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바이러스
한동안 ‘인류의 평화’를 줄기차게 외쳐왔던 인간들이지만, 역사가 이를 증명하듯 자만이 극에 달하게 되면 꼭 무력을 통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서기 2037년4월13일 오전10시를 기해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고려국고려연방공화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3개국이 연합하여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EU국가들을 상대로 전쟁을 개시한 것이다.
한국은 2020년대 들어 ‘삼송국’이라 일컬어질 만큼 글로벌 재벌 삼송그룹의 막강한 경제력 영향 하에 놓여있었다.
2023년 2월 초, 김정은의 급살로 극심한 정쟁과 혼란을 거듭했던 북한이 정면에 나선 군부에 의해 겨우 진정국면에 들어섰고, 이후 남한은 북한과 2024년1월10일자 경제적 통합에 이어 2028년6월30일자 정치적 통합까지 이뤄 마침내 ‘고려연방공화국’이란 단일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차기 대통령감으로 늘 압도적 지지를 받아온 삼송그룹 이재룡 회장이 국민의 합의요청에 의해 2030년2월25일 제22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이후 4년제 대통령을 두 차례 연임하다가 임기 말에 영구통치를 선언하고 이후 ‘세계 최강국 구현’을 구실로 강력한 독재체재를 유지해오고 있었으며, 전쟁 발발 즈음엔 고려국의 국제적 위상을 미국 다음인 제2위로 일본이나 중국보다 우위에 올려놓았다.
이보다 앞서 세계는 새로운 경제구역으로 재편되었다.
미국과 캐나다가 연대하여 ‘북아메리칸경제구역’을, 30여개 유럽국가들이 연대하여 ‘EU경제구역’을 형성했다.
그리고 고려국과 중국, 일본이 연대하여 ‘신아세안경제구역’을 형성했으며, 그 외에도 몇몇 국가들이 연대하여 나름의 경제구역을 형성했으나 그 역할이나 영향력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었다.
전쟁의 발단은 태평양과 대서양 해저 요소요소에 건설된 대규모 담수 저장탱크의 소유권분쟁에 있었다.
서기 2030년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는 생활용수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환경파괴로 인해 자연에 의한 수질정화기능은 그 한계를 드러냈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물은 음용수로 적합하지 않을뿐더러 정수 처리하는데 있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되었다. 더군다나 강수량도 해마다 줄어들었다.
따라서 각국은 절대 부족한 식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앞다투어 바다 한 가운데에 대규모 정수처리시설과 담수저장탱크를 건설했다.
바닷물 속에 함유된 염분과 무기질을 분해하여 생활담수화 한 다음 담수 저장탱크에 저장했다.
그렇게 저장된 용수는 해저에 거미줄같이 이어진 파이프라인을 통해 각국의 도시들로 배송하는 것이다.
고려국의 삼송은 싱가포르의 기업 일랄라와 동일한 조건으로 공동투자하여 태평양과 대서양 해상에 56기에 이르는 500억 배럴의 담수저장탱크를 건설하여 운영해왔다.
그런데 2036년7월7일 일랄라의 대주주 다니엘헤니가 변심하고 일랄라의 주식 전체를 미국기업 닷센에 팔아넘긴 것이다.
따라서 28기가 미국 측으로 넘어가면서 고려국은 물론 중국이나 일본 또한 심각한 물부족현상을 겪게 된 것이다.
삼송은 신무기체계의 잇단 개발로 전 세계 무기시장의 70% 이상을 공급해온데다, 초강경파로 핵폭탄이란 별명을 지닌 이재룡 대통령이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이 대통령은 중국의 짱아오윈 주석과 나카무라 유우이치 수상과의
화상회의를 주재하고, 전쟁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이런 파렴치한 짓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이 기회에 전 세계 경제권을 우리가 아예 차지해버립시다.”
내심 불만을 지녔던 중국과 일본도 전쟁에 동참하기로 선언했다.
이미 그 이전인 2027년7월4일, 2029년9월2일, 2034년2월18일 등 세 차례에 걸쳐 전 세계에 전운이 감돈 적도 있었으나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간신히 충돌을 모면하곤 했었다.
한때는 종족 간에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또 한때는 종교들 간의 분쟁 때문에, 또 한때는 사상이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인류는 전쟁을 쉬지 않고 벌여왔었다.
그러나 근래의 전쟁 위기는 대개 한정된 자원에 의한 것으로 그중 물에 대한 비중이 가장 컸다.
전쟁이 가열되면서 러시아 연방과 인도, 태국 등이 고려국 측에 붙었고, 호주와 남아공 등이 미국 측에 붙었다. 전쟁은 불과 두 달여 만인 6월16일에 승자도 패자도 가름하지 못하고 종료되었다.
핵무기는 2035년3월11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핵무기폐기조약에 19개 핵무기 보유국 국가원수들이 전원 합의함으로써 그 즉시 폐기되었기에 핵폭발은 없었다.
그러나 더 가공할 무기들의 등장으로 지구는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변해버렸다.
제3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80억의 인류 가운데 겨우 5억의 인류들만 살아남았다. 모든 시설물과 가옥들은 파괴되었고, 자연도 그 모습을 모두 잃었다. 뿐만 아니라 자연계의 대부분 생명체들 또한 자취를 감추었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었다. 주거지의 슬럼화와 마구 버려진 오물들로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고, 음용수나 식량도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욱 잔혹해질 수밖에 없는 인간들은 인간을 증오하여 테러와 약탈, 살인을 일삼았다. 오직 힘이 센 인간들만 거리를 활보할 뿐, 힘없는 약자들은 숨어지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2억 광년 떨어진 머나먼 행성 ‘크렐리티’에서 3천여 명으로 구성된 대규모의 외계인 사절단이 지구를 찾아왔다.
그들은 과거와는 사뭇 달리 처참하게 파괴되고 일그러진 지구의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전 우주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지구가 어떻게 이렇듯 참혹하게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우리가 한발 늦었나 봅니다.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가 있었을텐데….”
“지금도 늦진 않았을테니, 어서 해피바이러스를 퍼뜨릴 적임자를 찾아보세.”
그들은 적임자를 찾아 이곳 저곳을 배회했다. 그렇지만 눈에 띄는 사람들마다 광포하거나 미쳐 날뛰기를 마치 지옥의 악귀와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저런 인간들한텐 접근도 어렵거니와 해피바이러스가 먹히지 않을 텐데요.”
“그럼 어쩐다? 우리가 너무 늦게 도착했나?”
“지구는 포기하고, 우리 행성으로 되돌아갑시다.”
그들이 되돌아가려할 즈음, 아주 미미한 신호가 감지되었다.
살려달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그들은 신호가 방출되는 곳을 향하여 날아갔다.
폐허가 된 공장의 지하에서 숨어 지내던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고, 그 중에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두 손을 모우고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은 괴상하게 생긴 외계인들을 보고는 너무 놀라 숨소리마저 죽였다.
그들의 모습은 인간이 상상해왔던 외계인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나뭇등걸같이 밋밋한 원통형에 끝부분이 가느다랗게 좁아지면서 우산손잡이처럼 둥글게 말려있었다.
어른 키만한 이도 있었고, 어른의 세 배 크기가 되는 이도 있었다. 생긴 모습만으로는 동물이라기보다 식물에 가까웠다.
그들은 몸을 수축하거나 팽창하기도 했고, 활처럼 휘거나 달팽이처럼 돌돌 말기도 했다.
사람들 눈에는 외계인들이란 것들이 그저 흔들거리는 나무토막이나 다를 바 없어보였다.
“우리는 머나먼 행성 크렐리티에서 온 종족이라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텔레파시를 통해 유일하게 소녀만이 들을 수 있었다.
소녀는 외계인이 전하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이분들은 2억 광년 떨어진 머나먼 행성 크렐리티에서 우리에게 해피바이러스를 전파할 목적으로 지구를 찾아왔다고 하네요. 해피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전쟁도 없고, 배고픔이나 고통도 없이 마냥 행복하게 살 수가 있다면서요.”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외계인들을 빈정대기 시작했다.
“그게 어찌 가능한 일이냐? 사람이 행복하게 살려면 집도 필요하고 옷도 필요하고, 또 무엇보다도 맛있는 음식과 물도 필요할 텐데, 그깟 바이러스로 뭘 어찌하겠다는 얘기냐?”
“그나저나 이 외계인들은 뭘 타고 왔기에 2억 광년 거리에서 단숨에 달려올 수가 있었지? 나뭇등걸같이 생긴 걸 보아하니, 과학문명도 그리 발전했을리 없을텐데….”
“이 외계인들은 몸체가 수억만 가닥의 신경근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자체가 곧 두뇌라 하네요. 그리고 외피 자체가 의복이고 집이며 운송수단이래요. 그래서 집도 필요 없고 옷도 필요 없고 우주선도 필요 없으니, 물질적인 욕심이라곤 전혀 없대요. 그리고 해피바이러스만 먹고 사는데, 몸속에서 완전 흡수분해되기 때문에 배설물도 배출할 필요가 없다네요.”
“편리해서 좋겠구만…. 근데, 우주선도 없이 그 몸으로 어떻게 우주를 날아다닐 수 있나?”
“몸이 움츠러들 때 에너지가 방출하고, 그 에너지로 날아다닌데요. 그리고 먼 우주를 유영하고자 할 때엔 몸이 좁쌀보다도 더 작게 응축되어 거기서 방출되는 엄청난 에너지를 이용, 빛의 속도로 날아갈 수가 있데요.”
“먹는 즐거움이라든가 갖는 즐거움을 모른다면,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가나?”
“이들은 먹는 즐거움도 못 느끼고, 뭘 갖겠다는 생각도 없데요. 그렇지만 늘 행복하데요.”
“이해가 되질 않아. 그렇다면 종일 우두커니 서서 뭘 하는데?”
“이들은 우두커니 서서 가만있는게 아니랍니다. 어느 행성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나 우주를 꿰뚫어 보고 있데요.”
“그렇다면…, 이들이 혹 사람들이 신적 존재로 믿어 온 하나님이란 존재가 아닐까? 아님, 부처님이나 알라신, 마호멧이라든가 그런….”
“이들에겐 하나님처럼 우주를 창조할만한 그런 권능은 없데요. 그리고 인간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이란 존재도 없다네요.”
“그럼, 우주나 지구는 누가 만들었는데?”
“이들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우주나 지구같은 행성은 해피바이러스가 만들었데요. 그리고 해피바이러스야말로 우주를 이룬 근간이라네요.”
“해피바이러스가 우주를 이루고 있다면, 당연히 지구에도 해피바이러스란게 있을거 아냐?”
“지구가 처음 생겼났을 때부터 이미 해피바이러스가 존재했었대요. 근데, 지구에 존재했던 해피바이러스가 언제부턴가 사라지고 없더래요.”
해피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대단히 강했다.
그로인해 두 달도 안되는 사이에 인류 대부분이 감염되어 저마다 행복을 느꼈다.
욕심이 없어진 반면에 남을 도와주려는 생각뿐이니, 자연히 범죄도 사라지고 인류는 안정을 되찾아가는 듯했다.
그런데 해피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일부 인간들이 나타났다. 그들 비감염자들은 감염자를 상대로 갈취를 하고 괴롭히거나 죽이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감염자들은 한결같이 그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죽어가면서도 그들을 용서할뿐만 아니라, 그들을 향해 행복한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아니 해피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인간들이 있다니…. 이를 어쩐다?”
“수많은 행성들을 치유해왔음에도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외계인들로서도 전혀 뜻밖이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비감염자들이 외계인들을 수은으로써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다.
비감염자들은 본격적으로 외계인사냥에 나섰고, 마침내 그들은 죽음을 피해 지구로부터 멀리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아! 역시 인간들은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존재인가 보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내뱉은 탄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