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도외 문화기행 후기
권무일
해마다 초여름이면 어김없이 떠나는 제주문화포럼의 도외문화기행은 참으로 의미 있는 행사임에 틀림없다. 제주문화에만 천착하지 않고 바다를 건너 우리나라의 구석구석에 배어있는 풍물과 문화를 체험하고 여러 유적지와 역사현장을 편답하면서 조상들이 남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배우고 현대문명의 눈부신 발전상을 체험하는 것이 이번 문화기행의 목적일 것이다.
2018년 6월 8일 아침, 김해공항에 내린 우리 일행 30명은 들뜬 가슴을 부여안고 대절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는 한 시간여 달려 울산 언양 천전리에 위치한 각석계곡을 찾는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언덕을 오르고 있는데 냇물은 거꾸로 흐른다. 고개를 넘으니 내를 낀 수목들은 푸르고푸르고 계곡을 내리닫는 물소리는 우렁차다. 비스듬히 서있는 한 길 반 정도 되는 바위에는 수천 년 전 조상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바위 상단에는 중심원을 따라 기하학적 무늬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는 사람, 사슴, 상상의 동물이 새겨져 있다. 돛단배와 기마행렬의 모습도 보이고 신라 때 화랑의 이름들이 음각되어 있다. 법흥왕의 동생이 다녀가면서 새겨놓은 흔적과 수년 후 그 아내 지소부인이 남편을 못잊어 6살 아들(진흥왕)과 찾은 기록들도 보인다. 이는 1970년 동국대 박물관 팀이 발견했다고 한다.


우리는 대나무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중간에 정몽주, 이언적, 정구 등을 기린 반구서원으로 향하는 길이 보였지만 바쁜 우리는 아쉽게도 그냥 지나쳐야 했다. 반구대 암각화를 보기 위함이다. 반구대 언덕을 올라 암각화의 현장에 도착했으나 내 건너 벼랑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다만 입구의 안내판에서만 고래, 호랑이, 사슴, 거북, 물고기 그리고 사람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이 보일 뿐이다. 내가 40년 전에 여기에 왔을 때는 물이 하천의 중턱까지 찼고 수위가 낮아질 때면 암각이 뚜렷이 보였는데 지금은 풍화되고 침식되어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원래 태화강의 지류인 이 대곡천 또는 반구천은 태화강에서 경주까지 이어져 있어 배가 오가던 강이었는데 1960년대 울산공업단지에 물을 대기 위하여 사암댐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지역이 저수지가 되었다. 물이 불었다 줄었다 하는 마당에 암각화가 오롯이 보존될 수 있었겠는가?


언양에서 불고기백반으로 점심을 하고 우리는 울산 방어진의 대왕암길로 향했다. 이 길은 해파랑길 8코스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100년 세월을 견딘 소나무들이 울울창창한 오솔길을 지나니 울기등대가 바다를 향해 손짓한다. 울기등대는 1907년에 세워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 중 하나라고 한다. 수십 년 전 현대조선소가 세워질 때 이 기슭에서 싱싱한 도다리회를 먹던 일이 생각난다. 기암괴석들이 우뚝우뚝하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내려다보며 절벽 위를 우리는 걷는다. 멀리 바다가 수평선까지 뻗어있다. 바다 가운데 문무왕릉을 닮은 바위군이 떠있다. 그래서 대왕암이라 이름 지은 것 같다. 사실 고사와는 관련이 없다. 몽돌해변을 지나니 슬도(瑟島)가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원래는 구멍이 술술 뚫린 바위로 이루어진 무인도였는데 파도가 구멍을 드나들며 내는 소리가 거문고소리 같아서 슬도라 불렀다고 한다.


우리는 울산문화예술회관으로 발길을 옮긴다. 국제목판화전이 막 문을 열고 있었다. 60여 점의 작품 중에 우리의 홍진숙 원장과 김만 회원의 작품이 빛나고 있었다. 우리30명 모두 실크스크린에 참여하여 기념품을 챙겼다.


다음날 아침 정자항에서 참가자미국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맛이 달고 시원한 참가자미국은 어제의 피로를 가셔주는 듯했다. 우리는 정자항에서 출발하여 해파랑길 10코스에 접어든다.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출발하여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둘레길로 총770km, 50코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문체부가 지자체의 협조를 받아 야심차게 개발한 동해안 둘레길이다. 활꼴의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바다가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한다. 해변 모래사장에는 드문드문 텐트들이 자리 잡고 있고 아이들을 동반한 아마추어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이름 모를 생선을 제법 건져내 바구니에 담았고 고만고만한 아이들은 성취감에 들떠 있다. 한참이나 걸으니 강동화암 주상절리길이 나온다. 혹은 누어있고, 혹은 기울어지고, 혹은 솟아오른 주상절리들이 해변을 장식하고 있다. 조망대에서 바라본 부채꼴 주상절리는 신이 빚은 예술품이다. 우리는 관성해변의 몽돌해안을 지나 읍천리에 닿았고 볼거리가 많은 우리는 거기서 버스에 올랐다.
다리가 뻐근하다.


감포 해안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바다에 대왕암이 보인다. 661년 삼국통일을 완수한 신라의 문무왕은 지긋지긋하게 신라를 괴롭히는 왜구로 인하여 골머리를 알아야 했다. 생전에 그들을 소탕하지 못한 문무왕은 죽어서라도 저 악다구니 같은 왜구를 물리치겠다며 자신의 유골을 화장해 바다의 돌무리 가운데 묻어달라고 했다. 뒤를 이은 신문왕은 부왕의 유지를 충실히 따랐고 아버지의 은혜를 잊지 못해 감은사를 지었다. 우리가 찾은 감은사지는 밑바닥 구조와 두 기의 삼층석탑만 남아있다.



이렇듯 역사를 되뇔 시간이 없다. 어차피 주마간산격으로 다니는 우리는 하나라도 더 보아야 한다. 우리는 경주 불국사로 빠른 행보를 한다. 신라 때 지은 불국사는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렸지만 그 후 여러 번에 걸쳐 새로 짓고 늘리고 고쳐서 지금에 이르렀다. 절 마당에 우뚝선 다보탑과 석가탑은 예전에 볼 때보다 키가 커진 것 같다.
한숨 돌릴 시간이다. 우리는 조를 나눠 황리단길을 걸으며 예쁜 가게들을 두리번거리고 운치 있는 찻집에 앉아서 동행한 아름다운 이들과 통성명하고 서로 뜯어보며 환담을 나누고 천마총 사이를 설렁설렁 걸으며 여유를 갖기도 하였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 차려진 저녁식사를 끝낸 우리는 버스에 올라 어둠 속의 꼬불꼬불한 길을 달렸다. 동궁월지의 야경을 보기 위함이다. 안압지로 알려졌던 월지의 언덕에 옛날 있었을 법한 궁(동궁)이 조명을 받아 화려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고 오색빛을 머금은 연못은 잔잔하게 물결치고 있었다. 토함산 자연휴양림에 마련한 숙소는 거기까지 올라가기에 숨이 차다.
3일째, 우리는 경주 남산을 오르기로 했다. 나는 힘이 남아있는데 남들이 걱정을 한다. 내 나이로 보아 오르기에는 무리라는 것이다. 젊었을 때 오른 기억이 있고 그때 돌계단을 오르는데 힘들었던 일이 생각나 나는 일단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중턱에서 하산했다. 대신 유명한 황남빵집으로 향했다. 우리의 사무처장이 여러 사람의 부탁을 받고 여러 봉지의 빵을 사들었다. 꽤나 알려진 맛집에서 우리는 낙지를 곁들여 익힌 돼지고기 요리를 넣어 쓱쓱 밥을 비벼 점심을 맛있게 먹고 일어섰다.


되짚어오는 길에 우리는 양산 천성산의 홍룡사를 찾았다. 시멘트로 포장한 700m의 오르막길은 만만치가 않았다. 우리는 쉬엄쉬엄 걸어 올라가며 정담을 나눴다. 절을 낀 홍룡폭포는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부산에 이르러 유명한 돼지국밥골목을 찾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름기를 쏙 뺀 국밥을 남김없이 먹고 그릇바닥까지 긁었다. 우리는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이번의 도외문화기행을 있게 한 양방주 이사장님, 홍진숙 원장님, 그리고 이를 기획하고 끝까지 안내한 김영근 대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특히 여행계획을 짜고 한 치의 차질 없이 일을 진행해 나간 김윤희 사무처장님의 꼼꼼한 사무 처리와 친절한 마음씀씀이와 해맑은 미소는 잊을 수 없다. 또한 스탶들의 진행과정에서 아무런 불평도 없이 고분고분 따라준 일행들의 성숙한 매너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