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의 고레와난데스까
[1]
지난 10월9일은 [한글날]이다. 다시 국경일로 지정되었다니 경하할 일이다. 내 생각으로는 국경일임에도 쉬는 날이 아니라는데에 더 점수를 준다. 쉬는 날로 지정되면 그냥 쉬러가는데에만 신경을 쓰지 국경일로서의 가치가 줄어드는 요즈음의 세태이기에 차라리 잘됐다 싶어서다. 신문 방송들은 제각각 한글날에 대해 조금이나마 들먹거리면서 한글에 대해 기사를 쏟아냈다. 그 이튿날 그것으로 끝이었다. 어제오늘 북핵 때문에 야단법석 떨던 것에 비하면 내용이나 시간할애가 너무 적었다.
생각해보자- 만일에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세종대왕 이후의 조선조 인물역사를 보면 도저히 그 해답을 찾을 수 없기에 그러하다. 한마디로 암담한 일이 아닐까. 글자 없는 민족, 남으 나라 글, 말할 것도 없이 한자에 묶이게 돼버렸다고 가정해보면, 동북공정에 열 올리고 있는 지금의 중국은 분명 [글자마저 중국 것을 사용하니 두말 할 필요 없이 한국은 중국이다] 면서 쥐어짤게 뻔한 일이다.
나는 한자 폐지론자는 아니다. 다만 한글에 참고하는 보조 표현이기를 고집하고자 한다. 아직도 일부 표현은 한글을 적어놓고 괄호 안에 한자를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게 다른 글로 대체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영어로 그것. 학문적인 것이나 적당한 한글 대체표현이 없다면 또 모르겠다. 헌데 없다면 한글대체 표현을 만들어야 하는데도 굳이 괄호 안에 낯선- 그것도 불과 몇 사람의 학자들만이 알 법한 영어를 괄호 안에 써넣는가. 그래도 그것도 참자. 그런데 근간 신문을 보니 너무도 당연한, 그럴 필요도 없는데도 그런 게 있더라는 것. 예시하자면; ‘잠복근무 지역(stake out)' 조금도 필요 없는, 오히려 복잡하게 만드는 영어 병기일 뿐이고, 금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소개하는 글에는 ’무담보 소액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 Micro Credit) 이라 썼는데, 괄호 안에 드는 영어와 한글로의 발음표기는 전혀 필요가 없는 것임에도. 게다가 수상자는 영어사용자가 아닌 방글라데시 사람임에도 왜 거기 영어가 끼어 들어가는지, 참 한심한 소개였다. 하긴 그 대출방식이 그가 배운 미국에서의 경제용어라서 이겠지만...-무담보소액대출- 그것으로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2]
18살 앳된 소녀 순희는 마음씨 착하기 이를 데 없고 살림 잘하기로 동네에 정평이 나있었다. [재는 좋은 신랑 만나 시집가서 잘살 끼라! 저래 알뜰하니 재 데려가는 넘 팔자 늘어진 거지]. 순희네 동네는 쫓겨 다니다 정착한 왕족 출신이라, 철저한 유교풍이 지배하는 집성촌으로 국가의 법규보다는 유교규률이 우선하던 곳이었다. 그 규율 중 가장 엄한 것이라면 단연 여성의 지위였다. 여자가 무신 글을 배워! 였고, 여자가 어디 밖엘 쏘다녀! 이었다. 18살 앳된 소녀, 발랄하기 거지 없어 가슴이 퉁퉁 뛰고 무언가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에 몸살을 앓게 되는 그런 나이가 아닌가. 자신의 내면을 들어내 놓을 낯선 장합이나 소재가 있어야하는데 당시로 봐서는 그런 건 꿈에도 그릴 수가 없었다.
어디 나가 바람 쐴 기회도 없는데다, 그렇다고 다른 오락꺼리가 없는 문화(?)에서 폐쇄된 상태에서 유일한 낙이라면 집 앞 공동 우물터에 동네 여자들과의 주고받는 잡담-이야기를 듣는 것이요 인생 대리경험이었다. 사람이 여럿 모이다보면 입담 좋은 이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타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때로는 답답한 가슴이 후련해지기도 하여, 틈만 나면 집안에 물이 충분한데도 쏟아 붓고는 물 길러 가기도 하였다. 선희집은 우물 바로 첫집이라 그런 다행이 없음을 내심 부모님께 감사해 하였다. 마음만 먹으면 곧바로 달려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우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 우물터는 요새 표현을 빌리자면 뉴스 제공과 정보의 교환 장이었다. 진실인지 사실인지 아님 거짓 꾸며낸 말인지는 모르되 숱하게 쏟아지는 정보들을 접하다보면 재미도 있으려니와 배울데 없는 그들 여자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지식-흡입의 기회이기도 하였고, 한편 그 장합에서 빠져 정보에 어둡게 되는 날이면 동네공동에서 소외될 수도 있기에 동네 여자들은 기를 쓰고 우물터에 몰려들게 되었다. 동네에는 우물터 말고도 담배연기 자욱한 쾌쾌스런 저녁 사랑방이 몇 군데 있었는데, 이는 나이든 이들의 공동 처로서 한나절 우물터에서 발생한 정보의 확대재생산 처로, 노년층들에게는 단연 각광받는 곳이었다. 그러니 하루만 지나면 동네 모든 뉴스와 정보가, 가감은 있을지언정, 전달되는 정보유통체계가 잘 발달? 돼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이면 다 그런 것이고, 입닫고는 못사는 게 인간이다.
우물터에서는 생경한 소식들도 있지만 가끔은 나는 팔불출입네 하면서 자랑꺼리를 내뱉는 이들도 있다. 그러다보니 너도나도 한 두 가지씩 자랑거리를 은근히 내놓기도 하여 누구네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알게 된다. 마음씨 착하고 말없는 알뜰 처녀 순희는 말솜씨도 그렇고, 또 남에게 자기자랑을 한다는 게 쑥스러워서도 그렇지만, 자기 집에는 무엇 하나 내놓을게 없어 항상 남의 말 듣기 일변도였다. 충실한 수신자였다. 그래도 그런가, 안달해야 한다. [어디 자랑할게 없나?] 그런데 기어코 절체절명의 기회가 오게 되었다. 순희에게는 아버지 보다 더 무서운 오빠가 계시지만 거론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다. 다행인 것은 얌전한 세살터울 동생 선규가 있어, 동생도 동생이지만 친구 같기도 하고 어쩜 자식 같은 애정이 깃들어져 그가 있는 게 그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시집가면 제일 먼저 선규를 데리고 가야지!] 그런데 이 동생이 간이학교를 가게 되어 일본말을 배우게 되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이며 자랑스러운 일인가. 의거 양양했던 것은 물론이고 [자, 나도 우물터에 가서 동생 자랑해야지!]. 동생 선규는 좀 얼뜬 아이였다. 간이학교 졸업할 나이인데도 이제야 학교를 가게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한 날은 선규가 소죽 끓이는 누나 선희에게 다가와서는 무언가 손에 들고는 큰 소리로
[누부(누나)야, 고레와난데스까?]
콱 소리를 내질렀다. 평소 그의 태도가 아니었다. 누나 선희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얄구진 소리였다.
[무신 소리고?]
하니 또 그 소리를 반복하면서 싱긋이 웃었다.
[야, 빙신아 그것도 모리(르)나 감자 꿉어돌라(구워 달라)소리 앙이가!]
[그래 나는 무신 소린지 몰랐다. 뭐라 캤노 다시 말해봐라]
[고레와난데스까].
[그래 고레와난데스까 해줄게]
하며 둘이서 모처럼 신나게 웃어댔다.
정성껏 감자를 구워 준 선희는 기쁨에 넘쳤다. [그래 나도 우물에 가서 자랑해야지].
여러 번 반복으로 학습에 열을 올리고는 이튿날 날이 밝기가 무섭게 우물터엘 갔다.
[야, 선희야 너거 집에 무신 좋은 일 있나, 아침부터 싱글벙글 입이 째지노!]
우물가 아낙들이 하나같이 선희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 좋은 일 있다. 우짤래] [뭣꼬 빨랑 말해봐라].
좀은 빼는 척 하다가 선희가 입을 열었다.
[나도 일본말 배웠다 앙이가, 내동생 선규가 배워줬다 앙이가]
뜸을 들이더니
[-고레와난데스까- 일본말이 무언지 아나, 선규가 가르쳐주는데 감자 꿉어달라는 기라 안 카나]
그 소리에 너도나도
[야! 그렇나? 다시 말해봐라, 나도 배우자]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한 중년 여인 왈
[앙이다. 고레와난데스까는 감자 꿉어달라 소리가 앙이고 -이것이 무엇이냐- 하는 뜻이다, 알지도 모리면서 함부로 까부러쌌노] 했다. 그녀는 일본말을 좀 아는 사람이었다.
선희는 [아닌데!?] 하였지만 거긴 모인 여자들 깔깔대면서
[니 동생 참 잘났네! 고레와난데스까 감자꿉어달라? 호 호 히 히]
하면서 비아냥거리니 선희는 얼굴이 벌게 그만 물동이를 채우다말고 집으로 줄달음질쳤다. 이 뉴스는 한나절을 멀다하고 온 동네에 퍼져나갔다. [허허 별일 다보네?] 이었다. 일본말을 모르는 이들까지도 허허잡고 웃음에 파묻혀갔다.
[어이 선규야, 고레와난데스까 감자 잘 익었어?] 하질 않나, 만나는 이들마다 [고레와난데스까 어데 가노?] 하질 않나, [고레와난데스까 아버지 잘 계신가?] 그날로 그의 이름 선규는 간데없고 [고레와난데스까]가 그의 이름-별명으로 굳어져 버렸다. 지금 그는 70을 넘은 늙은이인데도 아직도 그를 보면 [고레와난데스까]다.
[3]
IT시대인 지금의 세계, 우리 한글이 얼마나 좋은글인지 알게 된다. 인근 나라 일본글 중국글, 다들 인터넷 세상에서 곤혹을 치루고있다. 한자는 더 언급할 것도 없고, 일본글은 100개나 되는 알파벳으로 컴퓨터자판을 어떻게 배치하는가, 한심한 글이다. 그들은 일단 로마자로 발음을 쳐서 다시 변형하면 저그 글이 나오도록 자판구성을 해놓았단다. 핸드폰 문자메세지 보낼때도 마찬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영어는 대소문자가 있어 자판에 쉬프트를 눌러야하지만 한글에는 쉬프트키를 눌러 쓰는 문자는 쌍글자 여섯개 뿐이다. 그져 고마울 뿐이다
첫댓글 난 지금 자판기를 두드리면서도 우리 한글 신기하게 잘 만들었다고 감사해 하고 있어 "고레와 난 데스까?" 우리 감자 구워 먹자 서되반 선생!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명 깊에 읽었습니다. 문장이 술술 매끄럽게 흐르고 착상도 탁월하고 애국심마저 ..../서되반님의 수필집을 고대합니다.
역시 서되반의 글은 아름 답구만 일본 애들 개들 말에 밑 받침이 없다 아닌가. .그래도 개들한테 배울건 많지요 우리의 세종이나 일본의 명치 두분다 훌륭한 임금이였다고 생각하면서 그대에게 감사를 드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