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핀이 뭘까. 나는 모르는 말이다. 베어링은 또 무슨 말일까. 알 듯 말 듯 역시 모르는 말이다. 가게 간판마다 나는 모르는 철물이랄지 공구 이름이 적혀 있다. 내가 아는 공구는 몽키 스패너 정도. 그마저도 어느 것이 몽키고 어느 것이 스패너인지 늘 헷갈린다. 열에 아홉은 헛짚는다. 서면 철물상가. 가게엔 철물이 넘쳐나고 철물이 넘쳐나는 가게가 동보서적 뒷길을 따라서 죽 이어진 상가다. 가게를 들여다보며 간판을 올려다보며 걷는다. 내가 이름은 맞출 수 있는 철물은 몇 안 된다. 이름은 몰라도 낯이 익은 철물이 적잖고 몇 번쯤은 다뤄봤을 철물도 보인다. 가게는 많기도 많다. 수도펌프만 다루는 가게. 스프링만 다루는 가게. 볼트만 다루는 가게. 도매도 하고 수리도 하는 가게. 용접은 무슨 용접이든 척척 해 낼 것 같은 가게. 가게는 높아야 이층 삼층. 고만고만하다. 턱을 쳐들어야 꼭대기가 보이는 빌딩에 둘러싸인 서면! 이층 삼층이라서 고만고만해서 한 번 더 눈이 가고 한 번 더 봐진다. 가게는 관록이 있어 보인다. 가게도 관록이 있어 보이고 가게를 지키는 사람도 관록이 있어 보인다. 가게에 밴 기름때가, 가게를 지키는 사람에게 밴 기름때가 관록이 예사롭지 않음을 보여준다. 넘쳐나는 수천수만의 철물 가운데 손님이 찾는 철물은 대번에 꺼내올 것 같은 가게고 사람이다. 손님이 아 하면 대번에 어 할 것 같은 가게고 사람이다. 파이프 가게를 지키는 아주머니도 관록이 있어 보인다. 몽키인지 스패너인지를 들고 기계를 다룬다. 실장갑은 마디마디 기름투성이. 1밀리 오차도 용납하지 않는 작업인지 눈매도 매섭고 손매도 매섭다. 서면 철물상가에서는 여자 남자가 따로 없다. 다 기술자고 다 관록이 있어 보인다. "전국에서 다 왔지요." 부산경제진흥원 최헌 센터장은 철물상가 근방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까닭에 육십년대 후반 이곳 풍경을 기억한다. 상가가 노는 공휴일에 놀이터 삼아 놀던 이곳을 기억하고 없는 철물이 없어 전국에서 몰려들던 사람들로 `억수로` 번성하던 시절을 기억한다. 최헌 센터장 말대로 서면 철물상가는 전국에서 알아주던 상가. 지금은 서면에 가려, 턱을 쳐들어야 보이는 서면의 빌딩에 가려 멀리서는 보이지도 않지만 명성을 간직하고 영화를 간직한 상가다. 그런 명성 덕분에 대를 이어 철물을 파는 가게가 한 집 건너 한 집이고 그런 영화 덕분에 영광도서 인근 식당 태화육계장도 애초에 철물상가에서 돈을 벌어들여 목 좋은 자리로 옮겼다는 후문이다. 그런 명성도 그런 영화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은 모양. 시들해진 모양. 불경기 탓에 문 닫는 가게가 속출하고 사상에 자리 잡은 공구상가로 옮긴 가게도 많다. 잘 나가던 때 5백이 넘었다던 가게 수가 지금은 오륙십 정도. 정말 `아, 옛날이여!`다. 빈 가게에 새로 들어선 가게는 주로 식당. 젊은 사람들 취향에 맞춘 퓨전식당이 속속 들어서면서 철물상가 한쪽은 젊은 사람들이 붐비는 음식거리로 단장하고 있다. 팔짱을 낀 젊은 연인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타로점을 봐 주는 철학관도 보이고 쇼윈도 현란한 옷집도 보인다. 기름때 밴 가게와 퓨전가게가 공존하는 서면 철물상가. 철물상가를 걸으며 오늘과 다른 어제를 돌아보고 어제와 다른 오늘을 짚어보는 건 어떨까. 돌아보고 짚어보면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공존시켜 보면 또 어떨까. 철물상가는 이쪽 입구도 열쇠집이고 저쪽 입구도 열쇠집이다. 열쇠를 주렁주렁 매단 가게가 상가 입구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은빛으로 빛나고 금빛으로 빛나는 열쇠들. 혹시 알랴. 저 열쇠들을 구멍에 꽂고 돌리면 은빛으로 빛나고 금빛으로 빛나는 거리에 들어설는지. 가슴 한군데 구멍이 뻥 뚫린 나를 그 거리에 세울는지. dgs11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