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2시간여동안 수원화성의 답사를 마치고 행궁앞 "화성별관"에서 점심을 먹었다. 규모도 크고 깨끗한 반면 맛은 그렇게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 수원화성을 돌면서 무척 지쳐 있었기에 삼계탕을 시켰는데 12,000원하는 삼계탕이 반백숙만도 못한 그런 닭이 들어 있었고, 삶아 놓은지도 오래 됐는지 거무 튀튀한것이... 맛으로는 비추...가격으로도 비추...
암튼,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오면 이런 종이 서있다.
여민각


화성행궁에서 바라본 서장대

서장대는 전시에 군사를 총지휘하는 곳이다. 성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모든 전투와 훈련을 통제할 수 있다.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당시 정조임금께서 이곳에서 군사 훈련을 총지휘했다고 한다. 서장대 뒤로는 '노대'가 있는데 이는 활보다 멀리 나가는 쇠뇌를 쏘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오늘의 일정에 서장대는 없었으므로 행궁에서 멀리 사진만 찍었다.
신풍교


궁에 들어가기전에 있는 금천
홍살문과 신풍루


신풍루는 화성행궁의 정문이며, '신풍'이란 정조대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이다. 1795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때 신풍루 앞에서 정조가 친히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는 행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홍살문은 홍살문 안쪽으로 신성한 지역이기 때문에 마음을 정화하고 바른 마음 가짐을 갖으라는 뜻으로 세워둔다. 그래서 왕릉이나 왕궁 서원, 사원 향교 등에 홍살문이 있다.
하마비

말을 타고 온 사람은 이곳에서 내려 예를 갖추고 궁에 들어오라는 의미로 세워둔 비석이다.
신풍교 복원시 발견된 '신풍교자계'

좌익문




좌익문, 중앙문, 봉수당이 차례로 보인다.
좌익문(左翊門)은 신풍루를 통과하여 마당을 지나면 나오는 문으로 중양문 앞에 위치해 있다.
중앙문(中央門)은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앞에 있는 문이다.
느티나무


봉수당 과 봉수당 내부


봉수당은 화성행궁의 중심이 되는 건물 즉 '정전'이며 이곳에서 정조대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다.
봉수당에서의 진찬연


드므 와 정


드므는 궁에 불을 내러 온 '화마'가 드므에 담긴 물에 비친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보고 놀라서 도망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궁안에 드므를 둔다. 정은 제왕을 상징하는 의미라고 한다.
노래당


정조대왕이 왕위에서 물러나 수원에서의 노후생활을 하기 위해 지었다는 건물
낙남헌


낙남헌은 일제강점기에 화성행궁이 철거될 당시 훼손당하지 않고 남아 있는 건축물중 하나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하여 군사들의 회식을 이곳에서 하였으며, 특별과거시험을 치뤄 급제자에게 합격증을 내려주는 것도 이곳에서 했다. 그래서인지 내가 간 그날 학생들이 낙남헌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너무 이쁘다.
득중정

활을 쏘기 위해 세워진 정자로 편액을 정조가 직접 써서 걸었고, 정조는 행차시에 매번 이곳에 들러 활쏘기를 하였는데 1790년(정조14)에 새로 만들어진 이 정자에서 활을 4번 쏘아 4번 다 맞히고는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득중정'이라하였다.
화령전

정조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
먼저 답사에서도 앞까지 못가보도 이번에도 그렇고 멀리서 사진만 찍어 와서는 책 찾아 다시 공부했다.
복내당


화성행궁의 내당으로 평상시에는 화성유수의 가족들이 거처하는 곳이다. 복내당이란 이름은 '복은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다'라는 뜻이다.
유여택

유유여택(維與宅)은 평소에 화성유수가 기거하다가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며 신하들을 접견하는 건물이다. 유여택은 복내당 동쪽 행각과 외정리소 사이에 있다. 유여택은 1790년(정조 14년)에 건립되어 은약헌(隱若軒)이라 하였다가 1796년에 증축하면서 현재의 명칭을 가졌다.
앙부일구

외정리소
외외정리소(外整理所)는 1795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당시에 행사를 준비하던 임시 기관이었다. 정조의 행차가 끝난 후 외정리소라 명명하고 임금이 행차하실 때의 행사를 준비하는 관청이 되었다. 처음의 정리소는 장용영 내영에 있었는데 1796년에 행궁이 완성되면서 현재의 위치가 되었다.
경룡관
경룡관(景龍館)은 장락당의 바깥문으로 사용했던 부속건물이다. 1794년(정조 18년)에 세워졌는데, 2층 구조로 만들고 2층은 누마루로 만들고 1층을 문을 만들어 지락문(至樂門)이라 이름붙였다.
자료집과 미션지를 들고 다니며 동선을 체크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곳저곳 두루두루 살펴보고 싶었으나 으악~~~~덥고,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우리가 공부할 곳만 열심히 봤다.
내게 이런 열정이 있었나?
얼마전까지만 해도 유적지 답사는 더구나 혼자가는 유적지 답사는 꿈도 못꿀 일이었는데...ㅎㅎㅎ
뭐 일주일 후 다시 갈꺼므로 그때 보면 뭔가 내가 못보았던것이 보이겠지...그리고 새롭게 느껴지는것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