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녀항해(2)
- 특별한 휴가
김동규
(계속)
첫날부터 금식에 들어갔다. 금식은 몸에게 휴식을 주는 방법 중의 하나로 병약한 몸을 회복하는 가장 좋은 치료제이다. 세포의 기능이 저하되고 정상 활동을 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몸에 쌓여 있는 노폐물이다. 금식은 몸 속에 있는 노폐물을 제거하고, 불결한 조직에서 벗어나 생체작용을 일으킨다. 금식은 그래서 요양 환자가 가장 먼저 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알렌 골드해머 의사의 <금식과 치료>에서 '금식'이란 "순수한 물을 제외한 모든 음식물의 공급을 중단한 상태에서 신체가 전체적인 휴식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했다. 당뇨 고혈압 등 성인병과 각종 암환자 등 웬만한 질병환자는 먼저 금식으로부터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금식에는 물 금식, 과일식, 절제식 등이 있는데, 나는 물 금식에 들어갔다.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한두 시간 간격으로 깨끗한 생수만을 마신다. 금식에 꼭 지켜야 하는 몇 가지 수칙이 있다. 매일 목욕하고 속옷을 갈아입는다. 방은 맑은 공기로 항상 바꾸어 준다. 적어도 하루에 15분 정도는 직사광선으로 일광욕을 한다. 매일 옥외에서 운동을 하되, 하루 한 시간 걷는 운동을 한다. 잠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저녁9시 취침, 아침 5시 기상) 이불은 자주 빨고 햇볕을 쬔다. 매일 하나님의 처방을 받아들이고 실천한다. 이 일은 금식이 끝난 후에도 계속한다.
금식이 시작되면서 성경공부를 병행했다. ‘성경이란 무엇인가’에서부터 신약, 구약, 창세기, 천지창조, 출애굽기, 십계명 등을 학습했다. 또 금식과 치료, 의지의 활용(굴복), 십자가와 율법, 죄의 결과(심판), 복음, 기도와 말씀, 기도에 반응하는 조건, 지옥, 거듭남, 영생, 믿음 등의 기독교 입문과 중심 교리 과정을 학습했다. 영상강의를 통해서는 미국 ‘생애의 빛’ 강병국 목사의 ‘다니엘서’ 강론, ‘십자가의 의미’, 믿음의 아버지 죠지 뮬러의 ‘믿음의 기도’, ‘경제로 보는 종말’ 등을 시청했다. 이와 함께 건강강좌 시간에는 이상구 박사의 ‘NEW START' 에 기초한 ‘면역치료’, ‘물과 호흡’, ‘유전자의 존재와 회복’, ‘수면’, ‘환경과 유전자’, ‘용서의 기쁨’, ‘항암치료’, ‘자가 면역성 질병’, ‘생명-하나님의 말씀’, ‘건강식’, ‘휴식’, ‘사람의 죄’ 등에 관해서 들었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돌아온 이상구 박사가 TV에 출연하여 건강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운동과 채식 그리고 소식을 강조하며, 면역세포의 중요성을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소개함으로써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이상구 박사가 주창한 뉴 스타트(NEW START)란,
N : Nutrition (영양을 적절히 공급한다)
E : Exercise (적절한 운동)
W : Water (깨끗한 물)
S : Sunshine (햇볕)
T : Temperance (절제 즉, 식욕과 정욕의 자제)
A : Air (신선한 공기)
R : Rest (휴식, 수면)
T : Trust in God (믿음, 하나님의 말씀 공부) 등을 말한다.
이 박사는 강원도 양양 산골에서 힐링 센터를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환자 및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뉴 스타트를 강의함으로써 '건강의 전도사' 역을 자처하고 있다. 병약자가 금식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건강 원칙(뉴 스타트)를 지켜 나가면 모든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거나 회복할 수 있다는 주장에 수긍이 된다.
금식과 성경공부를 같이 하니, 몸과 마음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임을 절감한다. 내가 그리스도의 초청을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서서히 인정해 갔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11장28절).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출애굽기15장26절). 한순간도 하나님을 떠나지 말라 했듯이 하나님이 늘 내 곁에 아니 내 안에 계시고 내가 하나님에게 거하기를 기도했다.
성경공부를 시작한 초기에는 내가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믿는 자를 배척하던 사람이 나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고 있었다. 그런다고 하나님이 나를 알아줄까 의심스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하나님의 말씀을 되뇌곤 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장10절). 말씀을 읊을 때마다 힘이 되고 마음의 안정이 되었다.
금식 다음 날 아침 산책 산책길에서 나는 쓰러질 뻔 했다. 현기증에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명현 현상으로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불과 몇 끼 금식했을 뿐인데, 기력이 완전 바닥이 되었다. 휴대전화를 숙소에 두고 나와 비상연락을 할 수도 없다. 기어가더라도 내 방에까지 홀로 되돌아가야 한다. 가까스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친구에게 죽어가는 목소리로 SOS를 보냈다. 친구 부부가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꿀물을 내놓았다. 금식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자연스런 현상이니 걱정말라는 말을 들으니 안도가 되었다. 반 시간쯤 지났을까, 없었던 일처럼 컨디션은 회복되었다. 다음 날 부터는 매일 꿀물을 한잔씩 마셨다. 꿀물은 금식으로 차단된 영양과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중요한 식품이었다. 금식 3일째 되면서 숙변이 서서히 나왔다. 냄새가 고약했다. 매일 아침에 공부하는 성경은 낯설고 신기하고 한편 은근한 매력으로 나를 빨아들였다.
성경의 세계에 서서히 빠져 갈 무렵, '의지의 굴복'을 배우고선 나를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기로 선택하고 결심했다. '나'의 메이커이자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내 몸의 수리를 온전히 맡기기로 결심했다. 그리하여 질병으로부터 완전한 회복을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간구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를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편37장5-6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하며 복종하고 싶어졌다.
수양원 생활과 금식 5일째. 내 스스로 처음으로 기도를 해 보았다. 몸은 아침운동도 나가기 힘들만큼 흐느적거렸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들'을 배운 대로 응용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리기4장2절)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듯이 그 말씀을 믿고 건강 원칙을 지켜 온전히 그리스도께 굴복할 것을 선택하고 결심하오니, 하루속히 저를 완전한 몸으로 새로이 태어나게 해 주시고, 병중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매 순간마다 저를 거듭나고 성화(聖化)되도록 도와 주셔서 제가 주님과 주님의 영혼 구원사업에 동역자가 되고, 도구로 만들어 주옵시고 사용하여 주옵소서! 메스꺼움 현기증 등 금식의 후유증이 나타날 때마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은 큰 힘이 되고 의지가 되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을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를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이사야58장10절). 아침기도를 시작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기도했다.
어느새 금식 10일째. 그동안 여러 가지 난관을 건너왔다. 그리스도인의 생애가 하나의 지난한 싸움이듯이 금식과 말씀공부를 하는 것도 내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을 큰 무리 없이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모두들 나의 의지력과 정신력이 대단하다며 놀라워한다. 금식을 며칠 더 하고 싶었지만, 프로그램 일정상 오늘부터 보식을 시작하기로 했다. 금식한 일수만큼 회복기간을 가져야 한다. 보식이 중요한 만큼 절차가 있다. 첫 식사는 현미 볶은 곡식 한 숟갈을 죽이 되게 꼭꼭 씹어서 삼킨다. 다음 끼니부터 양을 점차 늘려 금식일 수만큼 지난 뒤에 정량으로 식사한다. 간식과 과식은 금물이다. 식간에는 물 이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현미 곡식 한 숟갈을 먹으면서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절감한다. 보식 이튿날, 천연재료로 만든 양념 간이 된 부식을 맛보았을 땐 몸이 떨렸다. 연하디 연한 시고 달고 짠 맛, 그 오묘한 맛이 입 안 가득 감돌 때 내가 비로소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포도 한 알의 새콤한 맛이 입 안 가득 침을 고이게 했다. 보식 3~4일째 나온 식사에 나는 감탄했다. 금식과 식단을 전담하는 김연희 집사의 놀라운 음식 솜씨 때문이다. 음식 하나하나가 작품이요 예술이다. 음식 하나에 철학이 버물려 있고, 은은한 맛 속에는 정성과 기도가 깃들어 있다. 실제로 김 집사는 매 끼니를 기도로 구상하고 기도의 응답으로 음식을 조리한다고 한다. 나는 그녀에게 '음식 디자이너'라고 명명하고 싶었다. 평소 누구나 만들고 먹던 음식을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조리 방법을 달리 함으로써 새로운 미각을 창출하는 저 솜씨, 천사의 마음씨를 보라. 20여 년 요양식을 연구하고 손수 만들어 병약자들에게 보급해온 김 집사의 저 헌신적인 사랑과 믿음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녀는 태연자약하게 모나리자 같은 미소를 지을 뿐이다.
'믿음'과 '기도'를 공부하고 나는 점점 하나님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믿는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는 분이심을 믿는다"고 되뇌면서 믿음을 이야기하고,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기를 기도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즐거움과 기쁨의 비결을 이해하기 위하여 날마다 진리의 샘을 마시며 살고 싶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29장12-13절). 이제 기도하는 것이 편안하고 자연스러워졌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21장22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15장7절). 성경말씀이 이제 진리처럼 다가왔다. 기도에 더 집중하고 싶었다. 기도의 진정성이 하나님께 전달되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이번 거제 여행은 분명 나에게 또 다른 길을 제시해 주었다.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 두렵기도 했던, 가지 않은 길. 항해자에게는 때로는 '이로*(離路)'행위가 불가피할 경우가 간혹 있다. 운항주(선주)의 오더를 받아 움직이는 배(항해자)는 초기 항로와 목적항이 변경되기도 해서 운항주가 지시하는 대로 항해를 완성한다. 나는 거제에서 내 인생의 일대 변혁을 시작했다. 늦잠 자던 사람이 소위 새벽형 인간으로 바뀌고, 기도를 모르던 사람이 기도를 하게 되고, 자연식으로 식단을 혁신했다. 무엇보다도 큰 변화는 내가 믿음을 가졌다는 점이다.
거제에 오기 전 2차 항암치료 뒤 체중이 빠진 상태에서 금식을 하고 나니 아내가 나더러 딴사람으로 보인다고 한다. 게다가 금식의 영향인지 항암주사의 후유증인지 머리카락이 훤하게 빠져버려 더 노쇠해 보여 이래저래 기분이 설상가상이다. 짙고 결 고운 머리카락이 빠진 것은 못내 아쉽다. 도대체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 건 무슨 이유인지 아직 알 수 없다. 친구는 빠질 머리카락이 빠진 것이지 뭐가 그리 걱정할 일인가, 내가 체중계에라도 오를라 하면 체중이나 혈압 등의 수치에 민감해 하지마라고 충고한다. 아마 그것은 나의 인생과 삶의 본질에서도 벗어나고 참으로 부차적인 일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리라. 자네의 외양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네 정신과 의지가 중요한 것이지, 하면서 친구가 토를 달 것 같다.
'항상 기뻐하라'는 이상구 박사의 뉴 스타트 영상 강의가 떠오른다. 성경 구절을 확인하다 다음 절에 연이어 나에게 손짓하는 말씀에다 형광펜으로 밑줄을 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 전서15장 6~8장). 불현듯 믿음 생활의 요체 같은 이 세 가지만 실천하며 살아도 천수를 누리겠다는 공상을 해본다. "네 영혼을 여호와께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시편103장 2~5절).
아주 특별한 휴가였다. 수리 선거(船渠)에 올라 3주 동안의 오버홀을 마치고 새로운 항해를 재개한다. 드디어 나는 새 항로, 처녀항해의 장도에 올랐다. **
(2012/06/30)
---------------------------
* 이로(離路;deviation) ; 항해 중 태풍이 내습하거나 황천荒天 이나 인사사고 등 천재지변 등으로 부득이하게 예정된 항로를 변경하거나 이탈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끝)
[출처] 처녀항해(2) - 특별한 휴가 /김동규 (샬롬 수양원) |작성자 항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