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운동이었고, 주변에 암장도 많아 어디를 갈까 참 고민도 많이 했읍니다만 1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니 여러가지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이 있더군요.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심심찮게 많은 실내암장을 찾으실 수 있을겁니다. 최고의 고수가 있다던가, 아니면 시설이 뛰어나거나, 그도 아니면 이용료가 아주 저렴하거나, 혹은 미남미녀들이 많다던가... 등등
근데 여기 크럭스존은 위에 얘기한 것 중에 어느하나에도 부합하는 면이 없읍니다. 시설도 그럭저럭, 이용료도 그럭저럭, 인물도 저를 빼고 나면 그럭저럭....... 일부 고수님들 제외하면 실력도 고만고만..
그런데 여러 단체생활을 많이 해봤지만 여기만큼 희한한 데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서 보고, 듣고, 느낀 점을 그대로 몇자 적으려구요. 여기는 아마도 운영진분들이 사용하시는 곳인것 같은데 다행히(?)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으로 열려있네요...
1. 최고라고 일컫을 고수가 없다.
여기는 대한민국을 대표할 유명한 분은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어딘가 가 보고 싶다면, 대한민국 어느 벽이던 그 꼭대기로 데려다 줄 고수님들은 있읍니다. 그 분들도 생업이 따로 있지만, 제가 보기에 적어도 등반에 대한 열정만큼은 한 여름 바위에 내리쬐는 한 낮의 열기보다 더 뜨거울겁니다.
비가 오던 태풍이 불던 날이 덥던, 춥던 계획된 등반이라면 일단은 그곳으로 가니까요. 멍하니 구경만하고 오는 한이 있더라도...
하지만 지금 신입회원님들의 열기는 그 보다 가끔은 더 뜨겁게 타오릅니다....
2. 회원들이 못 생겼어요.
얼굴이라는 것이 각자의 눈높이에 따라 좀 다르긴 하지만 미남이나 미녀가 좀 드물어요.
여러분이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회원님들의 얼굴과 마주 친다면, 아마도 잘 생기고 못 생긴걸 느끼기 전에 이곳 회원님들이 여러분을 반갑게 맞으며 외치는 "안녕하세요"란 소리를 먼저 들을 겁니다.
그 마음의 깊이가 너무 깊고, 그 마음의 예쁘기가 뱃살공주와 같아서 (오타입니다. 백설공주) 곁에서면 모두가 예쁘고 착한사람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곳에 오신다면 회원님들 마음의 크기만큼 예쁜 얼굴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3. 특별강습이나 선생님이 없어요.
여러분이 첨에 당황스럽게 느끼기도 할 부분일텐데, 여러분을 지도해 줄 선생님이 따로 없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벽 앞에 서는 시간이 언제가 되었든, 항상 곁에 있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조언을 해 줄겁니다. 혹은 여러분이 암장에서 초크 칠을 하는 누군가에게 궁금한 것을 묻는다면 누가 되었든 서스럼없이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려고 노력할 겁니다.
일요일 아침 TV에서 외치는 드림팀의 함성을 뒤로하고, 산에 오를 준비가 되었다면 산에서 부딪힐 모든 위험과 여러분의 안전을 확보해줄 친구같은 사람들을 만날 시간입니다.
이곳은 모두가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혹은 제자가 되기도 하고, 경쟁자이면서 가장 친한 동무가 됩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 산에 오르면, 서로에게 모두인 자일 파트너가 되지요.
4. 암장이 시끄러워요.
이런 운동은 여러분 팔에 많은 펌핑(혈류량의 증가로 근육이 팽창된 상태)을 일으킵니다. 가끔은 풀리지 않는 문제로 인해 머리에 펌핑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암장에서 느끼지 못할 정말 피곤한 일은 자주, 많이 웃어서 배에 펌핑이 나기도 한다는 겁니다. 암장이 3층에 위치해 있지만, 1층에 들어서면 누군가의 기분좋은 웃음소리가 여러분의 기분까지 좋게 만들지 모릅니다. 만약 웃음이 없는 날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더 재미난 이야기를 선사하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여겨주세요.
5. 좀 아니, 많이 피곤한 운동입니다.
체중이 감소하는 다이어트 효과가 크다고 하는데 전 잘 모르겠습니다. 뱃살이 없어져야 되는데, 얼굴 볼살만 없어져서 폭삭 늙어버렸읍니다. 1년이 지나도록 6kg밖에 줄지도 않았고, 가끔은 걷다가 헛다리를 집기도 하고, 무릎이 갑자기 굽혀져서 주저 앉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굉장히 피곤한 상태로 돌아다니는 강시가 된셈이지요.
하지만 저녁에 늦게 집에 들어가서 새벽에 일어나 수영장을 달려가고, 회시일도 열심히(?) 저녁에는 다시 이곳으로 옵니다.
이 곳은 피곤함 이전에 저에게 즐거움입니다. 조금 피곤한 몸은 이곳에서 재미난 회원님들을 만나면 원기를 회복하고, 심하게 피곤한 몸은 산에서 흘리는 땀으로 건강하게 만들어 돌아옵니다.
6. 아이들은 성적이 떨어져요..
학생들이야 공부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성적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주 정상이겠지요. 하지만 공부가 시간과의 싸움은 아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태권도, 합기도, 검도 도장에서도 다들 집중력을 높여서 공부도 잘 할 거라고 하잖습니까?
제가 학원장이 아니라서 우리 도장에 보내세요, 우리학원에 보내세요, 우리 암장에 보내세요.. 이렇게 이야기는 못합니다. 아이들의 인생을 어른들 말 몇마디로 망칠 수는 없으니까요.
아들녀석인 짱구도 거의 100% 성적이 떨어질 겁니다. 5학년 가을에 여기 다녔으니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성적은 뭐 고만고만해서 첫손가락에 꼽습니다.(팔불출아님), 말썽도 많고, 까불대기도하고, 웃기기는 지 애비보다 더 웃기는 재미난 아이입니다. 암장 다니면서 지금까지 공부는 전교에서 첫 손가락 꼽는 녀석이니 이제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갈 때는 없고, 성적이 떨어질 일만 남은 셈이지요.
그렇지만 짱구는 지금도 이곳에서 함께 운동할 좋은 친구를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읍니다.
7. 솔직히 시설은 좀 별로입니다.
여기보다 좋은 시설과 좋은 홀드, 웨이트장비 등을 갖춘곳이 많이 있읍니다. 수원권에도 물론 있지만 다른 도시에 가도 좋은 시설에 쾌적한 곳이 많이 있을거예요.
저도 아이랑 암장에 올라올때면 항상 길거리를 지나다니시는 분들이 당구치러 가는 부자지간으로 보지 않을까 내심 신경을 씁니다. (2층이 당구장이라서)
락커룸은 좁고, 냄새도 나고, 웨이트장비도 낡았고, 런닝머신을 뛰다보면 옆에 있는 신발냄새를 더 많이 맡게 되는곳 이니다. 게다가 컴퓨터도 후지고..... 처음 들어오시면 "뭐 이래?"하시는 마음을 가지실지 모릅니다. 아니 그런 마음이 들어야 정상이지요. 저는 처음에 출입구도 못찾았으니까요..
하지만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암장을 가로질러 나갑니다. 오래된 미끄러운 홀더는 이곳을 지나간 수 많은 클라이머들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운동을 마치고 좁은 락커룸을 들어서면 내가 흘린 땀방울의 의미를 다른 사람들도 모두 느낀다는 것을 알려주지요.
런닝머신을 통해 흐르는 신발냄새는 저너머 보이는 아파트 거실에서는 결코 알 수 없는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유일한 것입니다. 한겨울 추위속에 오손도손 나눠먹는 군고구마는 내년 봄볕에 암벽을 오르고 있을 나의 기운이 됩니다.
이곳은 새아버지나 새어머니 같은 그런 곳은 아닙니다.
옛날부터 날 키워준 이제는 늙어서 보잘 것 없지만 그 누구보다 날 사랑해주던 시골의 촌부가 다 되어버린 부모님과 같은 곳이지요.
여러분 말없이 떠나갈때 묵묵히 손 흔들어주고, 다시 돌아올때 동네어귀까지 버선발로 뛰어나와 맞이해 줄 그런 곳이지요.
8.
위의 이야기들이 농담이나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로 느껴지시지 않나요?
맞습니다. 농담이기도 하거니와 그냥 출석한 김에 지나가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농담속에 진담이 있고, 가끔은 지나갔다가 되돌아오기도 하지요.
살다보면 스트레스 만땅인 날도 있고, 기분좋은 날도 있고, 걱정이 많고, 피곤한 날도 있고, 저녁에는 아무리 늦게 자더라도 아침에 일찍 일어날 것 같지만, 항상 아침에는 피곤에 겨워 일찍 잠자리에 들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일상을 반복합니다.
가끔은 시작하는 것이 계획하는 것보다 먼저인 날이 있기도 할 겁니다.
오늘처럼...
그리고 지금처럼
**PS : 이곳에서 짱구아빠라는 사람을 안다는 것이 여러분에겐 작은 행복이 될 겁니다. 하지만 곧 시라소니, 작은새, 몰라, 지훈스, 올라바바, 심우두리, 캐요시, 무탈, 미키, PT, 외일드카드, 달빛사냥꾼, 새올 등등 (너무 많아서다 못 적어요) 이라고 불리는 더 큰 행복을 얻게 될겁니다.
함 땡겨보실라우.... (이 말은 센터장님을 만나보겠냐는 의미입니다. 센터장님 닉넴이 '땡겨')
첫댓글 이건 왠 감동의 쓰나미 이거 쓰시느라 계속 계셨군요 잘읽고 갑니다 저도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좋은사람분들과 운동하면서 다니고 싶습니다..
계속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마침 사무실에 혼자라서 좀 길게 있었더만.. 스토커 맞지?
암장에 대한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기분좋은 글입니다. 앞으로 더 힘내세요..시간이 지나면 제가 누군지 아시겠죠??(전 신입회원)
ㅋㅋ참고로 전 짱구아빠가 누군지 알고있습니다.
혹시 이희성님 아닌감?...성이 자신이 없네.
내가 이름이랑 얼굴을 매치시키지 못해서 그렇지, 눈썰미가 있어서 한번 걸리면 다 기억함..ㅎㅎ.
정말 눈썰미 장난아니신데요??^^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담에만나면 정중히 인사올릴께요..ㅋㅋ
성은 김씨입니다...
헐 제가 그만 성폭행을 해 버렸군요..
저엉말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
외출하려다 글이 길어 담에 읽어야쥐하다가 읽다보니 다 읽어 버렸네요..울암장 분위기파악을 한방에 다하시고 정말 진솔한 얘기에 가슴이 다 찡합니다.
단 아쉬운것은 이운동을 한방에 익히지 못한다는게 칭구에 비애인듯...그렇지만 꾸준히 노력하는것이 보이니 용서가 되어짐. 글 정말 맘으로 읽었습니다.
칭구야~~
이 운동을 한방에 익히지 못한 건 차라리 행복이어라..
내가 한방에 익혔다면 벌써 여기를 떠났을 수도.... ㅎㅎㅎ
월악산 동그립니다.거리가 문제군요,달려가고싶습니다..수안보외벽에서 운동하지만 추워지면못한다기에,,겨울에 실내암장 생각중입니다..푸근한암장이라 확신합니다,겨울에 놀러갈께요..
" 당신이 부르면 달려갈꺼야 무조건 달려갈꺼야~~ 짜짜라 짜라짜라 짜짜짜" 언제든지 달려오세요.
이 곳은 당신이 무엇을 상상하던 그 이상입니다.. 백미달 회원님들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암장엔 고수가 많아...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고수들.... 이러한 모든 고수들을 평정해야 진정한 중원의고수가 되는데....
난 아직 출첵이나 이러한 썰을 푸는데는 하수다 보니 내공을 더욱 연마해야겠는데~~~~머리와손꾸락에 펑핑날것 같다.
↑↑↑↑↑ 신입회원 여러분! 이 암장에서 다 몰라도 꼭 알아야 될 몰라님입니다.
피곤할때 자연스러운 쌍꺼풀이 아아주 매력적인 분이지요..
아캬캬캬캬캬캬캬캬 아놔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맘속으로..) 정말 고수님의 풀린 쌍까풀은 아주 심한 매력을 풍기지요..
흐~~!
단숨에 읽어 버렸네요~~!
크럭스존 대표로 국회로 보내야 할 글솜씨네요~~!
즐감하고 갑니다~~~!