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 굴슨 지음, 이준균 옮김/ 2016년 4월 4일/ 368쪽/ 15,000원
열정과 유머로 가득한 뒤영벌 복원 분투기
1988년, 영국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짧은털뒤영벌이 멸종했다. 1800년대 후반에는 수분 매개 곤충이 없어 토끼풀 재배에 번번이 실패하던 뉴질랜드에 보내기까지 했던 짧은털뒤영벌이 정작 고향인 영국 땅에서는 사라진 것이다. 이에 뒤영벌 연구자인 저자는 짧은털뒤영벌을 복원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뒤영벌보존기금>을 설립하고, 영국 사회에 뒤영벌의 존재와 중요성을 알리고자 동분서주, 고군분투한다. 결국 뉴질랜드에서 짧은털뒤영벌을 데려오는 데는 실패하지만, 스웨덴에 사는 같은 종을 데려와 영국 땅에 방사하는 데는 성공한다.
이 책에서는 그 모든 과정이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저자는 연구 결과물인 뒤영벌 관련 지식과 정보, 뒤영벌을 위해 활동하다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아주 편안하고 감칠맛 나게 풀어낸다. 이 책이 벌 생태에 눈뜨게 하는 자연과학 도서이자 유쾌하고 감동적인 자연문학 도서로 평가받는 이유다.
| 출판사 리뷰 |
자연과학자가 쓴 걸출한 자연문학
‘뒤영벌’이 어떤 벌인지 몰라도 뒤영벌의 한 종인 호박벌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뒤영벌은 꿀벌과에 속하는 벌로, 약 3,000만 년 전에 아시아에서 최초로 출현했다. 세계에 250여 종이, 우리나라에는 22종이 산다.
뒤영벌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 토마토 재배에서 뛰어난 수분 매개자 역할을 인정받으면서부터다. 이후 다양한 과일 재배에 이용되며 현재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유용곤충이자 산업곤충이 되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영국에서 사라진 뒤영벌을 복원하면서 겪은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그 과정을 유쾌하게 풀어내면서도 자연 파괴로 말미암아 서식지를 잃고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생물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 책이 ’걸출한 자연문학’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한편 책에 수록된 다양한 에피소드는 벌의 독특한 생활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연과학 지식이자 어떻게 벌을 연구하는지 알려 주는 연구 방법론이기도 하다.
뒤영벌 없이 농사짓기 어려워
1985년, 벨기에의 한 연구가가 뒤영벌의 토마토 수분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하고 상업용 뒤영벌을 사육한 이래로, 뒤영벌은 세계 채소와 과일 재배 농가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2년부터 서양뒤영벌(이 책에서는 ‘담황색뒤영벌’로 표기)을 수입하기 시작했고, 이후 자체 생산 기술을 거듭 개발해 2013년부터는 100% 수입하던 이 뒤영벌의 약 90%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뒤영벌의 상업적 가치에 대한 관심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뒤영벌을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자료는 흔치 않다. 뒤영벌의 기원부터 분류, 형태, 생태, 관련 질병, 현황까지 치밀하게 다룬 이 책의 출간이 반가운 이유다.
똑소리 나는 뒤영벌 세계
뒤영벌의 독특한 생태를 아주 생생하고 흡입력 있게 기록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저자는 뒤영벌을 연구한 이유에 대해 “중요한 수분 매개자라서가 아니라 행동 방식이 흥미롭고 신비롭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끈덕지게 관찰한 뒤영벌의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그 말에 절로 고개 끄덕이게 된다. 그중 특히 놀라운 사례 하나만 살펴보자.
뒤영벌은 꿀을 빨아 보기도 전에 그 꽃에 꿀이 있는지 없는지를 안다. 꽃잎 위에다 냄새나는 발자국을 남기기 때문이다. 뒤영벌은 공기 속에 분자 몇 개만 있어도 더듬이로 냄새를 감지할 수 있고, 덕분에 꿀이 없는 꽃에 내려앉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같은 꽃일 때, 뒤영벌이 다시 꿀을 빨기 위해 꽃에 내려앉는 시기와 꽃에 새로 꿀이 차는 시기가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영국 전역에 퍼진 뒤영벌 열풍
저자는 뒤영벌을 연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뒤영벌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뒤영벌보존기금>을 설립하고, 영국 사회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기 시작한다. <뒤영벌보존기금>의 노력으로 사람들은 뒤영벌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이러한 인식 변화는 환경 변화로 이어졌다. 현재 영국 곳곳에서는 사람만을 위한 경작지가 뒤영벌을 비롯한 여러 생물을 위한 초원으로 바뀌고 있다.
열정적이고 때로는 가슴 뭉클하기까지 한 이 과정을 엿보다 보면 당연하지만 쉬이 잊고 지내는 중요한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인간의 생존과 행복은 뒤영벌은 물론 모든 생물과 불가분의 관계로 묶여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편의를 위해 생물의 서식지를 파괴했고, 그 탓에 이 땅에 살던 생물이 하나둘 멸종했지만 오랫동안 개의치 않은 것은 영국이나 우리나라나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 현실을 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것을 생각하게 한다.
| 지은이, 옮긴이 소개 |
데이브 굴슨(Dave Goulson)
옥스퍼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 현재 서식스 대학에 생명환경과학과 교수로 재직한다. 벌과 나비를 비롯해 여러 곤충에 관한 글을 많이 썼다. 2006년에는 뒤영벌보존기금을 설립했고 이 선구적인 업적으로 최고의 환경 프로젝트에 수여하는 헤리티지복권기금 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생물학 및 생명공
학연구협회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사회혁신가’ 상도 수상했다.
이준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서울 아산병원 신경과에서 전공의, 전임의 과정을 수료했고 현재는 경남 진해에서 신경과 의사로 근무한다. 의학만큼이나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다. 좋은 자연과학 도서가 있으면 틈틈이 소개하고 번역한다.
| 추천사 |
선데이 타임즈 베스트셀러
2013년 새뮤엘 존슨 상 최종 후보작
한 사람이 어떻게 자연주의자가 되었는지를 잘 정리한 기록이며, 동시에 벌을 넘어 생태계와 보존까지 이야기한 매력 넘치는 안내서다. _ 베른트 하인리히
대단히 유익할 뿐만 아니라 매우 재미있다. 가벼운 문체와 쉼 없는 유머는 최신 연구 결과를 흥미로운 읽을거리로 만든다. 자연에 관심이 있다면 놓쳐선 안 될 필독서다. _ 인디펜던트
짧은털뒤영벌을 고향 땅 영국에 복원하려 애쓰는 장면은 열정으로 빛난다. 자칫 무미건조해질 수 있는 주제를, 폐부를 찌르는 재치로 다듬었다. _ 뉴욕 포스트
추리소설처럼 재미있고 자연과학 서적만큼 유익한 책이다. _시애틀 타임즈
유익하면서 몰입감도 엄청나다. 매우 소중한 곤충인 벌을 소재로 한 걸출한 자연문학이다. _ 북리스트
매우 인상적인 데뷔작. 자연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한 동시에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필력을 가진 저자가 쓴 매우 유쾌한 책이다. _ 커커스 리뷰
| 차례 |
한국어판 지은이의 말 …10
프롤로그 …13
1. 짧은털뒤영벌 …36
2. 뒤영벌 생활사 …55
3. 뒤영벌은 온혈동물? …69
4. 진화로 보는 벌의 탄생 …83
5. 귀소 본능 …96
6. 꽃잎 위의 발자국 …111
7. 태즈메이니아 데블 …125
8. 뒤영벌 탐지견 퀸과 토비 …153
9. 벌의 전쟁 …175
10. 뻐꾸기뒤영벌 …186
11. 천적 …196
12. 슬픈 사랑 …219
13. 덩치가 문제? …236
14. 케첩과 터키 이민자 …257
15. 프랑스에서 …284
16. 뒤영벌보존기금 …312
17. 여왕의 귀환 …339
감사 말 …359
옮긴이의 말 …360
부록 …364
| 책 속으로 |
나는 제럴드 더럴이 채집용 그물과 유리병을 운반해 주는 당나귀도 기른 것이 너무 부러워서 슈롭셔에 있는 나름 평범한 생물로 더럴이 했던 것을 기를 쓰고 따라했다. 부모님에게는 떼를 써서 애완동물을 길러도 된다는 허락을 받아 냈다. 기니피그, 토끼, 햄스터, 생쥐가 그 시작이었고 나중에 우리 형제는 부모님을 들볶아 개도 한 마리 키웠다. 검은색 래브라도 잡종견의 강아지였는데 바보같이 우리는 등에 있는 흰 점을 들어 점박이라고 이름 붙였다. 강아지가 자라자 등의 점은 금방 사라져 점박이라고 부르기가 애매해졌다. _18쪽
놀랍게도 비행 중인 뒤영벌 체온은 약 35도로 주변 공기 온도를 훌쩍 뛰어넘어 인간 체온과 거의 비슷하다. 기초 물리학 지식만으로 생각해도 이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몸집이 작을수록 체온을 높게 유지하기가 어렵다. 흰수염고래처럼 큰 동물은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좁아서 체온이 서서히 떨어지므로, 남극해처럼 극도로 추운 환경에서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파리처럼 작은 동물은 몸 부피에 비해 표면적이 매우 넓어 몸속 온기가 쉽게 빠져나간다. 대충 보기에도 뒤영벌은 흰수염고래보다는 파리에 가까운데도 자기 체온보다 무려 30도 낮은 환경에서도 몸을 따뜻하게 유지한다. 실로 경이롭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_77쪽
뒤영벌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현재에서 3,000~4,000만 년 전, 이렇게 거대한 동물이 세상을 지배할 때였다. 당시 기온은 낮은 편이어서 뒤영벌은 몸집이 커지고 털이 많아졌다. 추측해 보자면 뒤영벌은 아마도 중앙아시아의 산악 지역 어딘가에서 처음 나타났을 것이다. 지금도 이 지역 뒤영벌의 종 다양성이 제일 풍부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부터 뒤영벌은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 히말라야, 중국, 시베리아, 유럽, 심지어 북극권까지 점령했다. _92~93쪽
뒤영벌의 뇌는 쌀 한 톨보다 작지만 뒤영벌의 지각 능력과 학습 능력을 알고 나면 우리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기회가 있으면 정원에 벌이 좋아하는 꽃을 심어 놓고(지금 할 수 없다면 내년 봄에는 심기를 바란다) 벌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해 보라. 벌이 꽃에 다가가 냄새만 맡은 뒤에 그 꽃을 무시하고 다른 꽃으로 찾아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_124쪽
당신이 먹는 오이, 가지, 깍지콩, 블랙커런트(Blackcurrant), 고추 같은 것도 모두 야생이든 사육이든 뒤영벌이 수분한 것으로 생각해도 무방하다. 구운 콩 통조림에는 뒤영벌이 수분한 흰강낭콩이 들어 있고, 뒤영벌이 수분한 토마토로 만든 소스가 첨가되어 있다. 우리는 이 작은 동물에게 이렇게도 신세를 많이 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재 모습이다. _282~283쪽
두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첫째, 뒤영벌보존기금은 뒤영벌과 뒤영벌 세력 감소에 관한 대중의 인식을 제고했다. 〈인디펜던트〉에 소개된 이후, 기금에서 작성한 여러 언론 기사 덕분에 뒤영벌은 어려움에 처했고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오히려 드물 정도다. 둘째, 루시, 브리짓, 밥, 피파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의 열정과 노력 덕분에 현재 영국에는 꽃과 행복한 벌로 가득한 초원 산책길이 많아졌다. _3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