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97 시즌 NBA는 리그 창설 50주년을 기념해 ‘위대한 50인’을 선정해 발표했다. 50명의 전·현직 선수들이 명단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메이저리그와 마찬가지로 프로농구에도 ‘명예의 전당’이 있다. 1959년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는 선수가 아닌 팀이었다. 첫 프로농구팀이었던 오리지널 셀틱스와 농구 경기를 치른 팀이 주인공이다. 처음으로 농구 경기를 한 팀은 이름이 없었지만 나중에 ‘퍼스트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같은 해 명예의 전당에는 찰스 하얏트, 조지 마이칸을 비롯한 선수 4명과 코치 3명, 심판 1명 그리고 농구 창시자인 네이 스미스 박사를 비롯한 농구 관계인사 7명이 헌액됐다. SPORT2.0에서는 2006-07 시즌 개막을 맞아 포지션별 NBA 역대 ‘베스트 5’를 선정했다.
슈팅가드
마이클 조던
시카고 불스 1984~1993년, 1996~1998년
워싱턴 위저즈 2001~2003년
선정이유│별도의 설명이 필요없는 선수다. 조던의 득점력과 공격력에 대해선 익히 알려져 있다. 조던은 1988년부터 1993년까지, 그리고 1996년과 1997년 NBA 퍼스트팀에 선정됐다. 모두 8차례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와 동시에 NBA 최고 수비팀에도 뽑혔다는 것. 조던처럼 퍼스트팀과 수비팀에 함께 선정된 선수는 5명 더 있다. 월트 프레이저(전 뉴욕 닉스)와 제리 웨스트(전 LA 레이커스)가 4번 선정됐다. 카림 압둘 자바(전 LA 레이커스), 스카티 피펜(전 시카고, 휴스턴 로키츠,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존 하빌리책(전 보스턴 셀틱스)이 3번 뽑혔다.
조던 대신 선정될 만한 선수는 누구?
슈팅가드는 화려한 공격력과 많은 득점으로 스타 선수가 가장 많이 나오는 포지션이다. 그런 가운데 조던과 같은 시대 선수이고 라이벌이었던 클라이드 드렉슬러(전 포틀랜드, 휴스턴)가 조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 있다. 드렉슬러는 슈팅가드로는 보기 드물게 화려하기보다는 조용한 플레이를 펼쳤다.
포인트가드
어빈 ‘매직’ 존슨
LA 레이커스 1979~1991년, 1996년
선정이유│미시간주립대학 때부터 명성을 떨쳤다. 존슨은 포인트가드의 통념을 깬 선수였다. 206cm의 큰 키였지만 볼 핸들링, 드리블, 패스 어느 것 하나 단신 가드들에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가드, 포워드, 센터 등 모든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능력도 존슨만이 가진 재능이었다. 존슨은 프로 데뷔 시즌인 1979-80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부상한 센터 카림 압둘 자바 대신 뛰어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본업인 포인트가드로 소속팀을 3차례 더 정상으로 안내했고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감염 사실을 밝히며 은퇴했다. 1996년 다시 레이커스로 복귀했을 때는 파워포워드로 활약했다.
존슨 대신 선정될 만한 선수는 누구?
존 스탁턴(전 유타 재즈 1984~2003년)은 1984년 프로 데뷔 후 2003년 은퇴할 때까지 유타를 떠난 적이 없다. 매직 존슨이 갖고 있던 통산 최다 어시스트 기록을 뛰어넘은 그는 15,806개의 어시스트와 3,265개의 가로채기 기록을 갖고 있다. 둘 다 NBA 최고 기록이다.
스몰포워드
래리 버드
보스턴 셀틱스 1979~1992년
선정이유│그의 등이 아프지 않고 3년만 더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했다면 시카고 불스가 달성했던 1991~1993년 NBA 3연속 우승기록은 좀 더 미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버드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운동 능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도 뛰어난 농구 센스를 갖고 있었다. 3점 슛과 중거리 슛 등 득점력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은 그의 리바운드 능력이었다. 버드는 13시즌을 뛰는 동안 경기당 평균 24.3득점을 기록했고 그 기간 리바운드도 경기당 평균 10개를 잡아냈다. 1979년부터 6시즌 연속 두 자릿수 리바운드를 기록하기도 했다.
버드 대신 선정될 만한 선수는 누구?
줄리어스 어빙(ABA 버지니아, 뉴욕 1971~1976년, NBA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1976~1986년)이 주인공이다. 어빙은 그보다 조금 앞선 시대에 활약했던 엘진 베일러 그리고 자신의 라이벌이던 데이비드 톰슨과 함께 높은 점프력을 바탕으로 한 ‘고공농구’ 시대의 선구자였다.
파워포워드
찰스 바클리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1984-1993년
피닉스 선스 1993~1996년
휴스턴 로키츠 1996-2000년
선정이유│198cm에 불과한 키지만(더 작다는 설도 있다) 바클리는 선수생활을 끝낼 때까지 단 한번도 경기당 평균 10개 미만의 리바운드를 기록한 시즌이 없다. 득점력 또한 뛰어났다. 바클리는 선수 시절 내내 우승 반지와 우승 트로피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NBA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 그의 앞길을 번번이 막았던 선수는 친구 마이클 조던이다. 래리 버드, 아이제아 토마스도 걸림돌이었다.
바클리 대신 선정될 만한 선수는 누구?
칼 말론(전 유타 재즈 1985~2003년, LA 레이커스 2003~2004년)도 바클리처럼 ‘무관의 제왕’이다. NBA 개인 통산 득점 순위에서 카림 압둘 자바(38,387점)에 이어 2위(36,928점)인 그는 2004년 은퇴 당시에 두 시즌은 충분히 더 뛸 수 있었다. 만약 그랬다면 말론이 개인 통산 최다득점자로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면서 4시즌을 허비한 조던은 15시즌 동안 32,292점을 기록했다.
센터
빌 러셀
보스턴 셀틱스 1956~1969년
선정이유│공격 분야에서 러셀보다 뛰어난 기록을 남긴 선수들은 많다. 같은 센터 포지션만 하더라도 카림 압둘 자바, 모세스 말론 등이 거론될 수 있다. 러셀의 진가는 공격보다는 수비와 리바운드에서 드러난다. 그는 프로생활 통산 경기당 평균 22.5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센터로는 작은 206cm의 키에도 불구하고 골밑을 지배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더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다. 경기당 평균 25.9리바운드에 16.2득점을 올렸다. 여러 훌륭한 선수와 러셀이 있었기에 보스턴은 7연속 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러셀 대신 선정될 만한 선수는 누구?
월트 체임벌린(전 필라델피아,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스 1959~1965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1965~1968년, LA 레이커스 1968~1973년)은 러셀과 같은 시대에 뛰었고 라이벌이었다. 그는 한 경기 100점 득점이라는 대기록의 보유자다. 지난 시즌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가 한 경기에 81점을 넣어 주목을 받았는데 기록은 언젠가는 깨지게 되는 법이지만 체임벌린의 한 경기 100점 기록은 경신될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체임벌린은 1962년 3월 2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허시에서 열린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 대기록을 세웠다. 당시 경기에서 필라델피아는 뉴욕을 169-147로 꺾었다. 이 경기에서 체임벌린은 63번의 슛을 시도해 36개를 성공시켰고 자유투 32개를 얻어 28개를 림에 꽂아 대기록을 작성했다.
SPORTS2.0 제 23호(발행일 10월 30일) 기사
첫댓글 시즌 트리플 더블을 작성했던 오스카 로버트슨이 빠진게 좀 이상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