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헤립의 침공과 기도의 능력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성과 기도의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성 아니면 기도 이렇게 흑백논리처럼 하나만을 선택하면서 살아갑니다. 앗시리야의 침공에 대항한 히스기야의 행동으로 이성과 기도의 사이를 어떻게 선택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역대하 32장
산헤립의 침공에 대항하기 위한 히스기야의 노력
3절
그의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그들이 돕더라
5절
히스기야가 힘을 내어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6절
군대 지휘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에서 자기 앞에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이르되
3,5,6절을 보면 앗수르군이 물을 구하지 못하도록 흘러내려가는 물을 차단하고, 성벽과 망대를 쌓고 무기와 방패를 만들었고 지휘관을 세우고 사기진작을 위한 위로의 말을 하여 주었네요. 당시로선 본인이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군은 전투경험도 전투능력도 전쟁장비도 앗시리아에 뒤쳐졌고 숫적으로도 중과부적으로 열세였습니다. 이를 파악한 산헤립은 이스라엘을 조롱합니다. 이에 약소국의 비애를 느낀 왕과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네요.
20절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21절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21절에 앗수르군대가 멸하여졌다고 나오네요.
이것이 어느 정도의 타격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절반 이상의 군대가 죽어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돌아간 병사의 수가 적으니 산헤립의 아들들이 반역을 일으킬 수 있었겠죠. 성경에는 이 사건을 한 천사가 행한 일이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글자 그대로 사실일까요? 아니면 우연의 일치인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한 것일까요? 유사한 성경 사례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5장3절
출애굽기 5:3 그들이 가로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하오니 가기를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온역(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민수기 14:12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사무엘하 24:15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
역대하 13:9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아사왕의 북이스라엘)을 치려 하여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
역대하 13:12
여호와께서 구스 사람들을 아사와 유다 사람들 앞에서 치시니 구스 사람들이 도망하는지라
민수기25:9
8절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9절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이와 같은 전염병에 의한 죽음의 사례는 성경에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나 사자나 어떤 대리자가 직접 엄청난 권능으로 대규모의 목숨을 뺏앗는 사례는 현재 지구상에서 목격된 사례는 없습니다. 다만 전염병으로 인해 수많은 병사들이 몰살을 당한 사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성계가 반역을 일으킬 때 위화도 회군의 4가지 불가론을 제시하였는데 그중 2가지가 전염병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젠 눈을 크게 들어 지구상의 역사에서 사례를 찾아보겠습니다.
장티푸스, 천연두, 홍역, 말라리아, 스페인독감, 콜레라, 흑사병 등은 전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로마의 멸망과 이슬람의 부흥, 나폴레옹군대의 전멸, 아테네의 패전, 아즈텍의 멸망, 아메리카 원주민의 멸망은 전염병이 몰고 온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그 외에도
1350년 유럽에서 페스트의 출몰은 빈민층의 몰살을 가져왔고 소작농의 품귀현상으로 인해 농노중심의 봉건제가 무너졌습니다.
1803년 프랑스는 식민지에서 발생한 황열병으로 수만명의 병사와 식민지 건설자들을 잃고 미국에 루이지애나를 1천1백25만 달러에 매각하게 됩니다.
1800년대 말에 나타난 우역바이러스(오늘날의 광우병처럼 소 몰살)로 인해 소들이 몰살하자 아프리카 각 부족들의 사회기반이 무너지고 기아와 난민이 흘러넘쳐 아프리카 땅의 90%가 식민지로 전락되었습니다. 서양세력에 변변히 대항한번 해보지 못하고 무너진 계기가 바로 전염병입니다.
어떤가요. 자연적인 현상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의인화하여 기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않나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이 아닙니다.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기록된 것은 당시의 사람들의 사고관을 반영한 것이고 성경기록 방식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불신앙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히스기야의 전쟁에 대비한 모든 행동들을 살펴봅시다. 이 모든 행동들이 이성에 기반을 둔 무의미한 것들이었을까요? 아니면 기도가 만사형통의 도구일까요?
둘 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뱀처럼 지혜로운 자, 예비하는 자, 부지런한 자, 성실한 자를 높게 평가하셨습니다. 또한 심지 아니한 가운데서 거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음의 두 구절을 비교해 보십시오.
신명기 6: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 이 구절은 광야 생활을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토를 얻기 위해 약속의 땅으로 진군하는 정복전쟁 중에 일어난 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정복전쟁 중에 심고 가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요. 뭐든지 현재 끌고 가고 있는 가축에서 식량을 얻든지 정복지에서 수탈을 하든지 두가지 방법 밖에는 없습니다. 일부 이해가 부족한 목회자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중 게으르고 악한 일부 사람들은 이 구절을 근거로 하나님은 심지 아니한 가운데 거두시는 분이라 여겼습니다.
누가복음 12: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먹고 사는데 모든 신경을 다 쓰면서 목메어 살것이 아니라 마음에 여유를 갖고 하나님 나라의 일에 동참하면서 살라는 의도의 말씀입니다. 일부 좋지 못한 의도를 가진 목사들은 이것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 인간의 자의적인 어떠한 노력도 모두 악이고 불필요한것이라 말하고 교회에 재물을 갖다 바치는 것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허나 예수님께서는 다음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또 하나의 다른 사례로 다윗이 평소에 돌팔매로 맹수들을 물리쳐 양들을 구하는 실전경험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더라면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사도 바울이 예수님께서 생전에 직접 가르치신 제자가 아닌데도 가장 많은 쓰임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다니엘은 어떻게 그렇게 모범적인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을까요?
이는 모두 준비된 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이성과 신념에 기초한 준비된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본인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음성이 들렸다 할지라도 만사불여튼튼으로 준비하는 모든 행동들이 불신앙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이성적인 행동들을 불신앙의 모습으로 돌리는 것은 신앙에 목메달다 패망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똑같이 답습하자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다윗은 범죄 후 선지자 나단의 예언에 목매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여 고난을 달게 받으려고만 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런 다윗을 행동을 순종적이고 의로운것이라 평했습니다. 자신들의 말을 소중히 여겨주는 맹신자들을 소중히하고 높여주고 싶어서 성경에 다윗왕에 대한 칭찬 일색으로 도배를 하였겠지만 이것으로 인해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 패망의 첫 단추를 끼게 되고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과 무고한 자녀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다는 것을 후대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성없는 맹신이 얼마나 큰 범죄를 몰고 오는지를 눈 뜬 장님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은 기도와 이성의 사이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할지를 성경 말씀과 역사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