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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液 ;눈물, 침, 정액, 진액, 피, 땀, 액.
七竅 ;양눈, 양귀, 양코, 입. (耳目口鼻總明道通)
七情 ;喜, 怒, 哀, 樂, 愛, 惡, 慾.(五慾=財物慾,名譽慾,食慾,睡眠慾,色慾)
얼굴오행
木 東方 靑龍 肝(龍煙 含明(두눈에 통함)좌뺨 魂 靑童神公子, 怒, 酸, 眼, 쑤쓨
火 南方 朱雀 心(丹元 守靈)이마 神, 喜, 苦, 舌, 허어
土 中央 黃色 脾(常在 魂停) 코 靈 錦衣 中部老君, 思, 甘, 口, 후우
金 西方 白虎 肺(皓華 虛成)우뺨 魄 오장육부의정화 白元眞君, 悲, 辛, 鼻, 쓰으
水 北方 玄武 腎(玄冥 育瓔) 턱 精, 恐, 鹹, 耳, 취이
前三關 : 上丹田
中丹田 壇重
下丹田
後三關 尾閭
협척
玉沈
깨어있을 때 元神은 泥丸에
잠잘 때에 元神은 心腸에 위치한다
腎腸. ; 左 腎水 眞陰 精.
右 命門 眞陽 氣 相火.
하늘의九星
貪狼, 거문,祿存, 文曲, 염정, 무곡, 파군, 좌보목, 우필토.
腦의九宮
1.雙丹宮, 2.明堂宮 3.泥丸宮, 4.流珠宮, 5.大帝宮, 6.天庭宮
7.極眞宮, 8.玄丹宮 9.太皇宮.
이름 자
머리털 창하 태현
뇌신 精根 泥丸
두눈 明上 英玄 =左眼(日) 英明 + 右眼(月)玄光
코 玉롱 영堅
귀 空閑 幽田
혀 通命 正倫
이빨 악봉 羅天
膽 龍曜 威明
日月五星 歲星(木星)東
太白星(金星)西
榮惑星(火星)南
辰星(水星)北
鎭星(土星)中央
肺의 外部六氣
風, 寒, 署, 濕, 燥, 火
人體의 六氣
精, 氣, 津, 液, 血, 脈.
三魂(肝에 위치함)
太光(純陽和之氣)
爽靈(陰氣之變氣)
幽精(陰氣之雜氣)
七魄(肺에 위치함)
尸狗
伏矢
雀陰
呑賊
非毒
除穢
臭肺
腎腸 眞陽(命門)右 相火
眞陰(腎水)左
三焦 上焦 天氣
中焦 穀氣
下焦 血氣
脾腸 後天生命活動의 原泉
三十六宮= 十二正經+二十四脊椎骨. 腰椎=五大廣門
胸椎=十二大門
頸椎=七星門
人身三寶= 精, 氣, 神.
人體 形藏 머리, 눈과 귀, 입과 이빨, 가슴속.
神藏 肝(魂),心(神), 脾(意), 肺(魄),腎(志).
인신삼부
입(天關)精神, 意志
발(地關)湧泉穴
손(人關)掌心穴
천기주관(咽)喉, 12고리형태(重堂)
귀밑 머리털과 머리카락은 심장, 비장과 통함.
印堂은 太乙神거처.
性靈精氣神魂魄
貪淫瞋痴를 삼가라.
입을 다물고 혀를 말아라. 혀밑(현응혈=甘露水가 나온다.)
곡식은(陰精), 오미에 집착하지말라 精氣神이 탁해진다.
五辛菜= 붗부추, 자총이, 마늘, 평지, 무릇.
六畜= 牛, 馬, 羊, 豚, 犬, 鷄,
비린생선
두 눈은 五臟六腑의 核
靜觀內照
子 會陰
午 百會
卯 협척
酉 단중
五臟六腑의 守門將인 耳目口鼻를 法道에 어긋나지 않게 制御하라.
消業積德道完
헛된 모든 생각을 그치고(止) 비추어살핀다.(觀)
(回) (光)
마음을 흩어진 것 없이 한곳에 모운다(定)
슬기의 빛이 조용히 비치게 하나.(慧)
雙修=止-觀-止-定-慧
心息相依 마음과 숨이 서로 붙어서 의존한다.
散亂과 昏沈이 없어야 한다.
호흡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가늘어지고(細)맑아진다(淸)
水(1,6) 火(2,7) 木(3,8) 金(4,9) 土(5,10)
八正道
1. 바른 견해(正見).......................(sammā diṭṭhi)
2. 바른 사유(正思惟)...................(sammā saṅkappa)
3. 바른 말(正語)...........................(sammā vācā)
4. 바른 행위(正業).......................(sammā kammanta)
5. 바른 생계(正命).......................(sammā ājīva)
6. 바른 노력(正精進)....................(sammā samādhi)
7. 바른 마음챙김(正念)................(sammā sati)
8. 바른 삼매(正定)........................(sammā samādhi)
호흡을 단련하여 생명의 질을 높여라.
天符經 解設
一始無始一 新三極無盡本 天一一地一二人一三 一積十鉅無匱從三 天二三地二三人二三
일시무시일 신삼극무진본 천일일지일이인일삼 일적십거무궤종삼 천이삼지이삼인이삼
大氣合六生七八九衷三四成環五七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一終無終一
대기합육생칠팔구충삼사성환오칠일묘연만왕만래용변부동본본심본태양앙명인중천지일일종무종일
※ 농은 선생의 갑골문자의 원본에 따른 해석
■ 一始無始一 : 일一[태극太極]이라는 것은 시작하되, 시작하지 않는 자리를 일一[태극太極]이라고 한다. 도道[太極]는 시작하되, 시작하지 않는 자리를 도道[太極]라고 한다. 도道는 시작하되, 시작이 함이 없는 것을 도道라 한다.
註 :도道라는 것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굳히 표현 하자면, 중中, 허虛라고 합니다. 이 자리는 텅 비어 있지만, 만물이 시작되면서, 시작되지 않는 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자리로서, 시작도, 끝도 없는 자리이며, 시작과 끝인 자리입니다. 시始, 무시無始는 도道의 근본 성질입니다. 마치 우리의 마음을 생각하면 됩니다.
■ 新三極無盡本 : 세 개의 극極[현상으로 드러남]으로 만들어지나[새롭다는 뜻은 낳는다는 뜻], 그 근본은 다함[盡]이 없다.
註 :나누어져서 세 개의 큰 물건[그릇, 즉 천天, 지地, 인人]으로 낳데, 근본은 다함이 없다, 물질로 드러나도 근본이 마르거나 줄지 않는 자리이다. 극極이란 것은 드러남의 극치를 말합니다, 곧 폐가 운동을 하면, 숨을 내쉼과 들이쉼을 호흡이라고 하듯이, 도道의 드러남을 극極이라 합니다.
■ 天一一地一二人一三 : 하늘[天]이 가진 본래의 성품性品[一, 太極]을 일一이라 하고, 땅[地]이 가진 본래의 성품性品[一, 太極]을 이二라 하고, 사람이 가진 본래의 성품性品[一, 太極]을 삼三이라 한다.
註 :천天, 지地, 인人 공통적으로 도道의 성품性品[太極]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한다.
천天, 지地, 인人을 구별 짓기 위해 1, 2, 3 이라 했다[三極].
■ 一積十鉅無匱從三 : 하나씩 쌓여서 십十이 되는데, 마땅히 담을 그릇이 없어 사람[三]으로 따라 나온다.
註 : 1 에서 음양陰陽[ 2 ]이 나오고, 중中을 합쳐 3 이 나오고, 음양陰陽이 나뉘어 수水, 화火, 금金, 목木의 4 가 나오고, 중中과 사상四象을 합쳐 5 가 나오고, 각각의 오행五行이 음양陰陽으로 나뉘어 [6, 7, 8, 9, 10] 10 이 나옵니다. 이 음양陰陽 오행五行의 기운을 담을 그릇이 만물[三] 즉 생명체로 나온다[화한다]. 즉 도道는 반드시 생명체로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고서古書에 보면 도기道器[도道의 그릇]을 곧 사람으로 말합니다. 그릇[器]이란 형상을 가진 물건을 말합니다. 그릇[器]을 궤櫃라고도 합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도 도道를 가지고 있습니다.
■ 天二三地二三人二三 : 하늘의 [본래 가진 성품性品[一, 太極]이] 음양陰陽[二]이 되어 곧 삼三[陰, 陽, 中]을 이루고 땅도 [본래 가진 성품性品[一, 太極]이] 음양陰陽[二]이 되어 곧 삼三[陰, 陽, 中]을 이루고 인간도 [본래 가진 성품性品[一, 太極]이] 음양陰陽[二]이 되어 삼三[陰, 陽, 中]을 이룬다.
註 : 한마디로 천天, 지地, 인人이 같은 중中[太極], 음陰, 양陽의 기운을 가지고 있음을 설명한 것임. 앞구절에서 보면, 천天, 지地, 인人이 모두 일一을 가지고 있고, 그 근본 자리 일一이 이二[陰, 陽], 삼三[陰, 陽, 中]이 되는데, 천天, 지地, 인人 모두가 같은 도道의 근본[本]과 변화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 大氣合六生七八九 : 큰 기[大氣]가 합하여 육六이 되고, 칠七, 팔八, 구九를 만든다.
註 : 큰 기[大氣]가 되어 합하여 6 이 되고 7, 8, 9 를 만듭니다. 6, 7, 8, 9 는 힘으로 변화시키는 법도로써, 사람이 하늘의 도道를 몸소 체험하는 법도로 쓰이며, 중中과 음양陰陽이 변화하여 6[1], 7[2], 8[3], 9[4]를 만듭니다. 1, 2, 3, 4 는 원래의 하늘에서 본디 주어진 법도로, 하늘이 사람의 몸을 다스리는 법도로 쓰입니다. 1, 2, 3, 4 는 체體이고 6, 7, 8, 9 는 용用입니다. 6[水], 7[火], 8[木], 9[金]을 말합니다. 6 은 곧 一水를 말하며, 합한다는 것은 태극太極과 음陰, 양陽이 하나로 뭉치어 처음의 육六[북방 一水]으로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1, 2, 3, 4 는 본래부터 하늘이 사람이 태어날시 주어진 것이라 생략했습니다. 사람이 도道를 체험할때는 토土[五, 土, 心]를 토대로 하여 6, 7, 8, 9[水火金木]를 체험합니다.
곧 복희팔괘伏羲八卦의 하도河圖와 문왕팔괘文王八卦의 낙서洛書로 팔괘八卦와 구궁九宮에 대하여 공부하면 이해가 갑니다. 하도河圖는 조화를 기다리는 형체이고, 낙서洛書는 조화를 흘러 돌아가게 하는 형제입니다. 이를 이루는 것은 중中, 음陰, 양陽이 바탕이 돼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수 천년 전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 衷三四成環五七 : 삼三을 통하여 사四를 만들고 오五와 칠七로 둘러싼다.
註 : 음양오행陰陽五行의 이치를 말한 것이다. 토土, 음陰, 양陽[三]에서 음양陰陽이 두 개로 갈라져 움직이면 사상四象[水, 火, 金, 木]을 이루고, 이는 곧 오행五行[木, 火, 土, 金, 水]와 칠행七行[陰, 陽, 木, 火, 土, 金, 水]의 고리 모양의 오행도五行圖를 만든다.
오행상생도[左]와 오행상극도[右]
토土는 본래 비어 있는 자리입니다. 잘 보면 고리[環, 고리 환], 반지 모양으로 둘러 쌓여있고, 오행도五行圖를 사상四象이 둘러 싸고 있어, 반지[고리]모양이다.
■ 一妙衍萬往萬來 : 도道의 오묘함은 넘쳐서, 만물을 가고 오게 만든다.
註 : 하늘[道]의 이치가 오묘해서 넘쳐나, 모든 만물을 만들기[生]도 하고, 거두기[收]도 한다.
■ 用變不動本 : 도道의 쓰임은 변하나, 근본이 되는 자리는 변하지 않는다.
註 :도道의 쓰임은 변화로써 나타나나, 그 본래의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 本心本太陽 : 본래의 마음은 크게 밝은 것이 근본이니,
註 : 사람의 마음은 본래 크게 밝고, 어진 것[仁]이 근본입니다. 본래 하늘이 내려준 성품性品이 크게 밝고, 어진 것이 본성本性입니다.
■ 昻明人中天地一 :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밝음에 올라서라. 천지天地 중에 으뜸[첫째]이니라.
註 : 사람의 밝은 성품이 천지天地에서 제일 존귀尊貴하다는 말입니다. 원래 근본이 크게 밝은 것이니, 마음을 크게 밝게 가지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중中은 사람의 본성자리[虛, 텅빔]를 말합니다. 마음을 텅비워서 마음을 밝게 가져라. 그 성품性品이 천지天地중에서 으뜸이니라.
■ 一終無終一 : 일一은 끝나되[終], 끝나지 않는 자리를 일一이라 한다.
註 : 도道의 본 자리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며, 시작이며, 곧 끝이 되는 자리이다. 다함[盡]이 없는 자리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화를 내면 氣가 위로 올라가고 기뻐하면 氣가 풀어지고 슬퍼하면 氣가 자지러지고 무서워하면 氣가 아래로 내려가고 놀라면 氣가 어지러워지고 일을 하면 氣가 消耗되고 생각을 하면 氣가 맺힌다. 이렇듯 感情을 일으키는 것이 害로운 일인데, 그 害로움은 모두 氣가 그렇게 主管하는 것이다.
먹고 마시는 것이 生命力을 기르는 重要한 要素로 된다. 먹는 것을 貪하면 반드시 害로움이 생긴다. 먹은 것으로부터 생긴 氣運이 본디 타고난 氣를 이기면 뚱뚱해지고 오래 살지 못한다. 生命力을 기르는 要領은 먹은 것으로부터 生기는 氣運을 언제나 본디 타고난 氣보다 적게 되도록 하는 것이다.
肝臟을 기르는 要點은 화를 내지 않는 데에 있다. 이것이 生命力을 기르는 가장 첫번째의 方法이다.
화가 나거나 두렵거나 좋아 지거나 즐겁거나 근심 걱정이 되거나 하는 마음이 모두 그 바른 자리를 잡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음과 直接的인 關係를 가진 心臟을 기르는 方法이다.
들고 나는 숨이 가늘고 가늘게 이어지고 이어져서 마치 숨을 쉬는듯도 하고 쉬지 않는듯도 하며 神과 氣가 서로 依支한다면 그것이 바로 참다운 숨이요 眞理의 呼吸인 것 이다. 숨을 쉴 때마다 그것이 生命力의 根源이 되는 丹田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절로 하늘과 땅의 運行 變化의 理致를 빼앗아 올 수 있게 된다. 오래 살고 죽음을 이기는 훌륭하고 妙한 眞理의 길이다.
生命을 잘 기르는 사람은 먼저 여섯 가지 해로움을 없앤다.
첫째는 이름과 지위에 淡白하고,
둘째는 財物과 돈에 淸廉하며,
셋째는 色慾이 적고,
넷째는 營養價 높고 맛있는 것에 덤덤하며,
다섯째는 헛된 생각을 아니하고,
여섯째는 嫉妬를 아니 한다.
이러한 여섯 가지가 언제나 남아 있어서 스스로 禁하지 못할 것 같으면, 眞理에 관한 經典을 아무리 외워도 아무 쓸데가 없는 것이다.
修心, 調息, 調身 생명력을 기르기 爲하여서는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할 뿐만 아니라 숨을 길들여야 하고 또한 몸의 姿勢를 바르게 익혀 나가야 한다. 어느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되니 이것을 生命力을 기르는 세 가지 要素라고 말한다.
사람이 成長해 가면서 이루어지는 個人的, 利己的 感情들을 道德的, 社會的 情緖로 昇華시키거나 이미 밖으로 피어나가는 感情을 그때그때 거두어 잡아서 眞理의 길을 따라 가게 하거나 또는 아예 그러한 感情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쓸어 없애기만 할 수 있다면 本來의 純粹하고 善하며 神의 能力을 지닌 生命力과 品性 自體가 저절로 닦여지고 길러진다는 것이다.
肉身이란 바로 五臟 六腑와 그에 따른 열두 經絡을 이루어서 그로부터 피어 나오는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즐겁고 탐내는 感情으로 把握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精神이 分化되어 나타나는 情緖와 肉身으로 말미암아 피어 나오는 感情을 아우르면 結局 한 사람의 됨됨이로 되는데, 그것을 넓은 意味로 "마음"이라고 일컫기도 하는 것이다.
耳, 目, 口 세 가지는 삿된 것을 불러들이는 구멍이 되는 것이니 귀로 소리를 들은즉 精이 흔들리고 눈으로 색을 본즉 神이 달아나고 입으로 말을 많이 한즉 氣가 흩어지게 된다.
사람이 능히 밖으로 보는 것을 거두고 소리를 되돌리며 말을 적게 하여 그 삼요를 닫아 뜻을 허무에 맡기고 마음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며 外念도 또한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정, 기, 신 三品大藥을 응결시켜 흩어지지 않게 한다면 아홉 구멍이 움직임도 가한 것이고 고요함도 가한 것이다. 따라서 動할 때나 靜할 때나 언제나 天機로써 應하게 되어 人機가 사라지게 되니 어찌 邪氣가 消滅되지 않겠는가?
陰氣를 몸속에 머무르게 하지 말라. 음이 몸속에 자리 잡으면 괴이한 일이 생긴다고 하였다. 이러한 음기는 곧 無明이니 무명에 의하여 貪, 嗔, 癡가 생겨나게 된다. 따라서 진양화의 조화로 陰邪之姦을 태워 後天氣의 얽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修行하는 자는 배고픔을 면할 정도로만 먹으라고 하였으니 배불리 먹는 자는 精血을 傷하게 하고 몸을 크게 疲困하게 하는 자는 氣를 損傷케 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자는 神을 傷하게 한다고 하였으니 이 또한 殺이요, 훔침을 당하는 것이다.
사람이 천지와 만물의 기운을 훔치는 것을 '삼도귀일'이라 한다. 삼도가 귀일하면 天地와 萬物과 사람의 區分이 사라져 道氣가 常存한다고 하는 것이다. 왜 도기가 상존하는가? 범인은 입과 코로 숨을 쉬고 지나친 음식을 먹어 그 몸이 탁하다. 그러나 수행자는 인체의 혈을 통하여 천지의 기운을 취하므로 飮食과 天地의 氣運이 正合하므로 淸淨한 精氣神을 이루게 된다. 천지와 만물과 사람의 기운이 하나로 중화되어 전체가 하나 되고 하나가 전체로 되니 내단을 이루어 불사하므로 도기가 상존하는 것이다.
즉 몸이 건강해야 후천기를 뭉칠 수 있고 후천기가 뭉쳐져야 그 속에서 선천기가 드러난다. 선천기가 뭉치면 그 속에 자신의 신을 집중할 수 있고 자신의 신이 한곳에 머물게(定) 되면 慧明이 나타난다. 이러한 혜명이 나타나면 煩惱妄想이 除去되므로 비로소 우리 인간은 바른 마음, 바른 行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모든 종교나 수련단체를 통틀어 다 함께 지향하는 性命雙修의 정도이다.
삼마지는 나의 몸과 마음이 형태를 나타내기 이전에 최초로 형성된 곳이다. 그 곳을 찾아야 비로소 見性(마음이 생겨난 곳을 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몸속에 無明이란 음기가 가득하여 아무리 찾아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음기를 제거하고 후천기를 청정하게 변화시켜 선천기의 상태에 들어가야 만이 비로소 신의 장소인 단전을 발견할 수 있다. 삼반주야하면 도인지공 만배보다 낫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三은 上元, 中元, 下元의 삼단전을 가리킨다. 우리의 신이 단전기혈에 입실하여 밤낮으로 떠남이 없이 머물음으로써 본래의 신성을 회복하고 본래 자신의 영적인 모습을 復活시키게 된다. 이것이 곧 도태요, 양신이며 법신인 것이다.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의식 자체도 없이 여유로울 때 진실로 여유로운 것이며 맑고 청렴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관념도 없이 스스로 청렴할 때 진실로 그는 청렴한 사람인 것이다. 말끝마다 수련해야 된다고 부르짖는 사람은 실지로는 어딘가 모르게 수련에 대한 부족을 느끼는 사람일런지도 모른다.
정, 기, 신이 합일되어 단전의 기가 두 눈동자를 통하여 발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를 마음의 눈으로 하단전을 응시함으로써 返觀內照의 열쇠를 얻게 되는 것이다.
원정’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후천적인 ‘정기’가 충만해야 한다. 정기의 충만은 그것을 소모하지 않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곧 정기를 아껴서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는 ‘아낌’ 곧 ‘색’(嗇)을 이야기하였다.
배는 生命力을 貯藏하는 器官이고, 눈은 生命力을 使用하는 器官이다. 배를 爲하면 生命力이 充滿하고, 눈을 爲하면 生命力이 損傷된다. 生命力의 損傷은 世俗的 慾心과 感覺的 慾望의 追求에서 비롯된다. 이것들이 비워야 할 마음들이다. 이러한 ‘허심실복’[虛心實腹]은 內丹 修練에서 積極的으로 解析된다.
마음이 고요하기를 求한다면 반드시 먼저 눈을 統制해야 한다. 눈은 신(神)이 노니는 집으로, 신은 눈에서 노닐고 마음의 부림을 받는다. 그러므로 눈에서 抑制하여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신도 고요해진다. 눈이 어지러이 보지 않으면 신이 마음으로 돌아간다. 신이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고요함의 根本이다.
신이 부려지는[役神] 까닭은 外物에 依해 誘引되기 때문이다. … 安定된 가운데 눈에 보이는 바가 있음을 깨달으면 신이 눈에서 부려지는데, 급히 거두어 돌이켜 본다[反視]. 귀에 들리는 바가 있으면 신이 귀에서 부려지는데, 급히 거두어 안으로 듣는다[內聽]. 나머지(感覺作用)도 다 그렇게 한다.
마음의 고요함은 곧 호흡의 고요함을 招來한다. 亦으로 呼吸이 고요하면 또한 마음이 고요해진다. 호흡의 고요함이 至極하여 呼吸이 있는 듯 없는 듯 한 것이 참된 호흡[眞息]이다. 참된 호흡의 結果 비로소 진기(眞氣)가 발생한다. 따라서 몸 속에서 ‘眞氣’의 發生을 重視하는 內丹의 呼吸과 토고납신(吐故納新)하는 呼吸은 區分된다.
신’은 오장의 신이다. 간(肝)은 혼(魂)을, 폐(肺)는 백(魄)을, 심(心)은 신(神)을, 신(腎)은 정(精)을, 비(脾)는 지(志)를 저장한다.
慾從心起(욕종심기) : 물욕은 마음 때문에 일어나고
心從息定(심종식정) : 마음은 호흡으로 안정되는 것이다.
心息相依(심식상의) : 마음과 호흡이 서로 의지하면
息調心靜(식조심정) : 호흡이 조절되고 마음이 고요해진다.
사람이 타고난 본래의 정신세계는 맑음을 좋아하는데 마음이 이를 흔들고, 사람이 타고난 마음은 고요함을 좋아하는데 물욕이 이를 끌어낸다. 그러니 애써서 물욕을 몰아내면 마음은 절로 고요해지고, 마음을 맑게 하면 정신은 저절로 맑아진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은 마음에서 일어나지만 그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은 숨쉬기에 달려 있다. 마음(心)과 숨쉬기(息)가 서로 의지하여 협력하면 호흡이 조절되어서 마음이 고요해진다.
三關 性, 命, 精 性은 命을 떠나지 않고 命은 性을 떠나지 않으 니 精은 그 가운데에 있다.
三房 心, 氣, 身 氣는 心을 떠나지 않고 心은 氣를 떠나지 않으 니 身은 그 가운데에 있다.
三門 感, 息, 觸 感은 息을 떠나지 않고 息은 感을 떠나지 않으
니 觸은 그 가운데에 있다.
三識 靈, 智, 意
三魂 靈, 覺, 生
성명학(性命學): 대도를 증오(證俉)하는 학문으로 성은 선천 생명본체를 가리키고, 명은 후천 육체의 몸을 가리킨다.
앉아서 고요함에 이르러
혀는 가볍게 입천장에 붙여
맑은 기운은 위로 올리고
탁한 기운은 아래로 내려서
단침이 입안에 가득해지거든
단전으로 삼켜야 한다.
옥액을 삼킬 때에는
몸안의 탁기를 배출하여
후천의 탁기가 몸에 머물러
환란을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좌선을 마칠 때에는 양 손을 비벼서 열을 발생시켜
눈을 일곱 번 쓰다듬고 주먹을 펴고 다리를 흔들어
몸의 관절과 근육과 경락을 편안하게 풀어주고
나쁜 기운을 몸에서 밀어내어
골수에 잠기지 않도록 한다.
좌선하는 처소는 반드시 밀실에 휘장을 드리워
남이 볼 수 없게 하여야 하며
三寶가 노출되어 魔가 貪來하지 못하도록 한다.
下手에 들어서 통관을 이루지 못하였을 때에는
배부르거나 배가 고플 경우에는
타좌를 행하지 말아야 하고
마음을 어질게 하여 살생치 말 것이며
사람들의 더러운 탁기를 피하며
죽은 것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뜻을 玄關의 수련에 머물러
위의 사항들을 잊지 않도록 한다.
그런 후에 關이 열리게 될 것이니
眞氣의 힘이 쌓여 氣가 통하고
마음이 사라지고 元神이 돌아오면
자연히 關門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관을 여는 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만약 집착함이 오래되면 관을 열 수 없게 된다.
關이 개통된 즉 상하의 氣가 자유로이 왕래하여
상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후에 한결같이 玄關을 지킨 즉
凝神入氣穴하여 水火旣際를 이루어
자연히 眞氣가 운행되며 모든 병이 다 사라진다.
이것이 通關 공부의 초보이니
그 法이 輕安觀照하여 知而勿着하는
여덟 글자의 의미를 실천하는데 있으니
이것이 지극히 긴요한 眞訣이 된다.
내가 이를 부지런히 행한 즉
육칠 개월에 關이 열리었다.
하루하루 長生法을 행하여
입을 다물고 단정히 앉아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게 하여
神과 뜻을 안정하게 한다(存神定意).
눈으로 사물을 보지 아니하고
귀로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여
일심으로 지키며 숨을 면면히 하여
숨과 맘이 끊어지지 않게 함으로써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게 한다.
榮氣와 衛氣가 자연히 유통하여
水火가 저절로 오르고 내리게 하고
참된 元神의 靈이 되살아나게 하면
長生의 果를 얻음이 어렵지만은 않다.
또 말하기를 道를 닦음에 있어
먼저 마음을 닦아야 할 것이니
반드시 그 마음을 항복 받고
四大가 모두 空하게 되어야
바야흐로 道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반듯이 酒, 色, 材 세 가지를 피할 것이요,
성냄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참는 것이 三寶를 해침을 막는 것이 된다.
대개 천지만물이 一身에 갖추어져 있으니
기쁘기가 봄과 같이 화평하고
아량이 바다와 같이 넓어져야
마음은 평안하고 氣는 조화하여
精血이 끊이지 않고 생긴다.
그러니 이것이 어찌 延年益壽의 도가 아니겠는가?
바로 등잔에 기름을 채워 놓음과 같아서
비록 늙었다 할지라도 더욱 힘을 보태어
생명의 불꽃이 끊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다.
통관 이후에도 모든 功法이
또한 打坐에 있다 할 것이니
타좌는 곧 道의 始終을 이루는 正路이다.
道를 배우는 사람은 이로 인하여 입문하고
정진한 연후에야 도에 부합되게 할 수 있다.
節要篇에 말하기를
"黃婆는 중매를 잘 하여서
실로 없는 가운데 妙有를 잘 기른다."고 하였다.
고로 차女(氣)를 인도하여 때를 기다리게 하고
낭군(神)을 바깥으로부터 이끌어와 합하게 한다.
(*神氣의 合一로 眞陽의 神을 기르는 法)
이로서 양쪽의 竅가 융통하여 막힘이 없게 되면
中宮의 黃庭에 이르러 모이게 되어 하나가 된다.
마치 푸르름이 봄에 소생함과 같아서
비로소 靈兒가 잉태되니
이를 聖胎라 부른다.
참으로 이 세상에서
사람의 몸을 얻기가 어려운 것이요,
佛法을 듣기 어려운 것이며
수행하는 도량을 얻기가 어렵다.
眞師는 만나기 어렵고
수도하기에 적합한 中土에
태어나기도 어려운 것임을
배우는 자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척추는 하늘의 궁궐에 오르는 사다리니
땅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지는 가운데에
眞氣가 발하여 궁궐에 올라 藥을 생하여
長生의 불로주를 담아 그윽하게 취해서
眼光을 돌이켜 비어있는 한 곳을 비추니
明心見性으로 道를 이룸이 이 속에 있다.
빛을 돌이킨다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中을 지킨다는데 있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元神이
사람의 주인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원신이
주인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식신의 부림을 받게 되는 경우에는
그 원신은 식신의 작용을 따라서
그 기운이 흩어지고 소모되어
몸을 견고하게 지키지 못하고
몸이 병들어 죽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道用은
識心의 작용을 끊고
元神을 보호하고
그 힘을 보전하여
바로 빛을 돌이켜
一竅에 回光返照하여
中을 지키는 것이라고 한다.
두눈의 작용을
가운데로 모아서
'緣中(玄牝)'의 竅를 지켜
元神을 보호하고 길러서
자신의 생명을 양육하여
長生 할 수 있다고 한다.
눈의 빛은 안으로 돌이켜
緣中에 머물러 있도록하고
귀 또한
밖으로 듣는 작용을 끊고
연중에 머물게 하며,
혀는 입천장에 대고
코의 호흡은 고요하게 다스려서
의식을 항상 玄關에 머물게 하여
修行하라고 하고 있다.
초보자는 눈을 수렴하여
시선이 자연스럽게
콧등의 한 점을 지켜보도록하여
눈동자를 한 점에 고정시켜
의식을 한 곳으로 모으는 수련을 해야 한다.
그런 후에 다시
내면을 지켜 보아야 한다.
이렇게 하여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조화로운 상태가 되도록 한다.
코는 밖의 냄새를 맡지 않도록
의식을 안의 한 곳으로 모으고
이 한 곳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여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렇게 하여
한 생각도 밖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면
眞意가 모아져 精氣가 축적되고
元神을 保全하게 되는 것이며
이것을 玄關打坐로서
止觀을 닦는 性命雙修의 法이라고 한다.
이같은 止觀法으로
內面을 觀照해 나가다 보면
하늘의 門이라고하는
玄關의 竅가 열리게 된다.
이 竅가 열리면
先天의 自性이 드러나는 것이며
이 때
一点의 眞陽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니
이를 長生의 眞種子라 하며
性命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이로서 性命을 갖추어
雙修하게 되는 것이며
비로소
性命雙修를 수련하는
功德을 얻게 되어
드디어
不老長生의 道果를
성취하게 된다고 한다.
***오기조원(五氣朝元)
성명규지전서(性命圭旨全書)에 이르기를
"몸이 한결같아 움직임 없으면
정(精)이 견고해져 수(水)가 조원(朝元)하게 되고,
마음이 한결같아 움직임 없으면
기(氣)가 견고해져 화(火)가 조원하게 되고,
진성(眞性)이 더할 나위 없이 적적(寂寂)해지면
혼(魂)이 은장(隱藏)되어 목(木)이 조원하게 되고,
망정(妄情)이 그 망(妄)을 망(忘)하면
백(魄)이 복종하여 금(金)이 조원하게 되고,
사대(四大)가 안화(安和)를 이루면
의(意)가 정정(正定)하게 되어
토(土)가 조원하게 된다.
이것을 오기조원이라 하는데 오기조원이라는 말은
오기(五氣)를 원(元)에 모두 모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은 음욕을 막는데 지극한 것이며,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살생을 막는데 지극함이다. 淫慾이 독사나 원수와 도적보다 심하다는 것은 慧命을 죽이고 해치기 때문이다.
보는 것을 거두어들이고, 듣는 것을 되돌려서(收視反廳) 고요히 동요함이 없이 太虛에 마음을 집중시켜 털끝만한 작은 생각조차 없어지면, 짧은 시간에 性이 命宮에 들어가서 命과 性이 합해지면, 참다운 호흡이 저절로 안정 된다.
마하가섭의 수행담 (붓다에 대한 헌신), 사리불의 수행담 (空의 이해와 마음의 초월적인 빛), 보현보살의 수행담 (듣는 명상), 부르나 미다라니자의 수행담 (듣는 명상), 대 목건련의 수행담 (빛 명상),유리광법 왕자의 수행담 (에테르 원소의 본성에 대한 직관적 통찰), 미륵보살의 수행담 (일체만물이 음의 현현임을 깨달음), 관세음보살의 수행담 (듣는 명상), 문수사리 법왕자의 결론 (듣는 명상이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데 가장 수승한 수행법임을 설함).
“세존께서는 우리 각자의 수행법 중 어느 것이 열반으로 인도하는, 가장 쉽고 빠른 길임을 물으셨노라. 나는 관세음보살의 수행법이 모두에게 가장 쉽고 빠른 길임을 증언하노라.
범부 중생들에게는 이근에 마음을 집중하고 내면으로 향하게 하여 본래 성품의 초월적인 소리(Transcendental Sound of Essential Mind)를 듣는 이 법문이 가장 쉽고 현명한 방편이로다.
<능엄경>에서 제시하는 가장 수승한 수행법인 ‘이근원통(耳根圓通)’ 즉, 일명 ‘관음법문(觀音法門)’은 소리를 들을 때 ‘듣는 성품’을 깨닫는 도리이다. <능엄경>은 이근(耳根)이 본원(성품)으로 돌아가, 6근의 해탈을 이루는 원리를 이렇게 설명한다.
“듣는 놈이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소리로 인하여 그 이름이 있게 되었네. 듣는 놈을 돌이켜 소리에서 벗어나면 해탈한 놈을 무엇이라 이름 하랴! 하나의 근이 본원으로 돌아가면 여섯 개의 근이 해탈을 이루게 되리라(一根旣返源 六根成解脫).”
여기서 “하나의 근이 본원으로 돌아가면 여섯 개의 근(眼耳鼻舌身意)이 해탈을 이루게 되리라”는 부분이 이근의 원통(圓通)함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즉 6근 가운데서 이근을 집중적으로 계발하면 나머지 5근도 동시에 열린다는 것이 이근원통의 법문이다.
“눈은 담장 밖의 것을 보지 못하고, 입과 코도 다시 그러하며, 몸은 접촉하는 대상과 합해야 앎이 생기고, 마음과 생각은 분잡하여 단서가 없는 것이지만, 이근(耳根)은 담장에 막혀도 음향을 듣고, 멀거나 가깝거나 모두 들을 수 있으니, 앞의 5근(眼鼻舌身意)과는 같지 아니하여 이것(이근)만이 통진실(通眞實)인가 합니다.”
삼밀가지(三密加持)
삼밀가지란 삼밀상응, 삼밀유가와 같이 쓰이는 말로써 여래의 우주적 활동인 삼밀에 수행자의 활동인 삼업을 일치시켜 지님을 말합니다.
삼밀상응이란 이 삼밀과 삼업이 서로 응함을 말하며, 삼밀유가란 삼밀 수행을 말합니다. 유가란 요가의 한자어입니다. 즉 수행, 닦음, 공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가상응이라는 말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서로 응함을 닦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삼밀은 삼업과 연계된 말로서 사실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선 삼업(三業)이란 중생이 몸과 입과 뜻(신,구,의)으로 짓는 세 가지 업을 말하며 업이란 범어로는 KARMA라 하고 팔리어로는 KAMMA라 하며 원뜻은 행위를 의미합니다. 불교에서는 행위에 의한 그 과보를 받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중생의 일체 행위를 뜻을 세우고 마음먹는 등의 의업(意業), 의사를 전달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마음먹는 바를 말로서 표현하는 구업(口業), 몸으로 나타내는 행위인 신업(身業)의 세 가지로 구분하여 나타내는 말이 삼업입니다.
경에 나오는 십불선업(十不善業) 또는 십악업(十惡業)은 다음과 같이 삼업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살생(殺生), 투도(偸盜, 도둑질), 사음(邪淫) 등의 신업,
망어(妄語, 거짓말), 양설(兩舌, 이간질), 악구(惡口, 욕설),
기어(綺語, 희롱의 말)의 구업,
탐욕(貪慾), 성냄(瞋), 치(恥)의 의업을 말하며,
십선업(十善業)은 그 반대입니다.
중생에게는 행위함으로 삼업이 따르나 부처는 업이 따르지 않으므로 삼밀을 행하신다고 합니다.
삼밀이란 실재하는 우주 즉 여래의 삼업이 삼밀이며, 시간과 공간에 있어 시간으로는 세로로 삼세(三世)에 걸치고 공간으로는 가로로 시방(十方)에 두루 하는 것으로 법불의 행이 심연미세(深淵微細)하여 십지(十地) 등각(等覺)도 보고 듣고 알 수 없으므로 밀(密)이라 한다 합니다.
그런데 삼업의 주인공이나 삼밀의 주인공은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삼업이나 삼밀이나 모두 불성의 작용인데, 하나는 나를 잘못 알아서 업이 되고, 하나는 참나를 바로 알아서 참나의 행위가 되는 바 삼밀이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이 알던 모르던 참나는 이미 부처를 이루고 있다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천명하셨듯이, 부처인 자신이 스스로 뒤바뀐 것이지 특별히 다른 것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스스로 뒤바꾸고는 뒤바뀐 것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이지 붙들려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비록 불성이 있음을 알았으나 지금의 나, 스스로 붙들고 있는 나가 그 불성이 아니나. 일체의 작용이 불성의 작용이 아닌 것이 없으므로 스스로 붙들고 있는 나를 놓고는 나없는 삼업으로 여래의 삼밀에 의지하여 가는 것이 삼밀가지입니다.
신, 구, 의 삼업을 삼밀에 일치시키기 위해 의지해가는 방법이 무드라(인), 만트라(진언, 염불), 푸라즈냐(반야)인 것입니다.
앞으로 염불수행법을 같이 공부해보고자 합니다.
알던 모르던 우리들은 이미 부처입니다.
우리들의 불성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불성이나 제불보살들의 불성이나 조금도 차이가 없는 것입니다. 이 점을 확실히 알고 항상 마음에 새기어 이미 부처인 내가 왜 중생이 되었는가 다시금 부처로 돌아가야겠다 이리 마음을 냅시다. 즉 발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밀가지수행의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때때로 삼천대천세계 일체 중생들이 행복해지고. 일체의 고통과 척이 소멸하며, 일시성불하사이다. 하고 기원해 봅시다.
염불수행 1
우리 불제자들은 부처님을 거룩하게 생각하고, 부처님께 깊은 존경을 바칩니다. 부처님을 닮고자 하고 부처님을 흉내 내어 봅니다. 솔직히 항상은 아니지만 가끔 우리의 마음이 좋을 때는 한 두 번은 그리 해보셨을 겁니다. 또 그리는 못해보았다 하더라도 그러한 생각을 해보기는 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보다 적극적으로 해보는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염불은 복 달라는 것이니 그런 것 말고 좀 더 멋있어 보이는 것들을 찾아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염불이 보다 적극적으로 부처를 닮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알던 모르던 내게는 불성이 있고 모든 것이 불성의 작용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을 들어 알았으니 환경이 갖춰진 것이요, 부처님을 닮아보자, 불성이 드러
나도록 해보자 하는 마음을 내었으니 여건을 갖춘 것입니다.
환경과 여건이 갖추어지면 모든 것이 드러나고 또 이루어지는 것이니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삼매, 선정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매일 하던 것이니까요.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인 것입니다. 울화통이 터져서 울화삼매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관계치 않고 오직 울화가 치밀어 오를 뿐입니다. 나중에 보면 그리 되었던 것이지요.
재미있는 소설을 읽다보면 주변의 소리도, 더운지 추운지도, 배고픈지도 모르는 독서삼매에 들곤 합니다. 이와 같이 모두 우리가 평소에 경험하던 삼매인 것이니 특별한 것이 없다 한 것입니다. 참고로 이러한 것은 모두 오온중 행온(상카라칸다) 의 몰아주는 작용에 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화라든가 하는 것은 나도 모르게 그리 되는데, 염불을 하면서 그리 되고자 하면 잘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화가 날 때에 화내려고 하지 않았으니 염불도 어찌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염불만 하면 됩니다. 이거저거 따지지 말고 그냥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왕에 염불을 시작하기로 했으면 이러한 생각도 내보는데, 무엇인가하면 무엇이 불성인가? 하는 궁금함을 잊지 않으면서 염불을 해보자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적극적으로 닮고자하면서 무엇이 부처의 성품인지 즉 불성인지 알지 못한다면 올바르게 하는지 그르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할 것이니, 무엇이 불성인가 하는 궁금함에 염불을 붙이듯이 염불에 궁금함을 붙이듯이 그렇게 해나가는 것입니다. 알려고도 하지 말고 그러나 잊지도 말고 궁금함이 염불을 끊이지 않게 하고 또한 염불이 궁금함이 사라지지 않게 되도록 까지 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궁금함이 염불에 녹아들어서 여러 가지 이익된 일들이 많게 됩니다.
삼밀가지 수행을 위해서 전에 삼밀가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삼업과 삼밀이 근본은 같으나 같은 것은 아니니 이름마저 달라졌듯이 신, 구, 의를 닦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니 이를 계정혜 삼학이라 하는 것이며 이 삼학으로 삼업의 삼밀가지를 다하여 마치는 것입니다. 계란 계를 지니고 지키는 것이면 정이란 마음을 잘 두어서 산란치 않게 하는 것이며 혜란 두루 잘 비추어 보는 것이니 계정혜란 셋이면서도 하나이며 나타나는 갈래는 셋이 되는 것입니다. 계정혜를 갖추지 못하여 신구의가 업을 지으니 그것이 열가지 악업이 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해 염불 수행으로 그 열가지 업을 넘어 삼밀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보조스님은 염불요문에서 열가지 염불법을 설명하셨습니다.
계신염불, 계구염불, 계의염불, 동억염불, 정억염불, 어지염불, 묵지염불, 관상염불, 무념염불, 진여염불(戒身念佛, 戒口念佛, 戒意念佛, 動憶念佛, 靜憶念佛, 語持念佛, ?持念佛, 觀想念佛, 無心念佛, 眞如念佛)을 설명하셨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궁금증을 푸는 방에서 염불요문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불교의 일체 수행법은 단계를 거쳐 가는 것은 아니라 어디에서 시작하든 바로 마지막에 직입할 수 있는 것이지만, 수행을 함에 참선이 아닌 경우에는 차제방편이 있기도 하는 것입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가다보면 양재 즈음에 좌측 건너편에 교회가 있는데 거기에 이런 내용의 글이 쓰여 있습니다.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기도할 줄 아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는 염불의 염념불리법에 대해 공부해보도록 합시다.
염불수행 2 염념불리(念念不離)
염불(念佛)이란 부처를 염하는 것입니다. 부처를 생각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염념불리(念念不離)란 생각 생각에 떠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생각 생각에 끊어짐이 없이 계속 이어져 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이 염(念)이라는 것이 조금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금(今)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진 글자입니다. 과거의 미래의 마음이 아닌 지금의 마음을 말합니다.
지금이라는 찰나찰나의 마음이 염불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염념불리인 것입니다. 이 찰나찰나의 마음은 생각을 형성하는 요소가 되는 마음들 입니다. 이러한 찰나찰나의 마음이 그 마음의 꼬리를 잇게 되면 생각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을 반연이라고 합니다. 즉 염에 염이 반연하면 한 생각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찰나찰나의 마음들이 염불을 떠나지 않으면 반연이 붙을 찰나의 순간도 없어서 생각이 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일체는 빛과 소리로 구성되어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말은 일체는 오온으로 구성되어있다는 말입니다. 오온이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며 이는 달리 명색(名色) 이라고도 불립니다. 명색의 색이 색온을 말하는 것이며 명은 수상행식을 말합니다. 색은 물질이며 명은 마음을 뜻합니다. 색은 소멸될 때 그리고 처음 생성될 때에 빛을 발하고, 명은 소리로 나타납니다. 명색은 팔리어를 그 뜻으로 번역한 것 입니다. Nama Rupa 이름과 물질, 육체라는 뜻이지요. 우리는 시작 없는 옛부터 이 빛과 소리에 물들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미세하게 나누면 이 빛과 소리의 묶음들이 되는 것이며, 빛과 소리의 한 묶음이 염(念)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사과가 먹고 싶다는 생각은 세 가지의 염의 반연으로 이루진 한 생각입니다. 사과, 먹는다, 하고 싶다 라는 이 세 가지의 염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염들은 각각 빛과 소리의 묶음인 것입니다.
사과라는 염은 사과의 형태인 빛과 사과라는 이름의 소리, 먹는다는 먹는다는 행위와 그 행위의 이름인 먹는다라는 소리, 하고싶다는 충동과 그 충동의 이름인 소리의 묶음인 것입니다. 사과라는 염에 먹는다라는 염이 이어지고 하고싶다라는 염이 또 이어져서 한 생각이 완성되고(상온) 그 생각에 지배되고(행온) 이렇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것(식온)입니다. 그리고 빛이라는 느낌이 수온인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을 나누어 염들로 분리하고 그 하나의 묶음인 염이 빛과 소리로 나뉘어지면 더 이상의 작용이 없어 결국은 소멸해버리게 되어 상온 수온이 멸한(상수멸) 멸진정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염불법은 소리를 써서 멸진정에 이르는 수행법입니다.
복잡하니, 아 그렇구나 하고 넘겨버리시고 염불에서 마음이 떠나지 않게 하면서 생각 생각에 살펴가면서 염불을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염불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집중이고 말뚝이며 생각생각에 살피는 것이 반야의 시작이며 이 살핌이 고삐인 것입니다. 이 살핌을 Sati라고 합니다. 관(觀)인 것입니다.
이것도 복잡하니 아 그렇구나하고 넘어가고, 그저 끊어지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로구나 하고 알아둡시다.
그리고는 염불이 끊어지지 않게 마음을 다해갑시다.
다음에는 염불을 하는 방법을 관음기도를 예를 들어 한번 알아보도록 합시다. 그리고는 이근원통에 대해 알아봅시다.
염불수행법 3 관음기도 1
염불을 수행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향하여, 자신의 불성을 향하여 이미 부처인 참 나를 향하여 염불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염불은 시작하면 끊이지 않아야 합니다. 최소한 아침에 눈 뜨면 시작하여, 밤에 염불하다가 잠에 들고, 이렇게 하다가 점점 깊어지면, 잠자면서도 끊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끊어지면 수행이 아닌 것입니다.
관음 기도란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입니다.
자비의 화현이 관세음보살이시며, 바꾸어 말하면 이미 부처인 참나가 자비를 내면 관세음보살이 화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에는 자신이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을 관자재보살이라고도 합니다. 관자재보살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분이며 Avalokitesvara(아발로키테 스바라)이며 범어의 뜻대로 번역한 것이 관자재(觀自在) 입니다. 자재함을 관하시는 보살이라는 뜻입니다. 자세한 것은 불제자의 방에 올려져있는 반야심경에의 초대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신묘장구대다리니의 두 번째 구절 '나막알야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 마하사다바야'는 '나막 아리야 아발로키테스바라야 보디사트바 마하사트바'라는음을 소리나는대로 한자어로 쓰여진 것을 우리식으로 읽는 것입니다. 뜻은 '성스러운 관자재보살님께
대 보살께 귀의 합니다' 하는 뜻이며 나모, 나막은 귀의라는 뜻으로 다음글자의 첫음에 따라 나모가 되기도 하고 나막이 되기도 합니다. 귀의 한다는 말은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본래로 돌아간다는 말인 것입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마하살이란 대 보살이신 관세음보살로 돌아가겠습니다 하는 서원이며 약속인 것입니다.
만약 어떤 이가 ‘아 내가 사실은 관세음보살인 줄을 몰랐구나. 몰랐을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마는 이제 알았으니 참으로 관세음보살답게 살아야겠다’하고는 생각 생각마다 결심을 잊지 않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이 분이 참으로 염불하는 것이며 이러한 염불이 진여염불이며 이미 염념불리가 성취되어진 것입니다.
보조스님의 십지염불이란 삼업을 닦음에 염불을 억(기억) 하고 지(지녀)하여 관하면 무심해지고 무심해지면 진여가 드러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억지로 한다하는 말이 바로 이 억지인 것입니다.
그냥 이 생각 저 생각 다지지 않고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불러 관세음보살 일념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수승한 방법입니다.
생각은 그러한데도 잘 되어지지 않으니 단계로 나누어서 방법을 정하여 그 방법을 따라가면서 집중이 늘어나게끔 하는 방편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관음기도를 3지까지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음 1지 : 1지란 육체를 씀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염불에서 소 리를 내기위하여 입과 혀를 씁니다.
모든 수행은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몸과 마음을 새로이 합니다. 이를 입세(入勢)라 합니다.
오른 발을 아래로 왼발을 그 위에 놓고 반가부좌로 앉고 눈은 감은 듯 뜬 듯이 하여 눈에 보이는 것에 상관하지 말고는 합장하여 세 번 앉은 채로 합장예배하는데 이 때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의 부처인 참나를 향하는 것입니다.
입으로 내쉬면서 예배하고 코로 들이 마시면서 일체의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극 느낌들을 놓아 버립니다. 다시금 입으로 내쉬면서 예배를 하며 온 통 마음을 향하고 코로 들이쉬며 몸을 일으키면서 일체의 마음의 움직임을 놓아버립니다. 다시금 입으로 내쉬며 합장예배 하면서 마음마저 놓아버리고는 코로 들이마시면서 몸을 일으키며 다시금 외부의 느낌들과 마음의 움직임들을 쌍으로 놓아 버립니다. 여기까지를 입세라합니다.
합장을 한 채로 오로지 정성을 다하여
‘나무 보문시현 원력홍심 대자대비 구고구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부릅니다.
이 때 세 번째 관세음보살을 부를 때 가볍게 예배하며 관세음보살을 부른 소리와 하나가됩니다.
소리는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정도로 나지막한 소리로 하되 울리는 음성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 좋으며 자신의 두 귀로 똑똑히 빠트림 없이 개개의 소리를 들어가면서 하면 할수록 염불소리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하다가 숨을 들이마셔야 할 때는 들이 마시면서 들이마시는 소리를 써서 관세음보살을 부릅니다. 끊어짐이 없이 계속 이어지게끔 부르며 자신의 두 귀로 똑똑히 듣습니다.
부르는 소리가 작아도 소리와 가까워질수록 자신의 귀에는 더욱 분명하게 들리며 더욱 크게 들립니다.
이렇게 하다가 자신이 정한 것만큼 되었으면 관세음보살을 세 번을 천천히 부르며 소리와 하나가 되었던 것을 풀고
‘관세음보살 멸업장진언
옴 아로늑게 사바하(5번)’을 하는데 옴 아로늑게 사바하는
옴 아로륵게 사바하라 하여도 무관합니다.
그리고는
‘구족신통력, 광수지방편, 시방제국토, 무찰불현신
고아일심귀명정례’를 하는데 정례에서 합장예배 한번 합니다.
그리고는 합장한 채로 예배 3번을 하되 입으로 들이마시고 코로 내쉬면서 예배하는데, 입세의 역순으로 마음을 가져 갑니다. 이를 출세(出勢)라 합니다.
그리고나면 조용히 눈을 완전히 뜨고 몸을 아주 조심스럽게 앞뒤좌우로 조금씩 움직이고 만삭이된 여인처럼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염불하던 때의 고요하고 평안한 마음이 깨어지지 않게 지니고 다니는 것입니다. 만약 마음이 다시금 산란해지면 위와 같이 다시 하면 됩니다.
한번 시작하면 최소한 1시간 이상을 하며, 하루에 세 번 이상 이면 좋습니다.
염불수행법4 관음2지 수행
관음 1지 수행이 몸에 익으면 염불을 끝마친 뒤에도 계속적으로 염불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치 귓가에 녹음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는 은근한 진동이 일어납니다. 마치 소리를 내면서 할 때와 같이 마음의 귀에 소리가 들리고 온몸에 진동이 퍼져갑니다.
관음 1지에서 자신의 소리를 자신의 두 귀로 명확하게 들으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은 이러한 경험을 더욱 빨리 하게 됩니다.
그럼 관음 1지를 어느 정도 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실 것입니다. 옛날에는 1지를 마치는데 10년 정도를 해야 한다고 말해왔습니다. 그리하면 아마도 지금 세상에는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이것만 기억을 해둡시다. 염불을 하지 않아도 계속적으로 들리는
때가 2지를 시작할 때라는 것을............
관음 2지는 소리를 쓰지 않습니다. 자신이 입과 혀와 성대로 만들어내는 소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 소리없이 들리는 소리, 앞에 말한 귓가에 들리는 소리를 쓰는 것입니다.
소리 없이 입술만을 달싹이면서 마음의 귀로 염불소리를 명확히 들어갑니다. 이를 1성이라 합니다. 관음 2지 1성(成)입니다. 입술을 달싹이기만 하면 마음의 귀에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염불소리가 명백하게 들려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면 다시 관음 1지를 써서 귓가에 들리는 소리를 얻어야 합니다.
1성이 이루어지면 입을 다문 채 혀만을 입천정에 댔다 떼었다 하면서 들리는 소리를 마음의 귀로 명확히 듣습니다. 이것이 2성입니다. 마찬가지로 잘 안 들릴 때는 다시 관음 1지를 씁니다.
2성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혀를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듯이 느껴집니다. 그러면 혀를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느껴 보노라면 목이라 할지 성대 부근이라 할지 조금 씩 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때가 3성입니다. 3성은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3성이 이루어지게 되면 목을 쓰는 것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염상이라 할지 아니면 의도라 할지 하는 것이 있어 소리를 내는 것을 알게 또는 보게 됩니다. 이것이 4성입니다. 그냥 계속해 가다보면 염상없이 의도 없이 소리가 들립니다.
이를 5성이라 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염불을 하려는 고요한 생각이 있는 것입니다. 염상 의도라 말했던 것은 좀 더 명확한 거친 생각이었던 것이며 이렇게 내가 스스로 하는 생각이 아님에도 나도 모르게 하는 생각과 같은 고요한 생각에 의해 염불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의지하지 않고 염불을 하게 되는 것이 6성입니다. 이때가 되면 비로소 염불이 잘 끊어지지 않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7성 이상은 설명이 미묘해지기 때문에 생략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3성부터는 해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의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유의하셔야 합니다.
최소한 5성에 들어야 삼밀에 가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밀가지가 이루어지면 지극한 평안과 지극한 몸의 가벼움이 나타납니다. 이를 경안각지라 합니다.
관음 1지든 2지든 어느 때이든 마음이 염불과 하나가 되면 전율과 같이 밀려드는 파도와 같이 때로는 폭포와 같이 황홀한 기쁨이 전신을 감싸고 휘돌아 가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냥 아 좋구나 하고 지나치시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몸과 마음의 병이 사라지게 되며 마음에 본래 갖추어진 지극한 고요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황홀한 기쁨은 드러나는 횟수가 줄어 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큰 의미를 둘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한 느낌들은 그저 느낌으로 알고 하던 염불에 전념해 가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부디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관음 3지는 일체를 오직 마음으로만 행해가는 것입니다. 이미 갖추어진 행온을 써가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일 것입니다.
아는 것은 실천에 의해 구현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실천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글을 보시고 그리 실천 하시는 모든 분들께 일체 부처님과 일체 보살님들의 가피로 삼밀가지를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삼밀가지수행법 6 이근원통 1
이근원통을 공부함에 있어 우선은 기본적 개념과 관련 경전에서 주요부분을 발췌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근원통(耳根圓通)이란?
능엄경에 보면 관세음보살께서 원통을 이루신 방법을 설명하시는 바, 그 방법이 이근원통입니다. 이근이란 귀뿌리 즉 들음의 근본을 말하며, 근(根)은 산스크리트 INDRYA의 의역으로서, 감각기관들의 그 기관이 가지는 능력을 의미하며, 외계(外界)의 제대상(諸對相), 즉 대경(對境)을 인식하게 하는 근원적 요소를 말합니다.
인드리아란 왕, 조절하는 능력, 근본 등의 의미를 가지는 범어(산스크리트어)입니다.
원통이란 본성이 원만하여 두루 통하고 작용이 자재하여 거리낌이 없음을 말합니다. 진여의 이치와 같습니다.
이근원통은 소리를 들으매 소리의 청정 무애함을 관하고, 이근이 청정 무애함을 관하며, 듣는 성품(聞性, 문성) 또한 청정 무애하며 원만하여 두루 통함을 관하여 진여의 원통을 알아 사마타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마타 또는 삼마타란 적멸을 뜻하는 것으로 올바른 존재라는 의미도 있으며, 진정한 삼밀가지가 이루어지는 첫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2. 소리와 이근 그리고 듣는 성품(聞性, 문성)
소리와 듣는 성품(문성)에 대해 알아봅시다. 능엄경권제4 후단에 보면 세존께서 아난존자에게 하시는 설명이 나옵니다.
(운허스님의 수능엄경에서 발췌하였습니다)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第四
二. 正 宗 分
둘째, 三摩提를 말하며 一門으로 들어가게 하다.
1. 두가지 決定한 뜻
『阿難아, 네가 多聞만 배우고 모든 漏를 다하지 못하였으므로 마음에 顚倒한 原因을 알면서도 참말 顚倒가 앞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하는구나! 네가 아직도 眞心으로는 믿지 않는 듯 하니, 내가 이제 塵俗의 事實을 들어서 너의 疑惑을 除하리라.』
이때 如來께서 羅?羅를 시키어 鍾을 한번 치게 하시고, 阿難에게 물었다.
『네가 지금 듣느냐?』
阿難과 大衆이 함께 말하였다.
『저희들이 듣나이다.』
鍾소리가 스러진 뒤에 佛이 또 물었다.
『네가 지금 듣느냐?』
阿難과 大衆이 함께 말하였다.
『듣지 못하나이다.』
이때 羅?羅가 또 鐘을 한번 쳤다. 佛이 또 물었다.
『네가 지금 듣느냐?』
阿難과 大衆이 또 말하였다.
『듣나이다.』
佛이 阿難에게 물었다.
『너는 어떤 것을 듣는다 하고, 어떤 것을 듣지 못한다 하느냐?』
阿難과 大衆이 함께 사뢰었다.
『鐘을 쳐서 소리가 나면 저희들이 듣는다하고, 친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스러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지면 듣지 못한다 하나이다.』
佛이 또 羅?羅를 시켜 鍾을 치게 하고 阿難에게 물었다.
『너는 지금 소리가 난다 하겠느냐?』
阿難과 大衆이 함께 말하였다.
『소리가 나나이다.』
잠깐 있다가 소리가 스러진 뒤에 佛이 또 물었다.
『너희들, 지금 소리 나느냐?』
阿難과 大衆이 대답하였다.
『소리가 없나이다.』
잠깐뒤에 羅?羅가 다시 鍾을 쳤다. 佛이 또 물었다.
『너희들 지금 소리 나느냐?』
阿難과 大衆이 함께 말하였다.
『소리 나나이다.』
佛이 阿難에게 물었다.
『너는 어떤 것을 소리가 난다 하고, 어떤 것을 소리 없다 하느냐?』
阿難과 大衆들이 함께 사뢰었다.
『鍾을 쳐서 소리가 나면 소리 난다 하고, 친지가 오래되어 소리가 스러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지면 소리가 없다 하나이다.』
佛이 阿難과 大衆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이 어찌하여 말이 교란하느냐?』
大衆과 阿難이 함께 사뢰었다.
『저희들을 어찌하여 矯亂한다 하시나이까?』
佛이 말씀하였다.
『내가 듣느냐 물으면 네가 듣노라 말하고, 내가 소리나느냐 물으면 네가 소리난다 말하여, 듣는다 소리난다 하는 대답이 一定하지 않으니, 이것이 矯亂하는 것 아니냐?
阿難아, 소리가 스러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진 것을 네가 들음이 없다 하니, 참말로 들음이 없다면 듣는 性이 아주 없어져서 枯木과 같을 것인데 鍾을 다시 치는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있는 줄 알고 없는 줄 아는 것은 소리가 스스로 있었다 없었다 함이언정, 듣는 性이야 어찌하여 너에게서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냐? 들음이 참으로 없다면 무엇이 없는 줄을 알겠느냐?
그러니까 阿難아, 듣는 性中에서 소리가 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언정, 소리가 나고 소리가 없어지는 것을 네가 듣는다고 해서 너의 듣는 性이 있었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니라.
네가 顚倒하여 소리를 疑惑하여 들음이라 하나니, 常한 것을 斷滅이라고 昏迷하는 것인들, 무엇이 그리 이상타 하겠느냐? 그러니까 動. 靜. 閉. 塞. 開. 通을 여의고는 듣는 性이 없다고 말할 것이 아니니라.
마치 깊이 잠든 사람이 床枕에서 한창 잘 적에, 그 家人들이 다듬이질을 하거나 방아를 찧으면 그 사람이 꿈결에 방망이소리와 절구소리를 듣고는 다른 소리로 생각하여, 북을 치거나 鍾을 치는 줄 여기면서 夢中에서 [鍾소리가 어째서 나무 두들기는 소리 같으냐]하다가, 문득 깨면서 절구 소린줄을 알고는 家人에게 말하기를, [내가 지금 꿈을 꾸었는데, 이 절구 소리를 북소리로 들었노라]하리라.
阿難아, 이 사람이 夢中에서 어떻게 動. 靜. 開. 閉. 通. 塞을 記憶
하랴마는, 몸은 비록 잠을 자나 듣는 性은 昏昧하지 않은 것이니 設使 네 形體가 銷盡하여 목숨이 遷謝한들, 이 성품이야 어찌 銷滅하겠느냐?
모든 衆生이 無始以來로 色. 聲을 따르면서 虛妄하게 流轉하고, 성품이 淨하고 妙하고 常한 줄을 깨닫지 못하나니, 그리하여 常한 것은 따르지 않고 生滅하는 것만 쫓아다니므로 世世生生 雜染하게 流轉하거니와, 만일 生滅함을 버리고 眞常함을 把握하면, 常光이 現前하여 根. 塵. 識心이 卽時에 銷落하리라.
想相은 妄塵이오 識情은 垢染이니, 두가지를 멀리 여의면 너의 法眼이 고대 淸明하여지리니, 어찌 無上知覺을 이루지 못하겠느냐?』
이와 같이 소리의 존재여부에 관계없이 듣는 성품은 항상 깨어 있는 것입니다.
3. 관세음보살의 이근원통
이근원통에는 문, 사, 수(聞, 思, 修)가 있습니다. 다음은 능엄경의 관세음보살께서 원통을 얻은 인연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운허스님의 수능엄경입니다)
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 卷第五
⑤ 觀音菩薩의 耳根圓通
이때 觀世音菩薩이 자리에서 일어나 佛의 발에 頂禮하고 佛께 사뢰었다.
『世尊이시여, 제가 생각하니, 옛적 수없는 恒河沙劫 前에 佛이 世上에 나시니 이름이 觀世音이시라, 저는 그 佛에게서 菩提心을 發하였더니, 그 佛이 저를 가르치사 聞. 思. 修로 조차 三摩地에 들라 하시었나이다.
처음에 聞中에서 流에 들어가 所를 벗어나고, 所와 들어감이 이미 고요하매 動과 靜의 二相이 了然히 生하지 아니하며, 이와 같이 점점 增進하여 聞과 所聞이 다하여지고, 聞이 다함도 머물러 있지 아니하여 覺과 所覺이 空하였으며, 空하였다는 覺이 極히 圓滿하여 空과 所空이 滅하여지고, 生과 滅이 이미 滅하매 寂滅이 앞에 나타나더이다.
忽然히 世間과 出世間을 超越하여 十方이 圓明하여지면서, 두가지 殊勝함을 얻었으니, 一은 위로 十方諸佛의 本妙覺心과 合하여 佛如來로 더불어 慈力이 同一함이요, 二는 아래로 十方의 一切 六道衆生과 合하여, 모든 衆生들로 더불어 悲仰이 同一함이외다.
世尊이시여, 저는 또 이 聞熏聞修金剛三昧의 지음이 없는 妙力으로써, 十方三世의 六道衆生들과 悲仰이 同一하므로, 衆生들로 하여금 저의 몸과 마음에서 十四種의 無畏功德을 얻게 하나이다.
一은 제가 스스로 音을 觀하지 아니하고, 觀하는 者를 觀하므로써 十方의 苦惱하는 衆生들로 하여금 그 音聲을 觀하여 解脫을 얻게 하나이다.
二는 知見을 돌이켜 회복하였으므로 衆生들로 하여금 큰 불에 들어가도 불이 能히 태우지 못하게 하나이다.
三은 觀聽을 돌이켜 회복하였으므로 衆生들로 하여금 큰 물에 漂流하여도 물이 能히 빠지도록 하지 못하게 하나이다.
四는 妄想을 斷滅하여 殺害할 마음이 없으므로, 衆生들로 하여금 鬼國에 들어가도 鬼神이 能히 害하지 못하게 하나이다.
五는 聞을 熏하여 聞을 이루고 六根이 銷復하여 소리를 들음과 같으므로, 衆生들로 하여금 被害를 當하게 되어도, 칼이 조각조각 부서지며 병장기가 물을 베는 듯, 빛을 부는 듯 하여 성품이 動搖하지 않게 하나이다.
六은 聞熏이 精明하여 法界에 두루 비취어 모든 어두운 성품이 온전하지 못하므로, 衆生들로 하여금 藥叉. 羅刹. 鳩槃茶. 毗舍遮. 富單那等이 그 곁에 가더라도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나이다.
七은 音의 性이 圓滿히 銷滅하고 觀聽이 돌이켜 들어가 塵의 虛妄함을 여의었으므로, 衆生들로 하여금 禁繫와 枷鎖가 能히 着하지 못하게 하나이다.
八은 音이 銷滅하고 聞이 圓融하여 慈力을 두루 내었으므로 衆生들로 하여금 險路를 지나가도 盜賊이 劫奪하지 못하게 하나이다.
九는 聞을 熏習하고 塵을 여의어 色이 劫奪하지 못하므로, 모든 ?欲이 많은 衆生으로 하여금 貪欲을 멀리 여의게 하나이다.
十은 音이 純一하고 塵이 없어지고 根과 境이 圓融하여 對와 所對가 없으므로, 모든 忿恨 많은 衆生으로 하여금 瞋?를 여의게 하나이다.
十一은 塵이 스러지고 明에 돌아가 法界와 身心이 瑠璃처럼 맑고 障?가 없으므로 昏鈍하여 性이 막힌 모든 阿顚迦들로 하여금 癡暗을 永遠히 여의게 하나이다.
十二는 形相이 없는 消融하고 聞性을 恢復하여 道場에서 動하지 아니하고 世間을 끌어들이되 世界를 損壞하지 아니하며, 十方에 두루하여 微塵같은 諸佛如來를 供養하여 여러 부처님의 法王子가 되었으므로, 法界의 子息없는 衆生들의 아들 낳기를 求하는 이로 하여금 福德이 있고 智慧가 많은 男子를 誕生케 하나이다.
十三은 六根이 圓通하고 밝게 비췸이 둘이 없어 十方世界를 包含하였으며, 大圓鏡智와 空如來藏을 세워 十方의 微塵같은 如來의 秘密한 法門을 順從하여 이어받아 잃지 않았으므로, 法界의 子息없는 衆生들의 딸 낳기를 求하는 이로 하여금 端正하고 福德있고 柔順하여 사람들이 愛敬하는 잘 생긴 딸을 誕生케 하나이다.
十四는 이 三千大天世界의 百億日月에서 世間에 現住하는 法王子가 六十二 恒河沙가 되는데, 法을 修行하고 模範을 드리워 衆生을 敎化하되 衆生을 隨順하는 方便과 智慧가 各各 같지 않나이다. 제가 얻은 圓通本根이 妙한 耳門을 發한 然後에 身心이 微妙하게 含容하여 法界에 周遍하였으므로 衆生들이 제 이름만을 持誦하여도 저 六十二 恒河沙 法王子의 이름을 持誦하는 이로 더불어 두 사람의 福德이 正等하여 다르지 않게 하니이다. 1)
世尊이시여, 저 한사람의 이름이 여러 菩薩의 이름과 다르지 아니함은 제가 참된 圓通을 修習한 연고니이다.
이것을 열 네가지로 無畏力을 베풀어 衆生에게 福을 주는 것이라 이름 하나이다.
世尊이시여, 저는 또 이 圓通을 얻어 無上道를 修證하였으므로 또 네가지 不思議한 지음 없는 妙德을 얻었나이다. 1)
一은 제가 처음으로 妙妙한 聞心을 얻고 마음이 精微로워지며, 聞을 버리어서 見. 聞. 覺. 知가 能히 分隔하지 못하고 한결같이 圓融하고 淸淨한 寶覺을 이루었으므로, 저는 여러 가지 妙한 容貌를 나투어 그지없는 秘密한 神呪를 말하나이다.
그 中에서 一首 三首 五首 七首 九首 十一首로, 乃至 一百八首 千首 萬首 八萬四千 ?迦羅首를 나투기도 하고, 二臂 四臂 六臂 八臂 十臂 十二臂 十四 十六 十八 二十 二十四臂로, 乃至 一百八臂 千臂 萬臂 八萬四千 母陀羅臂를 나투기도 하고, 二目 三目 四目 九目으로, 乃至 一百八目 千目 萬目 八萬四千 淸淨寶目을 나투기도 하는데, 或은 慈悲하게, 或은 威嚴있게, 或은 定으로, 或은 慧로 衆生을 救護하여 大自在를 얻나이다.
二는 저의 듣고 생각함이 六塵을 脫出한 것이, 마치 소리가 담을 넘어가되 障?되지 않음과 같으므로 제가 能히 가지가지 形像을 나타내어 가지가지 呪文을 외우며, 그 形像과 呪文이 能히 無畏로 衆生에게 베푸는 것이므로 十方의 微塵國土에서 저를 이름하여 無畏를 베푸는 이라 하나이다.
三은 제가 本來 妙하고 圓通한 淸淨本根을 修習하였으므로, 다니는 世界마다 衆生들로 하여금 몸과 珍寶를 버리어서 저에게 哀愍하기를 求하게 하나이다.
四는 제가 佛心을 얻어 究竟까지 證하옵고, 能히 珍寶로써 가지가지로 十方如來께 供養하오며, 곁으로 法界의 六道衆生에게까지 미치었으므로 妻를 求하는 이는 妻를 얻고, 子를 求하는 이는 子를 얻고, 三昧를 求하는 이는 三昧를 얻고, 長壽를 求하는 이는 長壽를 얻고, 乃至 大涅槃을 求하는 이는 大涅槃을 얻게 하나이다.
佛이 圓通을 물으시니, 저는 耳門으로 圓照하는 三昧로부터 緣心이 自在하여지고, 因하여 流相에 들어가 三摩地를 얻어 菩提를 成就하는 것이 第一이라 하겠나이다.
世尊이시여, 저 佛如來께서 제가 圓通法門을 잘 얻었다 讚歎하시고, 大會中에서 저를 授記하여 觀世音이라 하였사오니, 저의 觀聽이 十方에 圓明하였으므로 觀世音이란 이름이 十方世界에 두루하였나이다.』
4. 문사수의 기본적 의미
1. 문 : 소리를 들음에 있어, 소리에 상을 일으킴 없이
귀가 소리를 접촉케 합니다.(이렇게 노력해가면
묘식(妙識)이 나타나게 됩니다.)
소리를 접촉함에 기를 응해 결계합니다. 즉 마음이
성의 이치에 계합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그치게
됩니다.
2. 사 : 소리의 머물음 또는 머무는 곳 없음을 살핍니다.
소리의 찰나 변화를 살핍니다.
이렇게 노력해가면 正見이 나타나게 됩니다.
3. 수 : 正見을 발하여 法性을 관합니다.
즉 소리를 접촉하면서 그에 기를 응하고 그 자성과
마음의 자성을 동시에 관합니다.
1. 이근원통의 시작
: 정신통일의 향상, 주관 객관에서의 해탈
2. 이근원통의 성취
: 번뇌 망상 잡념 상념의 단멸과 그 작용의 단멸
3. 이근원통의 완성
: 이근원통을 벗어남, 이근원통을 버림, 생사해탈 함
(일체 미혹, 분별심, 집착, 탐, 진, 치, 무명과 무명의 습기에서 벗어남)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에 발췌한 경전 내용을 자꾸 읽어 보시고, 자신의 귀와 마음의 인식의 과정을 돌아보셔서 머리로의 이해가 아닌 스스로의 체험으로 아는 계합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염념불리와 이근원통은 삼밀가지에 이르는 긴요한 수단과 지혜입니다. 머리로 이해한 것은 힘을 내지 못하고 실제에 닥쳐서는 어찌할 바를 모르게 합니다. 스스로의 듣는 과정을 돌아보시면서 계학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삼밀가지수행법 7 이근원통 2
듣는 성품(聞性, 문성)은 항상 깨어 있습니다. 소리가 있을 때는 있는 소리를 듣고 소리가 없을 때는 소리없음을 듣습니다.
즉 듣는 성품은 있었다가 없어지고 없었다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있어 소리가 있으면 있는 소리를 비쳐내고 소리가 없으면 소리없음을 비쳐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소리가 있으면 소리가 있는 곳에 듣는 성품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빛이 없어서 거울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다하여 거울이 없는 것이 아니듯이 그리고 빛이 있으면 거울에 사물이 비치듯이 빛이 있는 곳에 거울이 드러나듯이 듣는 성품도 항상 사라진 것이 아님에도 알지 못하다가 소리가 있으면 듣는 성품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듣는 성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귀가 듣는 것이니 귀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머리가 알게 되니 머리에 있는 것일까 참으로 궁금합니다.
우리는 잠을 자다가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우리는 속삭이기도 하고 고함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이 하는 생각이 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꿈속의 소리나 생각의 소리는 귀가 듣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귀가 아닌 듣는 성품은 몸안도 아니고 몸밖도 아닌 안팍에 두루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루하므로 삼천대천세계의 일체의 소리에 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리가 없을 때는 흔적도 찾을 수 없으니 있다 할 수가 없고 소리가 있을 때는 확연히 드러나니 도저히 없다 할 수가 없으며 육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삼천대천세계에 두루하다는 것을 체험하기위한 수행을 이근원통 수행이라 합니다.
또한 그렇게 두루하여 소리에 응하므로 응하지 못하는 곳 즉 막히는 곳이 없음을 원통이라 하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께서는 삼천대천세계의 일체중생들을 향한 깊은 자비서원에 의해 삼천대천세계의 일체중생들의 소리를 섭수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육체라는 관념, 소리는 귀가 듣는다는 관념, 자신이 인지할 수 범위의 한계라는 관념 등 스스로가 지어내고 받아들인 관념으로 스스로 울타리를 두루고 그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근원통 수행을 통하여 스스로의 관념을 벗어나고 본심의 무한함 무애자재함을 체험하고 본심으로 제정신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내가 듣느냐 물으면 네가 듣노라 말하고, 내가 소리나느냐 물으면 네가 소리난다 말하여, 듣는다 소리난다 하는 대답이 一定하지 않으니, 이것이 矯亂하는 것 아니냐?
阿難아, 소리가 스러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진 것을 네가 들음이 없다 하니, 참말로 들음이 없다면 듣는 性이 아주 없어져서 枯木과 같을 것인데 鍾을 다시 치는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있는 줄 알고 없는 줄 아는 것은 소리가 스스로 있었다 없었다 함이언정, 듣는 性이야 어찌하여 너에게서 있었다 없었다 하겠느냐? 들음이 참으로 없다면 무엇이 없는 줄을 알겠느냐?
그러니까 阿難아, 듣는 性中에서 소리가 났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언정, 소리가 나고 소리가 없어지는 것을 네가 듣는다고 해서 너의 듣는 性이 있었다 없어졌다 하는 것이 아니니라.
네가 顚倒하여 소리를 疑惑하여 들음이라 하나니, 常한 것을 斷滅이라고 昏迷하는 것인들, 무엇이 그리 이상타 하겠느냐?
전편에 인용하였던 수능엄경의 일부입니다. 부처님께서 설명하시는 중에 중요한 점이 세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희론한다 즉 답이 일정하지않다.
듣느냐하면 듣는다하고 소리가 나느냐하면 소리 난다하여 대답이 일정치 않다는 말씀은 그냥 듣고 넘어가기 쉬운 부분이며 오히려 부처님께서 공연히 말장난을 하시는 것으로 알기 쉬운데 바로 이점이 전도되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살아가는 단면인 것입니다. 주객이 혼란되어 바뀌고 또 바뀌고 있는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듣는 성품은 항상하는 것이다.
듣는 성품이 주인이고 소리가 객인 것입니다. 객은 왔다가 떠나도 주인은 있듯이 소리는 있고 없고 할지언정 듣는 성품은 항상하는 것입니다.
셋째 전도되었다.
네가 전도하여 소리를 의혹하여 들음이라 한다. 어떻게 전도되었는가하면 스스로 전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는 무엇이 주인이고 무엇이 객인지를 바로 알지 못하여 뒤바뀐 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객의 전도는 참나의 전도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근원통 수행은 듣는 성품의 항상함, 두루함, 막힘이 없음, 무엇에 의함이 없이 스스로 있음, 어떤 소리에도 물들지 않고 청정함, 소리가 있으면 그대로 드러남 등의 원통을 체험하여 보는 성품, 냄새 맡는 성품, 맛보는 성품, 촉감을 아는 성품, 마음을 아는 성품 등이 듣는 성품과 똑같이 원통임을 알게 되고 체험함이 육근원통인 것이며 이렇게 안이비설신의 육근이 원통이므로 그 대상인 색성향미촉법의 육경 또한 원통이며 이를 두루아는 육식 또한 원통이어서 18계가 두루 원통임을 알고 체험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듣는 성품이 청정하여 물듬이 없으나 만약 소리의 성품이 물들게 하는 것이라면 물들게 되어야 할 것이며 소리가 사라져도 물듬은 남아 있어야 할 것인데 전혀 육근 12처 18계에 남는 것이 없으니 이는 소리의 성품이 청정한 것이며 그 어느 곳에서든 소리가 드러나니 소리의 성품 또한 두루한 것이니 소리 또한 원통한 성품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빛, 냄새, 맛, 촉감, 마음(의지)의 성품이 또한 원통이어서 육경이 원통인 것입니다. 육근과 육경을 합하여
12처라하고 이에 육식을 더하여 18계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사수의 사(思)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의 과정에서 확철하게 체험으로 계합한 것을 알았다 하는 것이며, 이렇게 알고 난 뒤에 앞전에 설명한 관음기도 수행법으로 소리와 듣는 성품을 동시에 관하면서 철저하게 원통이 드러나게 하는 것을 수(修)라 하는 것입니다.
염념불리란 염불수행의 수행규칙이며, 자신이 알던 모르던 참나는 이미 자성원통인 불성이므로 스스로 나라고 생각하던 전도된 나를 떠나서 불성에 의지함이 삼밀가지이며 이 삼밀가지가 염불수행의 원리인 것이며, 이근원통은 염불수행의 목적지인 것입니다.
이상으로 삼밀가지 수행법을 마칩니다.
음陰과 양陽은 그 자체가 성性과 명命이고,
성性과 명命은 그 자체가 마음[心]과 몸[身]이고,
마음[心]과 몸[身]은 그 자체가 신神과 기氣이다.
모든 연분[萬緣]을 내려놓고 털끝 하나도 일으키지 말면,
이것이 바로 태어나기 이전[先天]이요, 진리에 합하는 참된 무극
無極이다.
숨을 머무른다[定息]는 것은 숨을 쉴 때마다 그 숨이 마음과 서
로 하나가 되고 기氣가 우리 몸의 가장 한가운데[中黃]에 있는
뿌리[丹田]로 돌아가는 모습[息息歸根]을 말한다.
앉아 있다[坐]는 것은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는 것이다.
등뼈[夾脊]라는 것은 등뼈의 마디마디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로 곧바로 뚫고 올라가는 큰길 즉 독맥督脈을 말한다.
등뼈에 나란히 있는 두 개의 관문[雙關]이라는 것은 이곳에서 말
하기 어려운 것이다.
모든 것을 잊고 신神이 지켜 주어서 마음을 텅 비게 하고 번뇌를
끊으며, 아무것도 없음[無]에로 돌아가는 경우에만 이 관문을 보
게 되고 또한 뚫고 지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옥 같은 액체[玉液]도 이곳에서 변화되고, 피도 이곳에서 이루어
지고, 태어난 뒤에 이루어진 요소들도 이곳에서 태어나기 이전으
로 돌아가며, 기氣도 이곳에서 신神으로 돌아가고, 신神도 이곳에
서 텅 빔[虛]으로 돌아가며, 텅 빔[虛]도 이곳에서 진리의 길에
합하게 되고, 진리의 길도 이곳에서 그 공변된 뜻[志]의 처음과
끝을 이어서 원圓을 이루어 완전하게 할 수 있으며, 공변된 뜻
[志]도 이곳에서 그 바라는 바를 다 채울 수 있는 곳이다.
말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이곳이다.
그리하여 땅에서 번개와 천둥이 쳐서 산봉우리를 흔들어 놓는 경
지에 이르면, 진리에 합하는 참된 기[眞氣]가 생기는 것이다. 노
란 새싹[黃芽]이 땅속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진리에 합하는 참
된 약[眞藥]이 생기는 것이다.
그 모든 일의 터전은 오직 나란히 있는 두개의 관문과 그로부터
이어지는 큰길[雙關]을 신神이 지킴으로 말미암아 쌓여진다. 위
의 두 글로써 진리의 길을 닦아 나아가는 일을 이미 다 말하였
다. 이것들을 똑똑하게 알게 되면, 남들의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
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할 것이다.
빛을 돌리는 일[回光]은 잡됨이 없어 순수한 마음으로 배우고 익
혀 나가느냐 아니냐 하는 데 달려 있으니, 오직 마음과 숨이 하
나로 합하여져서 몸의 한가운데 해당하는 곳[中宮]을 초점을 맞
추어 비추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오래도록 지켜 나가면, 저
절로 신령해질 수 있고, 변화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이 움직임과 변화를 여의고 조용하며[心靜],
기氣가 안정되어야만 그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은 마음 자체를 잊어버리고[心忘], 기氣는 엉겨 모여서 덩어
리를 이루면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기氣조차도 끊어지고, 마음에는 아무것도 빌붙을 바 없이 비어
있게 되면[空], 단丹이 이루어진다.
마음과 기氣가 완전히 섞여서 하나로 되면,
마치 어머니가 사람의 태아를 열 달 동안 따뜻이 기르듯이 진리
의 태아[道胎]를 따뜻이 기르게[溫養] 된다.
마음이 밝게 빛나고 본성이 나타나면[明心見性], 진리의 길을 다
지나와서 마친 것이다.
마음과 숨이 서로 의지하게 되어야만[心息相依] 비로소 참다운
숨[眞息]이 되어서, 나가는 숨도 모든 연분을 따르지 않게 되고,
들어오는 숨도 물질이 쌓여서 이루어진 세계를 따르지 않게 된
다.
무심이란 아무 생각도 없는 것이 아니라 一念 즉 하나로 모아진 마음이다.
우리의 수련도 이 오원질의 생성 순서대로 진행되는데 아래와 같다.
1.수련을 처음 배워 시작할 때는 누워서 미려혈에 의식을 두고 호흡을 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써늘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계속해서 기를 모으다보면 기가 점점 더 뭉쳐지게 되는데, 이때가 수의 단계이다. 이 때 발현되는 기의 색상은 흑색이다.
2.이렇게 해서 호흡이 깊어짐에 따라 기의 흐름은 강해지고, 기의 뭉침에 따라 열이 발생하여 더 뜨겁게 되니, 이때는 화의 때이다. 색으로는 적색이다.
3.이러한 양기 현상이 계속됨에 따라 임. 독맥등 기맥에 기가 유통하게 되며 주천을 거듭 행하면 시원한 목의 기운이 된다. 색은 노란색, 연두색, 초록색, 청색의 변화를 갖는다.
4.다음으로, 금의 단계에서는 시원하던 기운이 더욱 차가워지면서 굳어져 가는데, 이것이 단을 이루는 과정이다. 금은 고요히 입정하여 지켜야 한다. 색으로는 백색이다.
5.오래오래 입정을 지키고 있다가, 태가 충족해져서 황백색 설화가 휘날리는 가운데 양신출태한다. 완성의 토이며 온화하며 미지근하다. 색은 황금색이다.
수진비결에서 중요시 하는 임맥, 독맥, 대맥, 충맥에서 기의 흐름은 다음과 같다.
1)임맥 : 전정혈에서 내려와 인당혈-단중혈-황정-단전에 이른다.
2)독맥 : 회음혈에서 올라가 미려혈-명문혈-협척-옥침혈-니환궁에 이른다.
3)대맥 : 명문혈에서 시작해서 허리와 배를 감싸고도는데, 시계 방향으로 돌아서 되돌아온다.
4)충맥 : 회음혈에서 몸의 중심부를 관통하여 백회혈에 일직선으로 이른다. 충맥의 위는 양인 백회혈이며 아래는 음인 회음혈이다.
2.혈(穴)
"경"과 "락"이 만나는 지점을 혈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터미널 역할을 하는 혈은 인체의 급소를 이루며 침. 뜸. 지압에서 많이 이용된다.
3.관문 용어 해설
1)미려 : 한의학의 인체상에 나타나 있는 혈이 아니고, 선도(수진비결)에서 단전 개발을 위해 쓰는 혈로서 선골 둘째마디 가운데를 말한다.
2)음교 : 한의학의 인체상에 나타나 있는 혈이 아니고, 선도(수진비결)에서 쓰는 혈로서 회음혈 한 치 위를 말한다.
3)협척 : 한의학에서의 영대혈을 뜻한다. 6번.7번 흉추 사이 오목한 곳.
4)황정 : 명치라고도 하며, 거궐혈에 해당하는 부위를 말한다.
상혈(上穴)에서는 오문(五門)으로 정기신삼보(精氣神三寶)가 누출되고, 하혈(下穴)에서는 일문(一門)으로 정기신삼보가 누출하는데 이를 폐쇄시켜 회로(回路)를 개통(開通)하여야만 주천(周天)이 가능한 것이다.
쿤달리니를 각성시키거나 제 3의 눈을 열기위해 반드시 채식주의자가 되고 요가를 수행하고 만트라를 암송하고 독신주의자가 될 필요는 없다. 모든 생명에 대한 숭고한 존경을 갖도록 노력하고 자신의 자아에 따르고 영적인 측면들이 만물에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 또한 영적인 진화를 추구할 수 있다.
우선, 우리 인간은 하나가 아닌 일곱개의 "바디-體(body)" 즉, 진동하는 에너지(Vibrating Energy)의 외피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깨달음에 도달해야 한다. 각 진동 에너지의 외피는 자신의 전자기 진동수(frequency)에서 현현하며, 이 진동에너지의 외피들은 서로 혼합되며 인간의 전체적 존재를 이루는 황금알(Auric Egg)의 형상으로서 나타난다.
일곱개의 바디체(The Seven Bodies)
1. 육체적 형태 - physical form
2. 에텔체 - Etheric body,
double of the physical form(육체의 이중체)
3. 아스트럴체 - emotional body (감정체)
4. 멘탈체 - Mental body (정신체)
5. 코잘체 - Causal body (원인체)
6. 붓디체 - Buddhic form
7. 우주체 - Celestial forms
세 개의 "인성의 바디체(Personality Bodies)" 人性體
1. 육체(Physical Body)
2. 감성체(Emotional Body)
3. 정신체(Mental body)
네 개의 "영적인 바디체(Spiritual Bodies)"- 靈體
4. 직관/동정체 ( Intuitional/Compassionate Body)
5. 아트믹체(Atmic - Will/Spirit)
6. 모나딕체(Monadic - Soul level)
7. 신성체( Divine body)
각 바디체는 다시 각각 7개의 계층으로 동일하게 나뉜다. 즉, 49 개의 바디체가 인간 에너지체(황금알의 형태로서)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옴마니반메훔(Om Mani Padme Hum)이라는 만트라는 "나는 연꽃속의 보석이다(I am the Jewel in the Lotus)"라는 뜻으로 번역된다. 이 경우의 연꽃을 크라운 차크라를 언급한다. 그리고 이 연꽃의 심장부에 있는 보석은 "위대한 희생의 진주(Pearl of Great Price)를 언급한다. 종종 푸른 진주, 분홍빛 진주, 하얀색 진주로서 열려진 연꽃의 심장부위에서 보이는 보석으로 그 숭고함을 경험한 신비주의자들에 의해서 알려져 있다. 크라운 차크라를 열지 않고서도 제 3의 눈을 여는 것은 가능하다. 따라서, 수행자는 초월하지 않고서도 성인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지구상에 살아가는 소수의 성자들은 제 3의 눈과 크라운 차크라 모두를 열었다.
일반적으로 얻어지는 에너지는 수련을 하지 않을 경우는 저급의 에너지로서 사용되며 호흡수련이나 의념에 의한 정화를 거치게 되면 보다 고급에너지로 변형된다고 하였다. 변형은 단계별로 수련과 고행의 시간에 따라 계속된다. 저급에너지는 일반적인 초능력을 발휘하는데 이용될 수 있으나 그 에너지의 사용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고급에너지로 변형되면 에너지는 창조적인 에너지이자 우주의 에너지와 합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슈슘나는 척추를 관통하고 있으며 회음부(항문과 척주의 하부에 위치한 성기 사이)에서 직접 두뇌에 있는 제 3의 눈 영역까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슈슘나는 루트 차크라와 이마 차크라 사이에 연결 통로가 된다. 그 통로에는 여러개의 차크라들이 척추를 타고 존재한다.
인간은 대우주의 미시우주체이기 때문에 우주의 변화는 항상 인체에 미묘한 변화로서 발생하게 된다. 에다와 핑갈라, 슈슘나는 열기과 냉기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하나 일몰과 일출에 가장 활발해지는 태양의 자외선(ultraviolet rays)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육체적 형체는 세가지 물질의 수준으로 구성된다. 즉, 고체, 액체, 기체로서 다양한 에너지 수준들을 표현한다.
호흡조절은 진정한 명상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충전기와도 같다.
怒하여 肝을 傷하게 하지 않고 飮食을 節度있게 취하여 脾腸을 保護하고 調息(호흡조절)에 힘써 肺를 기르고 性慾을 잘 참아 腎臟을 촉촉하게 維持해야 長壽를 누릴 수 있다.
영혼의 자리인 송과선(pineal gland)을 자극하기 위해서, 머리의 상단에 위치한 사하스라라 차크라 즉, 제 10의 관문의 봉인을 떼어내야 한다. 정상적인 상황 하에서, 이 문은 봉인되어 있다. 그러나, 쿤달리니와 "프라나-아파나" 열이 상승할 때, 남성(양)의 송과체는 자극되며 직립되며 신비의 본질들을 분비하기 시작하고 분비물을 여성(음)의 뇌하수체로 보낸다. 뇌하수체(pituitary)는 레이다 안테나들과 유사한 방사선으로 반응한다. 뇌하수체와 송과체가 제 3의 동공에서 신비스러운 합일을 이루게 될 때, 위대한 제 3의 눈 즉, 사하스라라 차크라로의 관문이 열리게 된다.
그러나, 프라나야마(호흡조절)을 통하여 마니퓨라 차크라에 프라나를 만들어놓아야 하며, 그것을 물라드하라 차크라에서 나오는 아파나와 합성시켜야 하며 두개를 완전하게 조합하여 다시 물라드하라 차크라로 보내야한다. 그곳에서부터, 쿤달리니와 프라나의 힘이 슈슘나를 타고 위로 진행하게 된다. 여기에 두개의 주의사항을 적어둔다:
1. 척추는 반드시 똑바로 세우도록(직립 자세를 유지하도록) 한다.
2. 세개의 근육락(조이기)를 적용해야 한다.
물반드 루트락을 수행함에 있어, 수축(조이는것)은 남자와 여자간에 약간 차이가 있는 물라드하라 차크라의 육체적 방아쇠에 대해서 수행된다. 남성은 항문과 성기 사이에 있는 회음부 영역을 수축시키면 된다. 여성의 경우, 질(vagina)과 자궁(uterus)이 만나는 자궁경부(cervix)를 수축시키면 된다. 단지 항문을 수축시키는 것으로도 물반드가 된다. 그러나, 물반드를 적용하는데 있어 항문과 성기관들은 서로 근접해 있어 자동적으로 같이 수축되게 된다. 그러나, 정확한 부위를 찾아서 완전한 수축을 적용하려고 시도해야 한다. 의심이 들 경우, 항문과 성기관의 수축으로도 일반적으로 만족스러울 것이다.
물반드를 위한 최선의 아사나들 또는 자세들 즉, 물라드하라 차크라의 수축은 성기의 앞부분에 오른쪽 뒷꿈치를 가져다 놓고 항문을 닫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압력감은 물반드의 신체적 수축을 증진시킨다. 만약 의식이 든다면, 항문과 성기관에 대해서 발꿈치를 견고하게 부치고 견고한 압력을 주도록 한다. 여러분은 작은 담요를 깔고 발을 구부려서 발꿈치가 엉덩이에 닫도록 하는 禪(Zen)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두번째 락은 우디바나로 횡경막락이라고 말한다. 이 우디바나는 복부 부위 근육을 척추를 향해서 수축시키는 것이다. 한편, 횡경막을 흉부(thorax- 목과 복부 사이의 몸의 부분으로 늑골들로 닫혀져있음)로 끌어올린다. 복부의 상부 기관들은 척추 위로 끌어올려지며 배가 움푹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적용된 압력은 심장 근육에 온화한 마사지 효과를 낸다. 이 횡경막 락은 프라나 힘을 슈슘나를 통해서 쉽게 상승하도록 도와준다. 이 우디바나 반드하는 종종 수행자가 만트라를 외울때 율동적으로 적용된다.
세번째로 기본적인 락은 잘란드하라 반다라고 말하며 목에 락을 적용시키는 것이다. 이 잘란드하라 반다는 약간 턱을 낮추고 수축시키며 목의 뒷부분을 긴장하도록 함으로서 수행된다. 이때, 목은 척주와 정렬이 되어야 한다. 즉, 척주와 목은 직립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머리는 수평상태를 유지하며 앞쪽이나 뒷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다. 턱이 이 락에 위치시킴으로써 척추와 목이 완전히 정렬을 이루게 되면 프라나-아파나 에너지는 물라드하라 차크라와 두뇌의線 중심부들(glandular centers)들 사이에 흐르게 된다. 요가의 크리야들을 수행할때, 엄청난 에너지가 생성되며 에다와 핑갈라의 나디들 뿐만아니라 슈슘나를 열 수 있게 하는 신경열(psychic heat)를 생산한다. 이러한 채널들에서 에너지가 갑자기 방출됨으로써, 혈압이 갑자기 변동하여 수련자가 현기증을 경험하기도 한다. 잘란드하라 반다를 적용하면 현기증을 사라질 것이다. 이 락을 적용하지 않으면, 솟아오르는 프라나 힘들은 두뇌의 중심부를 강압적으로 들어가 온화한 폭발로써 분산된다. 결과적으로 두뇌의 중심부뿐만 아니라 귀부분과 눈의 뒷부분에도 상당한 압력과 불안을 초래한다.
오장육부 기운들을 調和(조화)하여 精華(정화)시키기 위해서는 머리털을 자주 쓰다듬으며,叩齒(고치-이빨 부딪힘))를 꾸준히 행하고, 현응혈에서 샘솟는 감로를 꾸준히 삼키면, 전신 사지백절 백맥이 개통되어 전신에 혈액을 유통시키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니, 이윽고 얼굴은 밝은 빛이 나게 되어 金과 玉같이 밝고 윤택하게 되어진다.. 이빨은 튼튼하게 되어질 것이며, 백발은 이내 검은 머리로 새로 돋아나 다시는 희어지지 않게 되느니, 이것은 오로지 오장육부의 정화를 통해서 자신의 眞神이 되돌아와서 나타나는 공효인 것이니, 수행을 결코 게을리 하지 말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