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땅에 두 번 쓴 의미
<요8:6~1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행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 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과연 예수님은 요술쟁이신가?. 살기등등하던 자들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냥 엎드리어 땅에 손가락으로 두 번 글을 쓰고 한마디 했더니 돌을 놓고 다 물러가다니...
오늘날 이 성경구절을 보면서도 땅에 쓰는 것의 의미를 모르고, 결과만 본다면 주님을 그야말로 요술쟁이, 혹은 신비한 마술사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리라. 다만 주님이니까 차마 마술이라고는 못하고 능력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겠지만 결국은 같은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요나의 표적만을 나타내시는 분이시지 어떤 요술을 부리는 분이 아니심을 명심해야한다.
복음서에 나오는 각종 병 고치는 것과 오병이어의 기적, 그리고 한 밤중에 바다 위를 걷는 것 등등을 신비한 이적과 기사로 해석한다면 전혀 구원과는 무관한 일이 되고 만다. 주님이 행하신 모든 기적과 이적은 비유로서 영적세계를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었다. 그러므로 땅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셨다는 말은 사람의 마음(땅)에 영의 말로(글) 깨닫게(기록) 가르치셨다는 말이다.
기록한다는 말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예를 든다면, 당시에 서기관(그래마튜스)들이 있었는데 ‘글자를 기록하는자’라는 의미를 가지기에 성경 필사자들로 오해들 하는데, 서기관의 영적인 뜻은 ‘백성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자들’로서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을 의미한다.
<마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그렇다면 주님은 무엇이라 가르치셨기에 양심에 가책을 받고 떠나갔을까?
오늘 인용한 본문을 전번 글과 연결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십계명은 ‘간음하지 말라’의 명령어로 쓰인 것이 아니고 ‘간음해서는 안된다’라는 권고형으로 쓰였다고 기술한바 있다. ‘마라’는 「현재까지는 네가 죄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미혹이 와도 죄를 범하지 말라」는 의미이고, ‘안된다’의 권고는 「네가 지금까지는 죄악된 삶을 살아왔으나 이제부터 바르게 깨닫고 거기에서 벗어나 거룩하고 온전한 자가 되라」는 말로서 전혀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안된다’의 권고는 깨닫는 자에게만 돌이키는 복이 있게 된다.
자칭 선민의식으로 가득 찬자들은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를 반복하며 스스로 거룩히 여기며 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한없이 가증스럽다. 이런 자들을 라반의 양이라 한다. 모두 흰둥이들이다. 야곱의 양으로 비유되는 점과 얼룩무늬가 있는 죄인, 세리 창기들과 대비되는 말이다. 이와 같이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이 십계명을 보면 ‘~마라’일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출생부터 무덤까지 윤리적 죄짓는 일이 없는 욥과 같은 자들이었다.
율법의 잣대로 사람을 정죄하듯 그들은 하나님을 또한 그렇게 인식한다. 즉, 하나님이라는 신은 윤리 도덕적 규범을 정해놓고 항상 감시하고 계시다가 그것을 범하는 날에는 심판 하시는 분으로 간주한다. 연약하고 힘 못쓰는 인간을 창조하시고 말 안 들으면 도리깨질을 하는 이런 율법적 사상은 천연적이고 본성적인 인본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대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 진정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종교성에 빠져 죽어 있다.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들의 무덤이 어디인가? 진리를 모르는 자체가 어두움이요, 그래서 (영적인)간음하고 있고, 살인하고 있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본문에서 주님이 두 번 땅에 쓰시는 퍼포먼스는 신10:1~4을 이루시는 것이었다. 모세가 첫 번째 받은 계명은 옛사람에게 준 것이요, 두 번째 받은 계명은 새사람에게 준 것이니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먼저는 육체에 상관된 율법이요, 다음은 생명을 살리는 성령의 법이었다. 주님은 지금 이것을 깨닫게 하시고자 사건을 일으키신 것이다.
첫 번째 땅에 쓰심(가르치심)은, 첫째 율법이 옛사람에게 말한 것이기에 아마 윤리 도덕적 접근이었을 것이다. 너희가 정히 도덕적으로 간음치 아니했느냐? 하나님은 폐부를 살피시는 분이심을 다 알지? 그렇다면 바르게 다시 말하거니와 감음의 외적 실행 이전에 마음에서 음욕을 품는 것 자체가 이미 간음하는 것이란다(마5:28).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어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셨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종교적 가르침에 찌든 완고한 심령들인지라, 주님의 말씀이 한편으로는 옳다마는 내심에 여전히 자기 의로움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저들의 주장은- 물론 마음에는 음란한 생각이 들어올 수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절제하여 범행을 실행치는 아니했소이다. 그러니 마귀에게 미혹되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저 죄인을 모세의 법대로 처단 하겠소이다.- 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은 두 번째 땅에 쓰셨다는 말은, 이제는 영적인 가르치심을 통해 깨우쳐 주셨다는 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성경에서 의도하는 간음이란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요, 더 나아가서는 너희가 날마다 성전에서 율법사들에게 가르침을 받는 행위가 곧 여자가 여자를 교합하는 짓이요, 남자가 남자를 상관하는 소돔의 죄를 반복하는 것이다. 율법 교사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남자가 아직 아니기에 신령세계를 모르는 소경들(여자)이니 그들의 가르침으로는 전혀 구원을 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천사(종교 지도자)와 하늘의 별(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임을 깨우쳐주신 것이다.
이렇게 세세히 풀어 주시는 주님의 권세 있는 말씀에 놀라서 그들의 영에 지각이 열리는 지진이 일어나고, 번개가 번쩍이듯 생명의 빛이 비쳐질 때에 마음에 깨달아져서, 여태껏 남을 도덕적 관념으로 정죄하던 양심이 가책을 받아 들었던 돌을 놓고 돌아갔다. ‘하나님이 십계명에서 하시는 말씀은 윤리도덕이 아니라 영적인 비유였구나...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라, 영혼의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였구나, 결국은 진리를 모르는 자체가 간음이로구나...’
이와 같이 누구에게 어떤 가르침을 받느냐에 따라 영이 조성되기에, 그동안 모세의 교훈으로 강팍해져 타를 정죄하던 율법의 영은 죽은 돌들이요 마른 뼈들이었다. 그들이 산돌이신 주님의 영을 만나 산돌이 되면, 다시는 이와 같은 일로 남을 정죄하기에 앞서 자신을 돌아볼 것이다. 이것이 구원이다. 사람을 육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도달하면 스데반 형제처럼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을 오히려 변호하며, ‘저들이 알지 못하여 정죄와 살인을 저지르기기에 용서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주님의 살려주는 영을 받은 스데반 형제는 이제 주님을 대신하여, 영적으로 병들어 죽어가는 자들에게 자신의 희생을 담보로 중보가 되고 화목제물이 되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행7:60>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롬8: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요20: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제 주님 앞에 홀로 남은 여자는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내고 있었다. 죽음을 통과한 심판앞에서 입술과 혀는 말라비틀어져서 뗄 수 없지만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생각에 따라 속으로 고백한다. -개 같은 나를 사람으로 보시고 살려주시다니...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나도 한 때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애썼지만 불타오르는 육체의 정욕과 각색 탐심이 나의 속마음을 억누르고 쓰나미처럼 나를 덮쳐서 번번이 죄의 노예가 되었답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살 수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음성은 너무도 부드러우시다. 여자여!(사랑하는 딸아!, 아내여!, 내 약혼녀여!) 내가 너를 얼마나 찾고 찾았었는데...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네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두 손 들고 내 앞에 나왔기에 내가 너를 사했노라. 너야말로 의인이요 정직한 자다. 다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네게 있어 너를 세상 끝날 까지 지켜줄 것이다. 안심하라 나의 사랑스런 고멜이여! 나의 뿔라여!
이것이 참된 회개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교회가 되고 주님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사영리를 통해 순서에 따라 죄를 고백하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자들은 거짓을 사고팔고 있다. 그 안에 복음사역자를 만나 참된 회개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백년 후에 모두 불못에 들어가 있지 않을까? 간음의 죄 값이다.)
첫댓글 감사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