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삼석 사과농장 2단계공사 끝나 흰쌀 배려공급
평양 삼석구역 과수농장 확장 공사 중 2단계가 지난 6월 19일을 기해 완료됐다. 확대공사를 위해 살림집을 내주어야 했던 농민들의 집까지 지어주려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일단 2단계를 완공한 것만으로도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공사에 동원된 인민보안부 산하 돌격대들엔 특별공급이 내려졌다. 돌격대원들은 김일성 성지인 금수산 기념궁전을 참배하고, 평양 유명식당에서 배려식사를 했다. 속내의와 각종 의약품들을 소대별로 지급하고, 식량도 특별히 9월까지 흰쌀로 배급하기로 했다. 잘 해야 옥수수를 공급했던 것에 비하면 특별배려인 셈이다. 얼마간의 휴식을 즐긴 돌격대는 7월 1일부터 3단계 공사에 들어갔다. 인민보안부는 3단계 공사에 인민보안부 산하 정치대학 학생 돌격대를 새로 편입시켰다.
삼석 사과농장, 사과나무 200그루 훼손
고(故) 김일성 주석 16주년 추모 기념일을 앞둔 지난 7월 5일, 삼석구역 사과농장에서 사과나무 200그루가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다. 사과나무를 대거 꺾어놓은 이 사건으로 보안당국이 발칵 뒤집혔다. 김일성 추모기념일을 앞두고 일어난 일인데다, 사과농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 지시로 진행되는 사업이다 보니, 정부에 불만을 품은 자가 저지른 ‘반혁명’ 정치적 사건으로 해석된 것이다. 보안당국에서는 범인 색출을 위해, 사과나무에서 채취한 지문과 인근 주민들의 지문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호위사령부에서는 사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휘하 대대를 급히 삼석구역 경비로 배치시켰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인근 주민들의 눈총이 따갑다. 중앙당에서는 삼석구역 사과농장을 확장하고, 사과를 수출해 식량문제를 해결한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백성을 위한다는 구상이 지금껏 하나도 실현된 것이 없다”면서 싸늘한 반응을 보낸다. 1단계 공사를 시작할 때 수많은 살림집이 강제 철거된 뒤, 아직도 임시로 지은 반토굴집에서 사는데, 그러면서 무슨 백성들을 위한다는 말이냐는 것이다. 백성에게는 늘 피해만 주고 좋은 건 간부들이 다 가져가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거기다 이번에 사과나무 200그루 훼손 사건으로, 호위사령부까지 불러들여 경비를 세우니 곱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사과가 열리면 백성들이 도적질해 갈까봐 군인을 배치해서 사과 한 알도 손을 못 대게 하려는 수작”이라며, 강한 불신을 보였다.
인민보안부, “미거주자 안착시키라”방침에 대거 구제
화폐교환 조치 이전에 다른 도시로 시집을 갔거나, 군복무 제대 뒤 다른 지역으로 무리 배치됐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와 살고 있어 문제가 됐다. 이들은 거주퇴거를 제대로 하지 않아 미거주자 상태이다. 주로 화폐 교환 조치 이후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어지자, 부모형제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 버린 사람들이다. 각 시, 군에서 공민증을 새로 교부하려고 조사하다보니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 대책이 필요하다는 보고가 올라갔다. 특히 식량난으로 각지에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면서, 미거주자들을 무작정 본거지로 보내는 게 꼭 맞는 처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인민보안부 신분등록처에서는 4월 12일에, 미거주자 대책 방안 제의서를 중앙당에 올렸다. 중앙당에서는 제의서를 검토하고, 바로 이틀 뒤, “미거주자들을 찾아내 (본인들이) 거주하려는 지역에 안착시키라”는 4월 14일 방침을 내렸다. 이를 위해 각 지역마다 4.14 상무를 조직해 미거주자들의 거주 퇴거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옛날 같으면 거주퇴거를 하려고 해도, 절차도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들어 감히 엄두를 못 냈는데, 4.14 방침에 따라 적은 돈으로도 거주퇴거를 쉽게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함경북도의 경우 청진시에서는 미거주자 570명 중에서 350명 가량이 구제됐다. 회령시는 260명 중에 110여명이, 김책시는 350명 중 210명이 미거주자에서 완전 거주자로 변신했다. 상무조직은 나머지 미거주자들에 대해서도 거주자로 안착시키는 사업을 계속 벌일 예정이다.
“올감자 훔쳐 먹은 게 죽을 죄?”, 죄수 처우 너무 가혹해
지난 7월 6일, 함경남도 오로교화소에서 50대 남성 죄수 한 명이 사망했다. 통나무를 운반하던 중 갑작스런 현기증으로 산 비탈길로 굴러 떨어져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응급처치를 받는 도중에 아예 숨을 거둔 것이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실족사이지만, 사건은 이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일은 올감자를 수확하는 날이었다. 교화소 생활이 다 그렇지만, 늘 배고프고 힘든 곳이기에 올감자를 몰래 훔쳐 먹는 죄수들이 많았다. 다들 너무 굶주린 나머지 막 캐낸 감자에서 흙만 대충 손으로 쓱싹쓱싹 털어버리고, 생감자 째로 우적우적 씹어 먹느라 바쁘다. 죽은 김형태(가명)씨도 그 중 한 사람이었는데, 김씨는 재수가 나빠 감자를 몰래 훔쳐 먹다가 걸리고 말았다. 김씨 외에도 걸린 죄수가 2명 더 있었는데, 그날 작업이 다 끝난 저녁에 동료 죄수들로부터 집중 투쟁을 받았다. 교화소 내부 규칙을 어길 때마다 상호비판하고 투쟁하는 것이 관례이기도 했지만, 단지 말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교화소측은 죄수들 사이에 뽑아놓은 반장더러 집단폭행을 지시하고, “생활을 못하는 루락자들은 굶어야 잘못을 고칠 수 있다”며 이틀 동안 아무 것도 주지 말라고 했다. 구타와 굶는 형벌을 준 것이다. 일은 일대로 하면서도 먹지 못하게 하니 웬만한 죄수들 아니고선 버틸 재간이 없다. 죽은 김씨는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이틀 동안이나 못 먹은 상태에서 통나무를 운반하다가 결국 실족사하게 된 것이다. 생감자 하나가 생사람 목숨 값이 되고 말았다.
“교화소는 죄수들의 피를 먹고 사는 구조”
교화소 관계자는 김씨의 죽음은 실족사가 분명하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동료들로부터 구타를 당하고, 이틀 굶은 것에 대해서는 “죄를 짓고 들어와서까지 교화소 규칙을 어겼으니, 응당 받아야 할 대가를 받은 것”이라며, 김씨의 죽음을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이번에도 특별히 가혹한 처벌은 아니었다고 했다. 오히려 상부에서는 처벌을 하는 대신 “종신범들이니 생활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긴장감을 유지하는 선”에서 규율을 지키게 하라는 방침이 내려와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의 말은 달랐다. 그는 상부에서 “긴장감을 유지하는” 정도가 아니라 “긴장감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고 했다. 그래서 가끔 고의적으로 죄수들 사이에 한두 명의 희생양을 만들어 자체 투쟁을 시키고, 죽음을 목격한 죄수들이 두려움과 공포에 떨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죄수들끼리 투쟁할 때 자기들은 싹 빠진다고 했다. 그러면 죄수들끼리 격한 투쟁이 오가고, 그러다가 사람이 죽기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했다. 교화소는 이런 식으로 생활이 나태해지거나 딴 생각이 들지 못하도록 새로운 희생양을 만들며 질서를 유지해나간다. 중앙당의 한 간부는, “김씨가 올감자를 먹었다고 죽은 것이라기보다, 교화소 질서를 어겼을 때의 본보기로 희생된 것”이라며, 교화소 자체가 끊임없이 죄수들의 피를 먹고 유지되는 구조라고 평했다.
한국 영화 보던 함북 도예술학원 학생들 처벌 곤란
함경북도 청진시 109불법록화물 단속 보안원들은 얼마 전 한국 영화를 보던 도예술학원 학생 3명을 적발했다. 심문 결과, 30명이 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영화를 돌려본 것으로 드러났다. 보안당국은 일단 교육부에 통보했고, 교육부에서는 연루 교사들을 바로 직위해제 시켰다. 문제는 학생들이었다. 미성년자라 형사 처벌하기가 어려운데다가 대부분 돈 많은 집이나 간부 자녀들이라 함부로 처리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예술학원 학생들에게는 서양 영화나 음악 등을 접할 수 있게 해준 관례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일본 영화도 보고 팝음악도 듣게 해주는데, 남한 영화만 크게 문제 삼을 수는 없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돌렸다면 모르겠지만, 자기들끼리만 본 것이니 예술인에 대한 배려를 감안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고려로, 예술학원 학생들에 대한 처벌 수위가 하향조정 될 전망이다.
회령철도, 노후 차량 사고로 기관사 사망
지난 5월 23일, 함경북도 회령시 철도기관대에서 세천 중봉탄광으로 향하던 화차가 갑자기 멈추는 사고가 있었다. 고압선에 대는 기관차가 떨어져나가 멈추어 선 것이다. 기관사 조수가 먼저 수리를 해보려고 달려들었고, 뒤이어 기관사가 작업을 하다가 고압전류에 감전돼 의식불명으로 시병원에 이송됐지만 숨졌다. 해마다 4-5월은 사고방지대책 월간으로 정해도, 전국적으로 인명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작업장에서는 인명사고가 나면 사고원인을 자세히 규명하는 대신 노동자들의 부주의로 죽은 것이라고 보고한다. 노동자들은 기차들이 모두 만들어진지 20년이 넘어 고장이 끊이지 않는다며, 언제 죽을지 몰라 항시 마음을 졸이며 출근한다고 항변한다. 예전 같으면 근무 중에 사고를 당한 것이므로, 애국주의 희생자로 인정해주어 가족들에게 보상금이나 식량을 대주기도 했는데, 올해는 철도국 사정도 여의치 않아 아무런 보상이 없다.
희생된 기관사 가족, 살 길 막막해
이번 사고로 희생된 기관사에게는 아내와 소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이 있는데, 생활이 매우 어렵다. 철도 간부들이 장례를 치르려고 집을 방문해서 보니, 온 집안에 식량이라고 할 만한 것이 옥수수쌀 300g 정도가 전부여서 모두들 놀랬다. 아이들은 학교에 내야할 세외부담이 너무 많아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다고 했다. 화폐 교환 전만 해도, 정규 식량배급에 편의를 봐달라고 사람들이 바친 이런저런 물품들 덕분에 생활에 보탬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시장을 철폐하니 장사하는 사람이나 기차를 타는 사람이 줄어 더 이상 받아오는 물건들도 없어졌고, 뇌물도 사라졌다. 그나마 최근에는 석탄화차를 싣고 탄광에 다녀오는 일을 맡아, 빼돌린 석탄을 시장에 내다팔아 근근이 연명해왔다.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떠나고 나니, 철도국에서도 아무 보상을 해주지 않아 그 아내와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한 실정이다.
첫댓글 생감자 목숨과 바꾼 노동자의 신세가 처량하기 이를데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