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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명 이야기
황우석ㆍ최재천 글 / 김병종 그림
효형출판 / 2004년 12월 / 352쪽 / 11,000원
▣ 저자
황우석 - 1953년 충남 부여 출생. 서울대학교 수의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임상수의학을 전공하여 수의학 석사ㆍ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수의산과학 및 생물공학 분야의 연구와 교육을 해왔으며, 우량 유전자를 지닌 가축 보급을 위한 인공임신과 복제 기술 연구에 힘써 왔다. 1999년 2월 한국 최초의 체세포 복제동물 ‘영롱이’(젖소)를 탄생시켰으며, 같은 해 3월에 복제한우 ‘진이’가 태어났고, 2004년 2월에는 세계 최초로 인간 체세포 복제 유래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함으로써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04년 현재 서울대학교 최초의 석좌교수로 임명되어 재직하고 있으며, 줄기세포 연구와 함께 광우병 내성소와 사람에게 장기를 제공할 수 있는 무균돼지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최재천 - 1953년 강원도 강릉 출생. 서울대학교 동물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을 거쳐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에 재직하며 인간을 비롯한 여러 동물들의 성性과 사회성의 생태와 진화 그리고 동물의 인지능력과 인간 두뇌의 진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신문에 과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칼럼을 써왔고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텔레비전 방송에서 6개월간 ‘동물의 세계’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주로 열대의 정글을 헤집고 다니며 동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국내에 머물 때면 ‘알면 사랑한다!’는 좌우명을 가지고 자연사랑과 기초과학의 전도사로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김병종 - 1953년 전북 남원 출생. 서울대학교 미술대학과 대학원에서 회화(동양화)를 전공하고 지금까지 열입곱 차례의 개인전을 나라 안팎에서 가졌다. 유가예술철학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서울대 미대 교수로 있으면서 미술관장을 맡고 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에 걸쳐〈바보 예수〉,〈흑색 예수〉연작을 한지와 골판지 등에 많이 그렸으며, 10여 년 동안〈생명의 노래〉연작을 발표해 왔다. 2004년 가을 광주비엔날레에서는 ‘피와 꽃―바보 예수에서 생명의 노래까지’라는 제목으로 예수의 피 한 방울이 수많은 생명의 꽃을 피워냈다는 내용을 형상화시킨 작품들로 30여 미터 벽을 가득 채우기도 하였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사실 예술과 과학이라는 도저히 어우러질 것 같지 않은 분야의 세 사람이 함께 만난, 독특한 형태의 ‘생명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과학자 황우석 교수와 최재천 교수 그리고 화백 김병종 교수의 글과 그림은 각자의 영역에서 다루고 있는 ‘생명’이라는 주제를 공통으로 다루고 있다. 저마다 서로 촌놈임을 자처하는 이들의 바탕을 들여다 보면 한결같이 자연의 순리와 아름다움이 자리잡고 있으며, 세 명 모두 1953년생 동갑내기면서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모교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도 흔치 않은 인연임을 증명한다.
또한 책 속에는 두 저자의 생생한 연구 과정과 실험실의 에피소드들로, 과학입국의 미래를 여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이제 세계의 관심을 받는 황 교수이지만 변함없이 연구에 매진하는 유일한 목표는 '바이오 코리아'다. 최재천 교수는 '자연은 엄청난 지혜의 보고이자 샘물'이라며 그의 학문을 통해 비쳐본 사회를 그려낸다. 특히 과학은 자연과 인간에서 출발한다는 자세를 기초로 '대중의 과학화', 기초과학 진흥의 중요성을 한 목소리로 강조하여, 이공계 위기를 외치는 우리 사회를 향해 호소하는 애정어린 제언이 무게 있게 전해지고 있다.
▣ 차례
머리말 : 두 과학자와의 행복한 동행 - 김병종
황우석 - 생명은 희망이다
내 친구 소 이야기
생명복제 - 그 비밀의 문
또 다른 하늘을 열기 위하여
바이오 코리아, 그날까지
최재천 - 알면 사랑한다
대관령을 되넘다
과학의 대중화에서 대중의 과학화로
인간의 서식지는 이제 과학이다
나의 생명 이야기
황우석ㆍ최재천 글 / 김병종 그림
효형출판 / 2004년 12월 / 352쪽 / 11,000원
황우석 - 생명은 희망이다
내 친구 소 이야기
자연과학도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 : 복제 연구를 시작한 이래 생명윤리에 대한 고민을 멈춰본 적이 없다.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생명윤리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고, 논란거리도 많은 게 사실이다. 생명에 대한 정의부터 만만치가 않다. 추상적으로 따지고 들면 한없이 복잡한 문제지만, 생명공학을 업으로 삼기 전이나 지금이나 내게 생명은 추상이 아니다. 갓 태어나 걷지도 먹지도 못하던 나를 누이가 업어 키우고, 형들이 함께 어울려 온전한 하나의 생명으로 만들어냈다. 내가 뛰놀던 산과 들과 내와, 거기 몸담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 역시 나를 키웠다. 그러므로 정자와 난자부터 생명체로 볼 것인가, 아니면 수정란을, 그것도 아니면 탄생한 순간부터 생명체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닥치면 생명이란 내 곁의 구체적인 존재가 아니라 막연하고 추상적인 대상으로 느껴진다. 내게 생명이란 그런 게 아니다. 우리 집에서 키우던 소의 순한 눈망울, 봄이면 샛노란 솜털이 개나리보다 탐스럽던 병아리, 암탉이 막 낳은 따뜻한 달걀, 그런 자연에 기대어 살아가던 내 부모형제와 이웃들…, 생명은 그런 것이다.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소와 평생을 함께하겠노라고 결심했다. 방과 후에는 소와 함께 들판을 쏘다니며 풀을 뜯겼으니 소와 친구처럼 가깝기도 했지만 단지 소가 좋아서 그런 결심을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 가족과 이웃들의 가난이 가슴 아팠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1년 내내 허리가 휘도록 일해도 자식들을 학교조차 보내기 어려웠던 그 시절, 소는 땅조차 없는 가난한 농부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새끼 많이 낳는 소, 튼튼하게 잘 자라는 소를 연구해서 배고픈 우리 가족과 내 이웃들의 삶을 기름지게 하고 싶다는 작은 소망으로 나는 평생 소를 화두로 삼았다. 줄기세포 연구나 동물을 이용한 이종장기 연구에 뛰어든 계기 역시 다르지 않았다.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난치병을 앓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내 가슴에 와닿았던 것이다. 인간복제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지만 질병 치료를 위한 실용화 단계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러나 이 작은 희망의 싹에도 수많은 분들이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흔히 인문학은 인간을 연구하는 학문이요, 자연과학은 자연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자연과학도 인간에게서 출발한다. 인간의 삶을 더 낫게 하려는 희망이나 동기가 없다면 자연을 탐구할 이유가 없다. 나는 자연과학도지만 인간의 삶을, 그것도 막연한 인간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삶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분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자연과학을 전공했다.
<참조>
* 복제 연구 - 난자와 정자는 일반 체세포 절반의 유전 정보만을 지니고 있는 생식세포다. 이러한 두개의 생식세포가 융합된 수정란으로부터 새로운 유전 정보를 지닌 생명체가 탄생한다. 복제 연구는 체세포 핵이식 등의 과정을 거친 배아가 발달, 분화하면서 유전적으로 동일한 생명체, 즉 복제동물을 태어나게 할 수 있는 과학 기술을 연구한다.
* 체세포 핵이식 - 생명체의 유전 정보DNA는 세포 내 소小기관 중 하나인 핵에 들어 있다. 우리 생체의 모든 시스템은 이 DNA가 전달하는 유전 정보에 의해 제어, 통제된다. 따라서 핵이 제거된 난자는 아무런 유전 정보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여기에 체세포의 핵, 혹은 체세포 전체를 주입하여 융합시키면 난자는 주입된 체세포 DNA의 유전 정보를 지닌 개체로 발달하게 된다.
* 줄기세포 - 줄기세포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나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는 전능성全能性을 지닌, 분화 전 단계의 세포를 의미한다. 이러한 줄기세포가 환자의 체내에서 새로운 정상 세포로 분화, 활성화된다면 각종 난치병의 획기적인 치료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 복제배아 줄기세포 배양 -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난자와 정자의 체외수정을 통한 인공수정란 유래의 줄기세포를 배양하여 신체의 여러 세포 형태로 분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환자 자신의 세포를 복제한 복제배아 유래의 줄기세포를 이용한다면 면역거부반응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치료용 세포나, 조직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왔다. 황우석 교수 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인간복제배아 유래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하여 치료용 줄기세포 연구에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였다.
복제 연구에 첫발을 디디다 : 1981년 박사학위를 받으면 이듬해에 전임교수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지도교수님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러자 느닷없이 내게 배정되어 있던 연구실을 빼라는 연락이 왔다. 배정된 강의도 모두 취소되었다. 공부밖에 모르는 풋내기였던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전혀 몰랐던 만큼 충격도 컸다. 무엇보다 학교에 나오지도 말라니, 대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여러 대학의 시간강사를 전전하며 3년을 보낸 나는, 그때까지 살던 열여섯 평짜리 아파트를 무작정 팔아 경기도 광주의 황무지를 구입했다. 그리고 소를 사들여 농장을 만들었다. 그 무렵 서울대학교 수의과에는 실험 농장이 없었다. 나라도 인공수정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혼자 실험 농장을 운영하며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서울대학교 수의대 학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일본에 가서 연구를 계속해 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아마 수의대 학장님은 자신의 본의도 아니었을 교수 임용으로 미안한 마음에 내게 다른 기회를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 일본행이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걸 당시의 나는 몰랐다.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전화위복 운운하는 소리는 아무런 소용이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니 교수 임용 탈락은 내게 그야말로 전화위복이었다.
내가 간 곳은 인공임신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훗카이도北海道 대학이었다. 세계적인 과학자들 틈에 뒤섞여 연구를 하는 동안 나는 내가 모든 면에서 그들과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부족하다는 자각은 내 투지에 불을 붙였다. 인공임신과 복제 연구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우왕좌왕하던 나는 열 살이나 어린 동료들을 귀찮게 따라다니며 조금씩 눈이 트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뭔가 좀 알겠다 싶을 무렵 모교에서 돌아오라는 연락이 왔다. 마침내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지만, 복제에 관해서는 초보자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나는 분명한 내 길을 찾은 것이었다. 1982년의 교수 임용 탈락은 지금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 주어진 최대의 기회였던 셈이다.
생명복제 - 그 비밀의 문
인간을 복제한다고? :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복제 연구가 인간을 복제해서 그 장기를 질병 치료에 이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긴다. 결단코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죄악이다. 아직 우리 과학은 인간복제가 당장 가능할 정도에 미치지 못하기도 하지만, 설령 그런 기술이 가능하다고 해도 똑같은 인간을 복제한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실험실은 몇 년 동안 난치병 치료를 위해 복제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환자의 귀나 피부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미량의 세포를 떼어내 자신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정보를 지닌 복제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만들고, 이 줄기세포로부터 신경 세포나 근육세포와 같은, 치료를 위한 특정 세포의 분화를 유도한다. 이 세포를 대량으로 증식시켜 척추마비, 뇌졸중 또는 심장병 환자의 몸 안에 주입하면 망가진 세포를 대치하여 정상 기능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는 원리다. 원천적으로 동일한 유전 정보를 지닌 배아를 복제해서 분화된 세포이기 때문에 면역거부반응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2004년 초 우리 연구팀은 복제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이러한 연구가 학술지〈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이후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의 축하와 격려를 받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난의 여론 또한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련의 생명복제 연구에 대한 막연한 사회적 불안과 공포가 대부분 정확한 과학 지식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오해라는 점이다. 단언하건데 우리의 연구는 인간복제가 아닌 세포복제일 뿐이다.
<참조>
* 인간복제 -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이어 동물복제 기술과 결합하여 악인惡人이나 천재 복제인간이 태어나게 되고 이에 따라 혼란이 야기되리라는 우려가 높다. 하지만 인간은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동시에 받으며 자아를 지닌 개체로 성장하기 때문에 동일한 DNA가 복제되어도 성격, 사상, 가치관 등의 비非유전적 요소들은 일치하기 어렵다. 결국 ‘DNA 복제인간’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며 이는 인공적 일란성 쌍둥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복제인간의 탄생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복제의 제1원칙 - 인간 : 1985년 영국에서 처음 발생한 광우병은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에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몇몇 소가 이유를 알 수 없이 소음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처음에는 발길질과 같은 난폭한 행동을 하며 자주 넘어지다가 결국 온몸이 굳어지면서 떼 지어 죽어갔다. 이렇게 죽은 소의 뇌를 검사해 보니 스펀지처럼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뇌에 작은 구멍이 뚫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을 해면양뇌증이라고 부른다. 소에게 발생하는 광우병과 양의 스크래피, 인간의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 등은 모두 해면양뇌증의 일종이다. 이 가운데 광우병이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축산업을 몰락시킬 뿐 아니라 인간에게 전염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광우병은 프리온prion이라는 변형 단백질이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변형된 프리온이 사료 등을 통해 소의 체내에 들어간 뒤 뇌까지 침입하면 광우병이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 광우병의 예방 대책은 두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는 광우병에 걸리지 않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복제소를 만드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광우병 예방약을 만드는 것이다. 프리온 단백질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은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 프루시너 박사는 프리온이 제거된 쥐를 만든 뒤 이 쥐에 변형 프리온을 투여한 결과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킨 영국의 로슬린 연구소는 프리온 유전자가 제거된 복제양을 만들어냈다. 같은 방식으로 프리온이 제거된 복제소가 태어난다면, 이 소들은 광우병에 감염되지 않을 거라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 연구진은 미국과 일본, 캐나다 연구진과 함께 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프리온의 존재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프루시너 박사는 광우병 예방약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프루시너 박사는 정상 프리온 단백질을 변형시키는 단백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단백질 X'라 명명했다. 프루시너 박사는 단백질 X와 프리온의 결합을 방해하는 물질이 존재하며, 이 물질이 광우병 예방약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 아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생명공학의 발달로 광우병은 머지않아 정복될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인간의 오만이 계속된다면 '제2의 광우병'은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생명이라는 나름의 윤리 기준에 어긋나는 연구를 하지 않는 것이요, 또 하나는 우리의 연구가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봇공학의 제1원칙은 인간이라고 한다. 로봇이 어떤 경우에도 인간을 해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복제의 제1원칙 역시 인간이다. 복제도 어떤 경우에든 인간을 해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사회적, 윤리적 안전장치가 마련된다면 복제 연구는 지금까지의 어떤 과학 기술보다도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인간에게 유익한 과학의 발전을 위한 복제 연구는 호기심이나 명예나 부를 목적으로 하는 한 두 사람의 과학자에 의해 결코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나와 내 이웃의 행복을 위한 작은 한 걸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묵묵히 실험실의 불을 밝히고 있는 과학도들과 사회 구성원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참조>
* 해면양뇌증海綿樣腦症 증후군 - 소의 광우병, 양의 스크래피, 인간의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 등을 총칭해 일컫는 말. 서로 다른 동물 사이에도 프리온에 의해 감염될 수 있다. 감염성이 있는 단백질을 뜻하는 프리온은 이제까지 알려진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곰팡이, 기생충 등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질병 감염인자로, 보통의 바이러스보다 훨씬 작다. 이 증후군을 앓는 동물과 사람은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 신경세포가 죽게 되며 해당되는 뇌 기능을 잃는다.
* 스크래피scrapie - 애초에 해면양뇌증은 약 2백 년 전에 양에게서 나타나는 스크래피로 제일 먼저 발견되었다. 감염된 양들이 피가 날 정도로 등을 울타리에 긁어대 ‘긁는scrape 병’이란 뜻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1990년대 유럽의 광우병 파동은 스크래피에 걸린 양의 사체를 갈아 소의 사료로 사용했기 때문에 확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크로이츠펠트-야코프 병Creutzfeldt-Jakob disease - 주로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먹거나 다른 경로로 프리온에 감염된 사람에게 나타나는 병이며, 광우병과 마찬가지로 뇌의 단백질 이상으로 신경세포가 죽어 스펀지처럼 뇌에 구멍이 뚫려 결국 사망하게 된다. 이 병에 걸리면 뇌가 파괴되면서 우울증, 근육경련, 시각장애, 치매 등이 나타난다. 잠복기는 5~10년으로 추정되는데, 발병하면 90퍼센트 이상이 1년 이내에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다.
6개월 10일짜리 돈생豚生 : 2003년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의 보고에 따르면 이식 대기 환자의 15~30퍼센트만이 장기이식을 받았다. 폐의 경우에는 대기 환자는 많은데 제공자가 없어 이식한 예가 전무全無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식 대기 환자의 70퍼센트 이상이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보다 상황이 훨씬 나은 미국에서도 이식을 대기하는 환자 중 10~15퍼센트가 끝내 자신에게 적절한 장기를 이식받지 못해 사망한다고 한다. 의학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를 다각도로 진행하고 있다. 크게 인공장기, 줄기세포유래장기, 이종장기로 나뉠 수 있는데, 인공장기나 줄기세포유래장기는 오랜 기간 추가 연구가 필요한 기술이라 현재로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이종장기 연구다.
돼지의 장기는 그 크기와 형태가 인간과 유사하여 이종장기이식 연구의 1순위 후보로 꼽힌다. 임신 기간이 114일로 비교적 짧은 편이라 1년에 2~3회 번식이 가능하고, 한 번의 임신으로 열 마리 이상의 새끼를 낳는 다태동물多胎動物이라 연구의 효율과 실용화 측면에서도 가장 가능성이 높다. 2003년 국내에서는 우리 연구팀에 의해 처음으로 유전자가 전환된 장기이식용 복제돼지가 태어났다. 4년여의 연구 기간 동안 수십만 개에 이르는 돼지 체세포 복제배아를 8백여 두의 대리모에게 착상 실험한 끝에 얻은, 황금보다도 귀한 돼지였다. 그러나 녀석은 세상에 나온 지 고작 열여섯 시간 만에 우리 모두의 기대를 뒤로 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우리 연구팀의 장기이식을 위한 복제돼지 연구는 현재 이식 후 사람과 돼지의 면역체계 차이에서 비롯되는 급성 면역거부반응과 돼지가 지니고 있는 종種특이성 병원성 미생물에 의한 감염 문제에 가로막혀 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생명공학 기술은 이 두 가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2003년 7월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초급성 면역거부반응 유전자가 제거된 네 마리의 복제돼지가 태어난 바 있다. 인간과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 실험을 통한 최종 확인을 거쳐 실제로 환자 몸 안에 돼지장기가 이식될 수 있는 그날까지, 수많은 돼지들이 인간을 위해 숨져갈 것이다. 그러나 그 희생은 숭고하고 위대한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참조>
* 인공장기 - 일반적으로 인공신장 및 인공심폐장치 등 장기의 기능을 대응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치를 주로 인공장기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다른 동물의 장기나 사람의 세포에서 복제해 체내에 끼워넣고 사용하는 경우도 포함한다.
* 줄기세포유래장기 - 줄기세포를 특정 세포로 분화시키고 이 세포를 장기 형태를 갖춘 지지체와 함께 배양하여 간, 심장, 신장 등과 같은 장기로 유도하는 방법이며, 현재 기술로서는 실현시키기 어려운 상태다.
또 다른 하늘을 열기 위하여
아무도 믿지 않았던 기적 : 우리 합동 연구팀은 2001년, 인간의 체세포를 복제하여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전세계에서 아무도 성공한 사례가 없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우리는 1988년 수정란 이식으로 소를 생산하는 데 성공하고, 1993년에는 국내 최초로 시험관 송아지를 탄생시켰다. 1995년에는 수정란복제로 할구분할 복제소를 생산했으며, 1995년부터 체세포복제 연구에 뛰어들어 1999년에 국내 최초로 복제소 영롱이를 탄생시켰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성공이 또 다른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당연히 없는 것이고, 인간배아를 복제한 줄기세포 추출은 지금까지 해온 다른 연구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였다. 전세계 연구자들이 벽에 부딪쳐 중도에 포기한 과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이 연구가 아니면 난치병 치료에 새로운 치료법은 없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어차피 연구란 이미 누군가 닦아놓은 길을 달려가는 것이 아니다. 길이 없는 막막한 광야에 뛰어들어 스스로 한 가닥 길을 닦아내는 것이다.
2003년, 세계 주요 연구자들이 마침내 항복하고 말았다. 인간 복제배아의 분할 과정에서는 어느 단계 이상의 발달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복제된 원숭이배아로 실험한 미국의 연구팀이 이른바 8세포기 장벽에 가로막혀 손을 든 상태였다. 그러나 우리는 굴하지 않았다. 우리의 도전은 뼈를 깎는 인내를 필요로 했다. 똑같은 실험을 똑같은 동물을 대상으로 하루에 몇 번씩, 몇 년에 걸쳐 수백, 수천 번 반복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발견할 확률과 끊임없이 싸워왔던 것이다. 누구나 만류하던 실험에 뛰어든 지 2년 만인 2003년 2월, 우리 팀은 마침내 세계 최초로 인간 복제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했다. 기쁨의 순간은 찰나였다. 지금 우리 팀은 또 다른 과제인 장기이식을 위한 무균돼지복제 연구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또다시 실험실에서 고독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실패를 딛고 기적을 이뤄본 우리들은 이제 더 힘차게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하늘을 열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적막한 실험실에서 세월을 잊는다.
<참조>
* 할구분할 - 수정란은 보통의 세포보다 상당히 크며 이 세포가 유사분열을 하여 세포증식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분할이라고 한다. 분할의 결과로 생긴 세포들을 할구割球라고 한다. 수정란의 세포분할은 수정란이 난관 위쪽에 있을 때 시작되며 주로 난관의 근육수축에 의해 아래쪽으로 이동하면서 자궁으로 들어가기 전 이틀 정도 더 분열이 계속된다. 사람의 경우 수정란 및 할구가 유사분열을 하여 생긴 세포들은 크기와 구성 성분이 같은 완전균등분할을 한다. 할구들은 처음 배란될 때 난자가 가지고 있던 투명대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데 분할 기간 동안 세포의 수는 증가하지만 전체 무게는 변하지 않는다.
* 8세포기 - 할구분할 단계 중 수정란이 여덟 개의 세포로 분리된 단계. 사람의 경우 수정된 지 3일째의 단계로 아직 자궁 내벽에 착상하기 전의 상태다.
바이오 코리아, 그날까지
무엇을 위하여? : 흔히 과학자는 실험실에 틀어박혀 자기 연구에만 집중하는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하기 쉽다. 말 자체는 별로 틀리지 않다.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외부와 격리된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고, 그 연구에만 집중해야 결과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자야말로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것이며 함께 사는 것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를테면 공동체의식에 철저한 사람들이다. 일단 연구주제부터 그렇다.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과학자라면 제대로 된 연구주제를 잡을 수 없다. 내가 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도 가난한 우리 어머니, 우리 동네 사람들 때문이었거니와 줄기세포복제 연구를 시작한 것도 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무수한 사람들의 아픔을 직접 보고 느끼고 있는 우리 연구진의 의학자들 때문이었다.
복제배아 줄기세포 배양 결과가 의학적으로 실용화될 경우에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고들 한다. 우리 연구팀은 인간배아를 이용한 줄기세포 복제 실험에 관련된 몇 가지 노하우를 국제 특허로 신청했다. 특허권자는 대한민국이다. 앞으로 우리 팀이 이뤄낸 모든 연구결과는 대한민국에 귀속될 것이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다니 제 정신이냐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혹은 나를 부에 연연하지 않는 무슨 도 닦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존경한다는 사람도 만난다. 내 자신이 부에 별로 연연해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좀 당혹스럽다.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이는 팀 전체의 공동 성과이며 그동안 지지하고 후원해 준 모든 국민과 국가의 것이다.
나는 경제를 잘 모른다. 하지만 설령 경제에 정통했다고 해도 우리 연구는 하나의 기업이 독점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를 이끌고 책임질 것은 당연히 내가 태어난 조국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따라서 특허권자를 대한민국으로 신청했다고 해서 대단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런 칭찬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고통 받는 자들을 외면하지 않는 생명윤리가 곧게 세워져서 앞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고, 생명공학자들이 윤리적 관점이라는 게 없는, 오로지 과학적 발전에만 전전긍긍하는 편협한 과학자로 비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과학의 출발점 : 자연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애국이라는 말도 이미 죽은 단어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애국이라는 말을 꺼내면 냉소하는 젊은 친구들도 적지 않다. 뻔한 소리 왜 하느냐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떤 강연에서든 애국이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는다. 아니, 애국이야말로 내 강연의 주제다. 전에 사법연수원의 초청을 받고 수료를 앞둔 1천 명 남짓한 연수생들에게 특강을 한 적이 있다. 평소 소신대로 우리나라 젊은 과학도들의 창의성이 뛰어나고 매우 성실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과학도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킬 만한 동인動因만 제공한다면, 창의성과 성실, 애국심을 바탕으로 제2의 과학 입국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역설했다. 강의 후 원장님을 비롯한 연수원 간부들과 나눈 오찬시간에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들 모두 서슴없이 ‘애국심’이라 답했다.
특히 과학 기술은 창의성이라는 필수 조건이 전제된다. 창의성은 오로지 밝은 시계視界가 확보될 때만 찾을 수 있으며, 맑은 영혼의 눈에만 비친다. 그래서 나는 어린 꿈나무들을 위한 강연을 찾아다닌다. 어린 시절에는 한 권의 책이나 한 사람이 인생 전체를 뒤바꿔놓을 수도 있다. 과학도가 되고자 이과나 과학고등학교를 선택한 친구들에게 나는 학교에서는 들을 수 없는 과학 기술의 현주소와 뒷이야기를 들려주고, 과학의 원천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의 원천은 곧 국가와 민족이요, 더 나아가 인류의 행복한 삶이다. 과학은 그곳에서 출발해야 한다. 강연이 끝나고 돌아오면 어김없이 몇 통의 이메일이 날아온다. 대개는 국가와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내용이다. 나도 자주 쓰는 말이지만 ‘국가와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과학자’라니, 참으로 상투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그 상투적인 말에 진심이 실리면 묵은 때가 벗겨지고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말로 변신한다. 내 말이 어린 친구들의 영혼에 각인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 숭고한 목표를 갖고 과학 입국을 실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재천 - 알면 사랑한다
대관령을 되넘다
가시고기와 동물행동학 그리고 운명 : 강릉은 어린 내게 늘 동물의 왕국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장 가슴 두근거리던 일은 삼촌들과 논병아리를 잡으러 다니던 일이다. 논병아리는 이제 우리 강산에서 보기 힘든 새가 되고 말았지만 당시 강릉에는 퍽 흔했다. 논 한복판에 작은 둥지를 띄우고 그 안에 네댓 개의 알을 품고 있는 논병아리 어미를 포위해 들어갈 때 느끼던 흥분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못할 짓을 한 것이지만 그때는 그게 자연을 사랑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내가 함께 놀던 모든 동물들 가운데 나와 운명적으로 가장 진하게 얽혀 있는 것은 바로 가시고기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또 베스트셀러 소설 제목으로 우리 독자들에게 퍽 친숙한 물고기인 가시고기는 사실 내가 전공하는 동물행동학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근대 동물행동학의 창시자로 우리는 대개 유럽 학자 세 명을 꼽는다. 꿀벌의 춤언어를 밝힌 폰 프리슈Karl von Frisch, 기러기 새끼들로 하여금 자신을 어미처럼 따르게 하여 이른바 각인刻印 행동의 메커니즘을 연구한 로렌츠Konrad Lorenz, 새와 곤충들의 온갖 정형화된 행동들을 연구한 옥스퍼드 대학의 틴버겐Nico Tinbergen이 그들이다. 이들은 1973년 야외생물학을 하는 학자들로는 전무후무하게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들 중 틴버겐은 큰가시고기의 짝짓기 행동을 관찰하여 동물행동학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큰가시고기 수컷의 붉은 배나 춤 등이 이른바 ‘신호자극’으로 작용하여 암컷의 뇌 속의 ‘타고난 행동유발 메커니즘’을 자극하면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되어 있던 ‘정형화된 행동’을 보이게 된다는 일련의 실험들로 초기 동물행동학의 기본 개념을 정립했다. 하버드 대학 첫 학기에 택한 동물행동학 수업 첫 주에 배운 내용이었다. 그렇게 나는 가시고기를 통해 내 평생 학문에 입문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내가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시간 대학의 교수가 되어 동물행동학 강의를 하던 때였다. 강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그곳으로 박사후과정을 밟으러 온 젊은 동물학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나는 틴버겐의 큰가시고기 연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도 가시고기는 우리나라에는 없는, 그저 먼 나라의 신기한 동물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그 동물학자는 뜻밖에도 태백산맥 줄기에서 동해로 흐르는 물에 가시고기들이 산다며 자기는 주로 강릉 비행장 옆 냇물에서 채집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강릉 비행장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 논 근처를 휘돌아 비행장 담을 끼고 동해로 흘러들던 그 냇물에서 종종 멱을 감곤 했다. 멱을 감으며 소쿠리로 수초 주변을 훑으면 한 움큼씩 올라오던 그 이름 모를 작은 물고기들 중에 가시고기가 있었다는 얘기였다. 내가 동물행동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과학의 대중화에서 대중의 과학화로
과학적인 생각이 필요하다 : 나는 주요 일간지의 내 개인 칼럼을 통해 또는 각종 오피니언란에 초대 받아 다양한 사회 문제들에 대해 많은 글을 써왔다. 나는 가끔 과학자가 뭘 그렇게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사회생물학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의 사회행동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개미나 까치가 사회를 이루고 사는 모든 모습을 관찰하듯 나는 우리 인간 삶의 모든 것들을 관찰한다. 인간을 연구하는 사회생물학자로서 정치, 경제, 문화, 환경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요사이 우리 사회는 이른바 과학 대중화 운동에 적지 않은 관심을 쏟고 있다. 하지만 ‘과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과학화’를 이뤄야 한다. 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가지고 과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으면 된다. 국민의 대다수가 과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면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주먹구구와 적당주의가 사라진다. 과학 마인드가 예산 낭비와 국력 낭비를 상당 부분 막아줄 것이다.
풍요의 악순환을 끊자 : 대기오염의 주범은 바로 자동차 배출가스로서 서울의 경우 전체 대기오염물질의 85퍼센트를 차지한다. 2003년 현재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총 1천3백만 대에 이른다. 그에 비하면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도로의 길이는 9만 1천4백 킬로미터에 불과하다. 버스와 트럭까지 고려하여 자동차 한 대의 평균 길이를 약 3.5미터로 잡고 1천3백만 대의 자동차들이 모두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고 상상해 보자. 자동차의 행렬은 장장 4만 5천5백 킬로미터에 달할 것이다. 전체 도로 길이의 절반이 넘는다. 차와 차 사이에 겨우 차 한 대 거리를 유지한 채 전국의 도로는 그저 긴 주차장이 되고 말 것이다. 민족의 대이동이 늘 고생길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처럼 너무나 간단하다.
우리가 내는 세금에는 교통세라는 게 들어있다. 지난 1994년부터 2004년 연말까지 10년 동안 한시적으로 내기로 한 이 목적세 덕분에 교통 관련 시설이 전반적으로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로 인한 대기오염 등의 환경 파괴는 가늠조차 하기 어려운 엄청난 손실을 가져왔다. 자동차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도로가 막히게 되고, 그로 인한 교통체증을 해소하고자 또다시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면, 그에 따라 자동차의 수가 또 늘고 하는 이른바 양성되먹임 과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이를 ‘풍요의 악순환’이라 부른다. 이제 2004년 연말에 폐지되는 교통세를 놓고 정부 부처간에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교통세를 폐지하는 대신 환경세를 신설하여 최악에 이른 우리 환경을 되살릴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동북아 물류중심국가에 걸맞은 운송망을 건설하기 위하여 교통세 폐지를 부득이 보류해야 한다면, 교통세를 교통환경세로 전환하여 세입의 상당 부분을 환경 보전과 개선에 투자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다.
보전과 개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욕심으로 등장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 정부에도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있다. 미래 세대의 요구를 현 세대가 적당히 정해 놓고 스스로 위안을 얻자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아예 ‘지속가능한 발전’을 은근히 ‘지속적인 발전’으로 둔갑시켜 추진하고 있다. 풍요의 악순환을 과감히 멈추려는 ‘보전가능한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한 우리 인류의 미래가 결코 밝지 않음을 현대생태학은 끊임없이 경고하고 있다.
인간의 서식지는 이제 과학이다
과학 기술력이 국력인 이유 : 생물학자들에게 현대유전학의 발달에 가장 크게 공헌한 동물을 꼽으라면 대개 노랑초파리를 떠올린다. 처음에는 집단유전학에 중요한 실험동물로 등장하더니 나중에는 분자유전학을 거쳐 요즘에는 진화발생생물학에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로 계속 활약하고 있다. 노랑초파리도 예전에는 야생에서 살았겠지만 이제 더 이상 그들을 야생에서 찾을 수 없다. 설령 야외에서 잡힌다 하더라도 그들은 거의 틀림없이 유전학 실험실에서 탈출한 놈들이다. 노랑초파리의 자연 서식지는 이제 인간이 만들어놓은 유전학 실험실이 되었다. 나는 감히 인간이라는 동물의 자연 서식지도 이제는 과학 기술로 창조된 세계라고 단언한다. 우리 모두 과학 기술 속에서 태어나 성장하다 늙고 병들어 죽는다. 인간은 다른 어느 동물들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두뇌를 갖도록 진화했고 그 결과 과학이 탄생했다.
이제 우리 중 그 누구도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더 이상 과학 기술의 영향권 밖에서 살 길은 없다. 어쩔 수 없이 과학 속에서 살아야 한다. 다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숨쉬고 살 수 있는 인간적인 과학을 할 수 있을지 그 길을 찾아야 한다. 동굴시대에도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있었다. 누구는 야생동물들의 행동과 이동경로를 관찰하여 분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또 다른 이들은 날카로운 칼과 활촉을 만들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곳에는 또 이 같은 과학 기술인들의 새로운 발견과 발명에 혜택을 입은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여 자신의 생활을 윤택하게 한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지식 수용에 무관심하거나 느리거나 아니면 정보를 제대로 얻지 못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이 두 부류의 석기시대인들이 삶의 질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였을 것은 쉽게 짐작하고 남으리라. 또 이런 과학 기술인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부족이 그렇지 못한 부족보다 훨씬 더 풍족하게 살았을 것이다.
과학 기술력이 바로 국력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긴 역사적 배경을 지닌다. 원래 과학의 역사를 주도하던 곳은 중국을 비롯한 동양이었다. 적어도 15세기까지는 분명히 그랬다. 종이, 나침반, 화약, 시계 등 이미 1세기경에 중국이 보유하고 있던 발명품들이 서구에 등장한 것은 10세기나 그 이후였다. 서양의 과학이 동양을 넘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이후였고 본격적으로 그 힘의 불균형이 국제정치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세기였다. 1840년에 벌어진 아편전쟁은 그 중 가장 상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그때 강제적으로 무릎을 꿇었던 중국이 이제 자발적으로 과학의 우위를 되찾기 위해 뛰고 있다. 이처럼 과학만이 살 길임은 너무도 자명한데 우리는 지금 그걸 애써 외면하려 하고 있다.
과학의 민주주의와 평생 과학 교육 : 우리는 바야흐로 정보전쟁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를 얼마나 많이 생산하고 축적할 수 있는지는 바로 과학 기술에 달려 있다. 나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스스로 과학문맹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나는 과학에도 민주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릴 수 있어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민주정치를 제대로 하려면 우선 국민의 문맹도가 낮아져야 한다. 전 국민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덕에 우리 정치가 그 짧은 역사에 그나마 이만큼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이 모든 것이 다 그동안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 온, 이른바 의무 교육의 결실이다.
이제는 과학의 의무 교육을 실시할 때가 왔다. 그래야 과학의 민주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 국민 대부분이 글을 읽지 못하는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어렵듯이 공동체의 성원이 모두 고르게 과학을 듣고 이해하고 말할 수 없으면 절대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다. 그래서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의 과학적 소양을 갖출 의무가 있다. 나라마다 공용어가 있듯이 과학언어도 서로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한다. 최근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소득에 따른 정보화 격차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른바 ‘정보 격차’라고 부르는 현상이 심화되면 장차 안정적인 민주사회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남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라도 과학은 이제 국민의 의무 수준에서 다뤄야 한다.
그런데 이 점에서 우리 사회는 완벽하게 거꾸로 가고 있다. 과학이 개인은 물론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에 이 무슨 시대착오적이고 시대역행적인 일인가.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 분배인 것처럼 과학의 혜택도 고루 나눠야 한다. 지식의 고른 분배가 없이는 과학의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 과학의 의무 교육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의 의무 교육은 학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글은 한번 깨우치면 평생 써먹을 수 있지만 자고 나면 변하는 과학의 세계에 호흡을 맞추려면 끊임없이 함께 뛰어야 한다. 그러자면 우선 학교의 과학 교육이 강화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졸업 후에도 우리 모두 과학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멋진 신세계를 위한 새로운 윤리 :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달이 새로운 사회윤리를 요구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새로운 과학 지식의 등장은 늘 우리의 사회윤리를 뒤흔들었다. 코페르니쿠스, 뵐러, 다윈, 아인슈타인의 발견들은 한결같이 새로운 윤리체계를 요구했다. 생명과학의 발전은 그 유래를 찾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를 엄습하는 도전도 그만큼 크다는 말이다. 황우석 선생의 학문적 개가가 칭송과 더불어 엄청난 비난에 휩싸이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어디까지나 유전자복제지 결코 생명체복제가 아니다. 문제의 과학적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는 일이 우선 이뤄져야 하고 그에 따라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윤리관을 확립하는 일이 필요하다.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심비우스로 : 화석 증거에 의하면 지구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거나 이미 사라져간 모든 생물들 중 인간은 거의 막둥이 격이다. 분자유전학의 분석결과에 따르면 인류와 침팬지가 하나의 공동조상에서 분화된 것은 지금부터 불과 6백만 년 전의 일이다. 6백만 년이란 시간은 진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지구의 역사를 하루에 비유한다면 1분도 채 되지 않는 지극히 짧은 시간이다. 현생인류가 탄생한 것은 그보다도 훨씬 최근인 15만~23만 년 전의 일이고 보면 인간은 그야말로 순간에 ‘창조’된 동물이다. 그런데 그 어린것이 버르장머리없이 온통 흙탕물을 튀기고 있다.
진화는 결코 우리 인류를 탄생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과정이 아니다. 자연선택은 어떤 목표를 향해 합목적적으로 진행되는 미래지향적 과정도 아니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모든 합리적인 해결방법을 총동원할 수 있는 공학적인 과정도 아니다. 그래서 적자생존의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고 난 결과는 어쩔 수 없이 완벽한 인간의 등장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생각은 지나친 인본주의 또는 인간중심주의의 그릇된 결론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 의식, 문화 등 우리가 특별히 인간적인 특성으로 간주하는 그 모든 면도 다 궁극적으로는 진화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유전자란 도덕이나 윤리의식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복제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기적인 존재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선택이 비도덕적, 더 정확히 말하면 무無도덕적인 과정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처럼 자연선택은 근본적으로 지극히 단순하고 기계적인 과정이지만 이 엄청난 생명의 다양성을 탄생시킨, ‘자연이 선택한’ 가장 강력한 메커니즘이다.
그 DNA가 이제 드디어 우리에게 자신의 비밀을 열어 보이고 있다. 인간 유전체의 전모가 밝혀지며 우리는 바야흐로 DNA가 우리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들춰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 지식을 이용하여 급기야 생명체를 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진화의 역사에서 DNA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인간의 두뇌를 이용하여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복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지금 ‘DNA의 성공시대’를 관람하고 있는 것이다.
2003년 1월 16일부터 18일까지 나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신세기 문명 포럼’에 참석했다. 나는 ‘호모 심비우스―21세기 새로운 인류상Homo symbious―A New Image of Man in the 21st Century'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했는데, 호모 심비우스, 즉 공생인共生人의 개념은 내가 2002년 여름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생태학대회에서 시민들을 위한 기조강연 시리즈를 구상할 때부터 사뭇 구체적으로 내 마음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기조강연 시리즈에 '21세기 새로운 생활철학으로서의 생태학―다스림과 의지함’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공생의 개념을 더욱 널리 알리고자 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생존 그 자체가 위협받는 이른바 ‘환경의 세기’에 살고 있다. 다양한 삶의 주체들과 형태들을 인정하고 그들에 대해 더 많이 알기 위한 노력, 즉 생태학과 같은 학문을 통해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 현재 우리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환경 파괴와 온갖 잔인한 행동들을 보면 우리는 스스로 갈 길을 재촉하는 동물처럼 보인다. 먼훗날 이 지구상에 인간에 버금가거나 능가하는 생명체가 탄생하여 지구의 역사를 재정리한다면 과연 우리 인간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우선 그들의 역사책에 거의 언급조차 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본다. 워낙 짧게 살다가 절멸한 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워낙 저질러 놓은 잘못이 엄청나 비록 그리 긴 세월을 생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퍽 중요했던 종으로 기록될 가능성 역시 높다. 나는 우리 인간이 이번 세기에 호모 심비우스로 거듭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