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신앙의 척도 레위기 23:15-21
주제: 감사
명제: 성도는 최선의 감사를 한다.
대지
1. 가치 없는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
2.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
3. 최선의 감사를 할 수 있는 사람
서론
주님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척도가 좋다고 하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십일조요, 그렇지요. 예! 우리교회 성도님들 십일조 생활 잘 하시는 것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데 십일조는 기본입니다. 그러면 무엇입니까? 진정한 신앙의 척도는 감사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서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고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까지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신앙의 성숙한 자입니다.
맥추절이란?
이 절기는 초실절 칠칠절 오순절로 불리며 맥추절이라고 한다. 그렇게 부르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활절에서 7주간 49일 다음날 50일, 그래서 칠칠절 오순절이라고 한다. 성경에는 이렇게 나오는데 실은 부활절 날을 빼고 칠칠절이라고 하고, 원래는 부활절까지 포함해서 오십일이 오순절입니다. 오순절이나 칠칠절이나 같은 날입니다. 부활절은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그 다음날부터 추수를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남부부터 추수를 시작하여 점점 북쪽으로 올라갑니다. 북쪽에는 헬몬산이 있어서 기온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을 초실절 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이고 이때부터 추수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50일까지 추수하고 마지막 감사를 한다.
그래서 남북으로 남유대와 북 이스라엘이 나누어 졌을 때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이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위해 추수기간이 남이 있는데 아래쪽인 예루살렘으로 내려가니까 백성들에게 자기들은 추수가 안끝났으니 추수가 끝난뒤에 절기를 지키자고 하며 사마리에 자기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기들끼리 절기를 만들어 지켰습니다.
오늘에 맥추절은 오순절 성령강림주일과 맥추절을 지키는 절기가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보리추수가 끝나는 7월 첫 주일로 정해서 하는데 이는 성경의 절기와는 맞지 않지만 우리실정에 맞게 기간을 정한 것입니다. 실제로는 맥추감사절이 성령강림절입니다. 오순절을 통해서 우리가 둘째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맥추절 제사를 드릴 때 있는 사람은 숫 송아지나 양을 드렸지만 그것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소제를 드렸습니다. 즉 밀가루를 곱게 빻아 체를 7곱 번 걸러 정성을 다한 아주고은 가루를 떡으로 만들어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드릴 떼에 누룩을 넣어 드렸습니다.
구약의 제사에서 모든 소제물을 드릴 때 누룩이나 꿀은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화목제를 드릴 때는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맥추절에 누룩 넣은 떡을 드리라고 합니다. (17 너희의 처소에서 십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그렇다면 맥추절에 드리는 제사는 무슨 제사입니까?
누루있는 것으로 보아 이 제사는 화목의 제사입니다. 누룩을 넣은 빵을 드릴 수 있는 유일의 제사는 화목제이기 때문이죠.
왜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누릴 수 있게 하셨으므로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모든 감사를 드리는 것이다. 산소 여러분 한소한 통에 얼맙니까? 그런데 공짜로 먹고 있으니 감사한 일 아닙니까? 물도 마찬가지죠. 모든 것 하나님 주셨는데 감사를 드리는건 마땅한 일 아닙니까?
‘설교준비를 하면서 여러분들을 만나게 하신 것에 너무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여러분들과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해서 이번 절기에 중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맥추감사절을 지켜 보려고 보리떡 축제로 하자. 생각하고 보리떡을 하기 위해 수소문했으나 연무 논산 지역은 아무떡집도 보리떡을 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가루를 가져오면 만들어준다는 떡집이 있어 보리쌀을 빠을 방앗간을 찾았으나 보리쌀은 빠을 방앗간도 없다는 겁니다. 인터넷을 다 뒤졌으나 여으치 않았습니다. 수소문하니 은산에서 하는 곳이 있어 주일날 7시에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누룩까지도 넣게 하셔서 감사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지 않습니까? 내 속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물론 드리는 물질도 최선으로 드리려고 합니다.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찬송합니다. 세세한 부분까지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맥추감사절을 통한 의의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1)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나는 두 번째 열매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매나 나의 열매나 같은 열매입니다.
2)우리는 다음의 열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부활의 열매가 되었는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열매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쉬운가 우리가 쉬운가? 우리가 훨씬 더 쉽습니다. 이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열매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모진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부활의 열매가 되었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되었습니다. 은혜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3)예수님은 원래 하나님의 독생자였고, 우리는 죄의 종인데 상속자로 삼아주셨다.
성경의 배경으로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 가정에서 상속을 받을 하나님 약속의 자녀가 늦어지자 종 엘리에셀을 가정의 상속자로 정했습니다. 그가 너무 성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상속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왜지요?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엄청난 불충을 하고 죄인이지만 우리를 하나님이 백성 삼아주시고 상속자로 세워주셨습니다. 예수믿는 다는 단 하나의 이유만으로 말입니다. 감사한 일 아닙니까?
4)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누린다.
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서가 장자지만 장자의 상속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혈통도 아닌데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내가 있고 예수님이 누리는 것을 우리도 누리게 됩니다.
5)예수님께 성령을 보내셔서 함께 하신 것처럼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다. 성령께서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이 감사를 아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것입니다. 언제나 감사를 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감사를 더하도록 하십니다.
감사를 드리는 자를 더 기뻐하시고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시며...”
1. 가치 없는 것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
- 남이 볼 때는 전혀 가치 없는 일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
레위기 23:15-21에서 주제는 “감사”입니다.
속죄제를 드릴 때, 누룩을 넣어 첫 요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제물 들은 - 일곱 숫양, 숫 송아지 한 마리, 숫양 두 마리= 소제와 전제와 이모든 것을 번제로 삼고 화제로 드리라, 그러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라고 했습니다.
속죄제는 레위기 1:4절의 속죄제와 레위기 4장의 속죄제는 다르다. 1장의 속죄제는 회복의 의미이고, 4장은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회복이라는 것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이야기로 볼대, 탕자는 아버지의 재신을 다 말아먹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은 레위기 4장은 속죄입니다. 집에 와서 아버지의 용서를 받고 아버지가 신발을 신겼다는 것은 신분의 회복이고 가락지를 끼었다는 것은 아버지 대신 결재권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반지로 보통 인을 찍잖아요. 전에는 자신을 위한 결재권이었다면, 이제는 아버지의 것입니다. 이것이 레위기 1장의 회복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자들은 십자가에 이미 죽었습니다. 내가 사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회복입니다. 그래서 레위기 1장의 속죄는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는 향기로운 제사는 화목제로 회복의 의미이고요.
다시말해 모든 것을 속죄제로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리는 회복입니다. 최고의 제물은 내 몸을 빼고 숫 송아지입니다. 그것 마져도 드릴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은 밀가루입니다. 이것을 새 소제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누룩마저도 드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십분의 이 에바라고 했으니 요만한 밀가루가 있다면 누룩은 조금밖에 안 들어갑니다. 떡 두덩어리에 들어가는 누룩은 아주 조금이다. 지극히 작은 것 까지도 하나님께 세어서 넣어라는 것입니다. 그것마저도 감사해라,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헤아려 감사함으로 드려라, 그래서 설교제목을 “신앙의 척도”입니다.
2. 작은 일에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
여러분은 무엇으로 사십니까? 자존심, 명예, 그리고 물질입니까?
삭게오는 물질로 산사람이었습니다.
삭개오의 집, 누구나 그 집에 놀러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야 부정하다고 가지 않겠지만 말이죠. 예수님이 내 집에 오셨다는 것 때문에, 누구도 예수님을 그렇게 영접하지 않았는데, 삭개오는 누구나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엄청난 감사를 한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처럼 여겼던 재물을 나누어 주었죠. 그것도 사배나 말이죠.
그는 모든 사람으로 버림을 받았습니다. 돈은 벌었지만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삭개오를 부정한 존재로 보고 피했습니다. 로마 편에 붙어서 백성들의 피고름을 빨아먹는 민족의 반역자라고 손가락 질 하고 멀리했습니다. 혹 돈이 필요했으면 모를까? 누룩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죄의 원흉이요, 공공의 적으로 보았던 그를 예수님은 찾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삭개오는 너무 기쁜 나머지 남의 것을 부정하게 취한 것이 있다면 네배나 갚겠다고 선포했던 것이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는 돈으로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했고 그것이 자신의 생의 목표였다. 그런데 그가 그것을 과감히 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집이나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의 집은 아무도 안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직접 가셨습니다. 삭개오는 환영하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 우리는 맥추감사절을 드린다. 누구나 드리는 맥추감사절이지만 삭개오의 심정으로 감사절이 맞이해보십시다. 누군가 맞이하는 맥추절이 아니라 여러분들만의 의미 있는 맥추감사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최선의 감사를 할 수 있는 사람
- 보통의 사람들은 절기때는 보통 송아지까지도 드렸는데... 누룩은 송아지발톱 사이에 끼이면 보이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까지도 감사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진정 감사의 사람이고 ...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는 자입니다.
우리 이런 사람이 됩시다. 신앙의 모델이 되어 봅시다.
여러분의 최선을 다한 감사는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고 큰 축복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누룩만한 최선의 것이라도 드려봅시다. 새 소제는 부활절에 드렸던 첫 제물 말고(첫 열매-초실절) 즉 둘째 날부터 나를 위해 거둔 제물이 새 소제물입니다.
전제는 기름이나 포도주입니다. 기름으로 드리는 것은 성령으로, 포도주는 기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지 않고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지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야! 하나님이 이런 것을 주셨다.” 하는 감동으로 드립시다.
어렸을 때 즐거운 우리집 이란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옛날 양복이 귀할 때 동네사람들이 돌려가면서 입을 때 였습니다. 어떤 집에서 구정물을 집밖에 확 끼얹었는데 양복 입은 신사가 그 집 앞을 지나가다가 구정물을 뒤집어썼습니다. 그런데 그 신사가 하는 말, 그래도 감사합니다. 만약 뜨거운 물이었다면 어떻게 할 뻔했겠습니까? 했다는 거죠.
과거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통해 내가 과거를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 긍정적으로 감사하며 삽시다.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립시다. 번제나 화제나 같은 말로 불에 태워드리는 것입니다. 불로 다 태워드리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숫양이 보이고 송아지가 아른거린다면 기쁨으로 드리지 못했다는 말이고 인색함으로 드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쁨으로 모든 것을 다 드릴 수 있는 마음으로 드린다면 그것을 기억하겠습니까? 드린 것을 아깝다고 기억하겠습니까?
우리는 더 드리고 싶어서 안달이 나야합니다.
*절기헌금 어떻게 드려야 하나?
나는 이번에 최선의 감사를 드리려고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최선의 축제가되기 위해 보리떡을 드리고 최선의 감사를 드리려고합니다. 여러분의 최선은 무엇입니까?
나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살펴보고 그것 까지라도 드리십시길 축원합니다. 감사는 더 큰 감사를 낳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