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람의 일생을 마디 짓는 한자
2. 나이 – 한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을 나타내는 한자
l 갑자 甲子가 돌아왔다는 환갑 還甲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세월부대인 歲月不待人’ 이라는 도연명의 시구가 있다. 정말 세월은 쏘아 버린 화살처럼 ‘쏜살같이’ 날아 가고, 우리의 인생은 흐르는 물처럼 쉬지 않고 흘러가 버린다.
60세가 되면 ‘이순 耳順’의 나이라고 한다. 귀 이 耳와 따를 순 順을 쓴 耳順은, 모든 일을 함에 있어 事理에 잘 통하고, 順理대로 따른다는 뜻이다. 耳는 귀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글자이다. 順의 부수는 머리 혈 頁로, 어떤 의식 가운데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러운 일에서 만들어진 글자로 여겨진다.
60년이 지나는 해를 ‘환력 還曆 이라고 한다. 돌아올 환 還을 써서 간지 干支 가 한 바퀴 돌아 60년이 지났다는 의미인데. 이 때문에 우리 나이로는 61세를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61세가 되면 회갑 回甲, 환갑 還甲, 화갑 華甲 등을 맞았다고 한다. 그런데 진갑 進甲 이란 말은 회갑 이듬 해 생일을 가리키기도 하여, 62세 생일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또 북한에서는 진갑이라고 하면 70세를 가리킨다
이 모든 말들은 육십 갑자 六十 甲子가 다시 반복되어 시작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환갑, 진갑 다 지냈다’라고 하면 어지간히 오래 살았음을 뜻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장수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l 예부터 드물다는 뜻의 고희 古稀
중국 당나라 시대의 시인 두보 杜甫의 <곡강 曲江>이라는 시는 장안의 남쪽에 있는 유원지를 노래한 연작시이다
그 마지막 작품에 ‘인생 칠십이 예로부터 드문 것이라네/ 인생칠십고래희 人生七十古來稀’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서 유래되어 70세를 ‘고희 古稀’라고 한다. 말 그대로 ‘예로부터 드문’의 뜻이다.
70세를 ‘종심 從心’의 나이라고도 하는데. <論語>의 70세가 되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 대로 따라도 어긋남이 없다/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七十易從心所欲 不踰矩’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이 한문 구절은 어려운 듯 하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다.
첫 구절은 七十 이 되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인 ‘심소욕 心所欲 이’ 從하더라도, 말하자면 ‘따르더라도’의 뜻이다. 다음 구절 ‘불유구 不踰矩 의 유는 넘을 유 踰이니 불유 不踰는 ‘넘지 않는다, 지나치지 않는다’의 뜻이다.
그러면 구 矩는 무엇일까? 이 구 矩 는 잘못하면 ‘거’로 읽기 쉬우니 주의해야 하는데, 바로 각을 그리기 위해 사용하는 곱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곱자란, 나무나 쇠로 ‘ㄱ’자 모양을 만든 것인데, 한자로는 曲尺 이라고 하였기에 만들어진 말이다. 그래서 이 곱자 구 矩 가 바로 법칙이나 법도 등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일흔 살이 되면 경험이 풍부하고 세상을 보는 지혜가 깊어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크게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역시 70년의 세월을 보냈다는 것은 우뚝 선 고목처럼 의연한 모습을 보여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l 白과 百의 차이
나이에 대한 한자를 더 살펴보자. 77세를 ‘희수 喜壽’라고 하는데, 喜를 흘려서 쓰면 七을 위에 하나, 아래 두 개, 모두 세 개로 쓴다. 이를 77로 읽혀진다고 하여 77세를 희수라고 하게 된 것이다.
80세는 보통 ‘팔질 八耊’이라고 한다 耊’은 늙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글자로 보면 늙을 老 아래 이를 至가 있으니 ‘늙음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80세를 때로는 ‘산수 傘壽’라고 하는 경우도 잇다. 산 傘을 약자로 쓰면 仐이 되어 八 아래에 十이 들어가 있기에 만들어 낸 말이다.
88세를 ‘미수 米壽’라고 하는데, 이도 쌀 미 米에 八이 두 개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팔순 八旬이 되었다. 육순 六旬이 되었다고 할 경우도 있으며, 여기서 旬은 바로 十이라는 뜻이다.
90세를 보통 ‘구질 九秩’ 이라고 한다. 秩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차례를 가리켜서 질서 秩序라고 쓰기도 하지만, 벼 화 禾가 붙어 있듯이 녹봉 祿俸을 가리키는 뜻도 있다. 예전에는 90세가 되면 나라에서 기념으로 쌀 등을 주었기 때문에, 마치 녹봉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여 90세가 되면 구질 九秩이라고 쓰게 된 것이다.
때로 90세를 졸수 卒壽라고 하는 것은 졸 卒을 흘려서 쓰면 卆이 되어 九와 十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99세를 백수 白壽라고 하는 것은 百에서 획을 하나 빼면 白이 되듯이, 백 살에서 한 살을 뺀 나이를 가리킨다고 하여 만들어졌다.
그러니 희수, 산수, 미수, 졸수라는 말들은 약자나 흘려 쓰는 글자의 획 가운데 그런 숫자가 나오기에 붙여진 이름들이다. 이런 말들은 대개 일본 사람들이 만들어 즐겨 쓰고 있는 것으로, 특별한 의미가 들어간 말은 아니다.
백 살은 가장 높은 나이라고 한다. 그래서 100세를 상수 上壽이라고 하고, 또 어려운 말로 ‘요양이 필요한 나이’라는 뜻에서 기이지수 期頥之壽라고도 한다.
<김대현 박사의 ‘테마가 있는 생활 한자’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