영화제, 뉴욕영화제, 시카고영화제, 뭔헨영화제, 카를로비바리영화제 등 전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영되며 만장일치의 극찬을 받았다.
어린이는 그저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몸이 점점 자라 어른의 체형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그를 진정한 어른이라 부르려면 필요충분 조건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한다. 이를테면, 독립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는가?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만일 가정까지 꾸리고 있다면 과연 그에 마땅한 희생을 감수할 수 있는가? 등등 각각이 처한 입장에 따라 얼마든지 어른 됨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시릴은 절망적인 처지에 빠졌다. 엄마는 오래전에 어디론가 사라졌고 같이 살던 아빠마저 아들을 보육원에 맡긴 후 나타나지 않는다. 아빠를 향한 그리움에 시릴은 보육원을 탈출하고 아빠가 이미 종적을 감추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아빠는 시릴이 목숨처럼 아끼는 자전거까지 팔아 치운 채 사라진 것이다.
수소문하여 겨우겨우 찾아간 아빠에게서 돌아온 한마디는‘더 이상 연락을 취하지 말라'였다. 아빠를 만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시릴은 스스로 얼굴을 할퀴고 차창에 머리를 찧는다. 세상에 홀로 남은 11살 소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일 것이다.
영화는 그처럼 절망에서 시작하고, 관객은 자연스럽게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감독은 희망를 제시하는 데 서두르지 않는다. 얼마나 잔잔하게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온 후에도 ‘이게 뭐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우선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에서 배경음악으로 삽입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가 몇 번 나오는지, 또 어떤 장면일 때 나오는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볼 것, 사만다에 대하여 깊이 생각을 해 보는 것이 좋다. 수돗물을 계속 틀어 놓고 버티던 시릴의 안타까운 마음 상태, 자신을 헌신적으로 도와준 사만다를 칼로 공격한 장면, 시릴이 나무에서 떨어진 후 툴툴 털고 자전거를 타고 사라진 장면 등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영화가 결론으로 치닫던 무렵 시릴 자신의 어린이용 자전거에서 사만다의 어른용 자전거로 바꿔 타는 장면이 나온다. 시릴의 삶에 큰 변화가 찾아온 순간을 보여주는 중요한 은유이다. 그리고 시릴의 매정한 아버지와 나무에서 시릴을 떨어뜨리게 만든 소년의 아버지가 대비를 이루었고 마침내 사만다가 시릴의 눈에 들어 온다. 이 영화에서 사만다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버지를 찾는 시릴의 여정에 늘 함께 하고 시릴의 막무가내 행동을 모두 받아 준다. 어떤 악조건 하에도 도움이 필요한 시릴을 끝까지 도와준다. 심지어 칼로 자신을 찌른다 한들 그녀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외롭고 거칠었던 시릴은 이제야 엄마를 갖게 되었고, 관용이라는 말의 의미를 터득하게 된다. 드디어 어른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 셈이다. 바로 여기에서 감독은 진정한 의미의 가족은 혈연을 뛰어 넘는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