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창경궁(昌慶宮)은 서쪽으로 창덕궁과 붙어 있고, 남쪽으로 종묘와 통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창경궁은 원래 1418년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上王)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수강궁(壽康宮)이 있던 곳이다. 1483년(성종 14)에 대왕대비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貞憙王后) 윤씨,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昭惠王后) 한씨, 예종의 계비(繼妃)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를 모시기 위해 수강궁을 확장하여 세운 별궁이 바로 창경궁이다.
▲창경궁 전경
창경궁은 조선시대 왕궁 중에 유일하게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남향을 하지 않고 동향을 한 이유는 이 궁이 별궁으로 조성되었기 때문으로 여겨지며, 지형상으로도 동향이 적합하였던 듯하다. 성종 때 건립된 창경궁의 건물은 정전인 명정전(明政殿), 편전인 문정전(文政殿), 침전인 수령전(壽寧殿), 그리고 환경전(歡慶殿), 경춘전(景春殿), 인양전(仁陽殿), 통명전(通明殿), 양화당(養和堂), 여휘당(麗暉堂), 사성각(思誠閣) 등이었고, 궁의 둘레는 4,325척이었다. 창경궁은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버렸는데, 1615년(광해군 7) 4월에 주요 건물들을 재건하기 시작하여 이듬해 11월에 마무리되었다. 창경궁 재건보다 7년 앞서 창덕궁이 먼저 재건되어 법궁(法宮)이 됨에 따라 창경궁은 조선 전기에는 그다지 활용되지 않았으나, 창덕궁과 인접한 관계로 조선 왕조 역사의 중요한 무대로 활용되는 기회가 많아졌다.
창경궁 배치도① 남십자각 ② 북십자각 ③ 행각 ④ 홍화문 ⑤ 명정전 ⑥ 명정문 ⑦ 문정전 ⑧ 숭문당 ⑨ 함인정 ⑩ 경춘전 ⑪ 환경전 ⑫ 양화당 ⑬ 관덕정 ⑭ 옥천교 ⑮ 성종태실비 ⑯ 대춘당지 ⑰ 소춘당지 ⑱ 관천대 ⑲ 통명전
창경궁은 잦은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재건되기를 반복하였는데, 인조 때와 순조 때에 큰 화재가 일어났다. 이처럼 창경궁에는 화재로 건물의 변화가 생기고 여러 사건도 일어났다. 그 중 특기할 만한 사건은 숙종 때 신사년(辛巳年)의 변고(變故)와 신임년(申壬年, 신축년(莘丑年)과 임인년(壬寅年))의 사화, 그리고 영조 때의 사도세자의 변고이다. 숙종은 장희빈(張禧嬪) 을 총애하다가 장희빈이 숙종의 계비 민씨를 독살하는 등 많은 악행을 저지르자, 신사년(1701년)에 희빈을 처형하고 그의 일가를 숙청하였는데 당시 희빈은 주로 궁내의 취선당(就善堂)에 거처했었다. 신축년(1721년)과 임인년(1722년)에는 왕세자의 즉위를 둘러싸고 노론(老論)과 소론(小論)이 대립하다가 노론의 대신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이 동궁 처소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굶겨 죽였는데, 당시 세자가 갇힌 뒤주는 궁내 선인문(宣人門) 안뜰에 있었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하고 나서 급속히 변형되기 시작하여 일제 강점기에 결정적으로 훼손되었다. 일제는 1909년 궁내 전각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다. 권농장 자리에는 연못을 파서 춘당지(春塘池)라 불렀으며, 연못가에 정자를 짓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다. 그 뒤쪽에는 식물관을 짓고 동쪽에는 배양당을 지었으며, 통명전 뒤 언덕에는 일본식 건물을 세워 박물관 본관으로 삼았다. 또한 일제는 남아 있는 건물들도 개조하여 박물관의 진열실로 만들었다.
1911년에는 자경전터에 2층 규모의 박물관을 건립하고 창경궁의 명칭을 '창경원'으로 바꾸어 격하시켰으며, 1912년에는 창경궁과 종묘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절단하고 도로를 설치하여 주변 환경을 파괴하였다. 1915년에는 문정전 남서쪽 언덕 위에 장서각(藏書閣)을 건립하였고, 1922년에는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수천 그루 심어 벚꽃밭을 만드는가 하면,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시작하였다. 창경궁은 해방 후에도 계속 동·식물원으로 이용되다가 1981년 정부에 의해 창경궁 복원 계획이 결정되면서 원형을 되찾기 시작하였다. 1983년 12월 31일자로 공개 관람이 폐지되고, 명칭도 창경원에서 다시 창경궁으로 회복되었으며, 이듬해인 1984년 1월 수정궁의 철거를 시작으로 6월에는 동물사육장을 폐쇄한 뒤 서울대공원으로 이관하였다. 1986년 8월까지 동물원과 식물원 관련 시설 및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없어졌던 명정전에서 명정문 사이 좌우 회랑과 문정전을 옛 모습대로 회복하여 1986년 8월 23일 일반에 공개하였다.
명정문에서 본 명정전 일곽명정문과 명정전 사이에 있는 뜰 둘레의 행각은 직사각형으로 반듯하지 않고 지형에 맞도록 약간 비틀어져 배치 되었다.
명정전국보. 명정전은 다른 궁궐의 정전처럼 남향하지 않고 동향하였다. 창건 당시 정치하는 곳이 아니라 대비들을 위한 이궁으로 지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적으로 지정된 창경궁에는 조선시대 건물로 명정전, 통명전, 홍화문(弘化門), 숭문당(崇文堂), 함인정(涵仁亭), 환경전, 경춘전, 양화당, 집복헌, 영춘헌, 관덕정, 월관문, 선인문, 명정문과 명정전 회랑 등이 있고, 석조물로는 옥천교(玉川橋), 풍기대, 관천대(觀天臺), 창경궁 내 팔각칠층석탑이 있다. 낙선재 자리는 원래 창경궁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창덕궁 경내로 옮겨졌다.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이고, 명정전의 출입문인 명정문은 중문이며, 궁궐의 정문은 홍화문이다. 홍화문의 좌우에는 익각(翼閣)이 있고, 홍화문을 들어서면 가로질러 흐르는 옥천에 옥천교가 있다. 이 다리를 지나면 바로 명정문이 나오는데, 창경궁은 경복궁의 흥례문, 창덕궁의 진선문에 해당하는 문이 없이 홍화문에서 바로 명정문으로 들어가도록 구성된 점에서 다른 궁궐에 비해 규모가 작고 격식이 떨어진다.
창경궁의 중심 건물인 홍화문·명정문·명정전은 중심축에 맞추어 놓여 있으나 지형을 살려 건물을 배치하였기 때문에 반듯하게 좌우 대칭을 이루지 않고, 주변 행각도 이에 맞추어 약간 틀어져 있다.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우진각지붕으로 동쪽을 향해 있으며, 문 왼쪽인 서북쪽 모서리에 계단이 있어서 위층으로 오르내릴 수 있다. 명정문은 흥화문과 같이 동향을 하였는데, 명정전으로 이어지는 동서 중심축 선상에 정확하게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m 벗어나 있다.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행각을 명정문에 맞추어 배치하였기 때문에, 행각으로 둘러싸인 명정전 앞뜰은 반듯한 사각형이 아니라 약간 기울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행각은 2칸 폭의 복랑이며, 경복궁의 것에 비해 높이가 낮다.
명정전은 1484년(성종 15)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16년(광해군 8)에 중건한 건물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2단의 월대 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單層) 팔작지붕 건물로 지어, 중층인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보다 격식을 낮추었다.
건물 뒤쪽에 퇴칸 형식의 월랑을 둔 점, 건물 내부의 앞쪽으로 고주를 세우고 뒷부분 기둥을 모두 생략한 점, 정면 양 협칸의 벽면 하부를 전벽돌로 쌓은 점이 특이하다. 명정전은 뒤쪽 터가 높게 경사져 있어, 뒤를 제외한 세 면에만 경사지에 맞추어 월대를 조성하였고, 좌향도 지세의 흐름에 맞추었기 때문에 정문인 명정문의 중심과 축이 일치하지 않는다.
명정전의 오른쪽인 남쪽으로는 왕의 집무처인 문정전이 남향하여 명정전과 직교하며 서 있다. 그 뒤쪽에는 숭문당이 있는데, 이 건물은 왕이 태학생(太學生)들을 접견하여 주연을 베풀었던 곳이다. 숭문당 밖으로는 내전의 전각들이 전개된다. 숭문당의 서북쪽으로 함인정이 있고, 그 좌우로는 담이 둘러져 있다. 이 담 뒤편으로 환경전·경춘전 등의 침전이 있고, 그 북쪽으로 내전의 정전인 통명전이 있다. 환경전에서 통명전에 이르는 일대는 왕과 왕비가 기거하던 곳으로, 다른 공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격식이 높게 잘 다듬어져 있다.
문정전왕이 일상적인 정사를 보던 편전으로 사용한 건물로, 동향을 한 명정전과 달리 남향을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86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숭문당왕의 경연이 이루어졌던 숭문당은 명정전 뒤쪽 빈양문으로 가는 복도각 남쪽에 자리잡고 있다. 경사지를 이용하여 건물 남쪽에는 길게 생긴 주초석을 세워 바닥 높이를 맞추었다.
통명전은 창경궁에 있는 왕과 왕비의 침전 겸 연회용 건물이다. 명정전 서북쪽 궁궐 안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잡았는데, 동쪽에 있는 환경전과 함께 남향하고 있다. 창경궁 창건 때인 1484년에 지은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고, 1616년에 재건하였으나, 다시 1790년(정조 14)에 불에 타 소실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834년(순조 34) 창경궁의 전각 대부분을 재건할 때 지은 것으로,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인데, 정면 5칸, 측면 2칸을 감싸며 퇴칸이 설치된 형식을 하고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창덕궁 대조전과 같이 용마루가 없다.
통명전보물. 창경궁 내전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통명전은 왕과 왕비가 거처하던 침전의 중심 건물이다. 창덕궁의 대조전, 경복궁의 교태전과 같이 건물 지붕에는 용마루가 없다.
함인정내전에 있는 정자 건물로, 건물 내부 상부 사방에는 도연명이 사계절을 소재로 하여 지은 시 네구절이 현판으로 걸려 있다.
통명전의 서쪽에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연못은 남북 길이 12.8m, 동서 길이 5.2m의 장방형인데, 연못 위에는 길이 5.94m, 폭 2.56m의 간결한 돌다리가 동서로 놓여 있다. 이 연못은 북쪽으로 약 4.6m 떨어진 샘에서 넘쳐나는 물을, 직선으로 설치한 석구를 통해 폭포로 떨어지도록 고안하였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연못 가운데 가장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곳이라 할 만하다. 통명전 북쪽 언덕 위에는 환취정(環翠亭)이 있다. 정자인 함인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정사각형 평면 건물로 이익공(二翼栱)의 간결한 구조가 돋보인다.
통명전 서쪽 연지통명전 서쪽에는 돌을 정교하게 조각하고 다듬어 만든 남북 길이 12.8m, 동서 길이 5.2m가 되는 아름다운 연지가 있다.
2025-11-13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