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4』, 민음사, 2018.
예전에 괴롭혔던 것, 그가 끊임없이 찾던 것, 즉 삶의 목적은 이제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찾던 그 삶의 목적이 지금 이 순간에만 우연히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그 목적이 존재하지도 않고 또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의 부재가 자유에 대한 충만하고 기쁜 자각, 그 무렵 그의 행복을 이루던 그 자각을 그에게 부여했다.
그는 목적을 가질 수 없었다. 이제 그에게 신앙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원칙이나 말이나 사상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언제나 감지되는 살아 있는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었다. 이제껏 그는 스스로에게 부과한 목적에서 하느님을 찾았다. 목적을 향한 이러한 추구는 그저 하느님을 향한 추구일 뿐이었다. 그런데 포로로 있는 동안 문득 말이나 판단이 아닌 직접적인 감각으로, 이미 오래전 부모가 말한 것, 즉 하느님은 이곳에, 바로 이곳에, 그리고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로 시절 그는 카라타예프 안에 있는 하느님이 프리메이슨에서 인정하는 만유의 건축자 속 하느님보다 더 위대하고 무한하고 심원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눈에 잔뜩 힘을 주어 멀리 바라보다가 발치에서 자신이 찾던 것을 발견한 사람의 기분을 느꼈다. 그는 평생 주위 사람들의 머리 위쪽 어딘가를 응시했다. 그런데 눈에 힘을 줄 필요없이 그저 앞을 보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예전에 그는 어디에서도 위대하고 심원하고 무한한 것을 볼 수 없었다. 어딘가에 틀림없이 있을 거라고 느껴 그것을 찾았을 뿐이다. 가까이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그는 유한하고 저급하고 현세적이고 무의미한 것만 보았다. 그는 지성의 망원경으로 무장하고 먼 곳을, 아련한 안개에 가려 그 저급하고 현세적인 것이 단지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대하고 무한하게 여겨지던 그곳을 응시했다. 유럽의 삶, 정치, 프리메이슨, 철학, 박애주의가 그에게는 그런 식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약점으로 여기던 그때 그 시절에도 그이 지성은 그 먼 곳을 꿰뚫어 보고 그곳에서 똑같이 자급하고 현세적인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모든 것에서 위대하고 영원하고 무한한 것을 보는 법을 터득했다. 따라서 그것을 보기 위해, 그 관조를 즐기기 위해 그가 망원경- 그는 이제껏 그것으로 사람들의 머리 너머를 바라보았다-을 버리고 주변의 끊임없이 변하는 영원히 위대하고 심원하고 무한한 삶을 즐겁게 관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삶을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그는 점점 더 평온하고 행복해졌다. 이전에 그의 모든 지적 구조물을 파괴하던 ‘왜’라는 무서운 질문은 이제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왜’라는 그 질문에 대해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다음과 같은 단순한 답변이 준비되어 있었다. 하느님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이 없이는 사람의 머리에서 머리카락 한 올도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409~41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