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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럽 카페에서 활동을 시작한 지 벌써 6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정말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느낌을 받으며 살고 있네요. 초창기엔 칼럼을 많이 쓰고 번역물도 자주 올렸었는데, 지난 2~3년간은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귀차니즘 때문에 주로 소소한 GIF 자료들을 사진/그림 자료실에 올리는 것으로 카페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가 올린 총 게시물의 숫자가 무려 2,000개에 육박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0개 째 되는 게시물은 제대로 된 칼럼으로 해야겠다며 며칠 전부터 벼르다가 이 부족한 글을 하나 쓰게 됐습니다.
글제목은 ‘NBA 드림팀은 1992년이 아닌 1972년에 이미 결성됐었다’이고, 부제는 ‘윌트 체임벌린과 줄리어스 어빙이 코트에서 맞붙은 유일무이한 경기’입니다.
87년 미주 선수권 우승 실패, 88년 올림픽 금메달 획득 실패, 90년 세계 선수권 우승 실패, 91년 Goodwill Games 우승 실패, 91년 미주 선수권 우승 실패... 5년 간에 걸쳐 국제대회에 나가는 족족 우승에 실패하며 자존심이 상할대로 상한 미국이 급기야 NBA 스타들이 주축이 된 드림팀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파견하게 되었죠.
그러나 이 사실을 아십니까? NBA 수퍼스타들로만 이뤄진 드림팀이 지금으로부터 무려 40년 전인 1972년에 이미 결성됐었다는 사실을... 그러나 슬프게도... 그들의 상대는 미국을 제외한 타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때는 1971년, NBA 리그와 신생 라이벌 리그 ABA가 자선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한 이벤트성 올스타 경기를 휴스턴 시에서 갖게 되었습니다. 이 경기의 별칭은 Supergame이었고, 경기 수익금 일체는 불우한 청소년들의 복지를 위해 쓰이게끔 만든 좋은 취지 하에 마련된 이벤트였습니다. ABA 리그 올스타 팀은 당시 ABA 최고의 선수였던 멜 대니얼스(MVP 2회, 우승 3회)와 NBA에서 화려한 첫 두 시즌을 보내고 ABA에서 선수생활을 하던 릭 베리가 이끌었습니다. 감독은 래리 브라운. NBA 리그 올스타 팀의 주축은 ‘빅 O’ 오스카 로벗슨, 존 하블리첵, 월트 프래지어, 데이브 드부셔, 얼 먼로우, 데이브 빙, 네이트 써몬드, 엘빈 헤이스 등이었습니다. 시즌 MVP 커림 압둘자바는 원래는 뛰기로 되어 있었으나 자신의 결혼식 날짜가 하필 시합 전날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출전을 하지 못했습니다. 감독은 빌 러셀. ABA 리그를 항상 폄하하고 조롱하던 당시 NBA의 텃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ABA 선수들은, 친선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다해 뛰어 승리를 낚을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런앤건 농구와 덩크를 품격이 떨어지는 농구로 보던 당시의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ABA 선수들은 더 빨리 더 높이 뛰는 농구로 NBA 올스타 팀을 이기고 싶어 했죠.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ABA 올스타들은 눈에 불을 켜고 경기에 임했고, 릭 베리, 찰리 스캇 등의 슛이 폭발을 하며 경기를 계속 리드해 나갔습니다. ABA 올스타 팀이 바라던 승리가 그리 멀지 않아 보였습니다. 심판 전원을 NBA 주심으로만 내보냈던 이 경기... 결국 그 막연하게 들었던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고 맙니다. 4쿼터에도 ABA 선수들이 모멘텀을 빼앗기지 않으며 경기를 리드해 나가자... NBA 심판들이 경기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4쿼터 들자 심판들은 ABA 선수들이 숨만(?) 쉬어도 파울을 불어대기 시작했습니다. ABA 선수들은 수비를 할 수도 없었고, 과감한 골밑 공격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한 쿼터에만 NBA 선수들에게 주어진 자유투가 무려 31개. 올스타 게임이었고 친선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ABA 선수들은 파울아웃되거나 파울트러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막판까지도 ABA 올스타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웠습니다만, 결국 승부는 NBA 올스타 팀의 5점차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 125:120. ABA 선수들과 팬들은 분노했고, 신문들은 NBA 사무국의 졸렬함을 비난하는 기사들로 가득찼습니다. 그래서 단회 이벤트였던 이 경기가 1년 뒤에 제대로 한 번 다시 붙어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NBA 쪽에선 무시하고 넘어가고 싶었지만, 여론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결국, 진짜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일명, Supergame II입니다. 1972년 5월 25일... NBA가 최정예 팀을 구성해 ABA 올스타와 제대로 자웅을 가리려는 경기가 어렵게 성립이 된 것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경기는 이름만 올스타 경기였을 뿐, 그런 류의 경기가 전혀 아니었습니다. 양대 리그가 총력을 다해 싸워 누가 더 나은 지를 겨루는 진검승부의 장이었기 때문이지요. 모두들 자신이 속한 리그의 자존심을 걸고 사투를 벌여야 하는 숨막히는 결전이었습니다. 파이널 경기 7차전을 방불케 하는 결연한 의지와 비장한 각오로 양 팀 선수들은 연습을 했고, 이들 모두가 뉴욕 메디슨 스퀘어 경기장에 속속 모여들었습니다.
여기서 잠시 양 팀의 대표적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 보겠습니다. 잘 아실 만한 선수들의 이름만 썼고, 이름 옆의 스탯은 71-72 정규시즌 스탯입니다.
ABA 올스타 팀 아티스 길모어: 23.8점, 17.8리바운드, 5.0 블락샷 (72년 ABA MVP와 신인왕 동시 수상, 75년 ABA 우승) 줄리어스 어빙: 27.3점, 15.7리바운드, 4.0어시스트 (ABA MVP 3회, 득점왕 3회, ABA 우승 2회) 릭 베리: 30.8점, 6.5리바운드, 3.8어시스트 (75년 NBA 파이널 MVP) 댄 이셀: 30.6점, 11.2리바운드 (명예의 전당 헌액, 덴버 너겟츠의 꾸준한 올스타로 활약) 맬 대니얼스: 19.2점, 16.4리바운드 (ABA MVP 2회, 우승 3회)
NBA 올스타 팀 엘진 베일러: 이미 은퇴한 후여서 팀에는 상징적으로 선정만 됐고, 실제론 감독 역할을 맡았습니다. 윌트 체임벌린: 14.8점, 19.2리바운드, 4.0어시스트 (설명이 필요없는 선수, 당시 파이널 MVP, 최고의 수비수) 윌리스 리드: 13.4점, 8.7리바운드 (닉스의 심장, 팀에 발탁은 되었으나 부상으로 결장) 밥 르니어: 25.7점, 14.2리바운드 (정통 파워센터, NBA 올스타 8회 선정) 데이브 드부셔: 15.4점, 11.3리바운드, 3.6어시스트 (당대 최고의 수비형 파워 포워드, NBA 우승 2회) 폴 사일러스: 17.5점, 11.9리바운드, 4.3어시스트 (원조 블루칼라 워커형 파워 포워드, NBA 우승 3회) 커니 호킨스: 21.0점, 8.3리바운드, 3.9어시스트 (플레이 그라운드 농구를 프로에 접목시킨 선구자) 존 하블리첵: 27.5점, 8.2리바운드, 7.5어시스트 (74년 파이널 MVP, 우승 8회, 당시 최고의 3번 수비수) 밥 러브: 25.8점, 6.6리바운드 (수비가 뛰어났던 시카고 불스의 터프가이) 게일 굿리치: 25.9점, 4.5어시스트 (72년 우승팀 레이커스의 빅 3 중 하나) 제리 웨스트: 25.8점, 9.7어시스트 (본인은 뛰고 싶었으나 자녀가 급하게 병원에 입원한 관계로 출장하지 못함) 오스카 로벗슨: 17.4점, 5.0리바운드, 7.7어시스트 (시즌 평균을 트리플 더블로 기록한 바 있는 불세출의 가드) 타이니 아치발드: 28.2점, 9,2어시스트 (한 시즌에 득점왕과 어시스트왕을 동시에 해냈던 포인트 가드)
어떻습니까?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고, 97년에 선정된 역대 최고 50인에도 들어간 선수들이 수두룩하게 보이죠?
제목에서도 이미 언급됐다시피, NBA 스타들로 구성된 드림팀은 1972년에 이미 결성됐던 것입니다. 체임벌린, 웨스트, 로벗슨, 르니어, 호킨스, 하블리첵, 아치발드, 사일러스, 드부셔... 이름만 들어도 후덜덜한 이들이 바로 ‘원조’ 드림팀의 멤버들이었습니다.
이 경기의 원본은 한 은퇴한 미국 방송국 직원이 30년간 소장하고 있었는데, 테이프 원본의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중간 중간 많이 끊겨 있고, 4쿼터 영상은 통으로 훼손이 되었습니다. 2000년에 제가 이 방송국 직원과 어렵게 연결이 돼서 이 경기의 복사본 비디오테이프을 고가에 구입했고, 제가 직접 인코딩한 이 경기의 영상들이 현재 인터넷 상에 돌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정말 보고 싶었던 장면들이 재생이 안 되어서 당시의 기사들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 이 역사적인 경기의 흐름을 GIF 움짤 몇 개와 함께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경기 시작 전, 장내 아나운서에 의해 각 선수들이 소개가 됐고 곧 미국 국가가 연주됐으나 어느 하나 웃거나 편안해 보이는 선수는 없었습니다. 엄청난 긴장감 속에 시작된 이 경기는 역시나 ABA 선수들이 더 강렬한 의지를 보이며 초반 분위기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ABA 선수들은 틈만 나면 속공을 시도하는 런앤건 경기를 펼쳤고, 체임벌린은 ABA의 MVP 아티스 길모어를 신경질적으로 여러 번 밀쳐내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몸싸움이 있은 직후, 체임벌린은 길모어의 골밑 공격을 화끈하게 블락하며 기선을 확실히 제압했습니다. 체임벌린은 블락을 해도 마치 배구공을 백어택 라인 안쪽에 꽂듯 강하게 내리찍었습니다 GIF 영상에는 3쿼터에 레이커스 팀원인 게일 굿리치에게 넣어준 체임벌린의 그림같은 비하인-더-백 패스도 함께 넣어 편집했습니다. 강렬한 수비를 펼친 양 팀은 시종일관 거친 플레이들을 연출했습니다. 노마크 레이업? 이런 건 이 경기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존 하블리첵이 속공 레이업을 시도할 때 아티스 길모어는 그 크고 우람한 몸집으로 하블리첵을 덮쳤습니다. 1년 전 경기에 비해 매우 공정하게 판정을 내리던 심판진도 계속해서 파울을 부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1쿼터 후반에 줄리어스 어빙이 경기에 투입되면서부터 경기 분위기는 본격적으로 고조가 되기 시작했죠. NBA에서 ABA를 그토록 폄하한 이유가 바로 ABA가 런앤건 리그였다는 점이고, 품위 떨어지는(?) 덩크를 즐겨했다는 것이었죠. 바로 그런 리그의 중심에 서있던 선수가 줄리어스 어빙이었으니, 팬들도 어디 NBA 선수들을 상대로 얼마나 하나 보자 하는 자세로 지켜봤던 것입니다. 들어오자마자 체임벌린 위로 인-유어-페이스 덩크를 찍은 어빙은 다음 포제션에서 당시로선 보기 힘들었던 비트윈-더-렉 드리블에 이은 더블 클러치 점프샷까지 성공시켰습니다.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 모인 NBA 팬들도 연속되는 어빙의 묘기에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빙은 수비에서도 훌륭한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NBA 올스타 팀의 오스카 로벗슨이 4-2의 숫자적 우세하에 속공을 이끌 때였습니다. 코트 정중앙을 달려 들어오던 로벗슨을 어빙이 앞에서 견제하며 로벗슨으로 하여금 왼쪽 코너의 아치 클락에게 패스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클락이 오픈 점퍼를 날리는 순간, 어빙이 날아와 그 공을 쳐냈고, 그 리바운드 된 볼을 자기가 잡아 속공으로 연결시켜 줬습니다. 조지 톰슨이 앤드원 플레이로 이 속공을 마감했을 때, ABA 올스타 팀은 47-30으로 크게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빙이 코트에 있는 동안 ABA 올스타 팀은 NBA 올스타 팀을 19점 차로 앞서 나갔습니다.
3쿼터 부터는 경기 규정상, 당시 ABA 리그에만 있었던 3점 슛이 허용되었습니다 (참고로, 전반전엔 ABA 공으로, 후반전엔 NBA 공으로 게임을 했죠). 3쿼터 초중반에 어빙이 벤치에 앉아있는 사이, NBA 올스타 팀의 존 하블리첵과 오스카 로벗슨의 공격이 불을 뿜으며 점수차는 60-59까지 좁혀지고 말았습니다. 어빙이 3쿼터 2분여를 남기고 코트에 들어왔을 땐 NBA 올스타 팀이 81-78로 리드를 잡은 후였습니다. 해설을 맡은 돈 크리키 씨는 ‘오늘 ABA 올스타 팀이 이 경기를 진다면, 어빙을 3쿼터에 거의 통으로 쉬게 한 코칭 스태프의 작전 미스일 것’ 이라며 ABA 올스타 팀의 이해할 수 없는 작전을 비판했습니다. 어빙은 코트에 복귀하자마자 자신을 수비하던 커니 호킨스를 상대로 또 멋진 슛을 하나 성공시켰습니다. 코트 우중간에서 비트윈-더-렉 드리블과 함께 스핀 무브로 호킨스를 제낀 후, 밥 르니어 앞에서 다시 한 번 왼손 비트윈-더-렉 드리블로 공간을 만들어 뱅크샷을 성공시켰던 것이죠. 지금에 와선 쉽게 볼 수 있는 종류의 플레이겠지만, 40년 전인 당시엔 정말 처음 접할 수 밖에 없는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플레이였습니다.
경기 영상이 남아있지 않은 4쿼터엔 양 팀 모두 총력전을 펼쳤고, 5점차 이상의 리드가 나지 않은 채 시간만 계속 흐른 공방전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경기 종료 13초를 남기고 릭 베리가 클러치 3점을 성공시키며 ABA 올스타 팀이 105-104, 1점차까지 따라 붙었습니다. 이후 파울을 당한 NBA 올스타 팀의 아치 클락이 자유투 한 개를 성공시켰고, 릭 베리가 회심의 3점을 던져봤지만 이 슛이 무위로 돌아가며 이 전쟁과 같은 경기는 NBA 올스타 팀의 106-104 승리로 막을 내렸습니다. 그제서야 NBA 올스타들의 입가에 미소가 보였고, ABA 올스타 선수들은 마치 파이널 7차전에서 지기라도 한 양 침통한 표정으로 코트를 떠났다고 전해집니다. 경기 MVP는 15득점을 올린 NBA 올스타 팀의 센터, 밥 르니어의 몫이었습니다. 4쿼터를 통으로 못봤기 때문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제 눈엔 17점을 기록하며 공수에서 맹활약을 한 하블리첵이 이 경기의 MVP를 받을 만한 활약을 했다고 봅니다.
4쿼터 영상이 보존되지 못한 현 상황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바로 줄리어스 어빙의 인-게임 프리드로우 라인 덩크 장면을 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폴 사일러스의 인터뷰에 의지해 보겠습니다. 사일러스에 의하면, 스틸에 성공한 어빙이 홀로 속공을 전개했는데, 어빙의 앞엔 이미 백코트를 한 오스카 로벗슨과 아치 클락이 자유투 라인 부근에서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답니다. 그 두 선수 사이의 좁은 틈을 노리고 달려간 어빙이 자유투 라인 바깥 지점에서 부웅 떠올랐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기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괴력의 파워 덩크를 꽂았다고 합니다. ABA 벤치는 난리가 났고, 관중들도 모두 기립을 하게 만든 최고의 덩크였다고 합니다. 멜 대니얼스도 분명히 어빙은 자유투 라인 밖에서 떴다고 확신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어빙 자신도 덩크할 생각을 갖고 점프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냥 운좋게 덩크로 이어졌다고 회고를 했지요.
ABA 리그를 속공 위주의 경기만 하며 덩크하기나 좋아하는 품격 없는 농구 리그라 폄하하던 NBA 관계자들과 팬들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고공 플레이였을 겁니다. 이 위대한 경기를 상징할 수 있는 플레이였는데, 동영상이 보존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저를 너무나 안타깝게 만듭니다. 여러 회원분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시겠지요?
그렇습니다. 당시의 NBA 리그와 ABA 리그 사이에 존재했던 갈등과 마찰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에 도전을 했다며 NBA는 처음부터 ABA 리그의 발전을 훼방했고, 가능한 모든 공권력과 재력을 동원해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심지어 TV 중계권까지 자신들이 독점해서 ABA 경기들은 공중파 티비로 중계조차 되기 힘들었습니다. 지금까지도 NBA 사무국은 ABA 리그의 스탯이나 업적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ABA 출신의 레전드 선수들을 홀대하고 있죠. 그러나 ABA가 NBA에 병합된 직후, 인디애나의 포인트 가드 돈 부지가 77년 NBA 리그의 어시스트왕과 스틸왕을 모두 해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조지 거빈은 NBA 득점왕을 4회나 차지했습니다. 70년대 중후반 NBA의 최고 인기를 누린 슈팅 가드는 데이빗 톰슨이었죠. 77년 우승을 한 포틀랜드의 리딩 스코러는 빌 월튼이 아니고 모리스 루카스였습니다. '국방부 장관' 바비 존스는 수비란 분야에 새 지평을 연 인물이었습니다. 줄리어스 어빙과 모제스 말론은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반까지 NBA 리그의 최고들이었습니다. 아티스 길모어는 역대 최고의 야투율 기록 보유자입니다 (옆 사진 - 길모어와 릭 베리). NBA 레전드, 릭 베리와 빌리 커닝햄은 자신들의 최전성기에 자진해서 ABA로 가 선수생활을 했습니다. ABA 리그의 유산인 치어리더, 3점슛, 런앤건 게임, 하이 플라잉 덩크 등이 현재 NBA 리그에 녹아들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NBA는 노골적으로 ABA의 소중한 유산과 역사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NBA 수퍼스타들로만 구성된 드림팀은 40년 전인 1972년에 이미 결성됐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대한 팀이 만들어진 이유는 세계대회에 나가 미국농구의 위상을 알리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상대는 단 하나, 창설된 지 6년 밖에 안 된 한 미국 프로리그의 올스타들이었습니다. 거기엔 한 기존 프로리그의 오만과 아집, 그리고 라이벌 리그에 대한 근거없는 폄하만 있었을 뿐입니다.
1972년 원조 드림팀 결성은...
이상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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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이거 말이 안되는 경기였네요.. 여러의미로 말이죠..
명품 칼럼 감사합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기 마련인데 박사님같은 분들 때문에 우리가 승자가 기록한 역사가 아닌 진짜 역사를 알게 되어서 참으로 기쁩니다.
좋은 댓글 말씀에 제가 더 감사하고 기쁩니다.
아이패드가 움짤을 지원했다면 Doctor J님의 모든 컬럼을 집어넣어놓았을텐데..
2008년, 2009년쯤에 닥터제이님이 올리신 칼럼을 모조리 캡쳐해서 폴더로 분류해 정리했던 기억이 나는데 3년만에 또 날잡아서 해야겠군요..
너무 잘 읽었습니다. 보름이나 지난 이 글을 왜 이제서야 읽은건지 이해가 안되네요.
우아 정말 전혀 몰랐던 세계가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명품 글입니다. 다시 한번 읽고 갑니다 ㅎㅎ
무려 10년 전에 썼던 글입니다. 저 경기 영상을 고가에 구입해 인코딩해서 인터넷에 유포한 첫 사람으로서 뿌듯합니다. 10년 전에 쓴 글이지만, 추천이 무려 76회나 되고, 지금 읽어도 별 무리없는 글이라서, 제 게시판으로 옮겨 왔습니다.
2023년 새해, 다들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런 레어자료는 말씀하신대로 구입하시는군요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