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타르 버스터미널에서 사라예보로 가는 버스를 기다립니다,
터미널이 정말 한산하네요,
사라예보로 가는 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산이 많은 나라입니다.
아름다운 산들을 보며 갑니다,
사라예보까지 100km쯤 되는 길을 3시간만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4일간 머물 아파트앞에 도착했습니다,
아파트 주인이 와서 문을 열어 주겠답니다,
아파트앞의 인도가 공원같은 곳입니다,
넓고 좋은 아파트를 얻었습니다,
방이 2개짜리지만, 방 1개는 그냥 버려두기로 합니다,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좋습니다,
바로 앞에 이런 시장도 있습니다,
오랫만에 만나는 시장입니다,
시장은 정말 보기가 어렵네요,
시장은 물건을 사고 파는 역할만 하는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살아갈수있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시장은 정말 안 보이고 마트만 보이고,
길거리음식은 아예 없고,
가판이 별로 안보이니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어찌 살아가는지 모르겠네요,,
사라예보 구시가를 찾아 갑니다,
아파트에서 구시가까지는 좀 멀지만, 걸어서 가보기로 합니다,
강변길이 참 좋네요,,
다리위에 서면 만나지는 것들,,,
이렇게 묶고 채워야만 사랑이 묶이는 것일까요?
사랑은 묶고
참고 또 참으며 오래 오래 참아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가다보면
이치에 안 맞아 보이는 일도 있고,
화가 나는 일도 있습니다,
그것이 당연합니다,
그런 순간에 참는 대신에
고마운 마음을 내보면 어떨까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일들을 조금 멀리서 바라보면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마움이 보입니다,
그 고마움을 키워 보십시요,
작은 일들에 대한 화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참을 필요가 없는 이치입니다,
강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아 보이는 밀라츠카강,
이 작은 하천같은 강에 의지해 수도가 생겨나고,
한많은 역사가 이어 집니다,
작은 다리위에 재미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다리가 오다가 휴게실로 변하며 다리 중간에서 끝이나고,
반대편에서 오는 길도 마찬가지여서
다리가 이어 집니다,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화합의 상징일까요?
길을 걸으면 어디서나 만나지는 교회,
라틴교가 나타났습니다,
역사적인 다리이지요,
1,914년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부부를 총으로 쏘아 죽이고,
1차세계대전이 시작되는 역사적 다리입니다,
전쟁은 그래서 일어 났을까요?
모든 일에는 뿌리깊은 원인이 있습니다,
그 뿌리를 보지 못하고 겉만 보는것은 일의 해결방법은 아닙니다,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화가나서 싸움이 시작되는것 같지만,
누적된 감정이 들어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건의 발단만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소주를 3병쯤 마시고도 끄떡없던 사람이 한잔을 더 마셨더니 왕창 취해 버렸다면,
그 사람은 술 한잔에 취한것이 아닙니다,
참고 참아있던 것들이 누적되어 폭발할 곳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참아서는 안 됩니다,
참을것이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마음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일때,
마음에 평화가 심어 집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늘에서 쉬어 갑니다,
발칸을 지배하던 오스만은 18세기에 접어들며
오스트리아 빈 포위전이 실패로 돌아가며 국력이 쇠퇴합니다,
오스만이 약해지기 시작하자
부동항을 꿈꾸던 러시아가 크림반도 아래의 흑해를 통해 지중해로 진출하려 합니다,
러시아는 부동항을 확보하기위해
같은 슬라브족끼리 돕자는 명분으로 발칸의 나라들의 독립을 지원합니다,
그래서 발칸의 국가들은 하나씩 오스만으로부터 독립해 나갑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그 순간을 노려 오스만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국가들을 집어 삼킵니다,
신흥강국으로 부상하는 독일제국이 오스트리아를 압박해가며
발칸반도를 손에 넣고자 합니다,
이를 두고만 볼수없는것이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입니다,
이 복잡한 이해관계속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사건이 이 다리위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세르비아 청년으로서는
이토오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막 울려고 하는 아이의 뺨을 때려준 것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우렁차게 설움을 뱉어내며 울게 됩니다,
이것이 1차대전의 시작이지요,
오랜강국 오스만이 무너지는 순간,
신흥강국 러시아와 독일의 새로운 식민지 개척,
더 많은 식민지를 확보하고 싶었던 오랜 강국 영국과 프랑스,
이 구도가
발칸반도의 패권을 놓고 격돌했던 역사적인 다리..
다리는 죄없이 수백, 수천만이 죽어가는 전쟁의 원흉이 되었지요,
남편(아내)가 한
말 한마디때문에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그 행동이 미운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미움이 있음을 돌아봐야 합니다,
내 마음에 미움을 씻어야 합니다,
적은 밖에 있는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습니다,
참고 참는것은 그 미움에 거름을 주는것과 같습니다,
누르면 누를수록 강하게 튀어 나가는 스프링처럼 참는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먼저 나를 불행으로 떨어뜨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불행하게 합니다,
함께 지옥으로가는 길이지요,
감사하고 감사하십시요,
저 사람이 있음으로 살아가지는 세상에 감사하고,
저 사람이 하는 못마땅한 행동을 할수밖에 없는 마음을 받아 들이십시요,
그 마음이 세상에 적을 없게 만듭니다,
내 마음에서 미움이 사라지면
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먼저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면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평화가 찾아 옵니다,
그것이 함께하는 천국입니다,
서로 떨어진 길을 이어주는 다리,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탐욕을 내려놓고,
서로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너 갑니다,
오스만이 건설했다는 600년된 시장,
내부는 오스만의 냄새가 배어 있습니다,
이스탄블의 그랜드바자르의 모형처럼 생겼네요,,
전쟁박물관입니다,
세상에 전쟁이 없었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이런 비극을 겪은 나라도 드물지요,
1,992년 4월 5일
세르비아의 지원을 등에 업은 스롭스키민병대가 사라예보를 포위했고,
중무장한 13,000명의 스롭스키민병대에 포위된
빈약한 무기의 사라예보 70,000명의 수비군은 도시방어에 급급한 채
포위를 뚫지 못했고,
적은 수의 스롭스키도 도시로 진입을 못한채,
역사상 가장 긴 포위전이 시작되어 96년 2월 29일까지
1,425일,
3년 10개월 3주라는 기나긴 기간동안의 포위전이 일어난 곳입니다,
포위가 시작되었을때
사라예보와 그 주변의 인구는 526,000명이었지만,
포위가 끝난후에는 30~38만명의 사람들이 남았습니다,
스롭스키군은 산속에 메복하고 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격을 했고,
사람들은 식량을 구히기위해 길거리를 뛰다가 죽어가야 했습니다,
입장료 15마르카(11,400원) 을 받네요,
우리는 입구만 구경하고 돌아 섭니다,
보스니아 전쟁중 공식 사망자는 10만명입니다,
그러나 전쟁중 사망자수는 누구도 모릅니다,
사라예보에서만도 10만명은 훨씬 넘게 죽었을듯 싶고,
보스니아 90년 인구가 447만명에서 2,024년 인구가 319만명이니
나머지는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인종청소라는 이름으로 세르비아와 스롭스키에 의해 자행된 만행은
스롭스키 점령지역에서 남자는 처형하고,
성에 가장 민감한 이슬람의 여인과 소녀들을
"강간수용소"를 만들어
"강간도 전쟁무기"라는 이름으로 누구든 들어가서 마음껏 강간을 자행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임신을 시켜 아이를 낳게해서 인종을 말살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강간수용소를 통해 태어난 아이들이 지금 이 나라의 30대속에
살아가고 있는것이 멈추지 못하는 비극이 되는 것이지요,
그 모든 원한들을 가슴으로 품을수가 있을까요?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붐빕니다,
길거리의 넘쳐나는 카페들,,,
구도시의 중심에서 만나지는 커다란 교회,
구도시를 걸어 다녀 봅니다,
작은 공원에 바쳐진 꽃다발,,,
1,992라고 씌여 있습니다,
길거리를 걷고,
커다란 모스크 마당에서 바라보는 교회의 높은 종탑,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말라"고 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야훼"이고,
유럽사람들에게는 "god"
이슬람에게는 "알라"이며,
한국사람에게는 "하느님"이기도하고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다른 신이어서 그토록 싸웠을까요?
사라예보의 상징,
"Sebilj"
독특하게 나무로 만든 식수대입니다,
오스만이 곳곳에 만든 것들이지요,
식수대보다는 식수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멋집니다,
오스트리아가 짓고,
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시청으로 사용하는 건물,
노란성, Yellow Fortress로 갑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다가
이런 묘지를 만납니다,
4년여동안 날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길거리에서
장례식은 꿈도 못꿀 일이었을테고,
그래서 시가지 곳곳에 이런 대규모 무덤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92~95년 사이에 죽은 사람들입니다,
오스트리아군이 마굿간으로 사용했다는 노란성,
대포하나만 걸려 있습니다,
바라보는 전망이 좋습니다,
이 아름다운 도시가 가지는 설움을 바라보며,
"내 행복이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딛고 서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교훈을 기억합니다,
구시가 거리를 다시 걸어 봅니다,
오스만의 600년된 시장도 다시 들러보고,
내부도 다시 한번,,,
걸어서 돌아 갑니다,
강변길대신에 도심 한복판을 걸어 봅니다,
넓은 길,,,
마음을 넓게 가지면 우주도 품을수가 있지만,
마음을 좁게 가지면 송곳 하나 꼽을 자리도 없습니다,
마음속에 사랑을 품으면
이해가 생겨나고,
이해못해 줄 일이 없습니다,
내가 행복해지며
너도 행복해져서 함께 천국에 이르는 길입니다,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이름의 집착을 품으면
마음은 미움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미움은 참고 참으며 분노가 터져나갈 시간을 기다리며
자신의 마음을 지옥속에 빠뜨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함께 지옥에 이르게 됩니다,
적은 없습니다,
마음에 미움을 지우면
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적이 없어진 마음에 찾아오는 평화가 행복의 열쇄입니다,
그렇게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첫댓글 사라예보의 기억은 1970년대 우리나라 여자탁구가 금메달을 딴 곳으로 기억합니다.
이에리사 라는 탁구선수 이름과 함께~~~
그런데 라틴교에서 세계1차대전의 시작을 보았고,,,
1992년부터 4년간의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그런 가슴아픈 도시임을 몰랐습니다...
뉴스에 나오는 보스니아 내전이라는 제목만 보고 지나쳤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지금입니다....
미움과 탐욕으로 서로 죽이고 죽이는 일은 이제는 없어야 하는데요~~~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모든 존재가 평화롭기를,,,,,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