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23. 면허범위 넘나들기
J원장은 내과의원을 운영하는 내과전문의이다. 그는 몇 달 전부터 환자가 줄고 의원 영난이 가중되어 건물 임대료와 인건비를 제대로 내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위의 조언대로 600만원을 주고 레이저 시술기를 구입하고는 점을 빼고 문신을 지우는 일을 시작하였다. 이 일을 시작하고 난 뒤에 수입은 약간 늘어서 경영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J원장은 아예 의원 이름을 <J내과>에서 <J피부미용클리닉>으로 바꾸어 달고 피부관리사를 고용하고 화장품을 판매하는 일까지 해볼까 생각중이다. 가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자괴심에 빠지지만 그렇다고 적자를 보거나 놀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다.
<윤리적 고찰>
의사는 자신이 훈련받은 범위와 능력 내에서 해당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진료과목과 전문과목을 두고 있는 이유는 의사가 이를 자율적으로 판단하여 환자를 진료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물론 “전문의”는 일정한 수련을 쌓고 해당 학회의 인정을 받아 특정 분야의 시술을 할 수 있게끔 보장이 되어 있지만 제도적으로 전문의가 아닌 의사가 어떤 분야의 시술을 하는 것을 막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는 의사 자신의 자율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대한의사협회 의사윤리지침은 제6조 1항에서 “의사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의학실력과 윤리수준으로 의술을 시행하여야 한다.”라고 하였으며 동조 2항에서는 “의사는 각급 의사회, 각급 의료기관, 관련 전문학회 등에서 주관하는 연수․보수 교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새로운 의학 지식과 기술을 끊임없이 습득하고 연마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제12조1항에서는 “의사는 의사로서의 양심과 전문적 판단에 따라 환자를 진료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든지 의사의 정당한 직무 수행을 방해하여서는 아니된다.”고 하였으며 동조 3항에서는 “국가와 사회는 법률 등에 의하여 의사가 의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을 최대한 보호하고 지원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즉 이 사례에서 J원장이 자신의 전문 지식과 경험, 그리고 해당 시술의 난이도 등을 고려하여 자신이 이 시술을 하는 것이 환자에게 아무런 해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내렸다면 일차적으로 이 시술을 금할만한 윤리적인 이유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의사의 전문직 윤리(professional ethics)는 의사 집단 내에서의 과다한 경쟁과 전문분야간 갈등을 최소화할 것 역시 요구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이 사례와 같은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의 수요에 맞는 적정한 의료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는 일차적으로 국가의 책임이자 의사 집단의 책임이기도 하다.
윤리지침 제13조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하고 있다.
제1항 “의사는 국민의 건강을 위하여 적절한 의료제도, 충실한 의료설비, 적정한 의료수가 등 최선의 의료환경 조성을 국가와 사회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이며
제2항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의료기관은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하여 정당하고 적절한 대우를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였다.
의사의 직업적 품위(professional dignity)는 오래 전부터 의사 집단에 요청되고 인정되었던 사회적 순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인데, 의료기관의 경영 책임이 전적으로 의사 개인에게 맡겨져 있는 환경에서 이러한 품위를 지키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적정 의료환경을 국가와 사회에 요구하는 것은 의사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J원장이 자신의 자율적인 선택으로 충분한 교육을 받고 경험을 쌓은 뒤에 피부과 진료를 하는 것은 환자에게 이득이 되는 한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렇게 된 동기가 의원의 경영난이라면이는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의사 집단 내의 과당경쟁을 조절하고, 적정 수준의 진료를 제공해야 하는 전문직 집단의 윤리적 의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즉 개별 의사의 선택은 일정 조건이 충족되는 한 이를 존중해야 하나 의사집단과 사회는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진료과목을 변경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만약 사회의 변화, 그리고 인구집단과 질병 양상의 변화에 따라 적극적인 대처가 요구되어 기존의 의사를 재교육하고 진료과목과 전문분야를 재배치할 필요성이 생긴다면 의사 집단은 이에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하며 이는 윤리적이고 합당한 일이다.
<법률적 고찰>
우리나라는 전문의 제도를 두고 있다. 전문의는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의사면허를 취득한 자로서 지정수련병원에서 소정의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이수하고 시험에 합격한 자를 말한다(의료법 제55조, 전문의의 수련 및 인정 등에 관한 규정 제17조). 의사의 주의의무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의사의 전문영역도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데 통상의 의사라 하더라도 일반의와 전문의는 베풀어야할 주의의 정도의 차이가 있고, 전문의라 하더라도 당해 질병이 자신의 전문분야에 속하는지 여부에 따라 주의의 정도가 달라진다. 전문의에게는 해당 전문분야에서 비전문의에 비해 보다 고도의 전문지식과 기술이 요구되므로, 전문의는 비전문의에 비해 보다 높은 주의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사례에서 J원장은 내과 분야의 전문의이고 피부과 분야에 대해서는 일반의로 볼 수 있다. 따라서 J원장의 피부과 시술과 관련하여 의사의 주의의무를 판단한다면 일반의로서 통상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해당분야 비전문가인 J원장이 스스로 피부과 전문의라고 내세우면서 전문의 계통의 진료를 행할 경우에는 외견상 전문의로 비추어진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므로, 전문의의 주의의무를 기준으로 주의의무를 판단하여야 하고 전문의가 아니라고 하여 주의의무를 경감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